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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자 특집자료>
1. 주제 : 도깨비 방망이 꿈을 꾸고 있는 작가의 세계
2. 박진용 약력 및 사진
1950년 세종시 금남면 도암리에서 태어났으며 성덕초등학교, 금호중학교, 보문고등학교, 공주교육대학, 숭전대국어교육과, 충남대교육대학원을 졸업하였고 초·중등 교사를 거쳐 가수원중학교장으로 정년퇴임하였다.
1983년 월간「아동문예」에서 주는 신인상을 수상하였고 창작 동화집 『우리들의 도깨비』, 『숙제없는 나라의 왕자』, 『말을 먹고 사는 새』, 『신기한 보청기』 등을 펴냈으며 동화선집 『별들이 사는 마을』이 있다. 대한출판문화협회 어린이도서 저작상(문화공보부장관), 대전문학상, 한국아동문학작가상, 한국동화문학상, 한남문인상, 천등문학상 등을 받았다.
재6대 대전문학관장을 지냈으며 대전아동문학회장과 한국아동문학회 부회장을 역임하였고, 현재 국제PEN한국본부 이사, 대전문인총연합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3. 심사경위
장편동화 창작을 뜻있게 평가
송하섭 대전문인총연합회 고문
우리 대전문인총연합회의 문학시대 문학대상 시상이 16회를 맞는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이 상은 누가 추천하는 것도 아니요, 자기 자신이 희망하여 시상하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작품 집과 더불어 문단에의 공헌을 논의하여 축하하고 격려하는 의미를 가진 행사이다. 둥단 1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지고 본회에 입회한 지 5년 이상인 회원으로서 지난 2년 동안에 출판한 작품집을 대상으로 논의를 한다. 이번에 후보자로 추천된 분은 50명, 시 34, 소설 4. 수필 8. 아동문학 3. 평론 1로 단연 시인이 압도적이다.
매년 느끼지만 지난 1년 동안 우리 회원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작품 활동을 하였는가를 점검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코로나 이후 이직 안정을 찾지 못한 환경에서 그래도 우리 회원들이 얼마나 열심히 창작에 전념하고 있는 열정을 읽을 수 있었다. 심사위원들은 먼저 규정된 조건에 따라 일차 정리를 하고 최근 다른 기관 등에서 수상한 분들은 제외하기로 한 후 다섯 분을 선정한 다음,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했다. 작품에 대해 논의를 하고, 우리 문단에의 기여도를 살펴본 다음 장르도 고려했다.
위원들 전원이 아동문학가 박진용의 「신기한 보청기』를 금년 대상으로 정하자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우선 그의 30년 문단 경력과 아동문학 운동에 끊임없이 참여 봉사해 온 점이 높이 평가되고 이번에 희소성이 있는 장편 동화를 출간했다는 점을 높이 샀다. 박진용은 1983년, 월간 『아동문예』 신인상을 받아 등단한 다음, 『우리들의 도깨비』, 『숙제 없는 나라의 왕자』, 『말을 먹고 사는 새』 『별들이 사는 마을』 등 동화집을 간행했고, 대전아동문학회장, 한국아동문학회 부회장, 대전문학관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대전문인총연합회 부회장으로 봉사하고 있다.
이번 발간한 『신기한 보청기』는 다문화 가정에서 운전기사인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하고 어머니가 집을 나가서 외롭게 된 어린이, 이 어린이가 어머니를 그리는 정을 고라니 가족과 연계하여 호흡이 긴 장편 동화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새로운 시도로 관심이 모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정년 이후에 더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는 박진용 작가에게 이를 계기로 더욱 농익은 작품이 쓰여지기 바란다.
{ 최송석. 김용재. 송하섭)
4. 수상 소감
수상 소식을 처음 듣고 반갑고 기쁘기보다는 민망한 생각이 들었다. 나이 칠십 중반에 상을 받는다니 후배에게 돌아갈 선물을 가로채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에 민망하고 겸연쩍은 마음이다. 그래도 수상자로 결정되었다니 미욱스러운 나 자신에게 많은 위로와 격려가 되었다. 심사위원님들께 감사하다는 인사를 먼저 올린다.
지금부터 오십 년 전이다.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전기도, 전화도 없는 시골 학교에 부임하여 촛불을 켜고 처음 동화를 써서 <새교실>이라는 교육 잡지에 보냈는데 이원수 선생으로부터 처음 추천을 받았고 문학에 열광하게 되었다. 특히 톨스토이의 작품과 셰익스피어 전집, 비극과 희극, 사극과 소네트 시편을 읽으면서 작가의 꿈을 키웠다. 그러나 문학에 대한 열정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하고 많은 세월을 무심하게 흘려보냈다.
문학에 대한 매력이 사라진 것이다. 결혼하고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물신주의에 빠졌는지도 모르겠다. 죽으라고 써봤자 돈도 안 되고 읽을 가치도 별로 없고 읽히지도 않는 글을 왜 쓰느냐는 회의가 생기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끈을 놓지 못하고 지탱한 것은 문단 선·후배들의 사랑과 우정이었다. 다시 말하면 문인들과의 관계망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많은 문단은 그래서 내가 숨 쉬고 존재감을 느끼면서 살아온 활동 무대라 할 수 있다.
나이가 들면서 사람이 살아가는데 정말 중요한 것은 돈도 명예도 아니고 건강하면 좋지만, 그것도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톨스토이 사상을 다시 생각해 보고 부처님의 미소가 자꾸 떠오르는 것은 왜 동화를 쓰느냐에 대한 답이 될 수 있다. 언어는 비록 늙었지만 추구하는 이상은 순수한 어린이의 마음이고 자연이고 생명의 소중함이다. 앞으로 글을 쓸 때마다 화려하게 치장하지 않은 언어, 어머니가 입던 적삼같은 언어의 옷을 입혀서 세상에 내놓고 싶다. 거듭 감사드린다.
5. 『신기한 보청기』 작가의 말
“도깨비방망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
어려서 꿈을 많이 꾸었어.
금 나와라. 뚝딱! 하면 금이 나온대. 쌀 나와라. 뚝딱! 하면 쌀이 마구 쏟아져 나오는 거야.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가질 수 있대. 그래서 부자가 되는 거야. 밥상은 날마다 내가 좋아하는 치킨과 피자와 과일로 수북하게 쌓여있어. 진수성찬이야.
여자 친구도 생겼어. 우리 반에서 가장 착하고 예쁜 순이야. 하얀 얼굴이 반짝반짝 눈부셔. 양쪽 볼이 복어처럼 통통하게 부풀어 오를 때가 제일 예쁘지. 그냥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 친구들도 모두 순이를 좋아해. 그런데 친구들은 몰라. 순이 눈이 내 눈과 자주 마주치고 있다는 것을.
“야, 이놈아! 학교 늦는다,”
아버지 호통에 눈을 번쩍 떴어. 베개를 끌어안고 방안을 한 바퀴 뒹굴었어. 순이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려 눈을 다시 감고 싶었어.
“싸게 밥 먹고 학교 가야지.”
엄마가 밥상을 들고 들어왔어. 보리밥에 시래기 된장국이야. 눈을 비비며 국에다 밥을 말아서 후룩후룩 먹었어. 보리쌀은 잘 씹히지 않아. 입안에서 굴러다니다가 미끄러지듯 목구멍으로 그냥 넘어갔어. 콜록콜록 사레가 들렸어. 기침과 함께 눈물이 났어.
그런데 너 진짜 눈물 날 때가 언젠지 알아? 그건 외로울 때야. 친구가 없으면 외롭지. 친구들한테 따돌림받으면 더 외롭지. 엄마·아빠랑 떨어져 살면, 그땐 죽고 싶도록 외로운 거야. 그래서 다문화 가정에서 자란 뺑순이 이야기를 하게 되었어. 엄마 아빠랑 떨어져 농촌에서 할아버지랑 잘 살 수 있을까. 궁금하지? 나도 궁금해.
나는 도깨비 꿈을 계속 꾸었어.
어른이 되어서도 그 꿈을 꾸었지.
그런데 어느 날, 도깨비가 나타나서 내게 말해 주었어.
“바보야, 진짜 귀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거야!”
6. 작품 소개 「엄마가 돌아왔다」 『신기한 보청기』 중에서
엄마가 돌아왔다
아기도깨비 예언이 적중했다.
추석을 이틀 앞두고 엄마가 돌아온 것이다.
그런데, 엄마가 이상했다.
화장기 하나 없는 창백한 얼굴, 허름한 옷차림에 낡은 가방 하나만 달랑 들고 온 것이다.
담장 밑에 쥐덫을 놓던 할아버지가 엄마를 발견하고 반갑게 맞이했다.
“에미야, 얼마나 고생했느냐.”
할아버지의 말에 엄마는 눈물만 흘렸다.
할머니는 집에 들어서는 엄마를 보고 위아래로 몇 번을 훑어본다. 그러더니 버럭 화를 냈다.
“어디서 죽은 줄 알았더니 용케도 살아왔네. 그런데 그 꼴이 뭐냐.”
“어머님, 죄송해요.”
엄마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고개를 푹 숙이고 떨어지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쳐냈다. 할머니가 혀를 끌끌 찼다.
“물색 모르고 집 나가더니 그 꼴이 뭐냐 그래.”
할머니의 노여움은 그칠 줄 몰랐다.
안타깝게 지켜보던 아빠가 할머니 두 손을 잡았다.
“어머니 마음 이해해요. 이제 그만 하세요. 저 사람도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할머니는 아버지를 힐끔 쳐다보더니 혀를 끌끌 찼다.
“알았다. 어서 데리고 들어가라.”
아빠는 그제서야 엄마에게 다가서서 손을 잡았다.
“고생 많았어요. 다 내 잘못이야.”
“여보, 미안해요.”
아빠는 엄마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학교에서 돌아온 병순이는 엄마를 붙잡고 펑펑 울었다.
“아이고 내 딸, 많이 컸구나!”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엄마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
“그래그래, 미안하구나. 사정이 생겨서 그랬어.”
엄마는 병순이를 끌어안고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병순이는 ‘엄마가 어디서 무엇을 하느라고 집에 오지 못했을까?’ 매우 궁금했다. 그래서 자꾸 물었지만, 엄마는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따금 이상한 행동을 보였다. 누가 부르면 깜짝 놀라기도 하고 혼잣말로 중얼거리기도 했다. 자다 말고 무릎 꿇고 앉아서 기도하는지 무슨 주문을 외우는지 알 수가 없다.
돈 벌겠다고 집을 나가서 3년 만에 빈털터리로 돌아온 것도 이상하지만 병순이는 엄마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더욱 궁금했다. 혹시 이상한 정신병에 걸린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되었다. 그래서 자꾸 그동안 엄마가 무엇을 했는지 물어보았지만, 엄마의 입은 열리지 않았다.
“그냥 둬라. 좋지 않은 기억이 있는 것 같으니 더 이상 묻지 마라.”
“알았어요. 근데 엄마가 너무 이상해요.”
병순이는 엄마에 대하여 궁금한 것이 너무 많지만,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추석맞이 준비에 분주했다.
“모처럼 식구들이 다 모였으니 차례상을 제대로 차리고 성묘도 하자.”
할아버지가 손수 장에 나가서 차례 음식 재료를 준비했다. 할머니와 엄마는 마주 앉아서 옛날처럼 전을 부치고 고기를 구웠다. 그런데 송편 때문에 할머니랑 할아버지가 한바탕 말다툼이 생겼다. 할아버지가 송편도 집에서 만들라고 하면서 쌀가루와 솔잎을 할머니 앞에 불쑥 내민 것이다. 할머니가 발끈했다.
“이 답답한 양반아, 요즘 누가 송편을 집에서 만들어요. 다 사다 제사 지내지.”
“돈이 어딨어, 그리고 집에서 손으로 만들어야 제맛이 나지.”
할머니는 어이없다는 듯이 할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왜? 내가 아직도 그렇게 멋쟁이로 보여?”
하며 껄껄 웃는 바람에 식구들이 모두 웃었다. 월남에서 해병대 옷을 입고 찍은 할아버지 사진을 보고 ‘그땐 할아버지가 정말 멋있었다’라고 한 할머니 말이 조롱거리가 된 것이다. 그러나 그 한 마디는 식구들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힘이 있었다.
동산에 둥근 달이 솟아올랐다.
병순이는 할머니와 엄마 사이에 껴서 송편을 만들었다. 처음 만들어 보는 것이지만 재미있게 만들었다. 반달 모양도 만들고 우주선 모양도 만들었다. 두 손으로 조몰락거리다가 도깨비방망이 모양도 만들었다. 할머니가 힐끔 쳐다보더니 빙긋 웃었다.
“송편을 빚을 때 달을 보고 소원을 빌어라.”
“왜요?”
“그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했다.”
“누가 그랬는데요.”
“우리 엄마가. 하하하….”
할머니는 옛날 엄마 앞에 앉아 송편을 빚던 소녀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병순이는 달을 보며 아기도깨비를 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식구들이 밤늦게 잠자리에 들었다.
병순이는 엄마에 대한 궁금증을 듣고 싶었지만 그럴 겨를이 없었다.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잠이 오지 않았다. 하나, 둘, 셋…, 백까지 세었지만 그래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창문엔 달빛 타고 풀벌레 소리가 요란하게 흘렀다. 아니다. 벌레 소리 사이에 간간히 이상한 소리가 섞여 있다. 고양이 울음소리 같기도 하고 들짐승 신음소리 같기도 했다. 병순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달빛이 마당에 가득하다. 담장 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병순이는 좀 섬뜩하고 소름이 돋는 느낌이었지만 침착하게 밖으로 나갔다.
“누나, 나야!”
깜짝 놀라서 자세히 보니 아기도깨비가 신음소리를 내며 앉아있었다.
“아니, 너 왜 그래?”
“나 이것 좀 빼 줘. 아파 죽겠어.”
아기도깨비가 가리키는 발등을 보니 쥐덫이 걸려 있었다.
“쥐구멍 앞에 놓은 쥐덫에 걸렸구나. 엄청 아프겠네.”
병순이가 상어 이빨처럼 생긴 쥐덫 집게를 힘껏 벌리자 아기도끼비가 발을 뺐다.
발등에서 검붉은 피가 솟아났다. 병순이는 손바닥으로 발등을 눌렀다.
“아으으 아파라, 도깨비 죽네.”
“잠깐 여기를 누르고 있어. 내가 치료해 줄게.”
병순이는 방으로 달려가서 약통을 들고 나왔다. 약솜으로 발등을 씻어내고 연고를 발랐다. 그리고 능숙하게 붕대를 감아주었다.
“자, 이제 괜찮을 거야. 조심해서 다녀야지.”
“고마워 누나. 꼭 간호사 같애.”
“그래, 난 간호사가 꿈이야. 아픈 사람 마음까지 치료해 주는 간호사가 될 거야.”
“근데, 왜 내가 보고 싶다고 했어?”
“내가 언제 그랬는데?”
“응, 아까 할아버지 보청기를 잠깐 끼고 있었는데 누나 목소리가 들렸어.”
“아, 그랬구나.”
병순이는 엄마 얘기를 털어놓았다. 엄마에 대해 궁금한 것을 알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엄마의 속마음을 알 수 있게 보청기를 잠깐 빌려 달라고 했다. 아기도깨비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지난번에 보청기를 잃어버린 후로 집 밖으로 가지고 나가는 것은 금지라고 했다.
“어쩌면 좋을까.”
아기도깨비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손뼉을 쳤다.
“내가 집에 가서 할아버지 보청기를 끼고 엄마 속마음을 알아서 알려 줄게.”
“그러면 되겠네.”
병순이도 팔짝 뛰며 좋아했다.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내가 얼른 다녀올게. 근데 엄마가 주무시면 소리가 들리지 않을 텐데…. 하여튼 기다려 봐.”
아기도깨비는 번쩍하고 사라졌다. 병순이는 엄마가 잠들었으면 어쩌나 하고 집안을 살폈다. 엄마 방에 불이 꺼져 있었다. 걱정이 되어 살금살금 다가가서 귀를 기울였다. 엄마가 무슨 기도를 하는지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행이다. 밖으로 나가서 한참을 기다렸다. 달님이 구름 타고 서쪽 하늘로 많이 흘러갔다. 아기도깨비가 짠∼ 하고 나타났다.
“누나! 큰일 났어. 엄마가 추석 쇠고 이틀 후에 다시 나간대.”
“뭐라고? 어디로 가는데?”
“구원성이라고 하는데 깊은 산속에 있는 큰 기도원이야. 거기서 식당 일을 하고 있어.”
“그럼 이상한 종교에 빠진 거야?”
“그렇다고 봐야지.”
“알았어. 우리 엄마가 3년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계속 알아봐 줘.”
“알았어! 누나, 엄마한테 궁금한 걸 계속 물어봐. 겉으로는 말을 안 해도 속으로는 다 중얼거리거든. 그러면 진실이 밝혀질 거야. 낼 저녁 다시 올게.”
“응, 잘 가.”
병순이는 아기도깨비와 헤어지고 잠자리에 누웠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아침에 차례를 지냈다. 엄마는 태연하게 일을 하면서 병순이를 향해 미소를 보내기도 했다. 아침식사를 끝내고 엄마와 마주 앉았다.
“엄마, 정말 어디 있었어?”
“응, 식당에서 일했다고 했잖아.”
“무슨 식당인데?”
“그냥 밥 먹는 식당.”
“어디 있는데?”
“서울.”
“거짓말, 솔직히 얘기해 봐.”
엄마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입도 꾹 다물었다.
“엄마!”
병순이가 엄마 품에 파고들었다. 엄마는 병순이를 끌어안고 눈을 붉힌다. 그동안 있었던 일들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처음 돈 벌러 간다고 나가서 큰 식당 주방에 취업을 했다.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았다. 그런데 같은 식당에서 일하던 손 여사라는 여자가 그렇게 친절하게 잘할 수가 없었다. 두 살 아래인 손 여사는 엄마한테 언니라고 불렀다. 외롭게 지내던 엄마에게 손 여사는 큰 위로가 되었다. 둘이는 시간 나면 함께 시장도 가고 차도 마시며 형제처럼 지냈다. 하루는 손 여사가 꼭 함께 갈 곳이 있다며 엄마를 데리고 갔다. 교회였다. 사람들이 모두 환영하며 잔치를 베풀어 주었다. 얼떨결에 교회에 빠져들었다. 그동안 번 돈을 맡기면 나중에 많은 이자를 붙여 돌려준다고 해서 돈을 내놓았다. 그런데 1년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돈을 돌려달라고 했더니 기도원으로 끌고 갔다. 강제로 식당 일을 시켰다. 산속에 있는 기도원은 감옥이다. 외출도 못 하고 전화도 할 수 없었다. 하루 종일 일만 시켰다. 탈출할 기회만 엿보다가 김치냉장고를 싣고 온 기사의 도움으로 몰래 빠져나왔다. 그러나 추석을 쇠고 바로 가야 한다. 뼈 빠지게 일해서 모은 돈과 받지 못한 월급을 받기 위해서 다시 들어가야 한다. 12월 성탄절까지는 모두 돌려준다고 약속했으니까.
병순이는 보름달이 떠오르자 아기도깨비를 다시 만났다.
엄마의 속마음을 모두 얘기해 주었다.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세상에 이런 일이 어떻게 벌어질 수 있는가.
“아빠한테 모두 말씀드리고 대책을 세워야지.”
“알았어. 고마워!”
병순이는 아빠와 마주 앉았다. 그동안 엄마한테 일어났던 일을 모두 이야기했다.
“그래, 나도 이상하게 생각했었다. 엄마를 못 가게 막을 수가 없겠구나. 대책을 세워야겠다.”
“어떻게요.”
“글쎄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엄마가 사기를 당한 것이니까 경찰의 도움을 받아야지.”
“그러네요. 어떻게 도움을 받아요?”
“일단 아빠가 경찰서로 가서 사실대로 말하고 신고를 해야지. 그리고 엄마가 가는 곳을 경찰관과 함께 아빠가 따라가서 확인해야겠지. 경찰 아저씨들이 수사하게 되면 모든 진실을 밝힐 수 있을 거야. 물론 엄마의 돈과 밀린 월급도 받아야 하겠지.”
“아, 그러네요.”
병순이는 이제야 마음이 놓였다.
엄마가 떠나는 날 아빠는 경찰관들과 함께 엄마 뒤를 따라갔다.
얼마 후, 엄마가 아빠 손을 잡고 다시 돌아왔다.
방송에서는 연일 사이비종교 비리가 폭로되고 여러 사람이 구속되어 끌려가는 모습이 텔레비전 화면을 가득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