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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에 신자들이 추구해야할 것들
본문/빌3:1, 13-14절
3:1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하나님의 은혜로 2024년을 허락하셨고, 한 달이 지나고 이제 두 달이 지나가는 시점에 우리가 한번 쯤 평생을 통하여 추구해야 할 것을 한번 점검해 보아야 하겠다는 마음입니다. 주제별로 보면 연초에 딱 맞는 것이지만 새롭게 시작한지가 어언 두달이 되었지만 평생을 통하여 추구해야 할 것은 언제해도 무방한 그런 주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 속담에 시작이 반이다. 라는 말이 있듯이 신앙생활의 승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중요한 것으로 여기며 살아갈 때에 그 신앙은 결코 변질되지 않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중에
첫째가 회개입니다.
세례요한과 예수님의 첫 마디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회개하라 입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지만 오직 믿음만이 아닌 것은 회개와 믿음입니다. 구원의 조건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믿음생활하면서 첫 번째로 삼아야할 것중에 하나가 바로 회개입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교리화 되어 오직 믿음만 외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삶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회개입니다.
그약성경에 보시면 수많은 선지자들이 나옵니다. 그들이 외친 메시지를 한마디로 요악한다면 회개입니다. 그런데 선지자는 하나님의 메신저들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간정히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회개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이사야 선지자의 외침입니다.(이사야1:2-4절,18절)
2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4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예수님께서 말씀한 탄자의 비유는 회개에 대한 비유입니다. 그 비유가 보여주듯이 하나님은 집나간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처럼 애타는 마음으로 우리가 회개하길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회개하지 않으면 아무리 교회에 다니고 열심히 신앙생활 해도 맏아들처럼 교회 안의 탕자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오늘날 교회는 다니지만 탕자와 다음없는 삶을 살아가는 교회안의 탕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게 다 회개를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교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대다수의 목사들과 달이 성경은 구약과 신약 모두 회개의 절대적인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회개의 절대적인 중요성을 보여주는 구약성경의 대표적인 구절은 에스겔18:30-32절의 말씀입니다.
30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 각 사람이 행한 대로 심판할지라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 그리한즉 그것이 너희에게 죄악의 걸림돌이 되지 아니하리라
31 너희는 너희가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32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죽을 자가 죽는 것도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은 행위심판이기 때문에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신약 성경에 나오는 회개의 절대적인 중요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구절은 벧후3:8-9절입니다.
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위의 구절은 주님이 재림하실때에 회개하지 않은자는 모두 멸망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회개해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은 회개의 절대적인 필요성과 중요성을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통해 가장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비유에서 지옥 불구덩이 속에서 부자가 아브라함에게 뭐라고 절규합니까? 다함께 찾아 읽어보시겠습니다. 누가복음16:27-30절의 말씀입니다.
27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28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29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30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이것은 부자가 믿는 자였으며, 회개하지 않아 지옥에 떨어졌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이것이 교회에 다니지만 회개하지 않은 모든 목회자와 신자들의 운명입니다. 안타깝게도 부자는 지옥에 떨어진 후에야 회개의 사화적인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회개하라는 이 설교를 듣고 있는 것 자체가 한량없는 은혜요 복이라는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새롭게 시작한지 어언 두달이 자났지만 생활속에서 제일먼저 가장 시급한 것이 회개라는 것을 깨닫고 꼭 회개의 삶을 살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런데 회개는 자백이 아닙니다. 자백할 뿐 아니라. 죄에서 돌아서는 것입니다. 잠언28:13절에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13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20 먼저 다메섹과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 전하므로,(행26:20절)
그러므로 이제부터 습관적인 죄들을 반드시 끊어버려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회개하면 살고 회개하지 않으면 죽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회개를 생명얻는 회개라고 불렀습니다. 사도행전11:18절에 나옵니다.
18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더 나아가 회개하면 생명을 얻지만 더 깊이 히개하면 영적 부흥이 일어나게 됩니다.
행전2:37-38절입니다.
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역대하7:14절이 그 대표적인 말씀입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실제로 평양 대부흥이 어떻게 일어났습니까? 바로 회개운동이였습니다. 우리가 허ㅣ개하면 생며을 얻게되고, 더 깊이 회개하면 풍성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내가 살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살릴수가 있습니다. 즉 내안에 생명 샘이 솟아날 뿐 아니라.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게 됩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에스겔 47장에서 본 환상이 우리를 통해서 이루어 집니다.
에스겔47:5-9절
5 다시 천 척을 측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가득하여 헤엄칠 만한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6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이것을 보았느냐 하시고 나를 인도하여 강 가로 돌아가게 하시기로
7 내가 돌아가니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더라
8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 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
9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여러분,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신 목적입니다.
요한복음10:10절입니다.
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또,이것은 예수님의 몸된 교회인 저와 여러분이 해야할 일입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 즉 우리 교회를 통해서 바로 이일을 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히개하길 원하십니다. 더 나아가 더 깊이 회개하길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지금 총선을 위해서 국가를 위해서, 전쟁이 끊이지 않는 지구촌의 평화를 위해서 지구촌에 가장 적그리스도의 세력이 북한의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북한 주민들의 자유를 위해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앞에 기도해야 하고 회개하는데 앞장서야 합니다.그래서 마지막 시대에 저와 여러분, 가정과 교회가 하나님앞에 쓰임받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거룩입니다.
이슬람교는 거룩, 즉 마음의 청결에 관심이 없습니다. 코란은 음란을 거룩으로 둔갑시키는 종교입니다. 그래서 겉으로만 깨끗팼던 바리새인들처럼 살면서 자신들이 거룩하다고 착각합니다. 그들이 섬기는 참 신, 즉 거룩한 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우리에게 거룩을 요구하십니다. 그분의 눈은 불꽃같고 우리의 말과 행동뿐 아니라. 마음과 생각을 꿰뚫어 보십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마음이 청결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저 간음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다는 감사기도를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판단은 그들의 생각과 다릅니다.
마태복음23:25절에 나와 있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이처럼 그들의 외식을 폭로하시고, 화 즉 지옥을 선고하셨습니다. 그러면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들의 말과 행동은 바른 듯하나 마음이 방탕한 생각으로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도 똑같은 기준으로 판단하십니다. 그것이 산상수훈에 이렇게 나타나 있습니다.
마태5:20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태복음5:27-29절에는 구체적으로 나와 있습니다.
27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29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진정한 거룩, 즉 마음의 청결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타락한 인류에게 거룩한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또 우리는 굉장히 불리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영적이 ㄴ어두운 밤입니다. 예수님이 예언하신 노아의 때와 롯의 때입니다. 한마디로 음란하고 방탕한 시대입니다. 과거에는 여자들이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화장하고, 옷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은 여자들이 섹시하게 보이려고 화장하고 옷을 입습니다. 또 인터넷은 말할 것도 없고 영화도 19금 투성이로 방영합니다. 안방에서 온 가족이 보는 연속극들도 지나치게 선정적인 장면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또 틈만 나면 역겨운 동성애를 미화하려고 합니다. 또한 우리나라뿐 아니라. 많은 나라들이 간음죄를 폐지했고, 심지어 동성애를 합법화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온 세상이 노아의 때롸 롯의 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때 우리가 참 거룩이 마음의 청결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거룩은 우리 힘으로 안됩니다. 능으로 안됩니다. 오직 성령으로 됩니다. 그리고 성령은 기도하는 자에게 임하십니다. 때문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었습니다.
누가복음21:34-36절입니다.
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36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이 말씀에서 주님은 바리새인들의 마음에 가득했던 방탕함을 지적하시고 그렇게 살면 그날이 덫과 같이 임하게 된다. 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멸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한가지 방법을 가르쳐주셨는데,
“항상 기도하며 깨어있으라.”
고 하셨습니다. 즉 기도가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또 베드로사도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벧전4:7절입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시간을 정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 우선순위를 오늘부터 매일 기도를 더 많이 하기로 결심하십시오, 또 나라어ㅘ 교회를 위한 기도도 더 많이 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새계는 이금 전쟁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결코 안심할 수가 없는 지경에 있습니다. 남북한과 싸우면 러이사는 가만히 있습니까? 중국은 어느편이겠습니까? 우리가 6.26를 잊지말아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국가를 위해 특별히 기도많이 해야 합니다.그러므로 매시간 집이나 가정이나 교회에서 기도의 삶을 투자해나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경건의 능력인 성령으로 충만하여 모두 마음이 청결한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용서의 삶입니다.
제가 늘 말씀드렸듯이 대부분의 교파에서는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거짓 교리 때문에 믿기만 하면 천국에 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교회안에 가득합니다. 그들은 죄가운데 살아도 천국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용서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보시면 용서하지 않으면 결코 천국에 들어갈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것이 복음서들에 분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마태6:15절입니다.
15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마가복음11:25절입니다.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6:37절 말씀입니다.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이처럼 우리가 용서해야 하나님도 우리를 용서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용서하지 않아 용서를 받지 목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럴 경우 죄값을 지불해야 합니다. 그런데 죄의 값는 사망이고, 둘째 사망인 지옥을 포함합니다. 그러므로 용서하지 않는 자들은 지옥에 갈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ㄴ디ㅏ. 실제로 성경에 그 사실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18:32-35절입니다.
32 이에 주인이 그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33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34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
35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이 말씀을 보시면 주인이 형제를 불쌍히 여기지 않는 자에게 대노하였습니다. 그리고 탕감해준 것을 취소하고 빚을 다 갚도록 옥졸들에게 넘겼습니다. 그러니 구원이 취소된 것이지요? 어디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입니까?
또 “그 빚을 다 갚도록 ”이라는 표현이 보여주듯이 용서해 주지 않고 스스로 갚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죄 값을 자기가 갚을수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만약 그럴수 있다면 구원자가 필요없습니다. 예수님이 이땅에 오실 필요가 없습니다.
더구나 갚아야 할 빚이 무려 일만 달란트로 대략 한 사람이 20만년의 품삯입니다. 절대로 갚을수가 없는 액수입니다. 그러므로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라는 말은 그 빚 즉 죄 때문에 영원히 지옥에서 형벌을 받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때문에 마태복음 주해학자인 양용의 교수도 새로나온 마태복음 주석어서에서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가 빚진 모든 것이 10,000 달란트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그가 감옥에서 풀려날 가능성은 전혀 없다. 이처럼 그는 영원히 감옥에 갇힐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주인의 형벌은 최후의 심판을 시사한다.]
이처럼 성경은 용서하지 않는 자가 지옥에 간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우리 오두 용서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용서는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용서에 도움이 되는 몇 가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째, 용서허지 않은 결과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용서가 쉬워집니다. 용서하지 않으면 우리 마음에 쓴 뿌리가 생기고 계속 쓴 물이 올라옵니다. 즉 증오와 미움과 원망이 올라옵니다. 그래서 괴롭힙니다. 뿐만 아닙니다. 에베소서4:26-27절에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27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이처럼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않아도 마귀가 틈을 탑니다. 그런데 요서하지 않고 계속 분노하면서 한주 한달을 지내보십시오, 마귀가 들어와 아예 거주합니다. 그 결과 고통당하고 병에 걸리고 저주스러운 일들이 발생하게 될 것입니다. 또 끝내 용서하지 않고 죽으면 지옥에 던져지게 됩니다. 그러니 생각해 보십시오. 상대가 끼친 해보다 이것이 더 큰 손해아닙니까? 그러므로 이것을 생각하고 다 용서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둘째로, 용서해야 할 죄가 아니라. 용서 받은 죄를 생각하십시오.
우리에게 용서는 덕이 아니라. 의무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 사랑에 빚진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바로 일만 달란트 탕감받은 사람아닙니까? 그러므로 마땅히 용서해야 합니다. 더구나 백 데나리온은 일만 달란트의 1/600,000밖에 안됩니다. 때문에 이것에 초점을 맞추면 용서가 할결 쉬워집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심판이 공의롭다는 것을 믿고 원수 갚는 것을 하나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로마서12:19절에그것을 잘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여러분 지옥은 어떤 곳입니까? 지옥에 대한 간증을 그래서 읽어봐야 합니다. 지옥에 갔다오신 분의 간증을 몇권 읽어보세요, 그곳에 어떤 곳인가? 성경은 군대군대 간략하게 기록했지만 실제로 갔다 오신 분의 리얼하고 디테일한 지옥입신간증을 심도있게 읽어 보시면 지옥이 얼마나 끔찍한 곳이며, 얼마나 고통스러운 곳인지를 뼈속 깊이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곳을 기억하면 용서를 못하시겠습니까? 매우 쉽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용서한다고 우리에게 죄를 지은 악인들이 안전한 것이 아닙니다. 또는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그냥 넘어사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 차이만 있을 뿐, 심판을 통해 자기들이 지은 죄값을 다 받게 됩니다. 그것을 로마서2:5절에 잘 밝혀줍니다.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이처럼 지금은 아무 일이 없고 악인들이 형통한 것 같아도 하나님의 진노가 차곡차곡 쌓이고 있는 중입니다. 심판 날 홀연히 회개하지 않은 자들에게 진노가 한꺼번에 쏟아집니다. 그날 회개하지 않는 자는 자기의 죄값을 호리라도 남김없이 온전히 받게됩니다.
시편75:8절에
여호와의 손에 잔이 있어 술 거품이 일어나는도다 속에 섞은 것이 가득한 그 잔을 하나님이 쏟아 내시나니 실로 그 찌꺼기까지도 땅의 모든 악인이 기울여 마시리로다.
또한 죄값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큽니다. 왜냐하면 영원한 지옥형벌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깊이 생각해보십시오. 그러면 억울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도리어 그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동시에 두려움으로 자기를 돌아보고 회개하게 될 것입니다.
넷째로 예수님 사랑입니다.
우리 교회 표어에 나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천국에 누가 들어갑니까? 믿는자요? 틀린 말은 아니지만 완전한 답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말은 100% 맞는 말입니다. 천국에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만이 들어갑니다.
시편145:20절에
여호와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은 다 보호하시고 악인들은 다 멸하시리로다.
마태복음10:37절입니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야고보서2:5절에도 있습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이처럼 천국에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들만 들어갑니다. 왜냐하면 천국은 신랑이 신부를 위해 마련한 신혼집이고 신부만 들어갈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마태 25장에 나오는 열처녀 비유와 계시록 19장의 어린양 혼인잔치에 분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그런데 7절에 보시면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준비해야 합니다. 즉 신부 단장을 해야만 합니다.
그런 신부 단장이 무엇입니까?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정절, 즉 거룩이고, 또 하나는 신랑을 향한 사랑입니다. 이 두가지가 우리가 해야할 신부 단장입니다. 그래야 신랑 되신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혼인 잔치에 참여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거룩은 앞에서 다뤘으므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사람은 주님을 위해서 살든 자기를 위해서 살든 둘 중의 하나입니다. 롬14:7-9절에 잘 말씀해 줍니다.
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9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실제로 초대교회의 신자들은 이렇게 살았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표본은 초대교회입니다. 신앙의 표본은 초대교회 신자입니다. 목회자들 중에도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이고 자기를 위헤 사는 자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이 주님을 위해 살고 있는지 아니면 자기를 위해서 살고 있는지 냉정하게 점검해 보셔야 합니다.
여러분, 마지막 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이기심입니다.
딤후3:1-2,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때에 어떤 현상이 일어납니까?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말세의 의미가 광범위하긴 하지만, 아무튼 말세때 사람들은 돈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자기를 사랑합니다. 때문에 우리가 가장 경계헤야 할 것은 음심과 탐심이 아니라. 바로 이기심입니다.
실제로 이기심은 이 시대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입니다. 특히 우리나라 국민들의 이기심이 강력합니다. 잘사는 것에만 관심이 있고 얼마나 북한 인권에 무관심합니까? 국민뿐 아니라. 교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들이 개교회 이기주의에 푹빠져 있습니다. 자기 교회 문제가 아니면 아무리 악하고 거지소디고 불의해도 정의감으로 불의에 나서는 교회와 목사들이 너무나 적습니다. 그러나 개인도, 교회도 나라도 결국 이런 이기심 때문에 멸망합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이기심을 회개하고 버려야 합니다.
한편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매일 기도로 교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을 위해 헌신합니다. 그것이 부활하신 후 베드로에게 나타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세 번 반복해서 물으시고 그때마다
“내 어린양을 먹이라.”
“내 어린양을 치라.”
“내 어린양을 먹이라.”고 명령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요한21:15-17절)
또한 주님을 위한 최고의 사랑은 단순히 말씀대로 살거나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목숨까지 바치는 것입니다.
요한15:13절에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그러므로 우리 모두 주님을 위해 목숨까지 바칠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행전20:24절에 바울의 순교신앙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요한21장에서 예수님이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질문하실 때 베드로는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그때도 주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위해 목숨을 바칠수 있는 사랑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다가 훗날 그는 예수님이 예언한 대로 주님을 위해 목숨을 버릴수가 있는 사랑을 가졌습니다.(요한21:18-19절)
이것을 기억하고 우리는 현재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에 만족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보다 더 주님을 사랑하기 원해야 합니다.
찬송가314장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이라는 제목이 우리의 소원과 기도 제목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주님을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잠시 생각해 보십시오. 이 세상에 각종 황당한 사고로 허무하게 죽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주님께서 오늘날 까지 우리를 지켜주셨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죽지 않고 주님을 위해 목숨을 드릴수 있다면 얼마나 값지도 영광스러운 죽음이겠습니까? 글러므로 주님에 대한 사랑이 더욱 커져서 바울과 바나바처럼 주님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도 아까워하지 않고 드릴 수 있는 자리에 까지 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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