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시즌 초반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팀은 컵스였다. 108년 만의 월드시리즈 우승이 한 시즌 반짝하는 정도로 끝날 것인지 주목됐다.
전력 누수가 있긴 했지만, 타선의 리빌딩이 워낙 잘 이루어진 상태였다. 크리스 브라이언트(25) 앤서니 리조(27) 하비에르 바에스(24) 애디슨 러셀(23) 카일 슈와버(24) 등은 아직 싱싱한 20대 선수들이었다. 시카고 현지 언론도 "컵스의 리빌딩은 비단 한 번의 우승을 위한 것이 아니다"고 자신했다. 메이저리그는 오랜만에 월드시리즈 2연패 팀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쉽지 않았다. 컵스는 전반기 내내 고전을 면치 못했다(43승45패). 월드시리즈 2연패는 고사하고 포스트시즌 진출도 힘들어 보였다. 컵스와 적대적인 A J 피어진스키는 이때다 싶어 "2006년 화이트삭스가 떠오른다"고 한마디 했다. 2005년 화이트삭스는 88년 만에 블랙삭스의 저주에서 벗어나 메이저리그 최정상으로 우뚝 섰다. 떡 본 김에 제사도 지내기로. 화이트삭스는 겨우내 짐 토미와 하비에르 바스케스를 트레이드로 데려왔고, 폴 코너코도 연장 계약을 안겨줬다. 착실하게 전력을 보강한 화이트삭스는 전반기 57승31패로 월드시리즈 2연패를 향해갔다(리그 2위). 그런데 후반기 33승41패로 성적이 곤두박질 치면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90승72패). 당시 화이트삭스로서는 리그당 와일드카드가 한 장밖에 주어지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지구 3위 리그 5위).
피어진스키의 말에 자극이라도 받은 것일까. 컵스는 후반기 들어 디펜딩 챔피언의 위용을 보여줬다(49승25패). 92승70패를 기록하고 2년 연속 지구를 제패했다.
결과적으로 컵스도 포스트시즌에서 다저스에게 무릎을 꿇었다. 시카고 두 팀의 실패 요인은 비슷했다. 모두 불펜진이 발목을 잡았다. 2006년 화이트삭스는 선발진 평균자책점이 후반기에 소폭 상승했다(4.60→4.71). 불펜은 더 심했다. 선방한 전반기(4.06)와 달리 후반기에는 대책 없이 무너졌다(5.14). 후반기 메이저리그 전체 가장 적은 이닝을 소화했는데(178.2이닝)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다(선발진 전반기 569.2이닝 ML 1위 후반기 472.1이닝 2위). 컵스 불펜도 마찬가지. 후반기 투타 모두 상승세를 탔지만 불펜은 되려 힘이 떨어졌다(전반기 ERA 3.26 후반기 4.48). 포스트시즌에서도 선발진은 최선을 다했다(ERA 3.24 AVG .199). 그러나 불펜진이 디비전시리즈에 오른 8팀 가운데 가장 나쁜 평균자책점(6.21)을 남겼다.
이로써 월드시리즈 2연패를 마지막으로 장식한 팀은 여전히 1998-2000년 양키스로 남게 됐다. 내셔널리그 역사만 보면 40년도 더 지났다. 2009년 필라델피아가 2008년 우승한 이후 이듬해 월드시리즈까지 올라간 것이 그나마 가장 아까웠다(양키스 상대 2승4패). 포스트시즌에 챔피언십시리즈가 추가된 1969년 이후 월드시리즈 2연패를 이뤄낸 팀은 5팀이 전부다.
WS 2연패 성공한 팀
1. 오클랜드(1972-1974)
2. 신시내티(1975-1976)
3. 양키스 (1977-1978)
4. 토론토 (1992-1993)
5. 양키스 (1998-2000)

사실 테오 엡스타인 사장(사진)은 개막 전 월드시리즈 2연패에 대해 부담스럽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엡스타인은 "매우 어렵다"고 말하면서 "한 번 우승도 힘든데 연속 우승은 오죽하겠나"라고 덧붙였다. 아무리 최고의 팀이라도 우승 가능성은 12% 이하라는 것이 엡스타인이 말한 현실이다.
연속 우승을 노리는 팀이 이전해 포스트시즌을 뛰었다는 것도 불리하다. 포스트시즌 야구는 생각보다 여파가 크다. 더 많은 경기를 소화하면서 상당한 체력 소모를 하게 된다. 반대로 체력을 보충할 수 있는 시간은 그만큼 줄어드는데, 만약 월드시리즈 우승을 하게 되면 공식 행사도 많아질 수밖에 없다. 또한 포스트시즌 야구는 매순간 긴장의 연속이다. 변칙적인 출장으로 루틴이 깨지는 건 물론 정신적인 피로도가 엄청나게 쌓인다.
포스트시즌 제도가 변화한 것도 월드시리즈 연속 우승 가능성을 낮추는 부분이다. 1985년부터 챔피언십시리즈가 5전 3선승제에서 7전 4선승제로 개편됐다. 1995년은 와일드카드 도입에 따른 디비전시리즈가 추가되면서 최소 3경기, 최대 5경기가 더 늘어났다. 2012년은 와일드카드가 두 장으로 확대 편성이 돼 와일드카드 결정전이 생겼다. 일례로 2006년 화이트삭스는 현행 제도대로 시즌을 마쳤으면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대신 단판 승부인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치러야 됐기 때문에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12승이 필요해진 것이다. 최근 6년 간 총 12승을 따내고 월드시리즈 우승에 성공한 팀은 2014년 샌프란시스코가 유일하다.
구단 간 전력 불균형이 완화된 것도 절대 강자를 사라지게 했다. 빅마켓이 스몰마켓보다 유리한 입장에 있는 것은 명백하다. 자금력에서 비롯되는 차이를 극복하는 것은 아직도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사치세 규정이 강화되면서 이전만큼 자유롭게 돈을 쓸 수 있는 행동이 제한됐다. 스몰마켓이 아마추어 드래프트, 국제 계약 같은 방법을 통해 자생력을 갖춘 것도 한 몫 했다. 사무국은 단순히 추첨을 통해 배정했던 드래프트 보상 라운드(Competitive Balance Rounds) 지명권을 구단 수익과 규모를 기준으로 나누어주면서 이를 돕고 있다.
월드시리즈 2연패를 노릴 수 있는 기회는 이제 휴스턴에게 돌아갔다. 휴스턴은 창단 첫 월드시리즈 우승에 이어 또 한 번의 우승을 곧바로 추가할 수 있을까.
월드시리즈 승자의 저주라는 말이 있다. 와일드카드 시대 이후 총 23번의 월드시리즈가 열렸다. 올해를 제외한 22번의 월드시리즈 승자들의 이듬해 정규시즌 평균 승률은 .536(1908승1653패)였다. 파이어 세일에 돌입한 1997년 플로리다 같은 특수한 팀도 있었지만(54승108패) 2003년 에인절스(77승85패) 2007년 세인트루이스(78승84패) 2013년 샌프란시스코(76승86패) 2014년 보스턴(71승91패)도 5할 승률을 넘지 못했다. 오히려 월드시리즈에서 패한 팀들이 다음해 절치부심해서 전력을 가다듬었다. 우승팀보다 더 높은 정규시즌 평균 승률을 기록(2025승1535패 .569). 5할 승률에 실패한 팀은 1999년 샌디에이고(74승88패)와 2008년 콜로라도(74승88패) 뿐이었으며, 1997년 애틀랜타(101승) 2002년 양키스(103승) 2003년 샌프란시스코(100승) 2004년 양키스(101승) 2005년 세인트루이스(100승) 그리고 올해 클리블랜드(102승)는 100승까지 넘어섰다. 반대로 우승팀에서 다음 시즌 100승을 돌파한 경우는 같은 기간 나온 적이 없다.
휴스턴의 타선은 부족함이 없다. 타선의 삼대장(알투베 코레아 스프링어)이 굳건하고, 알렉스 브레그먼, 마윈 곤살레스, 율리에스키 구리엘도 위협적이다. 카를로스 벨트란(은퇴)과 카메론 메이빈(FA)이 팀을 떠났지만 대체할 수 있는 자원은 차고 넘친다. 데릭 피셔, 타일러 화이트, 콜린 모란에 이어 최고 유망주 카일 터커도 대기 중이다. 휴스턴 타선은 메이저리그 역사에 새겨질만큼 무시무시한 위력을 뽐냈다. 이러한 타선이 한순간에 빛을 잃어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가장 큰 고민은 단연 불펜이다. 후반기부터 하락세가 심상치 않았던 휴스턴 불펜은 포스트시즌 평균자책점이 5.40에 그쳤다(61.2이닝 37자책). 여기서 선발투수의 불펜 등판을 제외하면 평균자책점은 7.16까지 뛰어오른다(32.1이닝 26자책). A J 힌치 감독의 묘수로 불펜이 붕괴된 위기를 극복했지만, 요행수가 또 한 번 통하길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연속 우승을 노리기 위해서는 이전보다 더 철저한 준비가 요구된다.
제프 르나우 단장 역시 "불펜 보강이 최우선 과제"라고 밝혔다. 이에 조 스미스(2년 1500만)와 헥터 론돈(2년 850만)을 영입했다. 스미스는 현역 불펜 최다등판 7위 투수(698경기) 론돈은 한때 컵스 마무리를 맡았던 경력이 있다. 하지만 휴스턴의 고민을 깔끔하게 해결할 수 있는 선수들인지는 장담할 수 없다. 정작 휴스턴에 절실한 좌완이 아닌 점도 물음표를 남겨둔다. 휴스턴 입장에서는 하필 때마침 불펜 투수들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것이 불운했다.
과연 휴스턴은 한동안 나오지 않았던 월드시리즈 연속 우승을 이뤄낼 수 있을까. 한편 라스베가스 배팅업체에서 전망한 올해 월드시리즈 우승 배당률은 아래와 같다.
2018 월드시리즈 우승 배당률
1. 다저스 (5대1)
2. 휴스턴 (6대1)
2. 클리블랜드 (6대1)
4. 워싱턴 (7대1)
5. 양키스 (8대1)
6. 보스턴 (10대1)
6. 컵스 (10대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