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시인 선배 중에 권오운이란 분이 있다. 나와는 나이가 열 살 넘게 차이가 지는 연장자이다. 젊은 시절 주로 잡지사에서 일하며 좋은 시를 쓰시던 분인데, 요즘 시 대신에 우리말 지킴이로 더 많이 활동한다. 시인, 소설가 들이 펴낸 책들을 꼼꼼이 따져 읽고 우리말을 잘못 쓴 용례를 찾아내 깐깐하게 지적하는 이로 소문이 났다. 요즘 들어 이 분이 쓴 새로운 시를 거의 볼 수 없는 것은 신문, 방송, 국정교과서 등에 무수한 얼룩처럼 박혀 있는 잘못 쓴 우리말을 찾아내 바르게 교정하고, 바르고 아름다운 우리말 쓰기를 실천하는데 너무 분주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우리말을 잘못 쓰고 있는 것을 지적당한 작가는 이청준, 박완서, 황석영, 김주영, 오정희, 이윤기, 조정래, 윤후명, 강석경, 하성란, 공선옥, 공지영, 은희경, 신경숙, 배수아, 정영문, 한창훈, 김영하..... 등 내로라 하는 작가들이다. 예를 들어보자. “현관문이 열리자 차가운 황소바람이 그들의 벗은 몸에 가 닿을 때까지도.....”(김영하) 황소바람은 좁은 구멍으로 세게 불어드는 바람을 가리킨다. 현관문 같이 넓은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은 황소바람이 아니다. “창밖 허공으로 손돌바람이 비닐봉지를 띄우며 장난질을 쳐대자 겨울하늘이 얼굴을 찌푸렸다. 그 아래로 초이월의 눈발이 조심조심 날리고......”(김형수) 손돌바람은 음력 10월 20일께쯤 부는 몹시 매섭고 추운 바람이다. 이 무렵의 매운 추위를 손돌이 추위라고도 한다. 임금을 태운 배의 사공이 손돌이라는 사람이었는데, 풍파를 피해 다른 뱃길로 갈 것을 제안했다가 의심을 받아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그 뒤로 10월 20일경 무렵이면 그 원한으로 바람이 불고 날이 추워진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초이월에 부는 바람에 시월 바람의 이름을 갖다 붙였으니 틀린 것이다. 음력 2월을 영등달이라고 하니 그때 부는 바람이라면 영등바람이 맞다. 작가들이 쓴 문학작품들만 아니다. 국정교과서를 꼼꼼하게 뒤적여 우리말을 잘못 쓴 무수한 예들을 지적해낸다. 초등학생과 중고등학생들이 보는 국정교과서에 그토록 많은 실수와 오류들이 버젓하게 올라와 있다는 걸 알면 정말 경악할 수밖에 없다. 아울러 이 분이 우리말을 잘 쓰고 있나 잘못 쓰고 있나 하고 눈을 똑바로 지켜보는 것이 텔레비전 방송이다. 케이비에스 일티브이의 요리프로그램에서 〈오늘의 요리 ― 청국장〉이라는 자막을 내보냈다. 그게 이 분의 눈에 딱 걸렸다. 청국장은 간장이나 된장, 고추장처럼 요리의 한 재료는 될 수 있을지언정 그 자체로 요리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케이비에스의 김재원 아나운서는 진행하는 프로그램 말미의 인사말로 “건강하십시오 !”라고 하는데, 이것도 도마에 올랐다. 건강하다는 말은 형용사인데, 이걸 명령형으로 쓸 수는 없다는 지적이다. 이를테면 “아름다우십시오”나 “예쁘시오”가 말이 안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 말은 “부디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정도가 바르게 쓴 표현이다. 방송과 신문에서 우리말을 잘못 쓴 용례들을 늘어놓는 것은 한도 끝도 없다. 그것들의 일부가 이 분이 쓴 『알 만한 사람들이 잘못 쓰고 있는 우리말 1234가지』『우리말 지르잡기』라는 두 권의 책에 담겨 있다. 두루뭉술하게 우리가 잘못 쓰고 있는 우리말은 부지기수다. 우리말을 알 만한 사람들이 잘못 쓰고 있는 걸 보면 이 분은 참지 못한다. 가차없이 죽비를 내리친다. 이 분이 쓴 두 권의 책엔 이름을 알 만한 작가, 언론, 방송인들을 향해 내려치는 매운 죽비소리들로 시끄럽기 짝이 없다.
첫댓글 우리말....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들면서.... 오늘 몇가지 배워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