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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여행] 이생진 시인은 등대는 외로운 사람의 우체통이라고 했다. 등대는 별에서 오는 편지와 별에게 보내고 싶은 편지를 넣어두는 우체통이라고. 그래서 사람들은 혹시나 하고 등대를 찾아가고 별에게 보낼 편지를 넣으려고 등대를 찾아간다고. 정해년 새해를 맞아 등탑이 아름다운 울기등대와 간절곶등대,그리고 가덕도등대를 찾아 희망의 빛을 만나본다.
시인의 표현을 빌지 않더라도 등대 가는 길은 외로움과 그리움이 잔뜩 묻어난다.
새해 첫날 일출이 간절곶보다 1초 늦어 늘 서러운 울산 방어진의 울기등대도 그렇다.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의 골리앗 기중기가 송림처럼 빽빽한 공단을 벗어나면 수령 100년이 넘는 해송 1만5000여 그루가 뿜어내는 솔향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송이째 뚝뚝 떨어진 동백꽃은 600m 길이의 고즈넉한 숲길을 꽃길로 단장하고 이에 질세라 철없는 개나리도 노란 꽃망울을 활짝 터뜨렸다.
1906년 동해안 최초로 불을 밝힌 울기등대는 앞으로 튀어나온 볼트 형식의 현관을 갖춘 6m 높이의 팔각형 등탑. 등대 주변에 심은 해송이 등대보다 커지면서 불빛이 보이지 않자 1987년 촛대 모양의 새 등탑을 세웠다. 오랜 세월 세찬 비바람이 몰아치고 거친 파도가 등대를 유린할 때도 항해하는 선박들의 길잡이 역할을 묵묵히 해온 옛 등탑은 새 등탑과 임무를 교대한 후 근대문화유산으로 보존되고 있다.
울기등대가 위치한 대왕암공원은 기암절벽이 아름다워 ‘제2의 해금강’으로 불리는 곳. 등대 아래 돌계단을 내려가면 문무대왕비의 호국 혼이 서린 대왕암이 울산 앞바다의 거친 파도를 온몸으로 막아내고 있다. 대왕암은 신라 문무대왕의 왕비가 용이 되어 울산 앞바다로 내려왔다는 전설을 품고 있는 불그스름한 빛깔의 바위. 대왕암이 코발트빛 바다를 배경으로 석양에 붉게 물들면 울기등대는 언제나처럼 불 밝힐 준비를 한다.
간절곶등대로 유명한 울산 서생면 대송리의 간절곶은 동해의 맨 아랫자락으로 남해와 연결되는 귀퉁이. 바다에서 보면 긴 간짓대(긴 대로 만든 장대)처럼 생겼다고 해서 간절곶(艮絶串)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간절곶은 7년 전만 해도 언덕 위에 등대 하나만 홀로 외롭던 작은 어촌마을이었다. 하지만 새천년이 시작되는 2000년 1월1일 한반도에서 해를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곳으로 알려지면서 해맞이 명소로 자리잡았다. ‘울산 간절곶에 해가 떠야 한반도의 새벽이 온다’는 기록이 전해오는 것을 보면 옛날부터 상서로운 장소로 여겨졌던 모양이다.
17m 높이의 원통형 등탑은 2001년 새로 세운 것으로 불빛의 밝기는 촛불 180만개를 모아놓은 것과 같은 180만 캔들. 밤에는 등탑이 휘황찬란한 조명을 받아 환상적인 빛의 잔치를 펼친다. 새 등탑 옆에 앙증맞게 서있는 꼬마등탑은 20여 년 동안 불을 밝히던 등대의 등명등 부분만 옮겨놓은 것.
해안으로 밀려오는 파도가 끝없이 철썩이는 간절곶은 등대 외에도 볼거리가 많은 관광명소. 최근 해맞이객들을 위해 만든 황금돼지 조각상과 높이 5m로 세계에서 가장 큰 우체통이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서있고,남편을 기다리다 망부석이 됐다는 신라 충신 박제상 부인 석상은 오늘도 수평선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등대는 빛으로 연결된 실핏줄이다. 간절곶 앞바다는 예나 지금이나 중요한 뱃길로 울산 장생포의 포경선들이 고래 떼를 ?아 헤매던 바다. 지금은 유조선과 컨테이너선 등 수많은 화물선과 어선들이 간절곶 등대를 방향타 삼아 울산항을 분주하게 오간다.
시나 소설에 등장하는 등대는 꽤 낭만적이다. 하지만 일제의 제국주의 침략용으로 만들어진 등대의 탄생 배경이나 등대지기로 불리는 항로표지관리원들의 고달픈 삶을 들여다보면 낭만이라는 단어는 사치스런 수식어에 불과하다.
부산 앞바다에 위치한 가덕도의 가덕도등대는 육지에 세워진 울기등대나 간절곶등대와 달리 섬 남단의 까마득한 벼랑 끝에서 푸른 하늘을 찌를 듯 우뚝 솟아 있다. 2002년 준공된 등탑의 높이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높은 40.5m. 해발 72m의 벼랑 끝에 서서 국제항로이자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부산과 진해 앞바다를 굽어보고 있다.
나선형으로 돌고도는 198개 계단을 올라 등탑 전망대에 서면 예나 지금이나 등대가 첨단 건축 기술의 집합체라는 사실을 수긍하게 된다. 가덕도를 비롯해 부산,진해,거제도가 한눈에 들어오는 등탑의 전망대는 평상시에도 바닷바람이 거세다. 손잡이를 놓는 순간 한 마리 새가 되어 날아가 버릴 것만 같은 강풍을 견디도록 설계하는 것도 첨단 기술이지만 섬 절벽 위로 건축자재를 운반하는 것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1909년 12월 처음으로 불을 밝힌 가덕도의 옛 등탑은 지중해풍의 하얀 별장을 연상시킨다. 붉은 동백꽃으로 수놓은 한 뼘 남짓한 등대 앞마당을 가로질러 천장에 대한제국의 문장인 오얏꽃을 새긴 현관을 들어서면 커다란 가마솥과 장작불로 목욕물을 데우던 쇠솥이 등대지기들의 고단한 삶을 증거하고 있다.
새 등탑과 옛 등탑이 오랜 친구처럼 어깨를 나란히 한 가덕도등대. 까마귀와 갈매기마저 친구가 될 정도로 외로움을 타는 가덕도등대는 오늘도 얼어붙은 달그림자 속에서 홀로 ‘등대지기’를 부르고 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울산·부산=글·사진 박강섭 기자 kspark@kmib.co.kr
<여행메모>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인 인천 팔미도등대가 불을 밝힌 지 어느새 한 세기가 흘렀다. 등대의 가느다란 불빛에 의존하던 선박들이 최첨단 위성항법장치를 갖추면서 한반도의 섬과 해안선을 밝히는 740여 개의 등대는 예전에 비해 쓰임새가 많이 줄었다. 하지만 최근 한국관광공사와 해양수산부가 등대에서의 숙박체험을 관광상품화하면서 등대가 새로운 조명을 받고 있다.
육로를 이용해 접근이 가능한 울기등대와 간절곶등대는 연중 견학이 가능하지만 체험학교는 겨울 및 여름방학,'바다의 날(5월31일)'에 운영한다(울산지방해양수산청 052-228-5611).
가덕도등대는 군사보호구역이라 일반인들의 접근이 쉽지 않다. 부산지방해양수산청(051-609-6547)에서 최소 일주일 전에 승인을 받아야 출입이 가능하다. 진해 녹산선착장(051-831-9664)에서 여객선을 타고 가덕도의 외양포에서 내려 40∼50분 걸으면 가덕도등대다. 차량을 싣고 가려면 진해 안골선착장(055-551-8009)에서 차도선을 타고 가덕도 장항에서 내린다. 장항에서 등대까지 자동차로 40분. 가덕도등대의 체험숙소에서 숙박을 하려면 사용을 원하는 전달의 1∼8일에 인터넷(www.portbusan.go.kr)을 통해 예약해야 한다. 요금은 1만5000원으로 6명까지 숙박이 가능하다(가덕도등대 051-971-9710).
가덕도 주변 해역에서는 요즘 대구잡이가 한창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대구를 구경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였지만 요즘은 풍어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포구는 대구로 넘쳐난다. 한때 한 마리에 60만원까지 치솟았던 대구 값도 크게 떨어져 진해 의창수협 수산물 위판장에선 그물에서 막 걷어 올린 싱싱한 대구를 크기에 따라 3만∼5만원에 판매한다.
국내여행 전문여행사인 솔항공여행사(02-2279-5959)는 부산과 울산 인근 등대를 돌아보는 1박2일 일정의 등대여행상품을 내놨다. KTX를 타고 부산에 도착한 후 전용버스 편으로 영도등대,울기등대,간절곶등대를 둘러보고 자갈치시장에서 자유시간도 갖는다. 요금은 1인당 19만9000원(2인1실 기준)으로 매주 토요일 출발.
절벽 위에 서 있는 고독한 ‘등대’로의 여행
갈매기가 춤추는 겨울 바다, 약간은 쓸쓸해 보이는 백사장을 거닐며 한적한 겨울의 낭만을 느낄 수 있는 곳. 선창 가득 물고기를 채운 어선이 하얀 등대를 향해 물보라를 일으키며 달려오는 가슴 시리지만 아름다운 풍경이 있는 고독한 등대로 휴식여행을 떠나보자. 우리나라에는 유인등대와 무인등대를 합쳐 570개가 넘는 등대가 있다. 보통 등대는 일몰부터 일출까지 불을 켜기 때문에 해가 어둑해질 무렵 바닷가로 나서면 어스름 속에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는 등대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다. ▶ 속초 ‘속초등대’ 속초 시민들이 ‘속초 제1경’이라고 꼽을 만큼 아름다운 등대. 드라마 <겨울연가>의 배경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멀리 설악산의 수려한 산세와 함께 주변에 신기한 형상의 바위들이 널려 있어서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등대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가파른 해안절벽을 타야 하는데 길이 세 갈래로 나뉘어 있다. 보통 영금정 바위 앞에서 절벽을 타고 오르는 철제 계단을 가장 많이 이용한다. 찾아가는 길 속초시 영랑동 주변 관광지 영랑호 범바위, 동명항 활어난전, 대포항, 낙산사 문의 033-633-3406 ▶ 고성 ‘대진등대’ 동해안 최북단에 있는 유인등대인 대진등대는 아파트 9층 높이와 맞먹는 31m의 큰 키를 자랑한다. 이곳 등탑에 오르면 가슴이 확 트일 정도로 시원한 겨울 바다의 풍경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 나선형 철계단을 이용해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다리가 덜덜 떨리기도 하지만 일단 올라가면 최고의 경관을 조망할 수 있다. 등대 앞에 안내 문구가 없더라도 당황하지 말 것. 입구에 있는 작은 현관 벨을 누르면 직원이 나온다. 등대불을 밝히는 제일 꼭대기층을 제외하고는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다. 찾아가는 길 진부령 또는 속초→간성→대대리검문소→거진항→대진등대 주변 관광지 송지호, 화진포해수욕장, 해양박물관, 이승만 별장, 김일성 별장 문의 033-682-0172 ▶ 주문진 ‘주문진등대’ 해질 녘 모습이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주문진등대. 남편과 함께 오붓하게 저녁 산책을 하기에 좋은 곳이다. 등대 아래쪽 해안도로를 따라 바다낚시터가 펼쳐져 있어 한적한 바다낚시를 즐길 수도 있다. 오징어 성수기 때는 집집마다 옥상과 공터, 해안가 덕장에 오징어를 말리는 정겨운 풍경을 볼 수 있으며, 새벽 5시에 문을 여는 수산시장에서 싱싱한 해산물을 구입할 수 있다. 미역과 성게, 해삼, 전복 등을 캐는 해녀들의 물질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는 곳. 찾아가는 길 강릉→7번 국도 상행선→사천→연곡→주문진읍 주변 관광지 오대산 소금강, 경포대, 아들바위 문의 033-662-2131 ▶ 동해 ‘묵호등대’ 동해시 묵호진동에 위치한 묵호등대는 동해항과 묵호항을 중심으로 아름다운 바다 풍광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특히 해맞이 명소로 손꼽히는 장소. 밤마다 묵호항 내에 찬란하게 펼쳐지는 불빛은 아름다움을 뛰어넘어 마치 거대한 불바다를 연상케 한다. 등탑 앞에 소공원이 있어 편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으며, 해양수산에 관한 자료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홍보관실에서 해양수산의 변천사를 볼 수 있다. 찾아가는 길 영동고속도로→동해시→묵호항 방면→묵호등대 주변 관광지 무릉계곡, 천곡천연동굴, 추암촛대바위 문의 033-531-3258 |
가덕도 -절대고독의 상징, 영혼의 불빛 등대
가덕도에는 신석기시대 패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아주 오랜 옛날부터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에는 가덕진과 천성만호진이 설치되면서 군사적요충지로 부각된 곳이다.
문화재로는 대원군 척화비(시지정 기념물 제35호), 천성진성(시지정 기념물 제34호), 두문지석묘, 연대봉 봉수대, 가덕진성 등이 있다. 일제시대 이수강, 김근도 등이 독립운동가로 활약하였고 박탁환이 이곳의 특산물인 양파를 처음으로 재배하였다. 섬이름은 더덕이 많이 난다고 하여 유래되었으며 1908년 웅천군 천가면과 가덕면이 합치면서 천과 가가 합해 천가라는 이름이 등장했다. 구비전승으로로는 처녀바위와 총각바위 전설과 등지노래 가덕팔경가 등이 전해온다. 명절 때가 되면 성주신에 제사를 지낸다. 자생동백군락이 시지정 천연기념물로 정해져 있고 기암괴석과 낚시터가 관광객들로 끈다. 특산물로는 저장성이 좋고 맛이 좋은 양파가 있다. 떠남의 아쉬움까지 그 빛으로 따스하게 말려
해양수산청 행정선 광성호를 타고 우리 나라 제1의 항구 부산항을 서서히 빠져나갔다. 이 행정선은 부산에서 울산, 진해 일대에 이르는 넓은 해상에 설치된 등대와 뱃길의 신호등 역할을 하는 항로 표지시설 등을 점검하고 등대에 생필품을 실어 나른다. 행정선 선장 정도억 씨는 바닷가 출신으로 어릴 적부터 마도로스를 꿈꿨고 78년 외항선을 탄 후 지금의 해양수산청 보급선 선장으로서 250㎢ 이르는 해상을 누비며 선박의 안전과 등대원들의 생활을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가 입사할 당시 배의 규모나 속력, 장비 등은 매우 열악하여 바람이 거세고 해일을 만날 때면 생명을 바다에 맡겨야 할 형국이었단다. 물론 지금은 성능 좋은 엔진 탓에 순간적인 배 회전이 빠르고 운행의 정확성이 매우 뛰어나나고 한다. 그러나 여전히 이 일대는 선박의 입출항이 잦고 해류의 변화가 심하다. 거센 파도와 잦은 안개 등 기상 악조건을 감수해야 한다. 이런 지역인 만큼 행정선과 등대의 역할은 커질 수밖에 없다. 등대원의 보급품 실어 나는 행정선을 타고...
언젠가 이런 일도 있었다. 오륙도 앞에 있던 한 척의 배에서 연기가 피어올라 직감적으로 불길한 예감을 느끼고 현장으로 다가가 낚싯배 승객 10여명을 행정선으로 옮겨 태운 후 얼마 후 불길이 치솟고 불에 탄 배가 바다 속으로 가라앉더라는 것이다. 또 연료가 바닥나 표류하던 어선을 발견해 연료를 지원한 적도 있고 높은 파도를 만나 뱃길을 벗어나 표류중인 배를 구조하는 등 행정선은 이 바다 지킴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광성호 뒷편에는 작은 목선이 하나 매여 있었다. 바람과 거센 파도로 인해 해안 접안이 어려울 때 이 배를 띄워 운반작업을 한다 했다. 이도 저도 배를 띄우기가 어려울 때는 인근 해안기슭에 짐을 부려 놓고 가면 등대원들이 지게를 지고 등대로 운반한다고 한다. 부산청 김민철, 김명환 선생님과 선상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가덕도에 도착했다. 가덕도는 해발 459.4m의 연대봉과 국수봉, 문필봉, 갈마봉 등이 있다. 산등성이를 타면서 바다 구경하는 맛이 일품이다. 묵은 체증을 다 씻어주고도 남는다. 툭 트인 저 바다의 아름다운 풍경도 그렇지만 해안마다 낚시 포인트이다. 볼락, 감성돔, 게르치, 망상어 등을 70여 마리를 낚을 정도였다. 가덕도 등대로 가는 길은 동백나무와 해송의 향기가 그윽한 숲길이다. 숲을 10여분 걸어 도착한 가덕도 등대는 툭 트인 섬모롱이에 보무도 당당하게 서 있었다. 솔 향기 그윽한 등대 앞마당에서 아름다운 만찬
등대 동쪽으로는 다대포, 서남북으로는 거제도, 북으로 진해시와 접해 있는 해상교류의 요충지이다. 가덕도 등대는 임진왜란 때 치열한 격전장이기도 했는데 일본군이 군사적 목적으로 대한제국 말기인 1909년 12월에 건립한 것이다. 일본이 우리 나라를 상륙하기 전 고려, 조선을 정탐하던 곳이었으면서도 삼국시대에는 신라, 백제가 일본으로 건너가기 전에 해상의 기상을 예측하던 곳이었다. 결국 가덕도는 삼국시대부터 고려 중기까지는 빛나는 섬이었고, 고려 후기부터 구한말까지는 굴욕의 역사를 경험한 셈이다. 2003년 태풍 피해가 휩쓸고 간 그 자리에 해군 전초기지가 있고 해양청 등대가 서 있는 것으로 보아 가덕도의 앞날은 중요하면서도 빛나는 미래를 열 섬임이 분명하다. 이 등대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높은 45미터에 이르고, 12초마다 한번씩 불빛이 반짝이는데 이 등대 빛은 자그마치 35마일 거리까지 비춘다. 등대에는 고수진 소장 외 이종학, 서정일 등대원이 근무하고 있었다. 이날은 아주 특별한 날이었다. 이곳 등대원들이 부산 지역 부모 없는 아이들을 초청한 것이다. 이종학 등대원은 바닷가에서 잡아온 고동을 삶아 아이들에게 대접했고 영문학도 출신인 낭만파 서정일 등대원은 기암절벽을 따라 해상 체험을 돕기도 했다.
얼마 후 진해 쪽으로 노을이 뚝, 떨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노을에 젖어간 등대 앞마당에서 청소년들과 어울려 시를 낭송하고 등대원들이 손수 잡고 만든 바다 요리로 아름다운 만찬을 즐겼다. 티없이 맑은 아이들의 얼굴이 노을에 붉게 물들어 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속으로 말했다.
파도에 씻겨 윤기 나는 삶, 우리네 삶도 파도처럼 살아갈 일 그래 소년 소녀들아! 저 노을이 하루를 열심히 살고 가듯이 우리 잠시 외롭고 슬플지라도 우리 뜨거운 사랑으로 내일의 옹골찬 희망을 꿈꾸자구나... 저 광활한 바다에 태양이 다시 떠오르듯이 우리의 희망은 늘 가능성에 대한 정열임을 잊지 말자구나. 아이들아! 우리 함께 희망을 믿으며 세상의 바다에 당당히 기다림의 닻을 던져 보자구나. 조약돌이 파도에 씻기어 윤기 나듯이 우리들 삶도 이 세상의 바다에서, 이 풍진 바다에서 저 둥근 돌처럼 구르고 구르면서 닦이고 닦이어 아름다운 삶의 길을 떠나 보자구나....
알고 보면, 산다는 것은 바둥바둥 파도치는 것. 해안선에 부서지고 부서지면서 멍든 파도가 수많은 세월을 몸 던지고 나뒹굴며 살아온 것처럼, 아이들아! 우리도 넘어지면 일어서고 밀려와 다시 밀려가는 저 파도 같은 삶을 살자구나. 우리 어깨동무하고 늘 푸른 섬이 되자구나....
군고구마 껍질 벗기듯이 우리는 밤새 정담을 나누며 하룻밤을 지샜다. 그렇게 아침해가 떠올랐다. 바다에 부서지는 햇살은 영락없이 꽃밭에 물 뿌리던 조리개처럼 넓은 바다를 차근차근 은빛물살을 일으키며 몰려왔다. 그렇게 서서히 데피면서 전율하는 바다에 통통배가 포말을 감아 돌리며 힘찬 항해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가덕도의 아침은 희망으로 가는 포구였다. 포구는 항해의 시작이자 정박의 끝을 의미한다. 어둠 속에서 불빛 밝히며 한결같이 아낌없는 사랑을 퍼주던 등대는 이제 그 바다가 대신 던져준 햇살에 등 기대어 고단한 밤을 내려놓고 밀린 잠을 청하고 있다.
저 속 깊은 사랑의 등대 아래서 청소년들을 초청해 아낌없이 음식과 마음을 나누어주던 등대원들의 깊고 애틋한 손길이며 아름다운 마음은 오래도록 내 기억 속에 파노라마로 남아 있을 것이다. 잠들지 않는 물결로 오래도록 내 가슴에서 파도칠 것이다. 사람은 만나면 떠나기 마련이다. 발길마다 남는 것은 아쉬움뿐. 등대는 그 아쉬움까지도 따스한 불빛으로 비추고 말려준다. 이름 모를 사람들의 길라잡이가 되어 늘 그 자리에 서있다. 등대는 절대적 사랑이며 절대고독의 상징이다.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영혼의 꽃이며, 영혼의 불빛이다.
생활상식/ 선박 이야기…가덕도 가는 길 기원전 55,000년경 소나무를 파내어 만든 카누를 이용해 호주대륙으로 건너갔던 뉴기니의 원주민들로부터 시작된 배의 역사는 본디 물건을 실어 나르는 데 사용되었다. 그러나 배는 점차 군사적 경제적인 전쟁의 대상이자 수단이 되었다.
대서양을 가로질러야만 했던 스페인, 태평양을 가로질러야 했던 미국 등은 장기간의 항해 부담 탓에 전쟁을 시작할 때는 제일 먼저 보급선 문제를 해결했다고 한다. 적기에 보급선이 올 수 있느냐는 문제는 곧 군사들의 사기 문제와 직결되었다.
이러한 보급선을 노린 해적들이 생겨나 카리브해를 중심으로 국가간의 충돌 또한 잦았고, 포클랜드 해전에서는 독일과 영국간에 보급선 방어와 탈취 작전으로 거듭됐으며,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적군의 보급선이 상륙할 수 없도록 막아 굶주린 왜군들의 사기가 땅에 떨어졌다. 이러한 보급선의 역할 탓에 미국은 모든 함선에 한달 이상의 식량을 적재토록 했고 최근 이라크 전쟁 때도 보급선 문제를 가장 먼저 고려했다는 후문이다.
가덕도 등대는 진해 용원선착장에서 외항포행(배삯은 편도 2,400원)을 타면 된다. 포구에서 내려 30분~40분 정도 산길을 걸어야 하는데 등산과 바다 구경하기에 참 좋은 코스로 동백 자생지가 있다.
● 가덕도로 가는 길
1.승용차 서울→경부고속도로(대진고속도로)→금호 분기점→마산 방면→서마산→동마산 Ik→진해방면→부산방면 2번국도→웅천→웅동→용원 선착장→가덕도(외항포행 승선) 2. 대중교통 서울→부산 터미널(부산역)→지하철 1호선→하단역→하단 로타리(시내버스 58번, 58-1)→진해 용원선착장→가덕도(외항포행 승선/40분 소요) 3. 문의 부산시 관광진흥과(051-888-3511)/부산시 강서구청(051-970-4000)/부산고속버스(051-508-9955)/가덕도 등대(051-971-9710) |
등대가 있는섬
등대가 변화하고 있다.
문학인들의 시낭송회가 열리기도 하고, 등대 내 여행객 숙박이 가능한 등대가 생기기도 했다. 이제는 단순한 섬여행이 아니라 등대섬을 순회하는 등대여행도 꿈꿔볼 만하다. 등대는 불빛이 구석구석 도달하기 위해서 온 방향 시원하게 뚫린 절벽이나 산봉우리에 우뚝 솟아있는 법이니, 그 등대에서 내려다보는 그림같은 섬의 절경을 기대해도 좋다. 1. 거문도 등대(그곳에 가고싶다)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최남단에 위치하고 있는 거문도. 여수항에서 111.7㎞, 2시간의 뱃길 곳곳에 고만고만한 섬과 바다와 갈매기, 그리고 어부들이 잘 어울려 있었다. 거문도는 동도, 서도, 그리고 여객터미널이 있는 섬인 고도로 이루어져 있다. 서도 양 끄트머리에 등대가 있는데 거문도 관문인 서쪽에는 음달산 끝자락에 녹산 무인 등대가 있고 반대로 동쪽 끄트머리 수월산 절벽에 유인 등대가 있다. 서도 수월산(해발 196m)의 해안벼랑에 자리잡은 이 등대는 1905년 4월 10일에 처음 불을 밝혔다고 한다. 이 등대는 15초마다 한번씩 불빛을 깜박이는데, 23마일(42km)까지 불을 밝혀준다고 한다. 여느 등대가 그렇듯 거문도 등대도 아픔이 배여있다고 한다. 1885년부터 2년 동안 영국해군의 점령을 받았던 거문도. 이후 1988년 강대국과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거문도에 진을 설치하고 거문도 세 개 섬인 고도, 동도, 서도를 수비토록 했던 것이다. 거문도 등대는 현재 오륙도, 영도 등대 그리고 대마도 앞까지 연락이 가능한 위성항법장치 GPS를 설치해놓고 있다. 안테나 탑이 하늘을 찌를 듯 수월산 정상과 키를 재듯 높게 솟구쳐 있는 모습이 장관이다. 거문도 등대를 처음 방문하던 날, 등대까지의 길이 아주 독특했다. 물이 넘나든다는 의미를 가진 '무넹이'를 지나 나타나는 산책로는 자갈길, 흙길, 잔디밭길이 삼등분씩 이어져 있다. 울창한 녹음과 갖갖지 야생화들이 이어지고 오른쪽 절벽이 아찔하기도 하다. 또한 길 중간중간에 빈 나무벤치가 방문객 누구에게나 너그러이 마음 열어주는 듯한 기분이다. 이렇게 마음 푸근한 길이 끝나는 곳에 하얀 등대가 서있다. 언젠가 기사에서 거문도 등대원에 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등대까지 이르는 동백숲의 동백꽃이 절정에 이르고 오솔길에 동백꽃 잎이 수북하게 쌓여 온통 붉은 빛일 즈음에는, 그 동백꽃을 차마 밟지 못해 비켜 걷는다고 한다. 그런 분들이 있기에 동백숲은 더 깊고 더 붉게 거문도를 지키고, 그 곳의 등대는 더더욱 애절히 우리를 기다리는지도 모르겠다. 2. 우도 등대 등대공원이 생겼다는 말을 듣고 방문한 우도, 세계 각국의 아름다운 등대와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등대모형을 전시해 놓았다. 우도에서의 등대는 더이상 어둠을 밝히는 외로운 바다지킴이를 뛰어넘의 하나의 예술, 섬문화로 자리잡아 있다. 등대테마공원에서는 등대의 역사와 역할, 등대에서 일어나는 많은 재미있는 일들을 가깝게 접할 수 있다. 빛의 근원인 등명기와 등대원의 생활을 담은 영상실로 꾸며진 신등탑은 일년내내 일출에서 일몰까지 등대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전시관을 들어서면 등대가 배에 신호를 전달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모형이 빛과 소리, 전파신호(광파, 음파, 전파)등을 사용하는 것을 관람객들이 직접 버튼을 눌러가며 이해할 수 있도록 해놓아 눈길을 끈다. 또한 기와가 얹어진 중국식 등대, 신화에 남은 이집트의 팔로스 등대, 상하이항의 파고다, 독일의 브레머헤븐, 일본 최초의 양식 등대인 쓰루가만 입구의 다데이시사키, 1355년에 세워진 프랑스 코르투앙, 뉴욕 허드슨강 입구의 킹스턴 등 세계 곳곳의 다양한 등대를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운이 좋으면 우리가 어느 섬 한켠에서 우연히 만났을지도 모를 낯익은 등대를 발견할런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1906년에 세워져 한세기 동안 제주 바다를 밝혀 온 우도등대를 주목해야겠다. 우도 등대에서는 많은 것이 보인다. 속깊이 출렁대는 바다가 보이고, 말없이 투명한 하늘이 보이고, 또 저멀리 우뚝솟은 한라산이 풍광을 정겹게 한다. 또한 저편 제주도 성산항의 노란 등대도 맞은 편에서 바라보면 새롭게 정겹다.
반가운 소식 하나- 10월과 11월은 우도 8경인 주간명월이 가장 잘 나타날 때라고 한다. 배를 타고 해안 절경을 감상하다가 바다동굴의 내부에 들어가면 이글거리는 대낮의 달을 감상할 수 있다.
3. 소매물도 등대섬 통영항에서 1시간 30분. 소매물도 등대섬은 사진작가들이 가장 많이 찾는 섬답게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널리 알려진 섬이다. 벼랑 위에 등대를 얹고서 망망대해를 기암절경으로 대하고 있는 섬 전체의 모습이 한편의 그림같다. 소매물도의 등대를 보려면 고갯마루 분교터를 지나 산 뒤편으로 넘어가야 한다. 등대섬 등대는 1917년부터 무인등대로 불을 밝혔고 40년부터 등대지기들이 들어왔다고 한다. 등대섬은 경사가 급한 초지로 2,000평을 넘어서, 주변의 기암괴석과 어우러져 영화와 광고 촬영의 단골무대였다. 새하얀 등대와 갈색 초지, 푸른 바다, 검은 기암이 어우러진 풍광, 직접 눈으로 보고 논할 일이다. 또한 등대섬 선착장에서 정상의 등대까지는 기분좋은 산책길이 계속된다. 봄부터 양생화가 군락을 이루어, 여름에는 주황색 나리??2c 샛노란 원추리꽃, 보랏빛 맥문동꽃이 넘쳐나고, 특히 요맘때, 가을에는 구절초 무리가 볼거리이다. 하얀 등대와 계절마다 다른 야생화들, 소매물도를 더욱 아름답게 하는 것들이다. 4. 청산도 등대 하늘, 바다, 산이 모두 푸르다 하여 청산도라 이름 붙여진 섬. 완도항에서 45분, 뱃길 20km이다. 영화 서편제에서 진도아리랑을 불러제끼던 언덕배기, 등짐 울러 멘 아버지(김명곤)가 돌담길에 싸여 있는 황톳길을 내려오며 아리랑을 선창하자 딸(오정해)이 이에 화답하고 아들(김규철)이 북채를 힘있게 두들기며 서러움의 절창을 연출해 관객의 가슴을 쥐어짜던 성산도 당리마을 돌담길로 우리에게 더욱 친숙해진 섬이다. 청산도에는 그림으로 그려놓은 듯 꼬불꼬불 들길이 유난히 많다. 이 섬에 들어섰을 때의 느낌은 ‘회귀’였다. 수십 년 전의 과거로 돌아간 듯한- 마을을 감싸는 산등성이, 계단식 논, 야트막한 돌담, 꼬불꼬불한 좁은 마을길. 때때로 소가 밭가는 모습도 보인다. 청산도의 빨간 등대는 파랗고 푸른 청산도의 논과 밭과 하늘과 어우려져 더욱 강렬하게 시선을 끈다. 그리고 그 등대길을 따라 저멀리 보길도, 소안도 등 크고 작은 섬들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 색깔 있는 등대상식
해안도로를 달리다 보면 빨강하양노랑 등대가 보인다. 등대는 배들의 신호등이므로 그 색깔도 나름대로의 이유가 다 있다. 육지에서 보았을 때, 하얀 등대는 항상 오른쪽에, 빨간 등대는 항상 왼쪽에 있다. 어느 항구, 어느 포구를 가도 흰색은 포구에서 바다로 출항하는 쪽이고, 빨간색은 바다에서 포구로 들어오는 쪽이란다. 그렇다면 노란 등대는... 소형 선박이 다니는 간의 통로를 표시하는 등대이다. 배가 작으니 굳이 방향을 정할 이유가 없으니 노란색만 표시하고 있다. 그리고 포구가 아닌 암초나 바다위에 있는 노란 색과 검은 색 줄무늬가 있는 등대는 위험한 지역을 배들이 선회해 가도록 표시하고 있는 ‘등표’이다. 등대가 없던 때에는 무엇이 등대역할을 했을까? 근대식 등대가 세워지기 전에는 솔가지나 기름을 태워 배에서 포구를 볼 수 있도록 한 민간등대가 있었다. ‘도대불’이라 불리는 이 등대는 요즘은 사용하지 않지만 그 형태가 포구에 종종 남아있다. 지금도 차귀도를 바라보는 자구내 포구나 곳곳의 어촌 포구에서 볼 수 있으니 혹시 발견한다면 아~ 이게 ‘도대불’이구나하고 알고 넘어 가도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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