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정폭력을 피해 별거 중이던 아내가 남편에게 살해된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고 당시 피해자에 대한 '접근금지' 명령이 가해자에게 내려진 상태였지만 범죄를 막을 수 없었다.
가해자는 접근금지 명령을 어기고 피해자에게 접근했고 피해자에게 지급되는 스마트워치는 위급 상황에서 피해자가 직접 버튼을 눌러야만 신고가 가능한데다 신고가 돼도 경찰이 출동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다보니 피해자를 보호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이런 공백을 막기 위해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가정폭력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에게 위치추적 장치를 착용하게 하는 걸 의무화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이와 관련 국회에서 법안이 발의됐지만 여전히 심사 단계에 머물고 있다.
현행법상 우리나라의 가정폭력은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으면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 조항이 유지되고 있다.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 여부를 결정하도록 만드는 이 제도는 법적, 현실적으로 심각한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가해자는 처벌을 면하기 위해 피해자에게 집요하게 합의를 종용하거나 협박하기도 하며 이 과정에서 2차 가해나 더 큰 보복 폭력으로 이어지기도한다.가해자나 그 가족들이 합의를 요구하며 피해자를 찾아오거나 연락하는 행위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어렵고 가정폭력 피해자는 가해자와 경제적, 심리적으로 얽혀 있다보니 가해자가 가정의 경제권을 쥐고 있거나 가스라이팅을 일삼는 경우 피해자는 처벌을 원하면서도 현실적인 두려움이나 보복의 공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처벌불원이라는 선택을 하게 된다.이는 마치 피해자의 자발적 의사로 포장되기도 한다.
살아남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 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말이다.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한다고 말하지만 현실은 ’피해자가 처한 어려운 상황‘을 가해자들이 악용하고 재범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고 있는 셈이다.반의사불벌죄는 가해자에게 "합의만 하면 처벌받지 않는다"는 학습 효과를 주어 가정폭력이 중대한 범죄라는 인식을 마비시키는 모순적인 결과를 낳고 있다.국가는 형식적인 '합의' 뒤에 숨은 피해자의 공포와 두려움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미국,영국,독일 등 주요 선진국은 가정폭력 사건에 반의사불벌죄를 적용하지 않으며 피해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국가가 개입해 강제 기소하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이는 가정폭력을 단순히 개인·가족 간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범죄이자 공공의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로 보기 때문이다.미국이나 영국은 가정폭력에 대해 강력한 국가 개입 주의를 채택해 왔다.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분리를 최우선으로 두고 경찰은 현장 검거 단계에서부터 가해자 체포를 원칙으로 하며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더라도 가해자를 즉각 분리한다.독일, 프랑스 등의 국가들도 '가정 내 폭력'에 대해 국가가 직권으로 수사하고 처벌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이는 가정폭력의 반복성과 위험성을 고려하여 피해자의 안전 확보 및 범죄에 대한 엄벌주의로 법이 집행되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앞서 이러한 국가들이 가정폭력 범죄에 대해 이처럼 강경한 태도를 취하는 이유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말하는 배경에는 가해자의 보복에 대한 두려움 등 여러 요인이 작동하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며 가정폭력 사건에서 반의사불벌죄가 지닌 구조적 모순을 일찍이 깨달았기 때문이다.반면 가정폭력 사건에서 반의사불벌죄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국내 현 제도는 국가가 가정폭력을 심각한 사회적 범죄가 아닌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하며 책임을 피해자에게 떠넘기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피해자에게 보복 범죄나 합의 강요 등의 위험을 전가하고 있다는 지적에 따라 반의사불벌죄 폐지, 가해자 격리, 전자 장치 부착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피해자의 생명과 안전이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커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국가는 가정폭력 가해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뿐만 아니라 피해자를 위한 주거.경제적 자립 지원 등의 다양한 인프라를 구축하여 피해자의 살 권리와 안전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국민들의 삶이 때론 얼마나 척박하고 위태로운지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들이 지금 우리 사회에서 지켜지고 있는지 오늘 누군가 살아있음을 그저 운에 맡겨야 하는지 ...그들이 원하는 것은 거창한 정치적 이념이 아니라 소박한 하루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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