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3. 22. 06;00
어제는 하루 종일 졸며 비몽사몽(非夢似夢)으로 '자몽'한 하루였는데
오늘도 자몽한 하루가 되려나.
먼동이 튼다.
인적 끊긴 적요(寂寥)속의 산길엔 내 발자국소리만 들린다.
사위((四圍)가 어슴푸레 분간이 되자 작년 제 동료를 보살펴준 일을 기억
하는지 제법 가까이 다가온 청설모가 나무를 오르내리고 나무사이를 건너
뛰며 내 앞에서 재롱을 부린다.
키 큰 나무인 느티나무, 산벚나무, 참나무는 아직 잎이 나오지 않고 있는데,
찔레나무, 국수나무, 혼잎나무 등 키 작은 나무 가지에 작고 앙증맞은 잎사귀가
나오기 시작한다.
키 작은 나무가 자기네 잎사귀 나오기 전에 햇볕을 많이 받아 얼른 크라고
시간을 양보하는 키 큰 나무들의 지혜가 돋보인다.
이 시간이면 여러 사람이 숨을 헐떡이며 산길을 오르내렸는데 오늘은
인적이 완전히 끊겼다.
코로나 역병(疫病) 바이러스가 인간세상을 한순간에 멈추게 하더니
숲속의 시간마저 빼앗았다.
인간은 워낙 영리하기에 종교에서 주장하는 종말을 피할 수 있겠지만,
일상을 빼앗긴 사람들은 희망이 보이지 않아 절망에 빠지기 시작한다.
07;00
구름 한 점 없는 새벽하늘은 새파랗다 못해 서늘한 색감을 뽐낸다.
근본천지인 하늘과 땅이라는 세상이 사람 손에 있는 건 아니다.
연둣빛이 비치기 시작하는 대자연은 제행무상(諸行無常)의 길을
걷는데 사람들만 일상을 잃은 채 정지된 시간 속에 허둥댄다.
탐욕(貪慾)과 아집으로 교만을 떨며 권력의 성찬(盛饌)을 누리는 권력자도,
평범한 일상을 누리는 사람도 다 같이 사람의 손으로 더하고 뺄 수 없는
시간이 흐른다는 걸 알까.
인간사회의 문명의 시스템이 일순간(一瞬間) 멈춘 인간세상을 구하려는 듯
검단산 위로 태양이 떠오른다.
산 중턱에 버들강아지가 피었다.
버드나무는 물을 좋아해 물가에서 잘 자라는데 의외로 높은 곳에서
강아지 털처럼 보송보송한 수꽃이 피었으니 근처 어딘가에 활발한 수맥
(水脈)이 있는 모양이다.
진정한 봄이 온 건지 후르르~♬ 하는 산새소리가 들리는데 처음 듣는
새소리다.
덩달아 꿩~꿩♪ 꿩의 소리가 들리고 직박구리, 동박새가 일제히 지저귀기
시작한다.
며칠 전 만났던 꿩은 앓는 소리를 냈는데 오늘 만난 꿩은 건강한 소리를
내니 벌써 짝짓기에 들어섰을까.
요즘같이 삶이 힘들게 느껴지고 가슴이 답답할 때 숲길을 걸으면 내면의
통증이 가라앉는다.
살짝 나기 시작하는 가녀린 잎을 보는 순간 가슴속에 남은 참담(慘澹)함이
사라지니 말이다.
07;30
산길을 돌아 내려가다 잠시 숨을 멈추고 전방을 주시한다.
자주 만나던 고양이가 가까이 다가가도 엎드린 채 잔뜩 긴장을 하고 피하지
않는다.
순간 고양이가 공중으로 뛰어오르고, 먹이를 쪼아 먹던 참새 한 마리가 황급히
날아오른다.
멋지게 공중제비를 돌았지만 참새는 생명을 건졌고 먹이를 놓친 고양이가
머쓱한지 재빨리 숲속으로 사라진다.
사람 손을 떠나 산속에서 길냥이로 살며 많이 배가 고팠나보다.
내일 새벽엔 빵이라도 가지고 나와 던져줘야겠다.
숲에서 뿜어내는 '피톤치드'와 새들의 청량한 노랫소리, 고양이와 청설모의
재주는 나에게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시켜줘 머리를 맑게 해준다.
어둠이 사라지는 숲속에서 나 혼자만이 자연의 경이(驚異)로움을 즐기고
경외감(敬畏感)을 느끼니 절망의 고통 속에 허우적대는 사람들에게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든다.
어디선가 날아온 '검은지빠귀'와 '호랑지빠귀'가 날아와 흐이여♬하며
울어대고, 오늘은 귀가 호강하는 산길이다.
산비둘기도 같이 울어대고 지빠귀 두 마리가 나의 기분을 바꿔주고 치유를
해주는 오늘은 어제같이 자몽한 하루가 되지는 않겠다.
2020. 3. 22.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