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쨍그랑!’
다급히 부엌으로 달려가니 이번에는 부부 잔 중 하나가 박살이 났다. 하필이면 손잡이 부분이 보기도 살벌하게 금이 갔다. 벌써 두 개나 이가 나간 접시와 함께 현관 앞 화분위에 보기 좋게 진열해 둔다. 무언의 경고다. 퇴직한지 5년차인 남편의 살림솜씨 결과물은 가끔 내속을 헤집는다. 뭣 하러 고무장감을 끼냐고 쏘아 붙이고 싶지만 참는다. 부작용이 무섭기 때문이다. 그가 부엌일에 손을 놓으면 나만 손해인 건 두말 할 나위도 없다. 매사에 신중 철저한 그도 이제 손 매무새에 탈이 난 모양이다.
남편은 뭣 하러 귀한 접시를 써 먹느냐고 한다. 허드레를 쓰면 설거지도 편하고 맘도 편할 거라고 거든다. 나는 눈이 더 흐려지기 전에 고급접시에 담아서 먹자고 우긴다. 눈이 나빠지고 감성도 무디어 지면 예쁜 접시가 무슨 소용이 있겠냐고 설명이 길다. 결과는 주부인 나의 승리로 끝났지만 하나씩 깨어져 나가니 속이 쓰리다.
친정 부모님이 저 세상으로 가시기 두어해 전 나는 엄마의 그릇 들을 신 칼라로 바꾸어 드렸다. 엄마는 늘
‘나는 헌 사람이니 헌 거 쓸게. 너희는 새사람 새 것들을 써라’고 하셨다.
심성이 착한 손위 올케는 그 말씀을 액면 그대로 믿고 잡동사니를 엄마에게 가져다 드렸다. 시누이 심보를 안고 사는 나는 내심 속이 아렸다. 타올 ․ 이불에다가 내의까지 엄마는 새것을 모조리 내 놓으셨다. 당신이 죽으면 모두 꺼리게 될 거라는 이유였다. 집안에 수건이 넘쳐 난다고 해도 가져가서 이웃에게 나누어 주더라도 새사람인 자식들이 새 물건들을 가져가라고 어깃장을 놓으셨다.
큰 부침 없이 두 분이 한 해 건너 한 분씩 이 세상 소풍을 끝내셨다. 처음에는 황당하여 눈물이 마를 날이 없더니 요즘은 매순간 그분들의 타이름이 떠올라 두 분의 말씀 속에 살아가는 듯하다.
엄마가 새댁이던 시절 오촌아재는 양친을 여의고 우리 집에 얹혀살았다 했다. 주로 나무를 해다 날랐는데 점심을 먹고 나면 울타리 밑에 던져둔 엄마살림 솜씨의 부산물을 들고 와서 할머니께
“맏어매 이거 보소. 참으로 아깝지 않소?”
하고는 깨어진 사발의 아귀를 맞추었다고 한다. 그 모습이 거의 매일 재현되고 할머니는 그 때마다 엄마 실수를 되짚으며 역정을 내셨단다.
수없이 되풀이 하시는 그 말씀이 싫어서 나는 대 놓고 백번도 더 들었다고 엄마 말을 가로막았었다.
엄마가 듣고 싶은 말은
‘그 험한 시집살이 견뎌내고 우리 잘 키워 주셔서 고맙습니다’란 걸 그때는 왜 몰랐을까?
엄마는 자식들이 부모에게 꼭 듣고 싶다는 말
‘미안하다’를 몇 번이나 뇌이고 가셨는데 말이다.
꿈속에서라도 엄마를 만나면
‘그 어린 나이에 철부지 아버지와 혼인해서 큰살림 해 낸다고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라고 백번이고 천 번이고 해 드리고 싶다.
이순이 넘고 보니 자꾸 부모님입장이 이해가 된다.
나이 듦의 부작용일까? 철듦의 작용일까?
웃자고 쟁겨 두었던 금 간 접시를 오늘은 분리수거를 해야겠다.
깨어진 접시 눈금 사이로 주름진 엄마 모습이 자꾸 오버랩 된다.
‘진심으로 고마웠습니다. 참말로 수고 많으셨습니다. 엄마!’
두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남편을 향해 씩 웃는다. 저 남자는 모르리라. 부작용과 작용의 의미를.
첫댓글 부작용과 작용의 의미를 나도
잘 모르겠는데요. ㅎ
우리 집 사람은
영 구식이라 그런지 희안한
살림을 한답니다.
그릇도 비싸고 좋은건 차곡차곡
쟁여두고 그냥 편안것만 쓰고요
딸애가 좋은 옷을 사주면 걸어놓고 입지않아요. 평생 편안한것만 쓰고 입지요. 나는 반대인데 다투면 늘 지니 그려르니
합니다. 그 집은 우리집과
또 좀 다르네요. 사람 사는게
수학처럼 공식이 딱딱 적용되는게 아니니 각자형편대로 살아야지 어쩌것소. 그래서 집안 살림
얘기는 늘 재미가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우리집을 보든 듯해 감동입니다.
멋진 글입니다.
건필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