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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론강단-410 계명과 전통(마태복음15장1-6절)
성경말씀은 마태복음 15장 1절에서 6절까지 봉독합니다.
[마태복음 15장]
1 그 때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2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유전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3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뇨
4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거늘
5 너희는 가로되 누구든지 아비에게나 어미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6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
오늘 마태복음 제 15장에는 그렇게 어렵지 않은 이야기가 한 세가지 정도 나와 있습니다.
맨 먼저 유대인들이 한 300년 정도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 유대교라는 종교가 신구약 중간사 시대부터 시작해서 유대교라는 게 슬슬 터를 잡았는데,
물론 그 뿌리는 아마도 에스라 시대부터라고 해야 되지 않겠나..
그러면 근 500년 가까이 된다고 봅니다.
어떤 종교가 한 500년 정도 지나가다 보면 본래의 의미에서 와전되거나 왜곡된 그런 교훈들이 자꾸 묻어 들어오는 거예요.
우리 한국교회는 그 역사가 다 해야 봐야 100년 남짓밖에 안되잖아요.
전에 있던 밀양에 있는 무안교회 역사가 2007년도에 100년이거든요.
2006년까지 섬기다가 왔는데, 99년째 되는 해에 제가 이쪽으로 왔죠.
그 교회가 한 100년 되다보니까 잘 한다고 한거죠. 처음에는..
그런데 이런 저런 것들이 성경에서 원하지도 않았고 지시하지도 않았고 바라지도 않았던 그런 것들이 자꾸 들어온 거예요.
잘한다고 한거야.
그런데 그런 것이 자꾸 묻어 들어오니까 그것이 자리를 차지해버리고 본질이 다 도망가버린 거야.
오늘도 우리 교회가 자칫하게 되면 본질을 제쳐놓고 비본질적인 것 비본래적인 것 이런 것들이 자꾸 교회에 들어와요.
지금 유대교도 세월이 한 500년 에스라때부터 하면 500년 된다고 봐야 되는데, 에스라가 에스라 성경강좌, 다시 말하면 느헤미야 8장에 성경을 낭독하면서 큰 부흥이 일어났던 그 때로부터 하면 그 해가 BC444년경 되니까 예수님 오셔서 AD33년쯤 하면, 근 480년쯤 되는 그런 때인데, 잡다한 것들이 들어왔어요.
처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던 것은 율법이죠. 율법..
오경이라고 하는 율법을 주셨는데, 이 율법이 주어지고 나서 율법대로 살지 않기 때문에 자꾸 예언자들이 와서 외치게 되고, 예언자들이 남긴 글이 아주 중요하다고 이것도 가르치다보니까 오경 말고 많이 늘어났죠.
거기다가 성문서라고 하면서 시가서를 비롯해서 이런 책들이 들어와서 가르치고..
그렇게 가르칠려고 하다보니까 듣는 사람들이 읽어만 줘서는 못 알아들으니까 해석을 하기 시작했다는 말이예요. 해석을..
해석을 했는데, 해석한 것을 못 알아들으니까 해석한 것을 더 해석해요.
그래서 ‘미드라쉬 미쉬나 게마라 토셉타 탈무드 할라카 하까다 브라이다’ 하면서 자꾸만 눈덩이처럼 불어난 거예요.
성경 본문은 온데 간데 없고 사람들이 자꾸 해석을 더 붙인 이런 것들이 나중에 한수레가 된 거예요. 한수레..
그래서 성경이 본래 말씀할려고 했던 본질적인 것은 온데 간데 없고, 사람들이 가르친 유전, 이런 것만 남고 실제적으로 성도들이 성경책을 다 갖고 있지 않고 랍비라든지 이런 사람만 갖고 있다가 보니까 실제 성경에서 뭐라고 가르치는지 국민들은 모르고.
그냥 랍비들이 지시하는 것 다 따라 해야 되는데, 이게 보통 까다로운 게 아니야.
그래서 그 중에 오늘 문제가 되었던 것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식사할 때에 손을 씻지 않고 식사를 한거죠.
빵을 만진 건데..
[마태복음 15장]
1 그 때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2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유전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떡’이 ‘빵’이죠.
우리가 빵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빵 그러면 한국사람들은 삼립빵으로 시작해가지고 말랑말랑하고 달콤하고 입에 들어가면 살살 녹는 이게 한국사람의 빵이라는 개념이고..
‘빠게트 빵은 왜 이렇게 질겨’ 하면서..
사실 저쪽 사람들의 빵은 이것보다 훨씬 더 단단합니다.
딱 하고 부러져요.
갓 구웠을 때는 물렁해도 마르면 딱 부러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런 것은 특별히 더러운 게 안 묻으면 손 안 씻고 먹어도 아무 문제 없어.
또 이왕이면 손 씻고 먹는 게 잘 하는 거죠. 남 보기도 좋고..
그런데 어찌해서 예수님과 제자들이 손을 안 씻고 식사를 했겠나..
뻔히 보는 줄 알면서..
어떤 데에 보면 예수님께서 일부러 바리새인들이 시비 걸게 하는 것처럼 해요. 그렇죠?
뻔히 보고 있는 것 알면서도 손을 안 씻고 식사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바로 문제가 나오죠?
.. 어찌하여 장로들의 유전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이렇게 하는 거야.
예수님 보면 꼭 말을 맞받아 칩니다. 그 사람들이 ‘어찌하여’ 하니까, ‘너희는 어찌하여’
3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뇨
4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거늘
5 너희는 가로되 누구든지 아비에게나 어미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6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
유전(遺傳)이라는 것은 ‘파라도시스’라는 건데, 윗대 선배들이 선대 조상들이 넘겨주고 넘겨준 것 유전..
유전하니까 무슨 기름나는 유전(油田)이 아니고..
끼친 전통. ‘끼칠 유(遺)’자에 ‘전할 전(傳)’자니까 조상적부터 넘겨받은 전통 유전..
유전(遺傳)이라는 것은 사람의 말이고, 계명이라는 것은 ‘엔톨레’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명이야.
사람이 무슨 해석한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가 범하고 있다. 지금..
사람들 그 유대교 장로들이 만든 사람이 만든 전통과 계명을 어떻게 비교가 되겠느냐?
너희는 지금 계명을 폐하고 있으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계명을 너희가 폐하고 있으면서, 사람의 교훈을 가지고 손 안 씻고 빵 먹는 것을 말하느냐?
손 안 씻고 빵 먹는 것 그것 가지고 사람이 더럽게 되는 것 아니야.
너희 마음속에 교만한 못된 생각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야.
7 외식하는 자들아,
외식(外飾)하는 것이 밖에 나가서 점심 먹는 것 아닙니다.
겉치레죠. 되지도 않는 것들이 된 척 하는 것, 잘나지도 않은데 잘난 척 하는 것. 겉으로 꾸미는 것. 거룩하지도 않으면서 거룩한 척 하는 것 이런 것들이 외식하는 거예요.
7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게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8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9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그래서 정말 우리가 지금 교회에서 하고 있는 게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바라시고 명하시고 기대하시고 그런 것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사람들에게 가르침 받은 것을 하고 있는지..
가만히 생각해봐야 돼요.
제가 전에 있던 교회, 무안에서도 그랬지만 제일 처음 나갔던 교회에서도 보니까 제 마음에 안 드는 게 더러 있어요. 옳지도 않고..
제일 먼저 없앤 게 여전도회 헌신예배 남선교회 헌신예배는 진작 없앴어요.
왜 없애었느냐?
헌신(獻身)예배를 한다고 하는데, 헌(獻)자가 ‘드릴 헌(獻)’자예요.
그리고 ‘몸 신(身)’자거든.
몸을 드리는 예배라 하길래.. ‘산채로 바치나 잡아서 바치나 어떻게 바치나’ 하고 처음으로 보는데, 아무 것도 없고 그냥 앞에 노래 어쭙잖게 둘이 하면 2부 셋이 하면 3부..
시골교회 수준이 그렇잖아요.
노래 맞지도 않은 것 한번 하더니, 헌금이라고 천원짜리 그 때는 만원짜리 하는 사람 없었어. 백원짜리 천원짜리..
다 모아도 얼마되지 않은 거야. 그것 하고 끝이야. 아이고..
이것 뭐 썰렁하다더니 참 어이가 없더라고..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되었는가 싶어서 그 뒤에 가만 보니까 우리 대한 예수교 장로회 예배 모범이 있어요.
헌법에 예배 규정이 있는데, 거기에 헌신예배라는 게 없어요. 보니까..
주일낮예배, 주일밤예배, 수요기도회. 이 세가지가 공예배예요.
그래서 구역예배라든지 이런 예배들은 다 자의로 드리는 예배이고, 우리가 ‘공예배 성실히 참여할 것이며’ 하고 세례문답할 때 이렇게 서약한 것은 공예배입니다. 공예배..
공예배에 헌신예배라는 게 없는 거예요.
주일 밤은 찬양예배죠.
그래서 제가 새신자에 가까운 전도자인데, 1년 반. 2년도 채 안 되어서 교회 개척을 하러 갔거든요.
그러면서도 이것은 비본래적이다.
헌신예배라는 게 목적은 좋았겠죠. 그렇게 해서라도 기금을 모아서 여전도회가 선교하겠다. 그런 뜻인 것 같아요.
목적은 좋은데, 목적이 좋으면 방법도 그것이 하나님께 대한 것인데, 진실해야죠.
어떤 제목이나 용어에 걸맞게 해야지 그게 어떻게 헌신예배라고 할 수 있겠어요?
그래서 제가 제일 먼저 아예 그냥 전도사 시절에 목회 처음 시작하면서부터 헌신예배는 옳지 않다.
그래서 그 때 개인적 인격적 헌신예배. 한 사람이 일생에 한 번만 전인격적인 각성된 맑은 정신으로 드릴 사람이 있으면 개인적으로 헌신 원서를 쓰라.
지금 그 때 헌신원서를 썼던 사람이 제가 섬기던 바로 그 교회의 목회자 부인으로 되어 있는데, 얼마나 헌신적으로 일생동안에 자기 사심 다 내려놓고 완전히 헌신적으로 그렇게 섬기고 있어요. 지금도..
그 교회가 많이 성장했다는 거예요.
제가 있을 때 보다 수많은 사람이 나갔을텐데 지금 배나 더 모인다는 거예요.
그 한 사람이 헌신하니까..
그 외에도 비본질적인 것 그런 것 다 없앴어요. 많이 없앴습니다.
제가 그 교회에서 9년 몇 개월 있다가 사임하고 나올 때 제가 이 교회 섬기면서 비본질적인 것 없애고 없애고 없앤 것 보니까 21가지가 되더라고..
지금도 기억이 안 나요. 뭘 그렇게 없앴는지..
그런데 없앨 것 다 없애고 나니까 교회가 조용히 그리고 단순하게, 그리고 하는 것을 좀 전문적으로 하고 집중적으로 하고 이렇게 했는데, 교회가 성장하는 거죠.
괜히 의미없는 일을 저질러가지고 그렇게 할 필요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10 무리를 불러 이르시되 듣고 깨달으라
11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은 뭐가 나옵니까?
말과 생각들이 쏟아져 나오죠.
사람이 말하는 것은 그 입에 나오는 것은 마음에 가득한 것을 말한다는 거예요. 대개..
12 이에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된 줄 아시나이까
그러니까 내가 이것 경험해보니까 옳든 그르든간에 자기들이 늘 해오던 것이 옳다고 주장하고 싶은 생각이 있는 거야. 전부 다..
이게 관성이라고 하죠.
늘 하던대로 하고 싶어하는 그런 관성이 있어요.
그래서 제가 여간 옳은 말을 해도 자기가 하던대로 그대로 하고 싶은 욕망이 있어서 괜히 옳은데도 삐쭉삐쭉 하면서 그렇더라니까..
한참 지난후에야 생각해보니까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잘 수긍을 안 해요.
특히 교회에는 종교적인 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에 종교적인 문제 전부 다 자기가 절대적으로 옳다는 거야.
제가 가끔 음식물 문제 같은 것 나오면, 음식물 문제는 구약시대에 먹던 것..
구약시대에 갖고 있던 입이 없었으면 괜찮을텐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도 입을 갖고 있거든요.
그 때 먹던 음식물 규정 같으면 지금도 유효하다.
또 구약시대에 오히려 먹으라고 했던 것도 환경이 많이 오염된 지금은 더 가려서 먹어야 된다. 이런 말을 하니까 그것을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하고 ‘노목사는 율법주의자다.’
여러분 율법주의자는 뭐냐 하면 율법을 지켜야 구원 받는다. 그렇게 말해야 율법주의자예요.
저는 전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은혜로 구원 받은 사람이 구원 받은 사람 답게 사는 법으로 음식을 가려서 먹으라고 했다.
음식은 폐하는 게 아닙니다. 음식을 가려서 먹으라.
저는 레위기에서 먹으라고 했던 것도 지금 양식을 해서 대량으로 생산되는 것은 곤란하다.
또 아예 레위기에서 언급도 하지 않은 과자, 성경에 과자라는 말이 어디 있어요?
성경에 과자 먹으라는 말이 없거든.
그런데 지금 과자들을 보세요.
거의 공장에서 대량생산 되는 게 먹을 게 없잖아요.
레위기에 담배라는 말이 있습니까? 담배라는 단어도 없지만 담배는 몸에 해롭기 때문에 안 피우는 게 좋거든요.
그러니까 구약성경에서 언급하지 않은 것까지 얘기하니까, 그런 것을 가지고 율법주의다 하면서 그렇게 경솔하게 말하는 거야.
소위 목사라는 사람들이 그렇게 분별없이 경솔하게 함부로 말하는 사람이 있는 거야.
그래서 본래 주신 말씀의 목적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렇게 가르쳐야 되죠.
그래서,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심은 것마다 내 천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
사람의 교훈으로 심은 것은 잘못된 것은 뽑아야 됩니다.
제가 어디가서 설교나 강의할 때 우리가 잘못하는 것을 가끔 지적을 하면 대개 기분나빠 해요.
잘못된 게 뻔한데도 그것을 냉철하게 이성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꼭 감정으로 맞설려고 하면서 기분나빠 하는 거예요.
나도 말 안하면 될텐데, 말해. 또..
여러분 성경 한번 찾아 봅시다.
예레미야서 1장 1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9절부터 봉독 하겠습니다.
9 여호와께서 그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10 보라 내가 오늘날 너를 열방 만국 위에 세우고 너로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며 건설하며 심게 하였느니라
뽑을 것을 뽑고 파괴할 것을 파괴하고 그리고 건설하며 심게 했다.
여러분 헌집 위에다 새집을 못 짓습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넣어야 되죠.
헌 집을 그 위에다 제대로 뜯어내지도 않고 집을 지을려고 해봐.
완전히 집을 뜯어내고 집을 지어야 되는 것처럼 잘못된 것은 딱 뽑아내야 돼요.
그래야 깨끗해지겠죠.
잘못된 것 그대로 놔두고 없는 걸로 하고 좋은 말만 해 주세요.
꼭 사람들이 주문을 그렇게 해요.
저는 성경에 있는 말이면 쓴소리 단소리 누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별로 신경을 안 쓰고, 제대로 할려고 노력을 하거든요.
아무리 거기 보신탕집 하는 사람 있어도 몸에 안 좋은 것은 안 좋은 거야.
다행히 우리 교회에는 없어서 참 다행인데, 그렇지 않습니까?
지금 가뜩이나 육체노동도 안 하고 걷지도 않고 해서 고지혈증 지방간 간경화로 해가지고 온갖 병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개고기라든지 삼겹살이라든지 삼겹을 넘어서 오겹으로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뽑을 것을 뽑고 내 천부께서 심으시지 않는 것은 다 뽑힌다. 언젠가는..
그러다가 예수님께서,
14 그냥 두어라 저희는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신대
이런 말은 예수님께서 처음 하신 말이 아니고, 그 당시 유대 관용구 속담처럼 쓰던 말이예요.
시각 장애인이 시각 장애인을 인도하면 둘 다 빠지는 것이지..
15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옵소서
설명 했는데, 베드로가 또 하라고 하죠.
16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도 아직까지 깨달음이 없느냐
17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어 버려지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18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19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
악한 생각이 ‘예수님을 어떻게 죽일꼬’ 그런 생각이죠.
살인, 그러니까 악한 생각 다음에는 미워하는 마음, 미워하는 마음이 살인미수죠.
여기 일곱가지 악한 생각들이 나온다는 거예요.
20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이렇게 해서 그 문제를 해소했는데, 아마 이 때 일부러 하나님께서 바리새인들 앞에 예수님이 늘 손 안 씻는 것이 아니라, 일부러 이 교훈을 한번 일침을 놓을려고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이 아닌가 싶어요.
밥먹을 때 손 씻는 게 좋은 거죠.
저도 가만 보니까 손 씻다가 말다가 하더라고..
씻을 만 할 때는 씻는데, 안 씻을 때는 안 씻기도 해요.
그런 것 가지고 왜 손 안 씻느냐 시비할 것 없습니다.
안 씻으면 지가 더럽지 남 더럽냐? 그렇죠?
그리고 지금은 오히려 너무 깔끔을 떨어서 문제야.
여러분 우리가 더러 박테리아도 먹고.. 먹어봐야 돼요.
그런 것 먹어봐야 소화도 잘 되고 저항력도 생기고 하지..
무균실 안에 인큐베이터에 콩나물처럼 그렇게 길러놨기 때문에 애들이 너무 약하다는 거예요.
우리가 클 때는 진짜 강하게 큰 것 같아요.
제가 가만 생각해보니까 험하게 살고 거칠게 먹고 그렇게 살아왔는데, 그래도 60년을 살아 왔잖아요. 별 탈 없이..
깔끔을 떨어도 약한데, 우리는 그냥 엉망이야.
아마 우리 눈이 적당한 시력을 주셔서 그렇지..
박테리아가 훤히 보일만큼 했으면 아무것도 못 먹을 거야.
정말 우리가 어릴 때만 해도 참 제일 기가 막힌 것이 자리야. 방바닥 자리..
지금처럼 비닐장판이 아니고, 아주 옛날에는 삽자리라고 있어요. 삽자리..
잘 모르죠?
삽자리는 정말 곤란해.. 갈대같은 것을 엮어서 그 사이 틈새가 상당히 크다니까..
거기다 갓난아기가 노란 것을 내놔봐.
그것은 자리 가지고 가서 냇물에 빨기 전에는 그 틈새에 있는 게 빠져 나올 수가 없어요.
그냥 애가 노란것 내 놓으면 개가 한 마리 와서 슬슬 대충 핥아버리면 끝나 버리는거야.
구들장에 뜨뜻한 불을 때봐. 그 쿰쿰한 냄새가 아주 친환경적인 냄새가 원색적으로 나는 거죠.
그 뒤에 나온 자리가 죽석이라는 게 있었어요.
죽석이 나오고, 그 다음에 이른바 왕골을 가지고 만든 돗자리 그런 것은 아주 고급이예요.
그 돗자리에도 사이에 끼어요. 여간 해가지고는 ..
그러니까 그 어린 아이 변속에 대장균 그냥 있는 것 아녜요?
그래도 우리 아버지 같은 분은 87세를 향수하고 그 무슨 탄광에서 금광에서 다친것 외에는 거의 병이 없었어요.
좀 야성있게 기를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얼마나 많았다고.. 어떤 것은 바깥으로 바람 쐬러 나와.
검은 학생복 위로 슬슬 기어다니고.. 잡아서 옆으로 옮기고..
그렇게도 하고 벼룩은 벼룩대로 있지..
그리고 회충 요충 편충 촌충 별것들이 다 있고.. 그렇게 살았어도 다 그런 대로 건강하게 살았어요.
그 때는 암이 별로 없었습니다.
우리 온 동네에 제가 그 동네에 빠져나올 때까지 암이 없었어요.
제가 이사 나오고 나서 15년 사이에 30-40명이 40대 50대가 넘어지는 거예요.
농약 쳐가지고 동네 뒤쪽으로 높은 데 농사짓는 벼논들이 있는데, 거기에서 농약을 치면 그 물이 동네 한 가운데 우물속으로 모이는 거예요.
그것을 퍼먹었으니까 병 안 걸릴 수 있겠어요?
그래서 우리가 손 안 씻는 것 가지고 빵 먹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젓가락으로 먹고 숟가락으로 먹으면 큰 문제 없는 거예요.
요리하는 사람들은 남들 보기에 손을 자주 씻는 게 좋겠죠.
21절 이하는 또다른 사건인데,
21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질러 가로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하되
자, 여기 복음서 안에서 놀라운 특이한 장면인데, 예수님께서 좀 해서 국경을 넘어서 타국으로 가신 일이 없는데, 이 때 딱 유일하게 한번 두로와 시돈으로 갔다는 거예요.
물론 우리가 한가지 마음에 담아 두실 것은 옛날에는 국경이라는 게 표시가 잘 없어요.
있는 경우도 혹 있지만 철책이 있다든지 이런 게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갈라디아 지방하면 서로 포개어져서 어디까지가 갈라디아인지 잘 몰라요. 대충이예요.
어떻든 여기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갔는데, 그 땅만 두로와 시돈이 아니라 만났던 사람도 가나안 여인이예요.
마가복음 7장에 보면 이 여인이 수로보니게 여인이다.
헬라인 수로보니게 이렇게 하는데, 수로보니게라는 것은 수리아 사람이면서 페니키아 사람. 혼혈아예요.
수리아 사람과 페니키아 혼혈되어 나온 수로페니키아 여인이다 이렇게 하는데, 그러니까 그 여자가 이방인 중에서도 혼혈여인이예요.
..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질러 가로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어떻게 이 여인이 예수님을 어떻게 알아서 ‘주 다윗의 자손이여’ 이렇게 했는지, 또 어떻게 예수님께 이렇게 부르짖으면 예수님께서 자기 딸을 고쳐줄 수 있다고 믿게 되었는지, 믿음이 어떻게 들어갔는지 설명이 없으니까 잘 알 수 없어요.
그런데 여러분 자기 자신이 이렇게 귀신 들었으면 본인은 힘들죠.
그러나 자기 가족이나 자기 자식이나 이런 사람들이 흉악히 귀신들려 있다면 고쳐볼려고 얼마나 노력 하겠어요?
그것은 차라리 자기가 병들었으면 몰라도 자기 자식이 병들어 보세요.
자기가 살아있을 때는 자기가 돌봐준다고 하지만, 자기가 죽고 나면 어떻게 될 것인가? 이것까지 생각하고는 고쳐보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뭘 가리겠어요?
그러니까 여러분 병이 든 사람들은 별별 소문이 들려와.
천병만약(千病萬藥)이라는 말이 있어요.
병이 천가지면 약이 만가지다..
그래서 누구에게 가봐라. 뭘 먹어봐라. 뭘 해봐라.
별별 아이디어가 나올텐데, 그렇게 귀를 쫑긋하게 기울여보니까 예수님 이야기를 들었겠죠.
그런데 문제는 이런 딸을 두고 있는 사람이 딸 팽개치고 그 예수님 만나러 가볼 수도 없고..
전에 제가 한번 얘기 했죠.
거창에 거창고등학교 교장이었던 전성헌씨 집에 박서방이라는 사람이, 정신이 이상해진 아내를 33년간 방 안에다가 가둬놓고 밖에서 자물쇠를 채우고 지물포 비단점과 지물포 하는 시장에 갔다가 저녁에 와서 밥을 해먹이고 33년간 그렇게 했다는 거야.
놀랍지 않습니까?
어떻든 이 흉악한 귀신이 몇 년째인지 모르지만 어지간히 고쳐볼려고 애를 태웠는데, 그런 병든 사람 애 안 태운 사람 누가 있겠어요?
애를 태운다고 낫는 게 아냐.
어떻든 그 여인이 예수님을 알되 그냥 안게 아니고,
..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하되
23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여러분 이게 시험이라는 거예요.
우리도 때때로 막 내딴에는 간절하게 부르짖었는데, 예수님께서 한 말씀도 응답도 대답도 안 하는 수가 있다는 거예요.
..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
‘보내소서’는 ‘가게 하소서, 쫓아버립시다.’ 이런 뜻이야.
전혀 시끄럽게 재수없게..
그것도 이방여자가 되어가지고 가나안 여자가 되어가지고 혼혈아가 되어가지고 고함을 지르고..
그러니까 보나마나 베드로가 이렇게 제안하지 않았겠나..
디메오의 아들 바디메오에게 ‘시끄러워!’ 하니까 ‘더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그런 얘긴데, 여기도 한 말씀의 대답도 안하시고 또 제자들도 여자를 쫓아버리자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2중 3중으로 시험에 걸려 있죠.
2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신대
예수님도 자기 사역의 한계를 딱 정하고 있는 거예요.
나는 한국까지 가서 전도할 마음이 없어.
나는 그런 사명 띠고 온 것도 아니고..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 그것만 내게 내 사명으로 받고 왔어. 이렇게 딱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두 번째 관문도 시험이예요. 그렇죠?
25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26 대답하여 가라사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이것 네 번째 시험이예요. 그렇죠?
개 취급하잖아요. 완전히..
성질나는 사람은 ‘샹!’ 그러면서 ‘딸 안 고쳤으면 안 고쳤지 사람을 개 취급을 하다니’ 하면서 딱 떨치고 갔는지 몰라요.
그런데 여기 ‘개들에게’ 하는 말은 번역이 그래요.
번역을 제대로 할려면 ‘귀나리온’이라고 하는데, ‘귀나리온’은 ‘강아지’ 입니다.
강아지도 개는 개죠.
지소사(指小辭)라고 어떤 동물을 작은 것을 가르쳐 말할 때 지소사(指小辭).
소의 지소사는 송아지, 말은 망아지, 개는 강아지, 사람은?
그러니까 귀엽게 말하는 그런 강아지 이런 쪽으로 말했지만 어떻든간에 자녀에게 배당된 것을 강아지에게 주는 것은 마땅치 않다 이렇게 2중 3중 4중으로 시험이 걸린건데,
27 여자가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옳은 것을 옳다고 해야죠.
믿음이 어디 있느냐? ‘마는’ 거기에 있는 거야.
..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확실히 여자야. 남자 같으면 이런 아이디어가 안 나옵니다.
남자 같으면 썅 하고 갔을거예요. 개 취급한다고..
여자가 얼마나 마음이 뜨겁고 간절한지.. ‘옳소이다마는’
복음서 네개를 다 뒤져봐도 예수님 하신 말씀에 토를 달아가지고 ‘옳소이다마는’ 해가지고 그렇게 다가오는 사람이 없었어요.
여러분 적어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려고 하면 이정도 열정은 있어야 돼요.
시험 쬐끔 한다고 삐지고 토라지고 이런 사람 같으면 진작 딴데가서 알아봐야 돼요.
여러분 예수님께서 값진 것은 절대 헤프게 주지 않습니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않는 거예요.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지 않는 거예요.
값진 것을 값진 줄 알고 찾고 두드리고 매달리고 해야 얻는 것이지, 절대 헤프게 주지 않아요.
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크도다’ 하는 말이 굉장한 겁니다.
‘메갈레’. 메가톤급이야.
네 믿음이 메갈레하다. 메가톤급이다. 그냥..
네 믿음이 크다는 거예요.
그래서,
..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딴데에는 보통 ‘네 믿음대로 되리라’라고 하죠. 안 나아도 그만이야.
이 때는 ‘네 소원대로 되리라’ 했는데 그 시에 바로 귀신이 도망가 버렸어요.
자, 여기 어떤 비밀이 하나 있는데, 예수님께서 그 마음과 걸음이 지금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지만, 국경을 넘어서라도 절실하게 자기를 찾는 자에게 예수님의 마음과 걸음이 그 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런 것 같죠?
국경을 넘어서까지..
왜냐하면 여기가서 다른 것은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어요.
이 한건 하고 왔거든요.
누구의 부르짖음이 들리느냐 하면, 그 길 잃어버린 아니면 자기 딸을 귀신에게 빼앗겨서 귀신이 그 딸의 영혼을 억압하고 있어서 그 절박한 어머니의 부르짖음에 예수님의 귀가 기울어지고 마음이 기울어지고 걸음이 그 쪽으로 옮겨진 거예요.
그리고 벌써 그 여자가 그렇게 부르짖고, 전부터 벌써 예수님께서 무슨 어쩌다가 여자와 말 승갱이 하다가 그런 은혜베푼 게 아니라, 그러기 전부터 그쪽으로 벌써 예수님의 발걸음이 옮겨가고 있었어요.
은혜 줄 준비가 이미 다 되어 있었어요.
그 여자가 세번 네번 시험을 통과하는 것은 우리에게 교훈이예요.
그 여자의 간절한 소원이 있는 곳으로 예수님의 걸음이 옮겨지고 있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성경 도처에 보면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전심으로 진심으로 찾는 자가 만난다.
29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사 갈릴리 호숫가에 이르러 산에 올라가 거기 앉으시니
30 큰 무리가 절뚝발이와 불구자와 소경과 벙어리와 기타 여럿을 데리고 와서 예수의 발 앞에 두매 고쳐 주시니
그러니까,
31 벙어리가 말하고 불구자가 건전하고 절뚝발이가 걸으며 소경이 보는 것을 무리가 보고 기이히 여겨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이 때 이 사건 전후로 아마 많은 병자가 고쳐졌습니다.
그러니까 그 페니키아 다시 말하면 두로와 시돈에서 갈릴리까지 상당히 먼 거리예요.
그 먼 거리를 가서 그 여자의 사건 한건 딱 해결하고 다시 갈릴리 호수로 오셨거든요.
그 다음에,
32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가라사대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저희가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을 때는 먹을 것을 가져왔겠죠.
제가 보기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주식이라는 게 빵인데, 빵은 아까 말씀드린 대로 딱딱하게 딱 부러지는 것이고 크기도 큽니다. 큰 대형 쟁반만해요.
어떤 것은 솥뚜껑만하기도 합니다.
바짝 마른 그런 것인데, 도시락도 며칠 먹어도 괜찮아요. 바스락 하니까..
밥을 해가지고 가면 상하죠?
세상에 우리 한국 주부들은 너무 고생을 하는 거야.
우리도 빵을 해가지고 딱 부러지는 것 갖고 다니면 참 편할 텐데..
그것을 못하고 늘 밥을 해야 되고, 또 국을 끓이고 찌게 있어야 되고.. 간장 된장에다가..
이사 한번 갈려고 해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야..
세상에 장독과 장농까지 갖고 다니니까..
한국 삶이 참 피곤해.. 특히 주부들이 너무너무 피곤해..
저는 사실 밥을 좋아합니다. 늙은 사람이 되어서 밥을 좋아하는데, 주부들을 생각하면 빵을 생각할 필요가 있어요.
빵도 딱 부러지는 것 여러분 딱 부러지는 빵은 안 씹고는 못 먹습니다. 그렇죠?
찌게 있어도 안 돼. 국이 있어도 안 되고, 반드시 씹어야 넘어가는 거야.
그래서 꼭꼭 씹는 것 때문에 마른 빵 먹는 사람이 위장병이 없어요.
한국 사람들은 밥먹고 또 국먹고 찌게먹고 또 숭늉먹고 그 위에 커피마시고..
그냥 완전히 우리 배속이 출렁출렁대..
위하수가 다 걸리는 거예요. 대부분이..
별로 좋은 것 아녜요.
그래서 하다못해 아침 한끼라도 딱딱한 빵, 그런 것 먹으면 주부들이 한결 수월하지 않겠나..
남자들이 아무도 아멘 안해.. 부인들이 겁이 나서 말을 못해..
하여튼 사흘 정도 되니까 가져왔던 빵을 다 먹은 거야.
그래서 앉아있을 때는 그냥 앉아 있었는데, 가라고 하면 가다가 기운이 없어서 넘어지는 거야.
여자들은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를거야. 남자들은 잘 넘어져요. 기진해서..
에너지 씀씀이가 헤퍼가지고 금방 혈당이 떨어지면 그냥 후들후들 하면서..
제가 좀 심한 편인데 나는 에서가 왜 팟죽 한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았는지 이해가 돼요.
‘푸는 밥 기다리기가 사흘 굶기보다 더 힘들다.’ 그런 말이 있다니까..
여러분 남자들이 빨리 밥을 안 주면 화를 내죠.
남자들은 배가 고프거나 사랑이 고프거나 하면 화를 냅니다. 성을 내거나..
항상 여성들은 사랑받을려면 남편이 집에 들어오면 뭐든지 먹을 것을 내놔야 돼요. 맛이 있거나 없거나..
안 먹으면 그만이고..
일단 집에 들어오면 뭘 먹고 싶어 한다니까..
덩치가 큰 사람은 더하다고..
제가 무안에서 몇번 그랬던 같은데, 집사람이 저녁에 국수를 해주는 거예요.
아침도 좀 시원찮게 먹고 나와서 예배 드릴 때는 강대상 기대어 있으니까 괜찮아요.
그렇게 했는데, 예배마치고 나와서 150명 정도 인사하고 나면, 인사하고 미소 짓는 것도 보통 힘든 것이 아닙니다.
조선출 목사님이 카나다에 가서 700명 되는 교회에 가서 인사하는데, 한국사람은 미소짓는데 전혀 익숙하지 않거든요.
웃기를 700번 하고 나니까 머리에 쥐가 나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거짓말인줄 알았는데 제가 가진 책, 조선출 박사가 저에게 책을 한권 줬는데 책 제목이 ‘700번의 미소’야. 수필집인데..
제가 정말 쥐가 나는가 싶어서 무안에 있을 때 한번 미소를 지어 봤어요.
진짜 머리에 쥐가 나던데요..
그래서 제가 요즈음은 미소를 잘 안 짓습니다. 대충해서..
그러니까 미소지으면서 인사하는데, 나중에 머리를 숙였는데 머리 들 힘이 없는 거예요.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면서 손이 벌벌 떨리고..
그래서 나중에 급한 대로 커피를 마시는데 커피를 엎질렀어요.
알고 보니까 그때 제가 혈당이 너무 떨어진 거예요.
여러분 열당이 60 이하로 내려가면 쓰러져요. 의식 불명으로 가고 바로 사망으로 갈 수 있어요.
다 그런 것은 아닌데, 남자들은 가끔 일생에 몇번씩은 그런 일이 벌어집니다.
여성들은 상관없어요. 여성들은 뱃가죽 밑에 지방으로 비상식량을 넣어놨기 때문에 전혀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습니다.
여성들은 아이가 있기 때문에 엄마가 쓰러지면 아이까지 쓰러지기 때문에 항상 여성들은 비축되게 그렇게 해 놓은 거예요.
남자들은 있는 대로 다 써버리고..
그래서 에서처럼 그렇게 못 견뎌하는 거예요.
남자들은 틀림없이 가다가 기진해서 쓰러지는 수가 있으니까..
..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
33 제자들이 가로되 광야에 있어 우리가 어디서 이런 무리의 배부를 만큼 떡을 얻으리이까
34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느냐 가로되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나이다 하거늘
35 예수께서 무리를 명하사 땅에 앉게 하시고
36 떡 일곱 개와 그 생선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매
37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일곱 광주리에 차게 거두었으며
38 먹은 자는 여자와 아이 외에 사천 명이었더라
39 예수께서 무리를 흩어 보내시고 배에 오르사 마가단 지경에 가시니라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낮에 우리가 오병이어 봤죠? 오병이어인데 5천명 이상 배불리 먹었어요.
여기는 칠병이어인데 4천명 이상..
거둔것은 다르죠? 낮에는 12광주리 거두었다고 하는데, 여기는 7광주리 거두었다.
하나님의 나라는 결코 모자라는 세계가 아닙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이 사건 이후에 ‘남은 것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자, 이렇게 우리는 예수님을 참 진심으로 믿고 따르게 되거나 또 진심으로 전심으로 찾고 찾으면 예수님께서 만나주셔서, 그 수로보니게 수리아와 페니키아 혼혈 여인이지만 가나안 여인이지만 흉악히 귀신들린 딸을 고쳤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따를 때에도 되면 되면 건성으로 그렇게 하지 말고, 또 성경에 있는 진리를 깨달을려고 할 때도 건성으로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정말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바르게 알려고 진심으로 찾고 찾으면 찾게 됩니다.
저는 어떤 책은 그냥 낭독하고 통독하고 하다가 그냥 쉽게 열린 책도 있지만, 어떤 책은 10년 15년 씨름해가지고 그렇게 열리고 정리되고 이런 수가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제가 참 그냥 쉽게 수월하게 배운 것은 저는 오히려 소중히 생각하지 않을 수 있을지 몰라도, 제가 그렇게 애를 태우다가 그렇게 깨달아지는 것들은 소중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의 법칙, 영적인 원리 몇가지를 배웠죠?
하나님은 절대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을 굶게 하지 않는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아라.
전심으로 우리가 찾고 찾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주신다.
그리고 우리의 위를 만들고 입을 만들고 배를 만들고 양식을 만드신 분이 우리가 배고픈 것을 아신다는 겁니다.
또 우리가 구하기 전에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는 분이죠.
여기 이 사람들이 빵 내놓으라고 졸라댄 것 아니잖아요.
예수님께서 알아서 굶겨 보내지 못하겠다.
그래서 우리가 이 땅에 있는 날 동안에는 별 수 없이 흙에서 나는 것을 먹어야 사는 거죠.
주께서 우리의 일생 동안에 필요한 것을 공궤하실 줄 믿습니다.
<기도>
아버지 하나님,
오늘 밤에도 마태가 전한 복음서 중에서 참 복음, 곧 하나님께서는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고,
또 주님께서 비록 가나안 여인이고 헬라여인이고 이방여인이고 혼혈여인이지만 진심으로 간절히 찾고 찾는 자에게 만나주시고,
그가 믿음의 몇 단계 시험을 다 통과했을 때 믿음이 크다 하시고 칭찬하시고, 또 소원대로 들어주신 것을 보았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배고픈 사람들 또 어려운 사람들 목자없는 양같이 이리저리 유리하는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또 배불리 먹이시고 돌려보내시는 장면도 보았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은혜로 우리를 인도하실줄 믿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흐려지거나 약해지지 않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