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색상, 이면에 감춰진 이야기
르노삼성자동차에는 지금까지 단 한 대만 팔린 차가 있다. ‘SM 520LE MT’ 암녹색이 그 차로, 같은 모델의 다른 색상은 연간 200대가 넘게 팔렸으나 암녹색은 한 대만 판매돼 국내 소비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색상 중 하나로 기록됐다.
쌍용자동차 무쏘 진홍색은 2002년까지 10대만 판매돼 실패한 컬러라는 오명을 남겼다. 무쏘 초기 시절 기본 색상이었던 남색 또한 시간이 흐르면서 인기가 식은 반면 흰색과 검은색은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국내에서 대표되는 색상은 누가 뭐래도 흰색이다. 흰색을 좋아하는 이유는 '가장 무난하다'는 것 때문인데, 여기서 '무난함'에는 무엇보다 되팔 때 색상에 따른 감가상각이 적다는 것이 큰 의미다. 다시 말해 살 때는 화려한 색상이 비싸지만 되팔 때는 흰색과 검은색 이외의 색상은 오히려 제값을 받지 못해 무채색 선호경향이 더욱 커지는 셈이다.
소비자들이 무채색 계열을 가장 좋아하는 이유는 향후 중고차 처리 때문이라는 속설이 있다. 실제 자동차회사에서 컬러를 담당하는 이들은 새로운 원색색상을 시도해 번번히 실패하는 이유에 대해 &;구quot입할 때는 비싸고, 팔 때는 제 값을 받지 못하는데 굳이 원색을 살 이유가 없다는 게 소비자들의 생각"이라며 "새로운 색을 적용하고 싶어도 그렇지 못하는 이유를 시장에서 찾아야 한다"고 설명한다.
무채색에서도 자동차 크기에 따라 또 선호도가 갈린다. 현대자동차의 경우만 봐도 에쿠스, 뉴그랜저XG 등의 대형 세간은 검정색이 많지만 아반떼XD, 베르나 등 소형으로 갈수록 흰색이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해 압도적인 흰색 우위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스포츠카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투스카니의 경우 은색(49.4%)과 검정색(22.9%) 비율이 진노랑(0.4%), 진청색(2.9%) 등 원색 계열에 비해 월등히 높아 무채색 불패신화를 보여주고 있다.
외국의 경우 민족의 특징에 따라 원색부터 다양한 색상이 선호된다. 대표적으로 다혈질이고 쉽게 흥분하는 경향이 있는 이탈리아는 정열적인 붉은색, 블루의 나라 프랑스는 청색을 선호해 자동차의 색상선택에도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부지런함과 철저함으로 대변되는 독일은 은색의 인기가 가장 높다. 우리나라 역시 은색이 인기색상으로 분류되어 있지만 나서기를 싫어하는 민족적 특징과 사회적 억압의 상징으로 다소 불안심리가 작용한 반면, 독일 사람들에게 실버는 '차분함'의 표현인 셈이다.
영국인들은 평화와 안전, 객관성을 상징하는 녹색을 좋아하여 영국의 대표적인 자동차메이커였던 재규어의 기본 컬러가 녹색이었으며, 활동적인 성격의 노란색은 젊은 층이 주로 선호하여 람보르기니, 닷지바이퍼 같은 스포츠카는 언제나 노란색을 기본 색상으로 지정하여 생산하고 있다.
색상에도 이름을 붙이는 네이밍(Naming)까지 존재한다. 컬러리스트들은 우리 말로 색을 표현할 수 있는 종류가 50여가지 내외라고 한다. 많게는 수백 종류에 이르는 컬러를 표현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숫자다. 때문에 자동차 컬러명은 주로 영어로 표기되는 사례가 많다.
컬러명을 정할 때 가장 중요한 항목은 자동차의 컨셉트. 주 소비층을 고려해 적절한 이름을 붙여야만 하는 것. 흔히 소비자들이 차명에만 관심을 기울이나 제조사 입장에선 색상에 따라 차를 선택하는 시대를 감안해 컬러명에 매우 신중을 기한다.
컬러 네이밍이 가장 앞선 GM대우자동차는 자동차에 고급 이미지를 부여하기 위해 흰색은 갤럭시 화이트(Galaxy White), 은색은 폴리 실버(Poly Silver), 검정색은 그라나다 블랙(Granada Black)으로 부른다. 마티즈의 블루 스카이(Blue Sky)는 차에 경쾌한 이미지를 주기 위해 지어낸 컬러명이다. 쌍용자동차 체어맨의 검정색은 클래식 블랙(Classic Black)으로 부른다. 검은색에 클래식이란 수식어를 붙임으로써 같은 검정이라도 차별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다. 현대 투스카니에 적용된 흰색은 노블 화이트(Noble White)로 귀족을 위한 흰색이란 뜻을 담고 있다. 노란색은 밝은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태양광에 빛나는 '서니 옐로(Sunny Yellow)'라고 부른다. 색상을 이해하기 편하게 부르기도 한다. 에쿠스에 적용되는 화이트 펄은 디자이너 앙드레김이 좋아하는 색상이라 해서 '앙드레김 화이트'로 칭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