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그남자 그여자의 사정]의 주인공 미야자와 유키노는 맨처음 시작부터 '허영심 덩어리'로 자신을 소개한다. '허영심' 하면 '사치와 허영에 들뜬 여자' 정도밖에 떠올릴 거리가 없는 한국인의 정서와는 다르게, 이 일본만화는 남들 앞에서 자신을 꾸미고 가면을 쓴 체 연기하는 행위의 분명하고도 유일한 이유로서 '허영심'을 제시하고 있다.
'칭찬받고 싶은' 마음에 남들이 좋아하는 착하고 똑똑하고 이쁜 미소녀를 연기해 보이는 유키노는 필사의 노력으로 공부하고 운동하고 미모를 가꾼다. 가족 외에는 아무에게도 본모습?을 보인 적이 없는데, 그만 같은 반의 라이벌(자기를 밀어내고 인기 1위 자리를 차지한) 아리마한테 본색을 들키게 됨으로써 이 만화는 뻑적지근하고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풀어나가게 되는 것이다.
일본 만화는 확실히 과장에 강하다. 아무리 남들 앞에서 자신을 꾸민다지만 이렇게 완벽하게 해내는 여자아이는 일본에도 그렇게 많지 않을 거 같다. 한국에서야 물론 상상이 안 가는, '허탈할 지경의' 과장법으로 이해될 것이고 말이다. 일본만화를 보다보면 정말이지 존경스러워질 정도의 '오버'에 잊을만~ 하다가도 놀라곤 한다.
흔히들 연예인들이 겉으로는 청순한 척, 상냥한 척하지만 실제 성격은 무척 성질 더럽고 맨날 뒤로 호박씨 깐다는 담론(루머?) 정도는 한국인들에게도 무성하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겉치레와 진짜 인격이 다른' 이중인격을 비난하는 수준일 뿐이다. [그남자 그여자]는 그 원인을 탐구하여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허영심의 끝은 어디인가?'의 장대한 스케일을 가진다.
화장하는 여자는 자기를 속이는 걸까?
난 전에 아주 재미난 얘기를 들었는데, 키가 몇이냐는 질문에 대해 하이힐을 신은 키를 말해주는 여자들이 제법 있다고 한다. 과연 여자는 맨발로 선 키가 진정한 자신의 키일까 아니면 높은 굽 신발을 신은 키가 자신의 키일까? 여기에 대해선 이견이 많지 않으리라고 본다. 하지만, 이런 질문을 던져보자. 화장을 말끔히 한 모습이 진정한 자신의 모습일까 아니면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맨얼굴만이 진정한 자신의 모습이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일까?
답하기가 쉽지는 않다. 자본주의 사회 중에서도 요상하게도 전여성의 메이크업화, 브라착용화를 일구어낸 한국의 여성들은 특히나 일정 나이가 넘어서면서부터 자기의 맨얼굴을 보여줄 수 있는 사회적 관계를 '몹시 친밀한 사이'로 한정한다.
나처럼 화장을 하나 안 하나, 밖엘 나가나 안나가나 인간성이 전혀 격차가 심하지 않은 여자도 '내 진정한 모습은 무엇인가?' 하고 묻는다면 약간은 고민할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맨얼굴, 맨발이 본래의 모습에 가깝겠으나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 얼굴,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모습은 예쁘게 화장한, 땀 한 방울 안 난 보송보송한 모습일 것이다.
내숭과 허세
흔히 여자들이 남자 앞에서 잘 보이려고 약한 척, 순진한 척, 고상한 척 자신을 꾸미는 속들여다 보이는 짓을 '내숭'이라고 한다. 반대로 남자들이 흔히 하는 짓인 강한 척, 있는 척, 호탕한 척하는 행위를 '허세'라고 한다.
내숭이라는 건, 물론 남자들의 극악한 환상에 부응하여 자기 잇속을 차리기 위해 여자들이 발달시킨 중요한 능력이다. 약함을 과시함으로써 자기 값어치를 올린다는 기상천외한 방법을 개발한 인류의 기발한 능력엔 존경을 금할 수 없으나, 이것이 사실 만들어지고 효과적으로 통용되던 시대와 계층에서 이미 한참 벗어난 지금 세계에서도 관성적으로 '전형적인 것'으로 통한다는 사실은 찜찜하다. 우리가 무슨 19세기 부르조아 계층의 창백한 얼굴빛을 자랑하는 유한마담들도 아닌데, 곁에다 늘 시종을 부리고 살던 시절에나 통용되던 약한 척을 하면서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깨작깨작하고, 바람 불면 날아갈듯 개미허리를 자랑한단 말인가.
그런데도, 여자들의 내숭이 얼마나 완벽했던지, 아니면 남자들의 환상이 고집불통이었던 것인지 아직도 많은 한국남자들은 (젊은) 여자의 몸무게가 50kg을 넘는다는 것을 무슨 임파서블한 미션 으로 생각하고 있다. 거꾸로 여자들은 모든 (젊은) 남자가 잘난 대를 나오거나 연봉이 억대거나 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여자들의 환상이 적은 것이거나 아니면 남자들의 허세가 헛돌아가는 것인 셈이다.
내숭이거나 허세거나 그것이 그도톡 발전되고 일반화된 것은 물론 그 효과가 놀라웠기 때문이다. 혹 '알면서도 속아준' 것인지도 모르지만, 그런 자세, 그런 분위기로서 '짝짓기'에 성공하는 비율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즉 여자한테 '예쁘다'고 끊임없이 아부해주는 남자와 남자의 그 밑도 끝도 없는 지잘난 척을 받아주는 여자가 연애의 성공 확률이 높은 만큼이나, 다 알고 하는 짓이래도 내숭떨어주는 여자와 없어도 있는 척하는 남자가 성공할 확률이 높았던 것이다. 사람들은 명확한 현실보다는 감미로운 거짓을 종종 택하곤 한다.
그래서, 비난할 수 없다고? [그남자 그여자의 사정]의 미야자와는 그 동안의 거짓된 모습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며, 나중에 사실을 알게된 반친구들로부터 따돌림도 당하지만 이러저러하게 극복하여 전화위복이 된다. 언제나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며' 사는 것을 제일 기본으로 삼고 사는 일본인들은 체면치레와 자기의 속마음의 이중성이란 것에 대해 관용적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어쨋거나 그 거의 엽기에 이르르는 위장술에는 감동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음하하하' 웃는 주인공의 뒤로 피어오르는 장미꽃송이들은 아주 유쾌했다. 솔직한 허영심의 극한이다.)
한국인은 좀 다르다. 아직도 개인주의란 것은 큰 세력이 못 되어, 객지에서 만난 별것 아닌 사이래도 터놓고 말하기를 요구하며, 지하철에서 잠깐 지나가는 괘씸한 녀석(주로 사내녀석이 계집애처럼 머리기르고 물들인)에 대해서도 일장훈계가 가능하다. 참 정말이지 아주 터놓고 사는 사회다. 그래서 그런지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여자 연예인들은 모두 '공인이라는' 웃기는 죄로 화장을 하지 못한 맨얼굴로 대중 앞에 나와 죄송하다는 말을 해야했다. 그 여자들이 자신감을 가지고 뽐내는 외모를, 가장 강력한 무기를 보자기에 싸놓고서 맨발로 백의종군(최소한 백양은 지금)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사회적 이미지'인 탤런트 혹은 가수 아무개 이면에 있는 진짜 인간의 모습-상처받고, 힘들고, 나이먹는-을 드러내고 동정을 얻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이 사회는 그 여자들이 '공인으로서' 최후의 자존심의 보루를 지키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다.
글쎄, 나는 같은 거짓이래도 허영은 좋지만 내숭은 안 좋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인간은 진실한 자기모습보다는 현재의 행복이나 앞으로의 가능성을 위해 도움이 되는 모습을 보고 살아야 잘 사는 법이다. 그러나 '내숭'이라는 형태로 자신의 이미지를 제한하는 것은 21세기 여자에게 있어 장기적으로 볼 땐 큰 손해를 안겨준다고 본다.
물론, 남자들의 기도 안 찬 '허세'라는 거 봐주기엔 별로 참을성이 없는 여자라도, 스스로 능력을 가지고 권력을 가지게 되면 아무 문제없이 잘 살수 있으니, 허세를 참아주는 수행을 하는 시간에 자기능력을 키우는 공부를 하는 편이 더 좋을거라고 생각한다. 짝짓기에 성공하는 것도 좋으나, 그후에 그외에 잘 살아가는 일도 아주 중요하기 때문이다. 여자가 굳이 남자에게 허세를 요구하지 않는다면, 그들도 곧 어설픈 쇼를 그만두고 그럴싸한 쇼- 귀엽고 예쁘고 섹시하고 재미있고 개성있는 남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자기얘길 시작할 것이다.
첫댓글 공감이 가는 내용이네염^^ 외적인 모습이 어떻거나 간에 인간적으로 진실하면 어떤 모습으로든 잘 살 수 있다고 봅니당!~^^
심매!..왜 니 얘기를 올려 논거냐?..^^ㅋ...나는 같은 거짓이래도 허영은 좋지만 내숭은 안 좋다고 생각한다...나 이말에 반기 들래!!..나두 내숭쟁이할래~~..>.<;;...
ㅋㅋㅋ 공감이 백만개 이길래.......... 보고 뒤집어 지다가.. 끌구 왔징...... 움움움훼훼.. ㅋㅋ 내숭.. 나 아닌디... ^^
미혜씨~ 솔찍해집시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