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4 토 12:00 장성군 서삼면 추암리 축령산 휴양림 임도 23키로 (기록 3:30)
오늘은 매년 실시한 한강달 울트라대회를 대신하여 전남 장성의 축령산 피톤치드달리기 행사를 하는 날이다.
내가 그쪽 지방 출신이다 보니 진행에 따른 일정을 책임지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러나 장성에서 성장은 하였지만 변두리 장성이고 읍내 쪽은 지리도 사람도 잘 모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타지방 출신이나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그런데
한강달 회원들은 나처럼 평범하지 않고 운동이나 여행 등산 음악 문학 철학 등 모든 분야에서 일가견이 있으신
분들이기에 그에 걸맞는 행사가 되어야 하는데, 장성이 유명 관광지도 아니고 좋은 먹거리 고장도 아니고 다만
축령산 상록 휴양림의 신문 방송 홍보가 호기심을 불러일으켰기에 잘못하면 싱거운 행사가 될 수 있어 걱정이
앞선다.그러나 우리 한강달은 마라톤이란 위대한 운동을 하는 회원들이어서 운동만 재밌게 잘 하면 모든 것이
이해가 된다는 너그러움을 믿고 여러 경로로 정보를 얻고 일정을 짜게 된 것이다.
11/14 새벽에 일어나 06:40경 사당역에 도착하고 회원들과 합류하여 윤명로 기사가 운전하는 봉고차에 몸을 실었다.
이른 아침부터 경부고속도로는 자동차로 꽉 찼다.우리만 부지런한 줄 알았는데 놀라운 일이다.그러나 정체 상태는
아니고 차는 정상 속도로 잘 달린다.백양사휴게소에서 국밥으로 식사하고 장성터미날에서 곽화진 선배와 합류하고
생수와 쵸코파이 간식을 구입하여 숙소인 추암관광농원에 도착하니 11:30경이다. 시간표대로 딱딱 맞는다.
것옷을 벗으니 마라톤 팬티와 반팔T만 남아있으니 일반 마라톤대회 복장이 되었다.다른 것은 신발이 경등산화인 것
뿐이다. 나 혼자만 이런 복장을 하니 쑥스럽기도 하지만 일기예보 13도를 믿고 그대로 출발하기로 한다.
12:00 정각 출발한다.380만평의 거대한 상록 수림대 어둑한 숲속길을 연상하며 달려 나간다.약도상으로 하도 꼬불꼬불
하고 갈림길이 많아 윤우로님의 길 안내만 따르기로 맘먹고 달린다.
칙백나무 편백나무 삼나무 숲이 나오고 심한 언덕길을 달리는데 내가 상상했던 수준은 아니다.이제 점점 좋은데가
나오겠지 기대를 갖고 거칠은 씨멘트 임도를 조심스럽게 통과하고 대곡 마을을 돌고 있다.
어떤 할머니가 나를 보시더니 < 젊어서 좋겄소! >하신다. <저도 환갑이 넘었는데요..> 했더니 할머니는 <나는 여든셌이여>
라고 말을 받으신다. 괜히 할머니하고 나이 대결을 한 것 같아 겸연쩍다. 할머니보다는 어리지만 진짜로 젊은이는 아니지
않은가?
이제 일반 차량도로에 들어섰다. 선두그룹 회원들은 보이지 않게 앞서 갔다.나는 처음부터 후미 그룹과 함께 달리려고
맘 먹었기에 개의치 않고 편재일 김준대님의 발걸음을 살피며 동반주하고 있다.
한참을 달려 차도를 벗어나 선두의 신호를 받고 모암리 산촌생태마을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임도를 잘못 들어 거대한 수림지대로 들어갔고 마침내 길이 없어져버린다.컴컴하고 완전히 길잃은 등산이다.
이왕에 이리 된 걸 사진이나 찍자고 각자 폼을 잡는다.나도 생전 처음으로 휴대폰 사진을 찍었고 박영준 선배의 도움을 받아
마누라한데 전송까지 했다. 아마 이곳이 오늘 달리기하면서 가장 멋진 상록수림 한복판의 내가 아닌가 싶다.
이제 뒤로 후퇴하여 동내 아래 정상적인 임도로 방향을 잡았다.
복장이 얇아서 바람이 부담되지만 추위가 걱정될 정도는 아니고 점심을 먹은 게 든든하여 배낭속의 물도 안먹고 15키로
정도를 달리고 있다.인적없는 산길을 한강달 전사 10명이 누비고 있다.
이제 다시 금곡영화마을로 가는 일반도로로 접어들고 금곡마을에 도착하여 화장실을 해결하고 보니 길 가 한옥집에서
등산객들의 막걸리 마시는 소리가 들린다.우리 일행이 그냥 지나치고 말기는 어려운 상황 아닌가?
큰 소리를 아줌마를 불렀더니 막걸리를 채운 커다란 옹기사발과 김치를 내온다.양이 많은 줄 알았는데 조그만 잔으로 한잔씩이다.
서울에서는 3,000원 정도 받을 것 같은데 7,000원을 달랜다. 인심 고약하다. 따지기도 싫다.
다시 이곳 휴양림을 만든 독림가 임종국 기념비를 향해 달리는데 이곳은 트레킹하는 행인이 많다.
추위를 대비해 완전무장한 어떤 사람이 나를 보더니 춥지도 않으냐고 걱정스런 말을 걸기도 한다.
이런 외딴 곳에서 국민은행 직원 2명도 조우하게 되었다. 참으로 인연이란 묘한 것이다.
막걸리 후 뱃속이 고장난 편재일님과 걷다뛰다 하면서 임종국기념비 앞에 왔고 비문 전문을 읽었다.
1956년부터 조림을 시작했다 하니 6.25 후 먹고살기 급급한 상황에서 어떻게 조림을 생각하고 평생을 숲가꾸기에
매진할 수 있었는지... 훌륭한 사람은 뭔가 다른가 보다.
지금은 우리나라 최고의 조림지가 되었고 피톤치드가 소문나서 국내는 물론 해외 관광객까지 몰려오는 장성 8경중
2번째가 되었으니 임종국선생의 인품,예지,선각,애국의 뜻은 존경받아 마땅하다.
이제 곧 숙소가 가까워진다.민박촌이 밀집되어 있어 사람들도 많다.
보란듯이 달리는 내 모습이 자랑스럽다.
숙소에 오니 미리 골인한 회원들이 읍내 나갈 채비를 하고 있고 잠시후 출발이다.
장성군청 앞 삼호센트럴스파에 들어서니 시설 좋은 현대식 목욕탕이 깨끗하고 물도 매끌매끌 온천수 같다.
몇년 전 홍길동 마라톤 뛰고 들어갔던 목욕탕의 녹슨 수도꼭지 하고는 격세지감이 있다.
이제 즐거운 식사 시간이다. 비용을 생각해서 돼지를 시키려 했는데 회원님들이 소고기에 눈길을 주고 있다.
따져보니 큰 차이도 없다. 1키로그램에 4만원이니 서울이나 횡성에 비교하면 거의 반값이다.
오랜만에 소갈비살을 안주 삼아 정진우님의 신기록 기념 양주를 시작으로 막걸리 소주를 마셔댔더니 잘 들어 간다.
고향땅 재래시장 구석의 고깃집이고 운동 뒤끝의 식욕,酒慾을 누가 막을텐가?
그러다 보니 내 기억력은 여기까지다.
노래방에서 내가 무슨 노래 부른 줄 모를 정도니 남들이 뭐를 했는지는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아침에 눈떠보니 잠은 곤히 잘 잔 것 같다.뱃속도 괜찮고 숙취상태도 아니다.
그래도 회장님 얼굴을 뵈니 뜨끔해 진다. 행사에 책임 있는 내가 어제밤 상황을 모르겠으니 큰 일인 것이다.
한참동안 이사람 저사람 말들을 종합해 보니 조금씩 상황을 알 것 같다. 김정덕! 큰 일이다.
내 생각대로 어제밤 라면이라도 충분히 사뒀어야 했는데 그런 준비가 없어서 냉수 한잔 마시고 근처 필암서원과 홍길동
생가를 관람한다.다행히 홍길동 생가 앞에 점방이 있어 따뜻한 베지밀 한병씩은 마실 수 있었다.
이제 영광땅으로 출발이다.가는 길에 나의 고향마을이 잘 보이는 곳에 잠시 정차하여 윤본부장에게 사진 한장을
부탁했다.그리운 고향마을 양현 부락이지만 이제는 인연이 거의 끊어져 가 본 지가 오래 되었다.
동갑짜리 국민학교 동창이 한명 살고 있는데 수준 차이가 많아 친할 수도 없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니 갑자기 울컥하는 심정이 된다. 얼른 화제를 불갑산으로 돌렸다.
영광 가는 길에 회장님이 불갑사 관람을 말씀하신다.생각해보니 17살 중학교 1학년때 소풍 와보고 46년만에 불갑사 절을
보게 되어 반갑다.내가 태어나서 최초로 본 절이기도 하다.그런데 내가 생각했던 모습하고 너무 달라져 있다.
다시 차를 돌려 법성포로 향한다.유명한 굴비정식이 기다리고 있다.아침을 굶었으니 배도 사정없이 고프다.
그런데 친구한테 부탁하여 소개받은 다랑가지 식당은 식사가 즉각 나오지 않는다.
불교 최초 도래지를 관광하고 오면 무료하지 않게 30분은 보낼 수 있다고 한다.그래서 예정에 없는 불교도래지를 갔는데
의미있는 시설과 조각들이 많다.앞으로 유명 관광지로 손색이 없어 보인다.
다시 식당에 와서 한참을 기다리니 수많은 그릇으로 상이 채워지고 막걸리를 들고 위하여! 를 외치고 입놀림이 시작된다.
하도 찔끔찔끔 반찬이 나와서 이게 먹을 게 뭐 있냐? 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배가 불러 더 이상 안들어 간다.
그런데 굴비정식으로 알고 들어갔는데 굴비는 조그맣고 삐쩍 마른 것 한마리 밖에 안주고 일반 한정식 요리다.
내가 기대한 건 이정도가 아닌데 주변에서 하는 말만 믿고 식당을 정한 것이 잘못이다.
그러나 내색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고 다른 손님들도 대체로 만족하는 것 같아 비싼 식대를 지불하고 나왔다.
백수해안을 향하면서 이곳 굴비업자 한양수산 조영중 사장을 만나 2만원짜리 굴비 1두름을 샀다.
그냥 싸다고 해서 집에서 먹으려고... 내가 먹을려면서 선물처럼 보이는 것이 굴비인 것이다.
이제 백수 해안도로를 보면 오늘의 일정도 끝이다. 바로 건너편이 백수인데 바닷물 때문에 영광읍 거의 들어갔다 나오니 꽤
먼 거리가 된다.이곳이 전라남도 최고로 경관이 좋은 백수해안도로라고 한다.
오늘따라 파도가 심하여 너울이 크다.서해에서 보는 가장 큰 파도인 것 같다.
저 멀리 칠산도를 바라보며 해풍을 들이키니 기분이 상쾌해진다.
이제 올라가자! 오후 3시다. 불갑사 관광과 식사 대기 시간이 많아 늦은 감이 있지만 계획대로 잘 맞아가고 있다.
우리의 봉고차는 영광IC로 들어가 서해안 고속도로로 진입한다. 잘 나가던 속도는 홍성 부근에서 막히더니 주차장으로 변한다.
서해안도로를 포기하고 공주-서천간 도로,천안-논산간 도로,경부고속도로를 헤메다가 시간은 한없이 늦어진다.
지금이 관광철도 아니고 단순한 일요일인데 이 많은 차량들이 엉금엉금하고 있으니 이런 낭비가 또 어디 있으랴 싶다.
한숨만 나오고 배는 고프고 천안휴게소에서 다시 버섯국밥을 한그릇 비우고 우리 집이 있는 서울로 올라간다.
꽉 막힌 도로는 수원 지나면서 약간씩 풀리더니 슬슬 제 속도가 나온다.우리의 봉고는 우리들을 8시간 반만인 23:30경에 사당역에
내려준다.윤본부장과 둘이서 택시를 타고 집에 오니 00:30 이다.힘든 여행이 끝나는 순간이다.
이번 피톤치드 달리기는 나 개인적으로 잊지못할 추억을 만들었다.
11월의 차가운 날씨 속에 한꺼풀 옷을 입고 경등산화 차림으로 23키로 임도를 달리는 사람,늙어가는 나이에 인적 드문 산길을
뛰는 사람,쭉쭉 뻗은 사철나무 사이를 거리낌없이 달리는 사람,피톤치드 향 냄새는 모르겠으나 피톤치드 이상의 효과 있는
운동이 되었다는 생각이다.거기에 고향땅에서 맘껏 달리고 노래 불고 잘 놀았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회원님들의 적극적인 협조로 무사히 행사를 마쳤습니다.항상 감사합니다)
첫댓글 정성을 다 하신 팩캐지,덕택에 즐거웠습니다.
다시 다녀보는듯 생생하고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김형 덕분에 트레일런닝행사가 잘 이뤄 젔습니다. 김정덕을 위하여~~~
빈틈없는 일정관리에 일지로 깔끔하게 마무리 하시네요~수고하셨습니다.
덕분에 좋은 곳에서 달리기 잘하고 여행, 식사 환상적이었습니다. 준비하시고 행사 치루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