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얗다 못해 은빛을 낼 정도로 살결 뽀얀 나무들이 큰 키와 곧은 몸매를 뽐내며 손님을 맞아주는 숲이 있다. 팅커벨 같은 작은 요정이 살 것 같기도 한 신비로운 숲, 강원도 인제군 원대리 자작나무숲에는 하얀 절경에 반한 트레킹족들의 발길이 사계절 이어진다.
사진으로만 봤던 하얀 자작나무 숲을 찾아 강원도 인제를 찾았다. 자작나무 숲 안내소(원대삼림감시초소)를 지나 자작나무를 등지고 풀을 뜯어 먹고 있는 인근 승마장의 말들도 구경하고 금빛 머릿결 자랑하는 갈대도 구경하며 구불구불 잘 닦인 길을 걷고 걸었다. 둘이 또는 셋이 걷기 좋은, 아담한 길이었다. '이 코너만 돌면 하얀 숲이 나올까?' 설레는 마음 가득한 채 걷다 보니 어느 순간 자작나무 숲이 눈에 훅 들어왔다.
한눈에 늘어온 '속삭이는 자작나무숲'의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 빼곡히 들어선 수천 그루의 자작나무 모습에 절로 탄성이 나왔다. 몇 시간이고 이 숲에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근사했다.
여기저기서 사진 찍기에 바쁜 사람들이 많았다. 어떻게 찍어도 신비로운 느낌이어서 그랬을까? 다양한 각도로 사진을 찍느라 분주해 보였다. 3.2km의 임도를 걸어와야 만날 수 있는 이 귀족적인 절경은 카메라에 많이 담아갈수록 남는 장사인 것 같았다.
추운 지역에서 잘 자라는 나무로 알려진 자작나무는 껍질에 기름기가 많아 불에 탈 때 '자작자작' 소리를 낸다고 해서 자작나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박달나무만큼이나 단단하고 해충에도 강해 건축재료로 인기가 좋다고 한다. 경주 천마총에서 출토된 그림의 원재료도, 합천 해인사의 팔만대장경도 자작나무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자작나무 가지 사이로 올려다본 하늘이 새삼 신선했다. 유치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라는 옛 영화 제목이 떠올랐다. 확실히 빌딩 숲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 있으니 심신이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속삭이는 자작나무숲' 입구에는 '1년 후 받는 편지'를 보낼 수 있는 엽서와 우편함이 있다. 1년 전 이 숲에 다녀갔음을 기억하기 위해, 또 1년 후 나에게 작은 이벤트를 제공하기 위해 가볍게 엽서 한 장 적어 넣었고 신비의 숲을 떠나왔다.
임도(3.2km)를 지나 탐방로 1코스(자작나무숲)를 둘러보고 탐방로 3코스(1.2km)로 내려와 다시 자작나무숲 안내소로 돌아오는 데에 약 3시간이 걸렸다. 3코스는 작은 계곡을 따라 난 길로 되어 있다. '졸졸~'거리는 물소리를 벗 삼아 내려오니 심심할 틈이 없었다.
여름이면 푸른 잎이 하늘을 가려 풍성한 그늘을 만들어 주고 가을이면 노란 낙엽으로 물들며 겨울이면 더욱 하얀 설국이 되어 버리는 자작나무숲. 자작나무의 꽃말이 '당신을 기다립니다'라고 하니 자꾸 더욱 가고 싶어지는 숲이 아닐 수 없다.
지난해까지는 겨울에 입산 금지 기간이 있었지만, 올해 겨울에는 전면 개방한다고 한다. 물론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이니 겨울철 트레킹을 위해서는 아이젠은 필수다.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이용 가능하나 오후 2시까지만 입산이 허용되기도 하니 되도록 오전에 방문하는 것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