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의 명물 메타세콰이어 길
임병식 rbs1144@hanmail.net
계절이 여름으로 치달리면 수목들은 짙어진 녹음을 뽐내지만 사람들은 그 품세의 늠름함에 취하기보다는 그 가지들이 늘어뜨린 그늘을 우선 찾게 된다. 근자에 들어서 이상 기온 탓인지 유월 초만 되어도 한 낮의 기온이 성하(盛夏)를 방불케 한다. 잰걸음으로 조금만 빨리 걸어도 등에서는 금방 땀이 난다.
이른 점심을 먹고 운동 삼아 걸을 요량으로 밖을 나섰더니 십여 분도 채 지나지 않아 앉을자리부터 돌아봐 졌다. 그래서 아파트 뒤에 조성된 메타세콰이어 나무아래에 놓인 벤치가 앉아서 한식경을 보냈다. 나무를 보자니 자연스레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쳤다.
이 나무는 시에서 심어놓은 것이다. 거주하는 아파트를 경계로 울타리 밖에는 시유지 자투리땅이 조금 있는데, 그곳에는 정자가 서 있고 그 중심으로 느티나무 여섯 주와 다른 열 한주의 메타세콰이어가 좁은 길을 따라 죽 늘어 서 있다.
수령은 삼십년이 넘었다. 밑 둥은 장정의 팔로 한아름이 되고 수고(樹高) 또한 커서 30m가넘어 보였다. 멀찍이서 보면 마치 이등변삼각형 모양을 하고 있어서 여간 멋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그 품안에 안기니 햇빛이 차단되어 서늘한 기운마저 돈다.
나는 앉자마자 양팔을 벤치에 걸치고서 눈을 사려 감았다. 이때 문득 어떤 사람이 떠오르는 게 아닌가. 그 사람은 바로 안병식(安秉植) 주무관. 한데 왜 그가 생각난 것일까. 하나 그것은 어렵지 않게 금방 유추할 수 있는 일이었다. 바로 내가 여기서 메타세콰이어를 보았고 그 나무 그늘에 놓인 벤치에 앉은 게 단서가 되었던 것이다.
내 고향 보성 국도 18번, 미력면 용정리와 복래 유정리간에는 약 12Km에 이르러 명품 가로수 길이 조성되어 있다. 수종은 단일한 메타세콰이어로 이것드이 열병식 하듯이 늘어서 장관을 이루고 있다. 그런지라 모든 사람들이 이곳을 지나면 탄성을 자아낸다. 노변에 촘촘하게 들어선 가로수길은 20분을 달려도 끝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애초에는 간격을 얼마간 두고 심었으나 몸피가 늘어나서 빽빽하게 되었다. 그런 나무들이 30년이 넘다보니 장관을 연출한다. 이곳을 한번이라도 다녀간 사람은 반드시 다시 찾아오지 않나 싶다. .
식수가 된 나무숫자는 2,600여 주. 한데 이 가로수 특별히 길을 탄생시킨 사람이 있다. 바로 익산지방국토관리청 안병식 국도관리점용허가 담당관으로 그가 적극 나서서 도와주었다. 때는 1990 년경. 푸른 숲 가꾸기 일환으로 보성군에서 신선한 아이디어를 담은 숲길 계획서를 올렸던 것이다. 그것이 건설교통부를 경유하여 익산국토관리청으로 내려왔다. 추진여부의 판단은 오직 실무자가 하는 일이었다. 안주무관은 그 계획서를 받아들자 그것이 향후에 명품길이 될 것임을 확신했다.
고향에 그런 명품길이 조성된다면 얼마나 바람직한 일인가. 명소가 될 것이 아니겠는가. 단지 우려되는 건 교통 혼잡이나 민원소지가 있는지가 관건이었지만 그는 긍정적으로 판단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미 군에서 충분히 검토를 해서 보고를 했을 것이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그 의 판단으로 사업은 무리 없이 추진이 되었다. 거기에는 안 주무관의 뜨거운 고향사랑이 자리 잡고 있었음은 두말 할 나위도 없다.
하지만 그 공이나 내막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고향을 사랑한다고 자처한 나도 최근까지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는 무엇보다도 워낙에 성격이 과묵한데다 남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성미 때문이기도 하다.
이 국도는 어떤 도로인가. 18번 도로명이 붙은 이 길은 진도에서 구례 화엄사까지 이어지는 도로이다. 거리는 274Km. 그런데 그 어간에 이 명품 가로수길이 조성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도로는 원칙이 적용되어 있다고 한다. 즉 가로는 홀수 번호, 세로는 짝수 번호 부여가 그것이다. 이것을 안다면 내가 거주하는 순천과 여수간의 도로가 세로로 나 있으니 홀수번호가 부여된 것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메타세콰이어는 곧게 자라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빼어난 경관을 보여주는데도 한 몫 한다. 봄에는 파릇파릇 움터오는 여린 잎이 정겹고 아름다우며 여름에는 무성한 잎사귀의 풍성함이 자랑거리다. 그리고 가을에는 그 잎사귀가 일매지게 갈색으로 물들어 이국적인 풍경을 보여준다. 뿐인가. 한겨울, 초솔한 몸에 눈이라도 내리면 그 정경은 가경을 이룬다. 이렇듯 메타세콰이어는 사시사철 지루할 틈이 없이 계절의 변화를 몸으로 보여준다.
나는 고향의 메타세콰이어를 거주하는 아파트에서 늘 가늠해 본다. 지금쯤은 이곳의 나무들이 하늘을 온통 덮고 있으니 고향의 그 명품가로수도 숲의 터널을 이루고 있을 것이다. 이맘때 여행객들이 찾는다면 환호를 하지 않을까.
보성은 녹차가 있어 누구나 싱싱한 푸름을 연상하는데 거기에 더하여 이 메타세콰이어 길이 조성되어 있으니 더욱 더 푸른 고장으로 알려지지 않을까 한다. 그것을 생각하면 안선생의 뜨거운 고향사랑이 여간 고맙고 감사한 일이 아니다.
엊그제는 매월 보내오는 보성 소식지에 바로 이 미력면 메타세콰이어 길이 표지그림으로 실렸다. 한번쯤 와서 드라이브를 해보라는 초대장으로 보여서 반갑고 흐뭇했다. 나는 이 사진을 보면서도 이 길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생각하며 그의 따뜻한 마음을 다시금 되새겼다. (2021)
첫댓글 보성에 명물 가로수길이 있었군요
담양의 메타세코이어만 생각했는데 보성의 메타세코이어도 대단할 것 같아요. 선생님 댁 주변의 메타세코이어도 운치가 있고 작은 쉼터로서 손색이 없어보였어요
워낙 속성수라서 금세 거목이 되는데 도심의 메타새커이어 가로수들은 매년 큰 수난을 겪고 있어 보기조차 민망하지요
조성해 놓은 거리로 보아서 가장 긴 구간의 메타세콰이어 가로수인데, 많이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아마 그것을 안다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갈수록 명소가 될 것임을 확신합니다.
고향길에 안병식주무관의 숨은 공로가 있었네요.
고향을 위해 정말 큰일 하셨습니다.
고향 메타쉐쿼이어길이 지금은 명소가 되었습니다.
댓글 달아주시니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