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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상 글 >
말을 위한 기도
글 : 이 클라우디아 (해인) 수녀
<성 베네딕도 수녀회>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수없이 뿌려 놓은 말의 씨들이
어디서 어떻게 열매를 맺었을까...
조용히 헤아려 볼 때가 있습니다.
무심코 뿌린 말의 씨라도
그 어디선가 뿌리를 내렸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왠지 두렵습니다
더러는 허공으로 사라지고, 더러는 다른 이의 가슴 속에서
좋은 열매를 또는 언짢은 열매를 맺기도 했을 언어의 나무
매일매일 돌처럼 차고 단단한 결심을 해도
슬기로운 말의 주인 되기는 얼마나 어려운지...
날마다 내가 말을 하고 살도록 허락하신 주여!
하나의 말을 잘 탄생시키기 위하여
먼저 잘 침묵하는 지혜를 깨치게 하소서.
참으로 아름다운 언 어의 집을 짓기 위해 언제나 기도하는 마음으로 도를 닦는 마음으로 말을 하게 하소서 내가 이웃에게 말을 할 때에는 하찮은 농담이라도 함부로 지껄이지 않게 도와주시어 좀 더 겸허하고, 좀 더 인내롭고, 좀 더 분별있는 사랑의 말을 하게 하소서 내가 어려서부터 말로 저지른 모든 잘못, 특히 사랑을 거스른 비방과 오해의 말들을 경솔한 속단과 편견과 위선의 말들을 주여 용서하소서... 나날이 새로운 마음, 깨어 있는 마음,
그리고 감사한 마음으로 내 언어의 집을 짓게 하시어 해처럼 환히 빛나는 삶을, 노래처럼 즐거운 삶을 당신의 은총 속에 이어가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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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B 영적지도신부 훈화 >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의 하느님 인식(認識) <제5부 : 최종>
윤 클레멘트(양호) 신부님
<전주교구청 사무처장>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우리 인간은 또한 하느님과의 온전히 친교를 살라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가타리나에게 있어서 이 온전함은 상호적입니다. 즉, 우리는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는데, 하느님께서 예수님 안에서 사람이 되셨을 때에 하느님은 또한 우리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다음은 하느님과 가타리나의 대화입니다.
하느님 : 생각하라. 나는 너에게 나의 모상과 닮음을 선물로 주었으니... 그런데 죄로 인하여 너희가 은총의 선물을 잃었을 때 나는 너희의 인간성 안에 숨어 너희와 나의 본성이 하나 되었다. 내가 나의 모상으로 너희를 창조했는데, 이제 나는 한 인간의 모습으로 사람이 되기 위하여 너희의 모습을 내가 취한다. 그러므로 이제 나는 너와 하나인데, 만일 어느 영혼이 죽을죄로 인하여 나를 떠난다면 그때는 예외가 된다. 하지만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내 안에 살고 나도 또한 그들 안에 산다.
가타리나 : 오 사랑이시어, 우리는 당신의 모상으로 만들어졌나이다. 그리고 당신은 우리 인간의 모습을 취하심으로써 우리와 하나 되셨나이다. 당신은 우리 인간의 모습을 가지심으로써, 당신의 영원한 신성을 아담의 비참한 구름과 불쌍한 인간성 안에 감추셨나이다. 그것은 오로지 당신의 사랑 때문이옵니다. 하느님이 인간이 되시고 우리는 신성으로 만들어졌나이다.
오로지 하나 사랑만으로, 하느님께서는 하느님이신 “모든 것”과 인간인 “아무 것도 아님” 사이에 (Toda / Nada : 십자가의 성 요한 - 1542~1591) 다리를 지으셨습니다. 우리는 신성과 인간성을 함께 지닌 하느님을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타리나는 하느님과의 매우 가까운 친교를 이루었습니다. 하느님이 그녀에게 말하십니다. “너희를 위하여 나의 아들은 너희에게 신적인 본성으로 참여하게 하였으니, 곧 나의 힘. 나의 아들의 지혜. 거룩한 성령의 자비이니 - 나의 모든 것이신 하느님은 삼위의 심연에서 너희의 인간 본성과 하나가 되었단다 ...”
우리 교회 전통은 우리 존재가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다고 믿고 가르쳐 왔는데, 죄가 그 모상을 파괴할 수 없는 힘이 있고 영원까지 이르게 합니다. 파괴적인 죄의 본성이 결코 우리 존재의 심연에 있는 신성과 하느님 사랑의 불꽃을 덮을 수는 없습니다. 창조와 육화는 우리의 인간성과 모든 피조물에 영향을 주고, 어떤 거룩함으로 우리 인간 존재성의 현실을 변할 수 있게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전통 안에서 신학자들은 하느님의 모상을 남성적인 상으로 그려왔습니다.
한편 우리는 하느님의 강한 여성상을 그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녀 가타리나는 자신의 타고난 권리를 하느님의 사랑 받는 피조물로 확신했습니다.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 우리는 사랑 받고 용서받으며, 섭리의 돌봄을 받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확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인간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하느님의 모상으로 태어난 존재들로서, 진리를 알고 사랑하며 진리와 함께 살기 위하여 태어났다 ...’
오, 위대하시고 사랑이신 하느님, 저로 하여금 당신의 모상 안에서 쉬고 당신의 모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나의 지친 마음과 영혼을 일으켜 부드럽게 하시며 그리스도 안에서 제가 살게 하소서. 저로 하여금 또한 다른 이들 안에서 당신의 모상을 발견할 수 있게 하시고, 다른 이들을 사랑하는 사람들로 대할 수 있게 하시며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을 받아들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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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3주일
2014. 9. 7
마태오 18, 15 ~ 20
♠ 복음 연구
* 15절 : 형제나 자매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무조건 덮어주거나 반대로 들추어내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배려의 마음을 가지고 먼저 둘 만 있는 자리에서 타이르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을 알려주신다.
* 16절 : 둘이나 세 사람의 증언을 들어 확정하는 것은 당시의 증언형태를 보여 주고 있다. 이는 편견에 기울지 않고 올바르고 지혜롭게 판결하는 행동으로 형제나 자매의 잘못을 개인적인 감정에 얽매임 없이 올바르게 바로잡아주어야 하는 것이다.
* 17-18절 : 공동체는 잘못한 형제나 자매를 받아 안아 들 일 수 도 있고 내보낼 수도 있는 권한을 가졌다. 둘이나 셋이 모여 이야기를 해도 듣지 않거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고치지 않으면 교회에 알리고, 교회의 말조차 듣지 않으면, 이방인이나 세리처럼 여기라는 말씀은 당시 이스라엘민족은 세리나 이방인들과는 말조차 건네지 않았던 것이다. 죄를 짓는 것은 그만큼 큰일인 것이다. 또한 18절의 말씀은 사제의 고해성사 권한을 의미하기도 한다.
* 19-20절 : 공동체의 기도는 개인적인 바람보다 많은 이들을 위한 기도이다. 둘이나 세 사람이 마음을 모은다는 것도 공동이익을 위한 것이 될 것이고, 두 세 사람 안에 예수님이 계시다는 말씀은 공동선을 지향할 때 주님이 함께 해주신다는 말씀이며, 이런 기도는 하느님께서 무엇이든 다 들어 주신다는 것이다. 공동체의 기도에 하느님의 축복이 그만큼 크게 있다는 것이다.
♠ 복음 요약 : 형제자매가 죄를 지으면 공동체는 그들을 올 바르게 인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처음엔 드러나지 않게 단 둘이 해결을 하고 그렇게 해도 듣지 않을 땐, 두 세 사람이 나서야 하며, 그래도 듣지 않으면 교회가 나서서 하느님의 품안으로 돌아오도록 이끌어야한다.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해보고, 그래도 안 될 때는 세리나 이방인 취급을 하라고 하신다. 형제가 죄를 지으면 끝없이 용서하라는 말씀과 함께 형제나 자매의 죄를 공동체가 합심해서 회심하도록 온갖 노력을 다 하라는 말씀이 여기에 내포되어 있다.
♠ 대화 방향 : ① 나에게 형제, 자매가 잘못했을 때 어떻게 잘못을 깨닫게 하는지 돌아보고 나누어봅시다.
② 혼자서 해결할 수 없었던 일을 공동체를 통해서 해결한 일이 있었는지 서로 나누어 봅시다.
♠ 참고 문헌 : ▪ 영적독서를 위한 마태오복음 (성요셉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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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십자가 현양 축일
2014. 9. 14
요한 3, 13 ~ 17
♠ 복음 연구
* 13절 : 예수님은 이 세상에 와서 머물며 구원을 실현하고 들어 올려지고 전에 계셨던 하늘로 올라가서, 영광을 입으시는 인자이다. 예수님만이 천상에 계시는 하느님을 뵙고 그분의 생명을 사람들에게 베푸실 수 있다.
* 14-15절 : 지상에 와서 복음을 선포하다가 다시 하늘로 올라가시는 인자이신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은 누구나 그리스도인으로 재생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린다. 예수님이 들어올려지시는 과정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고, 승천하여 하느님의 영광을 입으시는 것이다. 예수님이 들어 올려진 목적은 그 분을 믿고 따르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 생명은 하느님과 영원히 함께 사는 것이고, 예수님과 맺는 관계 안에서 창조되며, 부활하신 그분이 주시는 영을 통해 베풀어진다. 그분의 영은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이들에게 영원한 생명의 샘이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승리의 월계관을 쓰고 하느님 옆으로 들어올려지셨다. 십자가는 전 인류를 위한 구원의 상징이다.
* 16-17절 :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강생, 죽음과 부활은 전 인류의 구원을 위한 신비이다. 하느님은 당신을 저버린 인간세계를 극진히 사랑하여 당신의 유일한 아들을 내어주셨다. 이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모든 사람이 멸망하지 않고 구원받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도록 하기 위함이다..
♠ 복음 요약 : 구약의 모세 시절, 죄를 범하여 뱀에 물린 사람들이 하느님의 자비로운 지시로 높이 들린 구리뱀을 쳐다보고 나은 적이 있다. 예수님도 높이 들려야 한다. 즉, 십자가에 높이 달리시고 부활과 승천으로 영광을 받으시며 높이 들려야 한다. 쳐다보고 믿는 사람들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다. 그리스도를 쳐다보는 것이 곧 구원이다. 하느님이 주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은 하느님이 보내신 외아들을 믿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은 세상을 단죄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죄로 말미암아 하느님과 단절되었던 세상을 다시 살리시려는 것이었다.
♠ 대화 방향 : ① 베드로 사도가 물에 빠졌을 때 그리고 주님을 배반한 후 다시 주님을 바라보고 베드로는 생명을 얻었다. 신앙인은 누구를 보며 살아가는 사람인지 생각해 봅시다.
② 하느님은 죄의 지배를 받는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당신 아들 예수님을 보내주셨다. 그런데도 하느님을 구세주로 믿고 따르지 않으며 심판자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반성해 봅시다.
♠ 참고 문헌 : ▪ 말씀의 등불 (가톨릭 신문사) ▪ 말씀의 두레박 (생활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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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5주일
2014. 9. 21
마태오 20, 1 ~ 19
♠ 복음 연구
* 1-7절 : 포도밭 주인은 이른 아침, 오전 아홉 시, 열두 시, 오후 세 시 그리고 다섯 시까지도 장터에 나가 포도원에서 일할 일꾼들과 계약하고, 이들을 포도밭으로 데려온다. 오후 다섯 시까지도 일꾼들을 데려왔다는 것은 이 수확이 매우 다급한 때였음을 설명해 준다.
* 8-12절 : 마침내 해가 져 일이 마무리되고 임금을 지급할 시간에 주인은 맨 나중에 온 이들부터 차례대로 품삯을 지급한다. 먼저 한 시간 동안 일한 이들에게 하루의 품삯이라 할 수 있는 한 데나리온을 지급하고, 아침부터 온종일 뙤약볕 아래서 일한 이들에게도 똑같이 하루 품삯인 한 데나리온을 지급한다. 이에 아침부터 일한 일꾼들은 즉시 주인에게 불평을 쏟아낸다. 사실 여기에는 두 가지 불평등이 존재한다. 먼저 마지막에 온 사람들은 한 시간 일한 데 비해서 아침부터 일한 이들은 온종일 일을 했던 것이고, 다섯 시에 온 이들은 저녁 서늘한 때에 일 한 반면에 아침부터 일한 이들은 한낮 불볕더위 속에서 일해야 했다. 일반적으로 비유의 내용을 처음 접할 때면 처음부터 온 이들의 항의와 불평이 당연한 요구처럼 느껴지게 된다.
* 13-16절 : 15절에서 주인은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라고 말한다. 이 문장을 직역하면 “내가 선하다고 당신 눈이 악한 것이오?” 이다. 여기서 주인의 선함과 불평자의 악함이 분명한 대조를 이룬다. ‘악한 눈’이란 시기와 질투, 관대함의 부족을 의미한다. 잠언 22장 9절은 “어진 눈길을 지닌 이는 복을 받으리니, 제 양식을 가난한 이에게 나누어 주기 때문이다.” 라고 가르친다. 맨 먼저 온 이들과 주인 사이의 올바른 관계가 깨어진 것은 그들이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고 질투하면서부터이다. 그들은 더 많이 일했으므로 더 많이 받는 것이 정의라고 생각했다. 그들의 정의는 철저히 자기중심적이다. 그들의 정의에 따르면 자신의 이익을 가난한 다른 이들에게 주어서는 안 될 것이었다. 그들의 정의는 사실 자신의 질투에 대한 포장에 불과했다. 그들의 정의는 관대함을 제한하는 무기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주인이 생각한 정의는 달랐다. 주인은 장터에 나가 하는 일 없이 서 있는 일용 노동자를 고용한다. 주인은 장터에서 고용되지 못한 이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생존의 기회를 주는 자비로운 사람이다. 맨 나중에 고용된 사람은 하루 품삯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일몰이 다가오는 오후 다섯 시에도 고용되지 못해 노동자와 그 가족의 생계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주인은 그를 고용하고 한 데나리온을 준다. 주인은 선하다. 그는 가난한 이를 배려한다. 마지막 사람에게도 하루 양식을 보장한다.
♠ 복음 요약 : 이 비유의 직접적인 대상은 제자들이었다. 포도밭 주인께서는 그리스도이시며 하늘과 땅은 그분의 집이나 다름없다. 당시 바리사이들은 수많은 율법 규정들을 만들어 놓고, 그 규정을 지켜야만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가르쳤다. 자신들은 율법 규정을 지켰기에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구원받은 첫째의 사람들이고, 직업 자체가 율법에 어긋나거나 지킬 수 없는 사람들 또 율법규정을 어기는 사람들을 꼴찌로 여겼던 이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정의와 공정을 뛰어넘는 하느님의 자비를 강조하시고 계신 것이다. 자신의 공로나 자격 때문에 주어지는 하느님 나라가 아니라, 하느님의 넘치는 호의와 사랑 안에서 초대받는 하느님 나라! 그 크나큰 사랑과 자비 안에 이루어지는 하느님 나라의 초대에 응답할 수 있는 삶으로 연결해보자. 그것은 우선 마음을 맑게 하는 것이다. 질투와 자기중심적인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말부터 다르다. 긍정과 부드러움이다. 그리고 자애로움이 있다. 점점 자비로우신 포도밭 주인의 마음을 닮아가는 것이다. 교부들은 포도밭을 정의이고 포도밭에는 갖가지 덕이 포도나무가지처럼 늘어져 있으며, 친절함, 순결, 인내, 고결함을 비롯하여 일반적으로 덕이라 불리는 무수한 좋은 자질을 말한다고 했으며, 포도밭에 불려간 일꾼들이 일을 소홀히 한다면 그는 품삯을 못 받을 뿐만 아니라, 포도밭을 가꾸지 않아 생긴 손실에 대한 책임까지 지게 될 것이다.‘ 라고 해석했다.
♠ 대화 방향 : ① 선한 포도밭 주인의 마음을 닮아가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서로 좋은 방법에 대해 마음을 나눠보자.
② 내 안에 남아 있는 질투심과 불평을 없애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 참고 문헌 : ▪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 ( 최강희 신부 / 평화신문 )
▪ 샬롬과 살림의 성경읽기 (송창현 신부 / 대구가톨릭 대학교수)
▪ 교부들의 성경 주해 (오리게네스 / 분도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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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6주일
2014. 9. 28
마태오21, 28 ~ 32
♠ 복음 연구
** 마르코 복음에서는 권한에 대한 질문 다음에 바로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가 나오는데 마태오는 두 기사 사이에 두 아들의 비유를 삽입시키고 혼인잔치를 첨가하여 세 개의 비유를 구성하고 있다.
이 세 비유는 하느님나라가 왜 유다교 종교지도자들이 아니고 세리나 창녀들인지를 거듭 밝힌다. 또한 “아들”이 등장한다는 공통점이 있고, 앞의 두 비유에는모두 “포도밭과” “너희”의 표현이 등장한다. 여기서 너희는(21.43) 하느님 나라를 빼앗기는 주체인 수석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로 그들의 교만과 위선을 밝히기 위해 두 아들의 비유를 삽입했다. 때는 성주간 화요일이다. 유다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붙잡을 모의를 도모하고 구체적인 행동에 나선다. 두 아들의 모습은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다. 바꾸어야 할 인식을 가져본다.
☞ 두 아들의 비유 (하느님나라의 요구된 응답)
* 28-30절 : 마태오는 병행법을 자주 사용한다. 아버지의 말과 아들의 반응이 되풀이 되면서 대비된다. 맏아들은 아버지의 요청에 자신의 싫은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했지만, 아버지의 말씀이 뇌리에 맴돌고 생각을 거듭하면서 마음을 바꾸어 행동에 옮겼고, 둘째 아들은 아버지 앞에서 속마음을 감추고 일하러 간다는 대답을 하는 것이 자기에게 쉽고 편안하고 유리하다는 생각에서 대답했지만 실제로 일한다는 것은 힘들고 피곤한 일이다. 아버지의 뜻은 안중에도 없다. 권위가 확고한 사회에서 아들이 아버지의 말씀에 면전에서 거절하기는 쉽지 않은 일로 작은 아들의 반응은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다. 예수님은 유다 지도자들을 이 둘째 아들에 비유하고 있다. 그들은 하느님 아버지께 “예”라고 대답하는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아버지의 뜻대로 하지 않는다. 두 아들의 비유에서 여러 번 나오는 “아버지”라는 표현을 직역하면 작은 아들의 응답에서만 “주님” (키리오스)이다. 아버지의 권한에 절대 복종하겠다는 의미도 있지만, 아버지의 아들로 살지 못하고 규율에 얽매어 종처럼 살고 있음을 시사한다.
* 31절 :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다.” 종교적 상식, 기존의 가치관을 뒤엎는 말씀이다. 그 당시 세리들은 자국민들에게 세금을 과다하게 걷어 로마인들에게 바치고 부정 축제하는 직종에 종사했으며, 창녀들은 로마군인들에게 향락을 제공하면서 로마 식민지 세력과 친밀한 관계에 있어 유다인들이 가장 싫어하고 부도덕한 최인으로 취급하는 계층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똑같은 회개의 부르심을 들었으며, 참된 길이 열려있었다. “요한의 설교를 듣고 그의 세례를 받은 백성은 세리들까지도 포함하여 모두 하느님께서 의로우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지 않은 바리사이들과 율법교사들은 자기들을 위한 하느님의 뜻을 물리쳤다.” (루카 7.29-30)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들은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자기들을 위한 표징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부르심을 듣기는 했지만 실생활에 적용안한 점에서 비유의 둘째 아들과 동일시하여 이스라엘 종교 지도자들보다 먼저 하늘나라로 들어간다고 공개석상에서 선포하셨으니 그 파장이 대단했을 것이다. 비유는 현실에 어떻게 적용 시키냐에 따라 큰 영향을 미친다.
* 32절 : 요한은 올바른 길을 이미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셨다. 그러나 수석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은 '왜 세례자 요한을 믿지 않느냐는 추궁을 피해보려고 모르겠다.' 라는 답변으로 회피했지만, 예수님은 두 아들의 비유로 유사한 상황을 설정하여 세리나 청녀들은 받아들였지만, 그들은 요한을 믿지 않았다고 공개적으로 면박한다.
♠ 복음 요약 : 흔히 사람들은 곁과 속이 다른 이중적 요소가 있다고 한다. 두 아들의 바유에서 사람의 이중적 면모를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다. 이중적 마음은 하느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이후 줄곧 문제가 되어 온 핵심이다. 사람이 바른 인생길을 산다는 것은 상반되는 두 아들 사이에 선택의 결과를 보여준다. 아버지는 두 아들에게 포도밭에 가서 일하라고 말씀 하신다. 맏아들은 처음에 거절했지만 마음을 바꾸어 실제로 행동했고, 둘째 아들은 가겠다고 대답 만 하고 하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했느냐? 너는 어느 아들에 속한지 묻고 계신다. 바리사이 율법학자들과 백성의 원로들을 둘째 아들로 비유하며 그들은 자기들이 잘 살고 있다는 우월감을 가지고 무엇이든지“예”하고 대답하는 것처럼 보여 적당히 대처하는 사람들이다. 반면에 사회에서 손가락질 받는 세리나 창녀들은 마음을 바꾸는데 왜 경건하다고 자처하는 너희들은 바꾸지 않느냐고 견책하신다. 회개하도록 일깨우면서 믿음과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도록 촉구하고 계신다. “나더러 ‘주님, 주님’ 하고 부른다고 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 (7.21) 라고 예수님께서 교훈을 하고 계신다.
♠ 대화 방향 :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질문할 필요가 있다. 예수님이 이 이야기를 누구에게 말하고 있을까? 이 이야기가 나오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예수님은 바리사이와 지도자들을 둘째 아들과 동일시하는데 왜 그럴까? 그리고 공통점은? 복음에서 아버지의 말을 들은 척 하면서 실행하지 않은 것은 아버지를 무시하는 마음이다. 율법학자나 바리사이들은 세례자 요한을 과소평가하여 자신들만이 바르다는 우월감, 이런 사람은 행동은 적고 요구가 많다. 남들이 올려주지 않으면 스스로 올라서고 타인을 지배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한다. 여기에는 다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이제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마음을 바꾸어야 한다. 바꾸어야 은총이 함께 한다.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야할지 성찰하면서 도움의 은총을 청하자.
♠ 참고 문헌 : ▪ 마태오복음 (이우식 지음. 바오로딸 출판사, 한남성서연구소 공동기획)
▪ 마태오복음 여정 강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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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 봉사자 월례회의 스케치 >
햇살이 따가운 8월 원곡성당에서 만남...
안산 원곡동 세르브스 팀 FB
기록원 : 권 토마 (순)
+ 찬미 예수님
오늘 하절기 비상대기조인데 ‘어떻게 대기하면서 전국모임에 참여할까’ 고민하다가 근무지에서 10시30분이 지나서 성당 쪽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약간 여유 있게 성당에 도착했고, 소리가 들리는 콘테이너 쪽으로 들어가 보니,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미 와 있었다. 서울에서 4명, 전주5명, 수원1명, 그리고 안나 수녀님과 안산식구를 더하니, 어느 덧 컨테이너가 꽉 차는 19명이 모였다.
성가 19장으로 시작하고 전국조정봉사자가 대표기도를 바친다. 전체가 서서 주일 성서를 낭독하고, 매일 미사 묵상 글을 읽은 후 몇몇이서 묵상 나눔을 갖는다.
오래 전의 서울서의 도보성지순례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친구 부모님의 장례식에 다녀온 딸이 연락이 안 되어서 느꼈던 불안한 느낌, 자녀 없는 어느 친구자매님의 이야기며, 자녀를 키우면서 겪었던 거친 파도의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들, 성서와 쌍백합을 읽으면서 내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는 죽음묵상 이야기도 있었다. 화목하지 못한 부부와 함께 사는 아이, 그리고 구박받은 그 아이의 어머니를 치유하여 화목케 하는 이야기를 통해서 주님의 부르심에 대한 의미를 깨달아가는 삶을 얘기한다.
이어서 가까운 상각의 중국집에서 식사를 하고 컨테이너로 다시 돌아오니, 원곡본당 주임신부님의 방문소식이 들어온다. 성서말씀을 율동과 함께 하면서 신부님을 맞이한다. 신부님은 장엄한 축복의 성가와 정성스런 강복을 통하여 격려해주시고 가신다...
오후는 주로 8월 말 2박3일 동안 진행할 <FB연수회 프로그램>에 대해서 자세히 의논한다. 회비이며, 식사준비 3일간 일정 조율을 하고보니, 어느덧 시간은 4시를 넘어가고 있고, 5시30분 버스표를 구한 전주식구들은 먼저 가고, 서울분과 안산식구들이 남아서 이런저런 애기하다가 5시가 넘어서 서울식구들을 버스정류장까지 바래다 드리면서 오늘 일정을 종료한다. 열정적이며 헌신적인 모든 봉사자들에게 감사를 드리며, 사강수도원에서 수련회 때에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기를 기원하면서... 주님의 은총이 가득하기를 빌어본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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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원 기고 >
수녀원 봉사활동 스케치
안산 원곡성당 세르브스 팀 FB
오 스테파노 (광근)
- 7월 20일 주일 오후 -
+찬미 예수님!
매우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루하루 지내기가 무척 힘드네요. 그래도 산사람은 살아야징... 주님 은총 안에서..
저는 혼자 텃밭에 심어놓은 방울토마토 넝쿨이 너무 많이 웃자라서 대강 정리하고, 어린이집 입구 오른쪽 텃밭에 심은 여주넝쿨 정리작업을 마친 후, 마지막으로 수녀원 정자 앞 화장실 뒤 텃밭에 심은 콩을 보러 갔는데 이게 웬일...? 심어놓은 참외가 아주 주렁주렁 3나무에서 무려 어린애 머리만한 샛노란 참외가 20개도 넘게 열려 있지 뭡니까, 참외 농사 대박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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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9일 화요일 오후 -
수녀원 경당 제대 ( 카페트 및 기타 ) 공사를 했습니다.
기존 카페트가 오래되어 뜯어내고 새로 교체 작업 등... 회원님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더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더위 드시지 않도록 하시고,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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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2일 토요일 오후 -
지난 토요일 8월 2일 그렇게도 더운 날씨(?)속에서도 수녀원 어린이집과 경당 건물 1층 거실에 에어컨을 달아드리고 왔습니다. 지난 번 사강성당 신부님께서 방문하셔서 어린이 집 주방에서 식사하시면서 땀을 워낙 많이 흘리셨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딱한(?) 수녀원 사정을 헤아리셔서 에어컨 2대를 사주셨답니다. (새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찬바람이 빵빵하게 나옴.) 다음엔 수녀님 숙소에도 설치해 드렸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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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10일 주일 오전 -
엊그제 일요일 수녀원 어린이집 간판 부착작업하려고 안산 원곡동에서 오전 8시에 출발하였습니다. 안산 고잔성당 형제님의 회사에 들렀다가 형제님 태우고 수녀원에 도착하니, 수녀님들께서는 기도 중이셔서 감나무 밑 쓸기, 간판 부착작업, 어린이집 에어컨 콘센트 설치, 텃밭 정리하고 나니, 미카엘라 수녀님께서 7박8일 피정을 끝내고 오셨습니다. 텃밭에서 딴 옥수수랑 가지랑 방울토마토랑 수녀님들께 드리고 집으로 왔습니다.
PS : 내년엔 텃밭에 채소를 쬐끔만 심을까 합니다. 간판 테두리 작업은 덜 끝난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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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23일 토요일 오전 -
몹시도 더운 토요일, 그래도 하계연수의 원활한 진행(?)을 위하여 오전부터 수녀원 예초기 랑 원곡성당 형제님 예초기를 동원하여 예초작업을 진행하였습니다. 안산 고잔성당과 안산원곡성당에서 한 분씩 오셔서 풀을 깎고 저는 깎은 풀을 정리하였습니다. 워낙 풀들이 많이 자란 터라 휴식시간도 별로 없이 작업을 강행하였습니다. 정신없이 예초작업을 끝내고 정리작업을 하던 도중, 창고 앞 벌집을 건드려 벌에 쏘여 액땜 좀 했습니다. (주사 맞고 약 먹고...) 다음 날은 넉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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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원 기고 >
전주지구 월례미사 및 혼배예식
전주지구 말씀 봉사자
이 보니파시아 (정혁)
“그는 올바름을 승리로 이끌 때까지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연기나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니, 민족들이 그의 이름에 희망을 걸리라” <마태 12,14-21>
7월 19일 10시 30분에 지도 신부이신 윤 클레멘트(양호) 신부님의 집전으로 전주지구 월례미사가 거행되었고, 월례미사 중에 신랑 이 에로니모(현희) 형제님과 신부 오 아녜스(정선) 자매님의 ‘혼배예식’이 있었습니다. 회원들이 축하객이 되었고, 이미 결혼했던 축하객들은 ‘혼인갱신’을 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아녜스 자매님의 아버지인 오 아우구스티노(정석) 형제님은 윤 클레멘트(양호) 신부님의 군종시절에 맺은 인연으로 이러한 축복의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그 당시, 딸인 아녜스 자매님은 7살 때였으며 지금은 어느 덧 25년이 흘렀습니다.
또한 지난 2007년 11월 10일, 윤 신부님과 F.B.회원 4명과 함께 양평을 방문하였는데, ‘시간의 텀’은 ‘축복의 인연’으로 이어졌습니다.
신부 아녜스 자매님의 부모님 역할을 윤 신부님과 FB회원들이 하게 된 셈이네요. 아녜스 자매님의 감격의 눈물에 우리는 하느님 사랑에 젖어들었습니다. 윤 신부님께서는 서로의 손을 잡아주면서 격려하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주님! 주님 안에서 새로운 삶을 출발하는 이 부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고 축복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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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B 재정 회계 보고 >
☧ 매월 FB본부로 보내주시는 의연금은 본당별로 보내지 말고, 각 팀별로 회계 정산하시어, 금액이 크든 적든 매월매월 꾸준히 보내주셔야 합니다...
✟ 2014년 7월 1일 ~ 31일 수입 지출 내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