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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4.09.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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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징적 주얼리
주얼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옷이 신변 보호의 의미에서 생겨났다고 한다면 주얼리는 신분과 권력을 나타내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주얼리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남성들의 치장문화에서 비롯됐다. 부족의 추장이 사냥을 나가서 잡은 호랑이나 곰의 이빨, 발톱으로 만든 목걸이나 팔찌 등은 추장의 힘의 세기를 나타내는 척도가 됐다.
세월이 흘러 보석이라는 것들이 발견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그것을 연마하는 기술을 익혔다. 이런 돌은 귀해 일반인들보다 지방 유지나 귀족들의 소유가 되기 시작했고 그 아름다움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사람들은 이 보석을 자신의 아름다움을 한층 돋보이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해 자신의 신분과 계급, 권력 등을 나타내기 위한 반지 인장과 왕관 등에 사용했다.
◆ 사랑의 징표
모든 사랑의 징표 중에서도 주얼리는 예전부터 사랑의 느낌을 가장 확실하게 표현하는 도구로 간주되어 왔다. 서로의 사랑에 대한 믿음을 상징하는 맞잡은 손, 큐피드의 화살, 비밀의 반지, 결혼을 상징하는 엮어진 두 개의 원, 사랑하는 사람의 머리카락이나 혹은 작은 초상화를 넣은 메달 등 예전부터 사람들은 주얼리를 통해 사랑을 전달했다.
중세에 처음으로 등장한 하트 형태는 이후에 금으로, 혹은 다이아몬드나 유색 보석을 박은 형태 등으로 변모하며 사람들의 사랑을 대변하게 되었고 이 하트는 지금까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사랑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 주얼리의 기원
인간은 옛날부터 신체를 장식해 왔다. 인간의 생활과 더불어 형성되는 약 7,000년 이상의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주얼리는 자신의 사회적 신분을 표현하거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혹은 사랑의 징표나 죽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또는 자신을 아름답게 보이게 하기 위한 것 등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됐다.
◆ 원시시대 주얼리
주얼리 제작에 처음 사용된 장신구는 구석기 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때 사용된 것은 동물의 이빨이나 돌멩이, 뼈, 물고기의 가시, 조개 등에 구멍을 뚫어 끈으로 연결해 목걸이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든 것이었다. 이것은 육체적인 힘이 남들보다 월등히 뛰어나 사냥이나 고기잡이 등의 방면에 훨씬 더 재주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도구였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는 주얼리, 즉 ‘금을 연마하고 보석 등을 박은’이라고 하는 것은 청동기 시대에 들어서면서 나타나게 된다. 사람들은 귀금속을 연마하는 기술을 발견하면서 금속을 아름다운 형태로 변형시켜 장신구로 탈바꿈해 자신을 표현했다.
◆ 고대 주얼리
페르시아 팔찌
로마 귀걸이 |
이 풍부하고 광범위한 주얼리의 파노라마는 고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시대의 귀금속 연마 기술은 놀랍고도 정교한 것이었다. 수메르 인들의 금과 불투명 보석을 연마하는 세공 기술, 그리스 시대의 화려한 금 장신구,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이집트의 독특한 스타일의 상징적인 주얼리, 에트루리아 인들이 사용하기 시작한 선 세공 방식 (filigree: 가는 금 철사 등을 당초무늬 등으로 말아 장식한 것)이나 입상(粒狀)화(granulation) 한 것으로 만든 사람 형상의 귀걸이나 목걸이, 가넷(Garnet)과 에나멜 등을 사용해 화려한 색채를 더해 만든 주얼리 등의 정교함과 화려함은 현재도 우리를 감탄하게 한다.
하지만 종종 로마시대 전의 바바리안 족이 사용한 주얼리에서는 투박한 세공기법을 사용한 장신구도 발견된다.
◆ 중세 주얼리
메달 |
주얼리의 획기적인 변모는 중세시대에서 시작된다. 사실 이 시대에는 주얼리는 종교의 상징, 혹은 기사들의 문장으로 사용되었다. 이런 스타일은 고딕시대의 건축양식에서 모티브를 따서 주얼리를 만들기 시작하기 전까지 계속됐다.
◆ 르네상스 주얼리
Anna di Beaujeu의 초상 |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서면서 주얼리의 화려함은 상당히 높은 수준에 다다르게 된다. 에나멜 착색과 각종 보석의 사용으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주얼리는 더욱 화려하게 변모되었다. 바로크 시대에 들어서면서 자연이나 인간 등의 형상이 주얼리에 적게 사용되고 보석의 사용이 늘어나게 됨에 따라 보석 연마자들이 주얼리 제작에 있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기회를 잡음과 동시에 금 세공자들을 자신들의 그늘에 넣게 된다. 이 시대의 주얼리는 보석 가공에 대한 기술을 보여주는 아주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로코코 주얼리
로코코 시대에 들어서면서 제품의 가벼움과 좌우 비대칭의 형상이 선호되면서 주얼리의 형태는 훨씬 더 자유로워 졌다. 그리고 약 1770년부터 시작된 네오 클래식 시대에 주얼리는 디자인에 있어 그 품위와 우아함이 더해졌다.
◆ 네오 클래식과 나폴레옹 주얼리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주얼리는 나폴레옹 가문을 위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것은 주얼리 역사에서 중요한 시점으로 거의 대부분의 유럽에 영향을 줘 1815년 워털루 전쟁 이후까지 약 100년 동안 그 스타일은 남아 있게 되었다. 당시 사람들은 중세의 회화나 초기 르네상스 시대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었고 약 1850년경 사회의 취향은 고전적인 것에 리바이벌 되어 주얼리는 앤틱 스타일과 중세 시대의 고급스러운 스타일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하기 시작했다.
1860년경 남아프리카의 다이아몬드 광산이 발견되면서 다이아몬드가 많이 박힌 화려하고 큰 주얼리가 유행하게 되었고 주얼리는 계급주의와 경제적인 복지를 보여주는 호화스러운 소유물로 사용되었다. 다이아몬드 광산의 발견으로 인해 주얼리의 성격은 그 이전의 것과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보석의 컬러보다는 광채가 더 중요시되었고 디자인은 자기를 표현하는데 있어 아주 중요한 구실을 하게 되었다.
◆ 벨 에포크(Bell Epogue)
19세기 말에 이르러 많은 수의 다이아몬드만을 박는 평범함을 거부하는 주얼리가 등장하게 되는데 특히 까르티에(Cartier)와 부쉐론(Boucheron)이 그 대표적인 주얼리 제작사로 꽃을 모티브로 한 주얼리, 즉 한 송이 혹은 흩뿌려진 스타일이나 부케스타일로 스타일화 된 디자인을 사용하여 플래티넘(백금)에 보석을 박아 만들기 시작했다.
◆ 아르 누보(Art Nouveau)
라릭 뱀 브로치 |
이와 같은 시기에 프랑스에서는 아르 누보(Art Nouveau) 스타일로 독특한 스타일의 주얼리를 창조했는데 르네 라릭(Rene Lalique)이 선두가 되어 이 스타일을 이끌어 가게 된다. 아르 누보 스타일의 중심은 1900년대의 파리로 아이보리나 동물의 뿔, 화려한 색상의 에나멜 등을 사용해 제작된 자연주의의 주얼리가 아르 누보의 대표적인 스타일로 자리 잡았다. 이 창조물들은 예술적으로도 아주 높은 가치를 지닌 작품이기는 했지만 주얼리의 고유한 성격에서 약간 벗어나는 이유로 그 수명이 오래 가지 못하고 1차 세계대전의 초기에 사라졌다.
◆ 아르 데코(Art Deco)
1918년 전쟁 직후에 새로운 장르인 아르 데코(Art Deco)가 주얼리의 새로운 스타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자연의 모티브와 전통적인 것을 배제하고 큐비즘과 추상주의 등의 동시대 미술과 독일 바우하우스 건축의 영향을 받은 주얼리가 탄생하게 된다. 1930년대 중반이 되어서야 까르티에의 영향을 받아 다시 예전의 사랑스러운 주얼리-꽃이나 식물 등을 소재로 한 주얼리-가 돌아오게 된다.
◆ 전후 주얼리(1940년 이후)
제2차 세계대전 후에 부유층을 상대로 주얼리는 투자의 대상 혹은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관심은 보석의 질과 보석 물림, 커팅 스타일 등에 집중되었고 그에 더해 디자인 역시 하이패션의 유행을 따라가게 되었다. 그 후 주얼리 예술가들이 나타나면서 더욱 정성스럽고 잘 다듬어 만들어진 주얼리는 그 가치가 더해지게 되었다.
이렇게 보석과 귀금속의 가격이 상승하여 주얼리의 가격이 높아짐에 인해 대체품으로 나타난 것이 저렴한 가격의 일반 금속이나 플라스틱 등을 사용한 패션 이미테이션 주얼리다. 이미테이션 주얼리로 유명한 나라는 미국으로 전쟁 직후의 디자인은 역사적으로 상당한 가치를 지닌다. 주얼리와 이미테이션 주얼리의 다른 점은 재료의 사용에 있지만 디자인 면에서 본다면 저가의 재료를 사용한다는 장점 때문에 훨씬 더 풍부한 상상력을 사용한 디자인들을 만날 수 있다.
/ 글: 김성희
본지 이태리 객원기자
이태리 스텔라-비 대표
출처 : 귀금속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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