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식(晶植)이에게
지난 4원 2일 산행 때 너의 안부를 묻는 동기들이 많이 있어서 이렇게 계성 홈페이지에 소식 전한다.
그러고 보니 너와의 계성 중고등 시절이 아삼삼 three 삼삼하기도 하고 이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가물
거리는구나. 중3 때 난 4반이었고 넌 5반인 걸로 기억되는데, 넌 그당시 눈망울이 초롱한 게 서서히
학업에 재미를 느끼는 모습이었고 반대로 난 중2 때 부터 마동철 선생님께 붙들려 어중간한 운동을
하다보니 죽도 밥도 아닌 형태로 점점 공부완 멀어졌었지.
그러다가 동계진학이지만 시험을 쳐서 고교를 진학했어야 할 땐 솔직히 난 자신이 없었는데, 운이 좋
았던지 어떻게 근근히 들어갈 수 있었지.
그리고 너와 한 반에서 만난 고1!(3반으로 기억됨) 그때 이미 키는 다 커버린 때여서 난 출석번호가
2번이었고 넌 내 바로 앞이 네 자리였지.
나도 내성적인 성격이었지만 너도 나와 버금가는 정도여서 점심시간에 항상 네가 뒤로 돌아앉아 같이
점심을 먹던 기억이 난다. 그때 네가 싸온 반찬 중에 명태찜이 맛있어서, 그전과는 달리 난 점심시간
전에 도시락을 잘 안까먹었지.
계성 출신은 다 알겠지만, 바로 옆의 동기는 일주일 마다 자리를 오른쪽으로 옮기다보니 모두 한 번
씩은 교실 좌우측 끝에 갈리게 되지만 너와는 일 년동안 그럴 일이 없었지.
당시 동인동에 네 집이 있을 적에 가끔 놀러가면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끓여주시던 라면 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사연(?)이 있어 난 이미 제대하고 넌 영대 다닐 때에 류상호랑 셋이서 시내 중심가를 휘저어며 젊음을
사르던 기억도...
세월이 흘러 내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기 얼마 전에 네게서, 어머니께서 폐암 말기로 병원에 입원해
계신다는 연락을 받았을 땐 내마음도 많이 아팠다. 돌아가시기 며칠 전 병문안 갔을 때 어머니께선
나를 못알아 보시는 것 같았지만 네 친구인 줄은 아시고 마치 널 보는 것처럼 반가워 하시더구나.
내가 안마를 한참 해드리고 나니 어머니께서, 수발하는 아주머니께 예전처럼 나에게 식사대접하라고
하시더구나. 그러자 아주머니는, 어머니께서 병원이 집인 줄 아신다고 그러더구나.
몇 번 경험했지만 본인은 모른채 유족들만 환자의 운명을 알고 있을 때, 난 안타까움에 가슴이 저며
오는 것을 막을 수가 없더라.
언젠가 네 누님이 결혼해서 쌍둥일 낳아서 이상하다고 했더랬지. 그건 좋은 '이상(?)'이었지만, 너도
알다시피 1991년 여름의 우리집은 내가 감당하기 힘든 슬픔이 갑작스레 닥친 적이 있었다.
몇년 전에, 용지봉에서의 그 'L'이 카톨릭병원에 입원했을 때 연락했더니 두말않고 서울서 바로 내려왔
을 땐 고마웠다.
난 아들 딸 남매가 있는데 딸아이는 우리나이로 29살이고 경희대 수원 캠퍼스 동아시아 어학과를 제일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고 고려대 대학원을 나와서 일본 시사통신 한국지국(중앙일보 빌딩)에 리포터로
근무하고 있다. 그 보다 세 살 적은 아들은 자기가 갈망하던 해군사관학교를 작년에 졸업해서 서해 최
전방에서 해병 중위로 근무하고 있다. 해사시절 유도부 주장을 맡으면서 각종 대회에서의 활약상을 동
영상으로 보여주기도 하더구나. 다른 동기들은 벌써 손주들을 더러 봤는데, 내자식들은 둘다 아직 이성
친구가 없는 상태다.
지난 용지봉 산행 때 윤치원이가, 너랑 할마씨(?)로 통하던 재훈이랑 네 명이 한 번 만나자고 내게 진지
하게 부탁하더라. 사실은, 치원이가 그렇게 말하던 모습이 너무나 짜안하게 와 닿았기에 이글을 홈페이
지에 올리게 된 가장 큰 이유이다.
김두경이는 부산에서 유리 팔아가지고 돈 많이 번 모양이더라. 너랑 언제 한 번 부산에 쳐들어가자!
그리고 동기들 모임에 너도 이제 좀 자주 나타거라. 널 보고싶어하는 친구들이 많더라.
내가 계성 홈페이지를 접한지 얼마 안돼서 청도에서 같이 통학하던 너와 성(추)이 같던 후배에게 이
처럼 편지성의 글을 올리고 수소문해봤는데 연락이 안되더라.
넌 그렇지 않으리라고,
소식 있으리라고
믿으며
이만
쓴다.
2011년 4월 17일 일욜 저녁 구미에서 동명
< 재탕 >
우화의 강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
한 쪽이 슬퍼지면 친구가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출렁거리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의 끝에서도 들린다.
처음 열린 물길은 짧고 어색해서
서로 물을 보내고 자주 섞여야겠지만
한 세상 유장한 정성의 물길이 흔할 수야 없겠지
넘치지도 마르지도 않는 수려한 강물이 흔할 수야 없겠지.
긴 말 전하지 않아도 미리 물쌀로 알아듣고
몇 해쯤 만나지 않아도 밤잠이 어렵지 않은 강
아무려면 큰 강이 아무 의미도 없이 흐르랴
세상에서 사람을 만나 오래 좋아하는 것이
죽고 사는 일처럼 쉽고 가벼울 수 있으랴
큰 강의 시작과 끝은 어차피 알 수없는 일이지만
물결은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들과 친하고 싶다.
내 혼이 잠잘 때 그대가 나를 지켜 보아주고
그대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
시원하고 고운 사람을 친하고 싶다.
- 마종기 -
* 시는 시의 진실과 인생과 진전성을 드러내기 위해 여러 가지 기억과 현실을
새롭게 조합한다는 면에서만 허구적이다. 시는 문학이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허구가 아님은 바로 이와 같은 이유에서이다. 시를 읽는 이는 시인의
마음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그럴 때 독자는 시심(詩心)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시의 효용성이다. - '문학체험과 감상'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