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에는 부처님을 모신 대웅전을 중심으로 여타 부속건물들로 이루어졌다. 창건주의 영정이나 초상을 모신 조사당, 교리를 강학하는 강당, 절 안마당으로 들어서는 곳에 세워져 강당으로 쓰이기도 하고 때로는 법고, 목어, 운판 등을 걸어 두기도 하는 문루, 범종을 걸어 두는 종루, 각종 불경을 보관해 두는 경루, 불경을 새긴 목판을 보관하는 장경고, 스님의 살림살이가 이루어지는 요사체 등이 세워져있다.
이들 건물외에도 고려시대부터 도교, 민간신앙 등이 불교에 습합되면서 절 안에 별을 신앙하는 북두칠성, 용왕을 모신 용왕전, 염라대왕을 비롯하여 저승의 시왕 등을 모신 명부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민간신앙인 산신을 모신 산신각등이 별도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태백산 그 높은 산과 생경한 용왕을 모신 전각이 있다. 불교와 용 이둘의 관계는 부처님 당시 처음으로 불법에 귀의한 동물이란 상징성도 있지만 우리에게 용은 말 그대로 이무기가 변해서 용이된 물가에 사는 동물이 그 원형이다. 주 신앙인들은 바다와 인접한 어촌, 어부들이다. 어부들의 신앙 대상을 절에 건립함으로 용왕께 예를 가추고 살던 당시 신앙인들을 절로 이끌수 있었다. 그리고 산에 사는 호랑이를 신앙하던 사람 별을 신앙하던 사람 모두 절이라는 공간, 가람이라는 불교 속으로 끌어들였다. 그것은 당시 이땅에 살았던 이들의 신앙을 존중하고 그들이 번다한 세속사에 살면서 시간 낭비를 하지 않고 한 공간에서 이루어 질 수 있는 종교적인 시스템으로 변화를 도운 당시 스님들의 배려하심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것이 요즘 말하는 습합의 원리다. 상대의 존재성을 인정하고 함께 어우러 질 수 있는 문화의 조성이다. 이런 잡다하고 번다한 것을 사찰안으로 끌어들인 종교현상을 놓고 정법을 주장하는 스님,불교신도들에 입장에서 보면 엉뚱한 발상이지만 그들을 어머니의 품처럼 불교가 품고 함께 살자는 것이다. 이와같이 모두를 품을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일연스님은 작은 한권에 책(삼국유사)를 통해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것이다. 얼마전 평범한 사람(?)들의 소속승진의 기회가 주어진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다.
총원이 300명을 품을 수 있는 공간으로 국회라는 가람이 세워졌다.
국회가 가람이라면 그 속에서 활동하게 되는 국회의원들은 가람에 속한 전각이다.
국회라는 가람에 새로 300여 전각이 들어선것이다. 우리는 그 많은 전각에 우리 문화와 다른 새로운 전각을 하나 세웠다. 필리핀 댁이라고 불리는 이자스민이란 이주민 여성이다. 백인 여성, 이국적인 그래머 여성도 아니고 제3세계 우리보다 가난한 나라의 볼품없어 보이는 여성을 대한민국을 대표한 국회의원으로 품은것이다. 국회가 대한민국 국민이 품은 것이다.
불교와 민간신앙의 갈등에서 불교가 민간신앙을 품었던 것처럼 이자스민이라는 가람을 품은것이다. 이것은 일연이 이땅에 살았던 사람,신앙을 품어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은 보여준 900여년전 그 정신이 오늘 되살아난 것이다. 습합이란 학술용어가 아니라 상대를 품고 함께 할 수 있다는 따스한 마음, 모두를 함께 태워 언제라고 떠날 수 있다는 대승의 마음으로 모두를 받아들인 한국불교의 정신으로 모두를 태우고 떠나는 것이다.
소수자를 배려하는 차원이 아니라 그들도 나와 같은 공간에서 신앙할 수 있도록 땅과 건물을 내주었던 그리고 함께 신앙하도록 배려해준 습합의 마음으로 떠나는 아름다운 여행인것이다.
첫댓글 반갑습니다. 조화로운 습합, 좋은 일이지요. 일연 정신 곧 하나됨에의 공동선을 추구하는 일이라고 봅니다. 더 나아가 고조선의 홍익인간으로 가려는 꿈이 서린 정신세계의 열매가 삼국유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앞으로 자주 좋은 글 올려주심과 함께 만남을 기대하겠습니다. 비내리는 갑티재를 넘어 인각사 갔다왔습니다. 일연삼국유사연구원의 일로요. 아름다운 봄날되심을 빌며... . 정호완 두손(hwjeong@daegu.ac.kr/011-438-85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