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값 폭락·농가 불안 커지자 뒤늦게 격리 예년수준 회복 어려워…RPC 경영난 여전
쌀 20만톤 공매
정부가 쌀값 안정을 위해 20만톤의 쌀을 시장에서 격리키로 한 가운데 지난 7일, 농협중앙회를 통해 쌀 10만톤에 해당하는 조곡 347만2225포대(40kg)에 대한 공매에 나섰다. 시도별 입찰물량은 △전남 71만1725포대 △전북 66만5100포대 △충남 55만6425포대 △경기 49만4600포대 △경북 39만4850포대 △경남 25만3350포대 △강원 20만4650포대 △충북 19만1525포대 등이다.
공개경쟁 입찰방식으로 진행된 이번 공매에서 4만3000원 내외로 낙찰가가 정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격리가 진행되자 산지 쌀 값은 안정세를 띠며 회복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예년에 비하면 쌀 값은 여전히 낮은 수준인데다, 현장에서는 쌀 값 상승을 크게 기대하지 않는 분위기. 경기지역 한 농협RPC 관계자는 “정부의 격리 방침이 알려지면서 쌀 값이 진정세를 띠고 있지만 쌀 값이 많이 오를 것이란 기대는 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여기에 경기지역의 경우 지난해 농가들로부터 5만4000원 대에 벼를 구매한 상태로, RPC들의 적자가 예상되는 상황. 이번 격리조치로 RPC들의 적자폭은 다소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지만, 현장 농가들은 적자를 본 RPC들이 올 가을 수확기에 낮은 가격에 쌀을 수매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 등 농가 불안심리가 강하다.
이에 전문가들은 지난해 쌀 재고 문제가 불거졌을 때 생산조정 등 양곡정책에 적극적으로 나섰더라면 올해 같은 쌀 값 대란을 미리 막았을 것이라는 시각이 있다.
이명박 정부의 최근 농업정책이 제대로 추진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사진은 한농연 등이 참여하는 올바른 농협개혁 범국민연대가 지난달 21일 기자회견을 갖고 경제사업 활성화를 위한 농협 사업분리 완성을 촉구하는 모습.
“수입권 민간에 풀리면 국산 농산물 위험” 농민단체 거센 반대 불구 연구용역 강행
TRQ 수입관리 개선
농민단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TRQ 수입관리 개선방안에 대한 연구용역이 강행됐다. 농수산물유통공사는 지난 3일 ‘TRQ 수입관리 개선방안 연구’ 용역과제를 재공고 했다. 4월 12일 같은 과제를 공고했으나 입찰건이 1건밖에 되지 않아 유찰됐었다.
연구용역의 목적은 시장 지향적 관점에서 농수산물 TRQ 수입방식을 획기적으로 개선한다는 것이다.
검토 품목은 고추 마늘 양파 콩 팥 참깨 등 6개 품목으로 연구내용은 농식품부에 설치된 TRQ 수입관리 개선 TF팀과 수시로 협의하면서, 현행 TRQ수입관리의 문제점, 국영무역 폐지 방안 또는 존치필요시 대상품목 사유 및 존치기간 등에 대해 연구한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현행 국영무역 방식을 실수요자인 제조업체에 수입권을 주겠다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는 연구용역이 처음 공고된 지난달 12일, ‘TRQ 물량의 실수요자 단체 수입권 배정을 즉각 중단하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내고 국내 농산물 희생 강요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하지만 이달 3일 연구용역이 재공고되면서 농민단체의 주장은 공허한 메아리가 됐을 뿐이다.
손재범 한농연 사무총장은 “국영무역은 농업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인데, 국내 농업을 지지해야할 농식품부가 농업을 자유경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면서 “실수요자 중심의 TRQ 제도 개선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농협법 개정안, 4월 임시국회 통과 무산 농협만 바라보다 농업계 합의 못 끌어내
농협 사업분리
농협중앙회 사업분리의 경우 농식품부는 4월 임시국회에서 농협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려 했지만 실패로 돌아간 상태다. 농협 사업분리 논의가 진전을 이루지 못한 것은 농민단체 간 이견이 존재하는데다 정치권도 지방선거를 앞두고 사업분리라는 중요한 사안을 다뤄야한다는 부담이 작용했지만, 정부가 그동안 사업분리 자체에만 매달려 경제사업 활성화라는 근본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지난해에는 정부가 농협법 개정 내용을 발표하자, 정부 주도로 구성된 농협개혁위원회 마저 해체 선언을 하기도 했다. 자본금 배분 문제나 상호금융 독립법인화 문제 등에서 농협개혁위 논의 내용과 차이를 보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현재 국회에는 연합회 방식의 농협법 개정안 등 정부안 외에도 3개의 농협법 개정안이 올라와 있지만, 이에 대한 검토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정부가 사업분리에만 신경을 쏟다보니 사업분리 당사자인 농협과의 의견조율에만 치중해 농업계 전체 합의를 이끌어 내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한 협동조합 전문가는 “정부가 농협과의 협상에만 치중한데다 정부가 입법한 방안대로 흘러가게 판을 짰기 때문에 농협법 논의가 진전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정부는 이달 중에라도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어 농협법 개정 논의를 이어가려고 노력 중이지만, 지방선거 이전에는 사실상 농협법 논의가 힘들다는 게 중론이다.
‘경기·강원지역 못자리 끝나 참여 어렵고 ‘ha당 300만원으론 수지 안맞다’ 지적도
논에 타작물 재배 유도
경기도 파주시 교하면의 한 농민이 모내기를 앞두고 어린 모를 살펴보고 있다. 김흥진 기자.
쌀 가격이 요동을 치자 정부는 쌀 20만톤 격리 외에 3만ha의 논에 타작물 재배를 유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에 논에 벼 이외의 타작물 재배시 ha당 300만원을 지급키로 하고 신청자 접수에 나섰다. 하지만 이 대책도 실효가 있을지 의문시 되고 있는 상황.
이미 경기와 강원 지역은 못자리 설치가 끝난 터라 타작물 재배에 참여하기 힘든데다 남부지역도 이런저런 이유로 타작물 재배를 꺼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충북 괴산군의 한 농민은 “3000평 농사를 지어야 300만원이 나온다는 얘기인데 밭작물을 재배하면 추가로 들어가는 자재 값에다 인건비를 빼면 오히려 손해가 날 것 같다”며 “처음에는 자금지원이 있다고 해 작물전환을 할까 생각했다가 포기하고 말았다”고 전했다. 실제 경남지역의 경우 지난달 말까지 타작물 재배 신청접수를 받았는데, 경남도 목표치인 3081ha에 5%에도 미치지 못하는 141ha 461농가만이 접수를 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같은 현상은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로 현재 접수기간을 오는 14일까지 연장해 놓은 상태다.
접수기간이 연장됐지만 3만ha라는 목표치를 달성할 수 있을지는 의문. 경남도청 관계자는 “논콩의 경우 아직 기계화가 이뤄지지 않은 데다 종자확보에도 어려이 있어 타작물 재배 계획물량을 다 채울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아직까지 농사짓기에는 쌀이 수월하다고 생각하는데다, ha당 300만원을 받았을 경우 수지가 맞는 것인지 농가들이 판단을 못 내리고 있다”고 전했다.
여기에 뒤 늦은 정책 결정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터져 나오고 있다. 일부 농가는 못자리 설치를 다 끝낸 터라 타작물 재배에 참여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당이 쌀 값 안정대책 공약을 내자 정부가 부랴부랴 대책을 내놓은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 농식품부는 지난달 초까지만 해도 논에 타작물 재배시 정부 포상 등을 추진한다고 밝혔지만, 소득차이 보전 등에 대해선 구체적 계획이 없었다.
작년 말 28개 대표조직 의욕적 설립불구 8개 품목 운영 지연·일부선 갈등 조짐도
품목별 대표조직 육성
정부가 급격한 시장변화에 대응해 특정품목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현안과제를 함께 고민하고 문제점을 해결키 위해 지난해부터 역점을 두고 추진했던 품목별 대표조직 육성이 사무국 등 집행기구 설치가 늦어지면서 차질을 빚고 있다.
당초 정부의 계획대로 주요 농수산물 28개 품목의 대표조직이 설립, 하드웨어 부분은 구축했으나 이를 실질적으로 운영할 주체들의 사무국 설치가 늦어지는 등 소프트웨어 부문이 아직 미약한 것이다.
지난해 말 설립된 28개 대표조직은 농산물 16개 품목, 축산물 6개 품목, 수산물 6개 품목으로, 이들 품목의 총 생산액은 농수산물 전체의 80%를 차지한다. 대표조직 형태는 품목 여건에 따라 농산물 15개, 수산물 6개 등 총 21개 조직이 새로 설립됐고 기존 조직을 대표조직으로 전환된 곳도 농산물 1개, 축산물 6개 등 총 7개에 달한다.
이처럼 28개 대표조직이 설립됐음에도 이중 8개 품목은 사무국 등 집행기구 설치가 늦어지면서 일부 품목 조직운영이 지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 품목은 배추, 딸기, 토마토, 양파, 고추, 마늘, 단감, 배 등으로 농가수가 많아 조합중심으로 운영되는 품목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여기에 위원회 구성 및 내부 운영규정도 마련되지 않은 조직도 아직 많은 상황이다.
이와 함께 해당품목 발전을 위해 대표조직이 어떤 역할과 기능을 담당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화 작업과 품목 조직원들의 의식 전환의 한계로 대표조직원간 갈등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이로 인해 정부는 대표 조직내 유통협약·명령, 자조금 사업 등을 심의하는 가칭 수급·유통조절위원회를 설치하거나 품목별 특성을 고려해 지부 등 하부조직도 만든다는 계획이나 이 또한 난항을 겪고 있다.
최병옥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박사는 “정부는 대표조직 하부 구조의 조직화를 촉진시킬 수 있는 제도적 권한을 부여하는 동시에 참여주체의 권한과 의무강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품목의 특성을 고려한 육성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