솥/변종호
밥맛으로 소문난 집이다. 돌솥이 아닌 작은 무쇠솥이다. 기름을 바른 듯 밥알에 윤기가 흐른다. 밥을 입안에 넣고 자그시 물어본다. 고슬고슬한 밥알이 톡톡 터진다. 식감은 쫀득하고 고소하다. 그래 이 맛이야, 반찬이 필요 없을 정도로 입에 착착 달라붙는다. 몸은 반세기를 뛰어넘은 유년 시절의 가마솥 밥을 기억하고 있었다.
솥은 삼국시대 이전 토기로 존재하다 철기로 발전하면서 오래도록 애용하는 조리기구이다. 무쇠솥이 압력밥솥으로 진화하고 근래에는 고도의 IT 기능이 접목된 전기압력밥솥이 사랑받고 있다. 그런데도 밥을 먹어본 사람은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노릇노릇하게 눌어 구수한 숭늉을 마실 수 있는 가마솥 밥을 으뜸으로 친다.
어느덧 세상 떠난 어머니 나이가 되어가니 별게 다 그립다. 부쩍 고향 집 부뚜막에 나란히 걸렸던 세 개의 무쇠솥이 자주 떠오르는 것은 유년에 함께 했던 가족의 그리움이다. 재작년 고달팠던 삶의 끈을 놓아버린 피붙이가 있어 더 그런가 보다.
고향 집 정갈한 부엌에는 삼 형제를 상징하는 솥이 있었다. 어머니에게 솥은 당신의 강한 자존심이었다. 솥만 봐도 그 집 살림살이 가늠하던 어머니는 틈만 나면 기름 묻은 헝겊으로 솥을 문질러 방금 닦은 까만 구두처럼 광이 났다.
어머니는 솥만 반짝반짝하도록 길들인 게 아니었다. 아버지가 두고 간 자식을 흠 잡히지 않도록 단속하며 키웠다. 땅이며 살던 집까지 팔아서 떠난 가장을 대신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끼니는 물론 당장 네 식구 누울 방조차 없었던 암담함이라니. 가족이 겪은 고통이지만 발걸음을 겨우 떼던 나는 머리가 커서야 어머니를 통해 들었다.
제일 작은 솥은 내 몫이었다. 아버지 없이 자라는 게 가여운 어머니의 사랑으로 가장 빛나도록 만들었다. 작은 솥은 나물이나 감자를 볶거나 국을 끓일 때만 썼으니 큰솥에 치여 기는 못 폈으나 고단하지는 않았다.
끼니마다 밥을 담당하던 중간 솥은 늘 고달픈 작은형 몫이었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부재로 중학교 진학은 언감생심, 끼니와 살집 마련을 위해 남의 송아지를 데려다 키우고 품을 팔고 나무를 해다 파는데 힘을 보탰다. 못 배운 고통은 평생 이어졌다. 고향을 등졌지만 반길 곳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탄광이나 건설 현장뿐이었다. 게다가 신혼 초 단칸방에서 시작해 돌아가실 때까지 어머니를 모셨던 효자지만 이태 전, 야트막한 산에서 고단한 생의 끈을 놓았다.
큰형 곁에는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아버지가 있었다. 그런 연유로 다른 형제보다 많은 혜택을 받고 자란 셈이다. 큰형 몫의 솥은 가장 컸고 세숫물을 덥히고 두부를 만들거나 엿을 고울 때만 썼다.
고향 집에 새 식구가 들어오자 어머니는 살림에서 손을 놓았다. 삼 년의 세월에 솥은 모두 광채를 잃었고 그것이 싫었던 어머니는 부엌에 발걸음도 안 했다. 큰형이 분가하고 둘째 형마저 군대에 가자 자식이 떠난 상실감에 부엌의 솥을 보고 어머니는 털버덕 주저앉았다. 광채 나던 솥은 오간 데 없고 흉한 몰골로 남았다. 밥을 끓이며 눈물을 흘리던 솥은 한 달여 어머니의 손길로 예전 모습으로 돌아왔다.
헐값에 아버지가 팔아넘긴 집은 온 가족의 고생으로 되찾았다. 온당치 않게 샀으니 돌려주라는 동네 어른의 압력도 컸단다. 하지만 10년도 안 돼 팔아달라는 맏이의 집요한 요청에 어머니는 두 손 들었다. 잘 모시겠다는 큰아들 손에 알뜰살뜰 가꾸던 집 판 돈을 몽땅 넘기고 자식처럼 아끼던 솥마저 버려둔 채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셨다. 그런 당신은 닷새 만에 옷 보따리만 들고 눈물을 글썽이며 큰아들 집을 나섰지만 그 이유는 돌아가실 때까지 함구하셨다.
고향 집을 주인이 떠나던 날 삼 형제가 각기 다른 길을 가듯 솥은 평소 갖고 싶어 하던 마을 분이 나눠 가졌단다.
질박한 무쇠솥의 미덕은 포용이다. 품에 안으면 온전히 태어나기를 원한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처럼 제 몸 부서져도 뜨거운 줄 모르고 다독이며 익힌다. 설익거나 타지 않게 도와주다 제힘으로 일어설 수 있겠다 싶으면 뽀얀 눈물을 흘려가며 기척을 한다. 지어야 할 양이 많을 때는 솥뚜껑에 불덩이를 올려 뜸을 들이는 고통도 감내한다.
반세기 전 어머니는 끼니때면 강냉이 쌀 위에 반 줌의 쌀을 한쪽에 넣었다. 그 쌀은 오롯이 막내아들 밥그릇에 들어갔다. 쌀이 귀했던 우리 집은 순 쌀밥을 짓는 날은 연중 서너 번이었고 그때 먹었던 윤기가 나고 고소하며 쫀득거리는 밥맛은 각인돼 있다.
식솔을 위해 밥을 짓는다는 것은 단순 가사가 아니다. 가정을 올곧게 세우려는 염원으로 쌀알을 말랑하게 만드는 거룩한 헌신이다. 처진 어깨로 귀가했던 가족이 다순 아침밥 한 그릇의 밥심으로 힘차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지 않은가. 솥의 종류가 다르면 어떠한가, 어머니를 빼닮은 솥이 제 몸 뜨겁게 달구어 낳은 자식이 밥인 것을.
다음검색
저작자 표시 컨텐츠변경 비영리
댓글2 추천해요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