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2013년 다해 4월15일 부활 제3주간 월요일
[청주] 영원한 생명의 양식 -
청주 교구 감곡 매괴 성모 성당 반 영억 라파엘신부
† 독서 : 사도 6, 8 - 15
† 복음 : 요한 6, 22 - 29
★ 스테파노는 큰 이적과 표징들을 일으키며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하였다. 유다인들이 그와 논쟁을 벌여도 지혜와 성령이 충만한
그를 대항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들은 스테파노를 없애려고
사람들을 선동한다(제1독서).
★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신 그다음 날, 군중은 호수
건너편에서 카파르나움까지 예수님을 찾아왔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썩어 없어질 양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는 데 힘쓰라고 가르치신다(복음).
◈ 오늘의 묵상
군중이 예수님께 모여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의 의미를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에 찾아온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
하십니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이른바 ‘사추기’(思秋期)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직 공인된
말이 아니라 국어사전에도 없는 이 말은, 청소년들이 겪는
사춘기(思春期), 곧 봄을 생각하는 시기와 대비해서 중년층과
노년층이 겪게 되는 신체적, 정신적 변화의 시기를 가리킵니다.
사춘기는 신체적으로 성장하는 시기이지만, 사추기는 신체적
쇠퇴를 겪는 시기입니다. 사춘기가 갑작스러운 신체 성장으로
말미암아 이성에 대한 호기심과 설렘이 가득한 시기라면,
사추기는 자녀들이 하나하나 떠나 버리는 가운데 이웃과
형제들의 죽음마저 경험하면서 홀로 남았다는 외로움을 느끼는
시기입니다. 사춘기에는 모든 분야에서 호기심이 발동되지만,
사추기에는 상실감에 빠지기 쉽습니다.
이러한 사추기는 사람들 대부분이 경험합니다. 그러할 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썩어 없어질 양식’에 대한 깊은
통찰이 필요합니다. 그렇습니다. 영원한 것에 대한 참사랑이
없으면 썩어 없어질 양식은 그야말로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영원히 썩지 않는 것이 바탕이 될 때 썩어 없어질 양식들도 그
의미가 하나하나 살아납니다. 사추기에 대한 극복은 바로
영원하신 하느님 안에서 만족할 때 가능합니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 매일 미사 -
◈ [청주] 영원한 생명의 양식 /
반영억라파엘 감곡매괴 성모성당
2013년 다해 4월15일 부활 제3주간 월요일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 요한 6,22-29
영원한 생명의 양식
성당 주변에 소나무를 심었습니다. 잘 키워 놓은 나무를 선뜻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리를 잘 잡아 많은 이에게 아름다움을
선물해 주기를 희망합니다. 지속적인 관심과 정성이 성장을
좌우할 것입니다. 제 때에 거름도 주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선물이라도 간수하지 않으면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음식을 먹지 않으면 살지 못합니다. 단식을 한다고
해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위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영양을
보충 시켜야 합니다. 음식을 통해 영양을 섭취하지 않으면
육체를 지탱할 수가 없습니다. 40여 일 동안 단식하신 한
신부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정신이 맑아져 좋았고 물 한 컵,
주스 한 잔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게 되었는데 힘이 없어서
그야말로 맑아졌던 정신도 혼미할 때가 있었다고 합니다.
결국 사람은 무엇을 먹어야 삽니다. 작정하고 혼자 단식을
하는 것은 좋을 수도 있겠지만 일상의 일을 하면서 장기간
단식을 하는 것은 생각해 볼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사람은 밥을 먹어야 산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러나 밥을 먹는 것 보다 하느님의 말씀이
우선이라는 것입니다. 말씀 안에 모든 것이 있기 때문에 항상
말씀이 먼저 입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삽니다.”(마태4,4) 그리고
말씀을 듣고 말씀대로 행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고도 말씀대로 행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말씀을 실천하는 가운데 하느님을 만나고 구원을
얻게 됩니다. “모든 더러움과 그 넘치는 악을 다 벗어 버리고
여러분 안에 심어진 말씀을 공손히 받아들이십시오. 그
말씀에는 여러분을 구원할 힘이 있습니다.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야고1,21-22).
지상의 양식도 중요하지만 천상의 양식이 더 소중한데 그
천상의 양식을 얻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아들을 믿는 것입니다(요한6,29). 결국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신앙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동의를
통해서 완성됩니다. 하느님의 선물에 인간이 거부할 수 있으니
신앙은 하느님의 일인 동시에 인간의 일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싶어 합니다. 남들이
성경에 관해 많이 알고 통성기도를 잘 하는 것을 보면
부러워합니다. 특히 전교에 동분서주하는 개신교 신자들을
보면서 열성을 부러워하고, 말 잘하는 그들을 보며 주눅이
듭니다. 그러면서도 성경을 읽을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텔레비전 앞에 있는 시간이 훨씬 많습니다. 노력하지 않으면서
거저 얻으려는 마음이 너무 큽니다. 성경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믿는다면 왜 그 말씀을 듣기를 주저하고 실천하기를
두려워합니까? 그야말로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입니다.” 은총은 풍부하지만 인간의 협력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썩어 없어질 세상 것에는 눈이 번쩍 뜨이면서도
천상의 것인 영원한 생명에는 굼뜬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성 베르나르도는 “하느님의 위안은 다른 위로를 찾는 사람에게는
있을 수 없습니다. 진실한 것이 헛된 것과, 영신적인 것이 육신적인
것과, 최고의 것과 최저의 것과 혼동되기도 하지만 천상의 것과
지상의 것을 똑같이 맛볼 수는 없는 것입니다.”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천상의 것을 추구하십시오. 지상에 살면서도
지상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지 말고 천상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십시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의 양식인 말씀을 자주 접하고
말씀이 사람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성체를 모심으로써 신앙의
건강을 잘 지키시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감곡 매괴 성모 성당 반 영억 라파엘 신부 -
◈ [수원]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백사와 산삼의 관계
2013년 다해 4월15일 부활 제3주간 월요일
<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복음 : 요한 6,22-29
< 백사와 산삼의 관계 >
저와 함께 공부했던 한 신부가 해 준 자신의 어릴 적
이야기입니다. 고생하시는 부모님께 효도하기 위해
백사를 잡으러 산으로 올라갔다고 합니다. 백사는 예나
지금이나 부르는 게 값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백사를
잡지는 못했고 그냥 뱀 한 마리를 잡아왔습니다. 어린
마음에 그것을 흰 페인트 통에 넣어 빨래 줄에 널어
놓았다고 합니다.
밭에서 일을 하다 돌아온 아버지는 아들이 백사를
잡아왔다고 지나가던 동네 사람까지 불러 세워
자랑했습니다. 아들은 뱀을 잡느라 고단했는지 마루에서
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혀가 검은
색이더랍니다. 옆에 있던 흰 페인트 통을 보시고 상황을
파악하신 아버지는 왜 그런 짓을 했느냐고 잠자던 아이를
매우 혼냈다는 것입니다.
뱀에 흰 페인트를 칠하면 백사가 될까요? 백사는 일반적으로
산삼을 먹고 사는 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백사가
발견된 곳에는 산삼 밭도 함께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강원도
정선에서 어떤 개척교회 목사님이 산삼을 갉아먹고 있는
백사를 발견해 산삼과 백사를 동시에 얻게 되었다는 기사도
있었습니다. 산삼에 있는 성분이 뱀의 색소를 눈만 빼 놓고
다 빠져버리게 한다는 것입니다. 뱀도 몸에 좋다고 하는데
산삼을 먹은 뱀이니 얼마나 몸에 좋겠습니까? 그러나
페인트칠을 한 뱀은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겉만이 아니라
자신의 온 존재를 송두리째 변하게 하는 양식을 먹어야
내가 진정으로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당신을 찾아온 많은 이들에게 그들이 당신을
찾아온 것은 기적의 의미를 깨달아서가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빵은 육체를 배불리고 육체를
살리는 양식입니다. 그러나 영혼을 변하게 하지는 못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한 빵의 기적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 기적의 의미는 바로 광야에서 만나를 먹으며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들을 변화시켜 나갔던 것처럼, 성체와 성혈을
영하며 우리 영혼을 변화시켜야만 가나안 땅인 하느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은 모두 말씀이 어렵다며 예수님을 떠나가게 됩니다.
왜냐하면 육체에만 관심이 있었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육체가 아닌 영혼이 변해야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육체만 배불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페인트를
칠한다고 뱀이 백사가 되지 않는 것처럼 빵만 먹는다고 영혼이
변하지는 않습니다. 구원은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우리 존재가 변화되지 못한다는 것을 믿는 것에 있습니다.
남편을 빨리 죽게 하는 방법이랍니다.
첫째, 남편을 화나게 하라.
둘째, 과식하게 하라.
셋째, 과음하게 하라.
넷째, 담배를 많이 피우게 하라.
다섯째, 커피를 탈 때 설탕을 듬뿍 넣어라.
사실 우리는 무엇을 먹어야 건강에 좋고 무엇을 먹지 말아야
건강에 좋은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네
개가 다 먹는 것이지만 가장 처음 것은 영혼에 관련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남편을 빨리 죽게 만드는
방법일 것입니다.
먹는 것에 따라 그냥 뱀도 되고 귀한 백사도 됩니다. 오늘
예수님은 당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라고
하십니다. 즉 말씀과 성체를 자주 영한다는 것, 이것만이
하늘나라에 들어갈 가장 좋은 준비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 너희의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도 다 죽었지만 하늘에서 내려온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요한 6,48-50).
- 수원 교구 오산 성당 전 삼용 요셉 신부 -
◈ [인천] 썩어 없어질 양식만을 얻으려고
해외성지 순례에서는 쇼핑 할 시간이 거의 나지 않습니다.
쇼핑이 목적이 아닌 것도 있지만, 성지가 위치하는 곳이
대체적으로 시골이고 한적한 곳이다 보니 물건을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는 것이지요. 그러나 성지 순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왔어도 많은 분들이 한국과 다른 문화와 환경을 갖춘
곳에서 특별한 물건들을 구입하고 싶어 하시는 것 같더군요.
한 번은 화장실 때문에 어느 시골의 슈퍼마켓 같은 곳에서
잠시 서게 되었습니다. 그때 얼마나 많은 분들이 물건을
사셨는지 모릅니다. 우리나라 마트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것인데도 말입니다.
그때 이런 말씀들을 하십니다.
“신부님, 한국보다 절반 가격밖에 되지 않아요.”
그런데 문제는 한국보다 훨씬 쌀 수는 있지만, 지금 당장
필요한 물건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단순히 싸다는 말에
필요하지 않은데도 충동구매 식으로 구입하십니다.
언젠가는 쓰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가지고 말입니다.
하긴 저 역시도 여기에 자유롭지 않습니다. 남들 초콜릿
산다고 저 역시 초콜릿을 샀으니까요. 사실 저는 초콜릿이나
사탕 같은 단 음식을 전혀 먹지 않거든요. 그래서 바로 이 때
하는 말, “다른 사람들에게 선물하려고요.”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니 제 주변에서도 그렇게 단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없는 것 같습니다. 결국 남들 사니까 저 역시도
따라서 구입한 충동구매였습니다.
한국 보다 싼 것 같다고 구입하지만, 가장 돈을 아끼는
것은 무엇일까요? 아예 구입하지 않는 것입니다. 한국
보다 싸다고 구입해야 돈을 아끼는 것 같지만, 구입하지
않을 때 더 돈을 아낄 수 있는 법입니다. 이렇게 세상의
관점은 비교 판단하게 하여 우리가 끊임없이 물질적인
욕심을 간직하게 유혹하지요. 하지만 주님의 관점은
그렇지 않습니다. 물질적인 욕심을 내려놓고 대신 주님을
믿고 따름으로 인해 진정한 사랑의 관계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썩어 없어질 양식만을 얻으려고 힘썼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 양식만을 보려 하다 보니 정작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전혀 못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제 내게 없어도 전혀 상관없는 것들을 욕심을 가득
안고 더 이상 바라보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그보다는
내게 꼭 필요한 것을 꼭 움켜잡을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주님께 청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필요한 것은 용기가 아니라, 각오. 결정하는 순간, 모든
것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다카하시 아유무).
예수님만을 따릅시다.
예비신학생과의 만남을 하면서...
어제는 예비신학교 모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예비신학생이 제게 이런 말을 물어봅니다.
“신부님, 저는 돈을 많이 벌어서, 엄마를 행복하게 해드리고
싶어요. 그런데 신부도 되고 싶거든요. 어떻게 해야지요?”
효심 가득한 학생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
물어 보았지요.
“엄마가 돈 많이 있어야 행복하다고 하니? 그래서 너에게
지금 나가서 돈 벌어 오라고 해?”
아니라고 대답합니다. 그저 이 학생은 돈이 있어야 엄마가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돈이 많이
모여진다고 행복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원래 돈의 용도는
모으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왜 돈이
생겼을까요? 계속해서 집에 모아 놓으라고 생겼을까요?
아닙니다. 쓰라고 생긴 것이 돈입니다. 필요한 곳에 잘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 ‘돈’입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돈을 모으려고만 하고 있으며, 그래서 돈의 용도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해 행복하지 못한 것입니다.
물질적인 가치에서 행복을 찾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가치에서 행복을 찾는 것은 생각보다 쉽습니다.
그렇다면 어느 곳에서 행복을 찾겠습니까?
- 인천교구 성소국장 조명연 마태오 신부 -
◈ [수도회] 영원이라는 상표
2013년 다해 4월15일 부활 제3주간 월요일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요한 6,22-29
<영원이라는 상표>
요즘 맞벌이 부부들이 늘어나면서 어린 아이들을 맡기는
보육시설들도 많아졌습니다. 아무리 좋은 탁아 시설이라
할지라도 부모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장시간 아이를
맡기는 부모들의 심정, 무척이나 안쓰러울 것입니다.
아이들 입장에서도 마찬가지겠지요. 아무리 어린이집네서
유익하고 체계적인 교육과정, 다양한 프로그램, 기발한
장난감으로 아이들을 줄겁게 해준다 해도 젖먹이 시절부터
익숙해져온 따뜻한 부모의 품과는 비교가 안 될 것입니다.
이윽고 부모가 퇴근하는 시간, 부모의 목소리가 현관에서
들려오면, 아이의 얼굴은 부모와의 재회에 대한 기쁨으로
환해질 것입니다. 그리고는 보십시오. 아무런 미련도 없이,
가지고 있는 장난감을 아무데나 던져버리고 있는 힘을 다해
부모의 품으로 달려갈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의 많은 것들, 당장 우리 눈에 무척이나
좋아 보입니다. 우리 시선을 확 끕니다. 누구나 추구하는 높은
자리, 큰 성취, 초대박, 폭풍 인기, 부, 명예...
그러나 사실 그 모든 것, 언젠가 하느님께서 부르시면 다 내려
놓아야 할 대상들입니다. 하루 종일 보육시설에서 즐기던
어린이였지만, 부모가 돌아왔을 때 더 이상 좋을 수 없다는
얼굴로 달려가듯이, 우리 역시 재미있게 이 한 세상 살아가지만,
어느 순간 아버지께서 부르시면 모든 것 다 위로 한 채
환한 얼굴로 달려가야 할 것입니다.
구엔 반 투안 추기경님의 말씀입니다.
"영원이라는 상표를 지니고 있지 않은 것은 어떤 것이든지
가짜입니다."
"그대의 일생동안 참된 부(富)를 값싸고 겉만 번지르르한 모조품과
맞바꾸어 온 것에 대해 마지막 순간에 가서야 후회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할 것은 보다 가치있는 대상, 보다 영원한
그 무엇, 썩어 없어지지 않으며 사라지지도 않는 것, 결국
'영원한 생명', '생명의 빵'이군요.
오늘 복음에서 강조하시는 예수님의 말씀도 같은 맥락입니다.
정말 지혜로운 사람은 분별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어느 것이
더 가치있는 것인지, 어는 것이 더 내게 유익한 것인지, 어떤
것이 나를 궁극적인 행복으로 이끌것인지를 잘 식별하라고
당부하십니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이 한 세상 살아가면서 셀 수도 없이 자주 다가오는 시련과
환난 앞에 설 때마다 사도신경의 다음구절을 굳게 믿고 열심히
바치십시오. 거기에 성공하는 그리스도인의 비결이 담겨져
있습니다.
"죄의 용서와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부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 [기타] 부활 제3주간 월요일
2013년 다해 4월15일
어제는 월곡동 성당의 꾸리아 4간부 피정이 있었습니다.
본당 신부님이 저의 동창이셨습니다. 동창신부와 모처럼
차 한 잔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동창신부는
제게 용문수련장에 있으니 건강이 좋아질 거라 덕담을
하였습니다. 처음 사제가 되었을 때, 동창들과 만나면 일
이야기를 많이 하였습니다. 취미 활동 이야기도 많이
하였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술자리도 함께 하였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주로 건강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입니다.
그리고 술자리도 적당한 시간이면 마치는 편입니다.
50이 넘으면서 몸도 예전처럼 탄력이 넘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알던 수녀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수녀님께서는
병원에서 근무를 하십니다. 수녀님과 대화를 하면서 사제들에
대한 말을 함께 하였습니다. 강론을 잘 준비하시는 신부님,
영적으로 충만한 신부님, 건강관리를 잘 하시는 신부님을 보면
기쁘고, 감사하다고 하였습니다. 반면에 강론 준비를 소홀히
하는 신부님, 외로움을 사람들을 만나서 술을 마시면서 푸는
신부님, 건강관리를 잘못하셔서 병원을 찾는 신부님을 보면
안타깝다고 하였습니다. 저에게도 술 조금만 마시고, 건강관리를
잘 하시라고 애정 어린 조언을 해 주었습니다. 수녀님의
이야기가 제게는 좋은 약이 되었습니다.
산보를 가면 새롭게 문을 여는 가게들을 볼 때가 있습니다.
그런 가게는 처음에는 가격을 할인하기도 하고, 사은품을
주기도 하고, 도우미들이 나와서 노래를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할인을 하고, 사은품을 준다고 해도 가게는
물건의 질이 좋아야 합니다. 음식점은 맛이 있어야 합니다.
물건의 질이 나쁘고, 음식의 맛이 없으면 손님이 잘 찾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앙인들은 그리스도의 향기가 진하게
베어나야 합니다. 신앙인으로 살면서 세상 사람들과 별로
다른 것이 없다면 그것은 이름만 신앙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신앙인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위로와 기쁨을 전해 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아픈 사람들을
고쳐주시기도 하셨고, 물위를 걷기도 하셨고, 5000명을
배불리 먹이기도 하셨습니다. 죽은 사람을 다시 소생시키기도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기적을 보면서
예수님 곁에 많이 모였습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그와 같은 기적이 본질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는 기적을
보기 보다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보아야 한다고 하십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우리는 스테파노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스테파노는 율법과 전통이라는 강물에 떠밀려서 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희망을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았다고 말을 합니다. 강물을
거슬러 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거친 물살 때문에
힘들고, 고통스럽기도 합니다. 그러나 강물을 거슬러 올라
갈 줄 알아야 강물 속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새로운 한 주간이 시작되는 월요일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빵 만으로는 살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의 힘으로 살아야 합니다.”
-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서울] 종교의 목적은 참된 삶
먹을 걱정 안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고 세상이 좋아지지
않습니다. 필요한 것들이 더 많아지는 욕구로 언제나 재물을
쫒고 있습니다. 세상 살기에 가장 필요한 것은 우선 재물이라고
누구나 생각하지요.
종교에 관심 두는 이유도 그 중 큰 이유로 깔린 분들이 참
많습니다. 으레 종교라면 복을 비는 곳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참 많거든요. 종교의 목적은 참된 삶이 핵심인데도 경제보다
뒷전으로 밀리지요? 참!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요한 6,26)”
- 이기정 사도 요한 신부 -
◈ [기타] 삶은 매 순간 기회다
삶은 기회일 수밖에 없다. 순간마다 모든 시간은 우리에게 기회로
주어진다. 어떤 기회일까? 오늘 복음 말씀으로 기준을 잡는다면,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을 수 있는 기회와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을 수 있는 기회다.
우리는 인생에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바라보고 살았는가? 기회라는
것을 의식하고 살았는가? 의식했다면 시간을 어떤 기회로 바라보고
살았는가? 우리는 지금까지 무엇인가를 위해 살았다. 그 무엇 중에
영원한 생명은 얼마나 있을까? 성경만 읽고 기도만 하면서 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날마다 하느님을 의식하면서 살 수는 없다.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얻으려고 힘썼냐는 질문은 그분의 말씀에
따라 아름답게 살려고 주어진 기회를 얼마나 잘 사용했느냐는
질문이다. 얼마나 용서하며, 얼마나 사랑하며, 얼마나 이웃을
살리는 삶을 살았고 살고 있는지를 살펴본다면, 우리가 어떤
양식을 위해 지금까지 걸어왔는지가 분명히 보일 수밖에 없다.
뒤를 한번 돌아보았으면 한다. 그리고 지금의 내 모습을 보았으면
한다. 미래를 생각하면서 현재를 살아야 한다. 앞으로 우리에게
주어질 시간 곧, 기회는 얼마나 남았는지 모른다. 그 기회를
살리느냐 마느냐는 철저하게 자신의 몫임을 기억해야만 한다.
한없는 하느님의 관대하심과 인내심은 우리에게 주어진 삶
동안만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 김대열 신부(일본 사이타마교구 오따천주교회) -
◈ [기타] <내맡긴영혼은>
영적성장의 단계에 얽매이지 말아야 - 이해욱신부
영적성장의 단계에 얽매이지 말아야 합니다.
흔히들 "영적성장의 단계"에 대하여 이야기 합니다.
몇 궁방이 어떻고, 정화 단계가 어떻고 하면서 말입니다.
제가 영적성장의 단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분명히 그 단계는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성장의 단계가 하나의 제품이 만들어지듯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사람은 물건과 다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하느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데에 있어서 그 과정이
물건 만들어지듯이 공정별로 딱딱 정확하게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하느님은 인간을 만드신 것이 아니라 "인간로봇"
제품을 만드신 것입니다.
영적 수준이 1궁방에서 7궁방까지 성장하는 과정이나
정화, 조명, 합일(일치)의 단계가 있다 하더라도 사람에 따라
그 과정이 다 다르게 진행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전 과정을 다 초월하여 곧바로 최고의 영적
단계로 진입할 수도 있는 것이며, 어떤 이는 중간 과정을
초월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던 강도가 그 좋은 예입니다. 그 강도는 모든 단계를
초월하여 한 순간에 하느님과의 합일(일치)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반대로 맨 날, 성당의 감실 앞에서 "생각"을 붙들고 부르스,
탱고 다 돌려도 평생을 고 모양 고 꼴로 살다가 가는 이도
적지 않은 것입니다.
영신생활의 초보자에게 영적성장의 단계가 이러저러 하니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가르치는 것은 스승 예수님의 자리를
빼앗는 행위입니다.
영성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뿐입니다.
영성생활이란 그것 외에 그 어떤 다른 것이 절대 아닙니다.
하느님을 가르쳐 준다고 하면서 그 단순하신 하느님을 어떤
인간의 지식으로 복잡하게 만들어 버린다면, 그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의 적"이 되는 행위입니다.
하느님은 인간이 만든 복잡한 방법으로 이해되고 알게 되는
분이 절대 아니십니다. 복잡하고 어려운 것일수록 그 안에는
하느님이 아니 계시게 됩니다. 쩡말입니다!!
신학자가 신힉(神學)을 가르칠 수 있다 하여도 사람이 하느님을
신앙(神仰)하게, 하느님을 앙모하게 만들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우러러 사랑하게 만드는 것은 그 사람 당사자와
하느님뿐입니다. 영성생활이란 두 존재가 원초적 사랑을
회복하여 서로 뜨겁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원초적 사랑을 회복하기 위한 가장 뛰어난 방법이 바로
"거룩한 내맡김"입니다.
태초에 하느님으로부터 선물 받았던 "자유의지"의 잘못된
사용으로 잃게 된 사랑을 다시 회복시키기 위해 그 자유의지를
하느님께 반납해 드리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 자기 뜻을 반납해 드리기만 하면,
하느님께서는 당신 뜻대로 영적성장을 시켜주십니다.
사람에 따라 정화, 조명, 합일 또는 1궁방~ 7궁방의 단계와
머무르는 시간도 다 다르게 당신이 알아서 조정해 주십니다.
내가 나의 모든 것을 내맡겨 내가 없어졌기에 그 이후의 일도
다 하느님께 내맡기고 우리는 그저 날이 갈수록 "하느님을
뜨겁게 사랑하면서 그저 행복하게 살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다른 글에서도 이미 말씀 드렸지만 한 성인이 하느님과 일치할
수 있었던 하나의 방법을 고집하여 많은 사람들을 그 방법에만
치우치게 만든다면, 오히려 그것이 하느님과의 일치의 걸림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옛날 성인들은 정말 "인내심"이 뛰어난 분들이십니다.
하기 싫어도 대단한 인내로 억지로 꾹 참고 죽도록 하다 보니
하느님과 일치하게 되셨는데 그 뛰어난 분이 행하신 길을
그대로 따라하라 하니...
"나의 주인이신 하느님, 나의 모든 것이 하느님의 것이고,
그러하기에 나의 모든 것, 내 뜻을 당신께 돌려 드립니다."
자신을 하느님께 내맡겨야 하겠습니다. 그러기만 하면,
영적성장은 스승 예수님이 알아서 다 해 주십니다.
- 동경한인성당 이해욱 프란치스코 신부 -
거룩한 내맡김의 집 <마리아처럼>
http://cafe.daum.net/likeamaria/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