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불어온다. 이번 태풍은 어두운 밤 세찬 비바람을 앞세우고 다가선다. 폭풍우의 격정과 열정, 궐기와 역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티브를 문학, 음악, 화단의 소재로 건넸다. 태풍은 인간에게 삶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틔워 모든 것을 낱낱이 들여다보게 한다. 운명은 타고난 결정론이 아니라 새롭게 움직일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보인다. 귀가 먹은 베토벤도 운명을 두드리지 않았던가? 태풍은 고깃배를 뭍으로 끌어올린다. 가을태풍은 매섭다. 가을에는 북태평양 기단의 힘이 약해지면서 태풍의 길을 한반도 쪽으로 연다. 태풍이 오는 길목의 바다 수온이 태풍의 위력을 결정하게 된다. 지난 9월 홍콩의 귀여운 소녀 ‘링링’에 이어 말레이시아에서 등록한 수염 달린 물고기 ‘타파’가 스쳐가고 이달 들어 남태평양의 미크로네시아에서 태어난 미녀 ‘미탁’이 찾아왔다. 덕분에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도 전야제 없는 개막식을 치렀다. 자연은 정해진 것을 온몸으로 거부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만든다.
태풍전야에 민초는 숨을 죽이고 몸을 낮춘다. 한동안 풀밭 같은 고요가 이어진다. 민항식 시인은 ‘태풍아 불어라’의 첫 스탄자(stanza)에서 “태풍아 불어라/ 비바람아 몰아쳐라.// 탐욕의 이파리/ 잔애의 썩은 가지/ 치정의 묵은 뿌리를 뽑아버려라.”고 외쳤다. 지금도 베네치아 아카데미 미술관에는 조르조네의 풍경화 ‘폭풍우’가 전시되고 있다. 조르조네는 16세기 베네치아 르네상스 양식의 창시자로 풍경화의 장르를 개척한 화가다. 그의 그림 ‘폭풍우’는 번개 치는 하늘 아래 어깨를 솔로 걸친 채 아기에게 젖을 물린 여인, 건너편에 장총을 든 병사를 그렸다. 그림에서 아기에게 젖을 물린 집시 여인의 누드는 에로틱하기보다 어머니의 정감을 그대로 떠올리게 한다. 아기를 안은 집시 여인과 병사를 빼면 한 폭 전형적인 풍경화일 뿐이다. 영어 기상용어 'Typhoon'은 그리스 신화의 티폰(Typhon)에서 유래했다. 티폰은 대지의 여신 가이아(Gaia)와 거인 족 타르타루스(Tartarus) 사이에서 태어났다. 화가가 그림을 그리듯 신화는 지어낸 이야기다.
티폰은 100마리의 뱀 머리와 강력한 손발을 가진 무서운 용이다. 머리에서 엉덩이까지 인간의 모습을 하고 눈에서 번갯불을 뿜으며 하반신은 똬리를 튼 거대한 뱀의 반인 반수(半人半獸) 형상이다. 온 몸을 뒤덮은 깃털과 날개는 항상 그 자신이 일으키는 세찬 바람으로 휘날린다. 어깨는 하늘에 닿고 100개의 머리는 우주의 별을 스친다. 두 팔을 펴면 세계의 동쪽과 서쪽 끝을 닿고 날개를 펼치면 해를 가린다. 또한 산과 땅을 찢고 하늘을 가를 정도로 힘이 세고 그가 불을 뿜으면 그 어떤 것도 남는 게 없다. 티폰을 감당할 신도 없다. 티폰이 한번 지나간 자리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어느 날 제우스의 공격을 받은 티폰은 불을 뿜지 못하고 폭풍우만 일으키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티폰은「오디세이아」에 나오는 괴물 스킬라를 연상시킨다. 티폰은 태어난 곳에 따라 이름이 다르다. 대양과 먼 지중해를 낀 유럽에서는 폭풍우(暴風雨)를 ‘storm’이나 ‘tempest'로 쓴다.
북태평양 남서부에서 태어나 홍콩, 대만을 거쳐 일본, 중국, 우리나라를 거치는 폭풍우를 ‘태풍(Typhoon)', 북태평양 동부 카리브해와 멕시코만의 ’허리케인(Huricane)', 미국 대평원지역에서 발생하는 강력한 바람소용돌이를 일으키는 토네이도(Tornado). 뱅골만 인도양과 호주 부근 남태평양 해역에서는 ‘사이클론(Cyclone)'이라 부른다. 호주 부근 남태평양 해역 주민들은 ’윌리 윌리(Willy Willy)라고 부르기도 한다. 가을이 오면 북태평양고기압 세력이 약해지면서 비가 잦다. 우리나라 여름은 북태평양고기압의 전성기다. 호메로스는 ‘오뒷세이아’에서 삶과 운명을 질풍노도(疾風怒濤)로 표현한 이래 셰익스피어의 짧은 희곡과 베토벤의 소나타로 이어졌다. 여름 내내 무더위와 폭염으로 버틸 때 북태평양고기압은 갈길을 노린다. 그새 열대저기압은 요란(搖亂)을 중심으로 고온다습한 공기를 끌어 모은다. 태양열이 바닷물을 데우면서 수증기 덩어리를 만든다. 그 수증기 덩어리가 구름을 만들면서 대류현상을 일으킨다. 성경에서는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어디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고 했다.
태평양을 낀 극동지역과 카리브나 멕시코만을 품은 미국과 중미, 동북아 지역에 비해 유럽은 태풍이 그리 흔치 않다. 그래서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서도 태풍을 소재로 하는 풍경화가 드물다. 화가 조르조네는 16세기 베네치아 르네상스 양식의 창시자로 자연주의 화풍 속에 빛과 색채를 담은 다양한 이미지의 풍경화를 그렸다. 배경풍경을 그리는데 뛰어난 솜씨로 결국 새로운 풍경화 장르를 개척하였다. 태풍은 예술가다. 베토벤은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The Tempest)'로부터 받은 감흥으로 피아노 소나타 17번을 작곡한다. 그래서 그 곡의 부제를 '템페스트'라 부른다. 당시 베토벤은 귓병이 악화되어 요양을 받았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템페스트‘에서 폭풍우라는 사건으로 왕위를 동생에게 빼앗긴 형이 원수들에 대한 끓어오르는 증오와 분노를 화해와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내용으로 셰익스피어 작품 중 가장 짧다. 하루 동안, 한 장소에서, 한 줄거리 중심으로 극을 펼치는 이른바 ‘삼일치(삼단일)의 법칙’을 따르는 작품이다. 창밖에는 어둠이 짙게 드리웠다.
유리창에는 태풍이 몰고 온 빗방울 부딪히는 소리 요란하다. 오늘의 삶과 운명이 마구 두드린다. 먼 바다가 전하는 태풍의 기별이 귓전 가득하다. 그 자연의 아우성이 잃어버린 영혼을, 잊어버린 자신을 찾아 나서게 한다. 갯마을 어부들은 서둘러 고깃배를 뭍으로 끌어올려 뱃줄로 동여 메고 추수를 앞둔 농부들은 들녘에 나가 다 익은 볏짚단을 묶어 세웠다. 고요한 태풍전야를 틈타 뭍에 오른 뱃사람들은 고깃배를 뭍에 끌어올린 뒤 그리운 가족의 품에 안겼다. 태풍이 인간의 마음과 자연의 마을에 변화의 바람 몰아치고 잠자는 작가정신을 일깨운다. 캔버스를 마주한 화가의 손놀림을 재촉하며 작곡가에게는 오선지 위에 모티브의 감흥을 기록한다. 태풍은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삶과 운명을 바꾸는 세상에 운명의 등불을 밝힌다. 태풍은 끝내 운명을 바라보는 시선을 새롭게 하리라.
첫댓글 안녕하세요 첫글로 인사드림니다 글 잘읽어습니다 태풍피해가 너무커 마음이 아파요 피해로 선종하신분들 집 잃은분들 위하여 기도로 보답해야할듯 합니다
자연의 가르침을 새삼 깊이 깨닫습니다.
피해를 입은 이웃에게 위로를 보냅니다.^^*
미탁의 피해가 크네요...
별다른 피해는 없으시겠죠?
자연은 재해나 시련만큼이나 크나큰 은혜를 베푸는 게 아닐까요?
태풍이 지나간 자리,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하늘은 높고 푸르고 공기가 좋았습니다.
태풍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분들, 삶의 터전을 잃은 분들, 다친 분들...의 뉴스가 마음을 아프게 하네요.
모든 아픔들 딛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힘을 기원해봅니다.
여러가지 태풍에 관한 글...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태풍은 언제나 불어옵니다.
자연은 우리로 하여금 시련에 대해 새로운 도전과 극복의 길을 나서게 합니다.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 우리의 의지가 싹트길 빕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