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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안석(王安石)이 임제종 선사들과 사귀고 시집간 큰딸에게 『능엄경』을 읽으라고 달램
2023년 11월 23일
왕안석(1021-1086)은 아들 3명과 딸 세 명을 두었는데 큰딸과 둘째 아들은 어려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큰딸(실제로는 둘째 딸)이 시집가서 친정집이 그립다고 달마다 눈물을 흘리면서 시를 지어 아버지에게 올렸나 봅니다. 왕안석은 큰딸에게 바쁜 낮을 보내고 잠깐 한가한 저녁에 친정집 생각날 때마다 『능엄경』을 읽고 친정집을 잊고 모든 인연이 꿈 같다는 것을 알고 나면 시집에서도 연화장 세상이 될 것이라고 달랬습니다.
큰딸을 오안지(吳安持)에게 시집 보냈습니다. 오안지는 오충의 둘째 아들입니다. 시집간 큰딸의 친정아버지 왕안석은 신법(新法)을 주도하여 강경하게 개혁하였고 시아버지 오충(吳充, 1021-1080, 字沖卿,建州浦城)은 신법을 반대하였기에 큰딸이 두 집안 사이에서 입장은 말할 수 없이 곤란하였을 것입니다. 왕안석도 딸의 어려운 처지와 고통을 생각하고 달래는 시를 지어 보냈습니다.
오충은 1038년에 진사시험에 합격하고 1040년 국자감 직강(直講)이 되고 여러 관직을 맡았습니다. 희녕 9년(1076)에 왕안석이 재상에서 물러나자 왕규(王珪, 1019-1085)와 함께 재상직을 맡아 신종 황제에게 사마광(1019-1086)을 불러들여 신법을 폐기하자고 요청하였고 원풍 3년(1080)에 왕규와 채확(蔡確, 1037-1093)의 반대 때문에 물러나고 4월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오충은 줄곧 왕안석 신법을 반대하였습니다.
왕안석은 근현(斳縣, 현재 절강성 寧波市) 지방관을 지낼 때 어린 딸(1047-1048)이 돐을 넘겨 죽어 묻었습니다. 30살(1050)에 근현을 떠나 다른 곳으로 전근 가면서 무덤에 찾아가 읊을 시가 있는데 아버지가 딸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깊습니다. 개혁가가 되기 전에도 이렇게 감성이 곱고 깊은 사람이었답니다.
왕안석 가족을 보면 아버지 왕익(王益)은 여기저기 지방관을 지내다가 왕안석 19살(1039)에 강녕부(江寧府, 현재 남경시) 근무지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왕안석은 공부할 나이에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힘들었다고 합니다. 또 둘째 형님(王安道)마저 왕안석 31살(1051)에 세상을 떠나자 왕안석이 집안에서 장남 역할을 맡았다고 합니다.
왕익의 첫째 부인 서씨(徐氏)가 아들 2명(王安仁, 王安道)을 두고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다. 두 아들도 진사시험에 합격하고 관직을 지냈으나 모두 35살쯤에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다.
왕익의 둘째 부인 오씨(吳氏, 996-1063, 향년 68살)는 22살에 시집왔고 현재 강서성 무주 금계현(撫州 金谿縣) 명문가 오전(吳畋)의 딸입니다. 오씨는 성격이 부귀를 욕심내지 않고 절약하였고, 명예를 바라지 않고 시문을 잘 지었고, 마음이 따듯하여 첫째 부인의 아들 2명과 그들의 처자식들을 돌보았습니다. 또 자신이 낳은 아들들이 음서(蔭敍)로 관원이 되지 말고 반드시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관원이 되도록 열심히 가르쳤다고 합니다.
오씨 부인은 아들 5명(王安石, 王安國, 王安世, 王安上, 王安禮)과 딸 3명을 낳았습니다. 큰아들이 왕안석(1021-1086)입니다.
왕안석은 어려서부터 성격 별났는데 고집이 세고 또 씻지 않아 얼굴이 시꺼멓다고 합니다. 나중에 신법을 실행하는 동안에 많은 비난을 받으면서도 강행하였기에 재상에서 물러난 뒤 사람들은 그의 성격이 집요(執拗)한 재상이라는 뜻에서 “요상공(拗相公)”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왕안석은 외가 큰외삼촌의 손녀딸 오경(吳瓊)과 어려서부터 친하게 지내다가 결혼하였는데 부인 오경은 왕안석이 젊은 나이에 과거시험에 합격하고 출세하자 상당히 교만하였다고 합니다. 또 오경은 아들 2명과 딸 2명을 두었는데 풀어놓고 길러서 아이들도 교만하고 많은 사고를 쳤다고 합니다.
왕안석의 부인 오경(吳瓊)의 교만한 성격과 자녀 교육을 보면 왕안석이 딸에게 시집살이에 적응하라고 타이른 말뜻이 그렇게 가볍지 않은 것 같습니다.
왕안석의 마음과 태도가 강경하고 고집스러웠으나 54살(1074)에 신법(新法)이 좌절되고 또 56살(1076)에 큰아들이 병들어 죽은 뒤에는 성격이 상당히 부드러워지고 스스로 잘났다는 자존감도 내려놓았다고 합니다. 왕안석은 이 시기에 남경지역에서 도사와 스님들과 어울리며 불경을 풀이하는 서적도 지었습니다.
왕안석은 재상에서 물러나 강녕부(현재 남경시) 집에서 지내면서 임제종 11대 찬원 각해 선사(贊元覺海禪師)를 자주 찾아가 불법을 물었고 대답을 들었다고 합니다. 나중에는 임제종 황룡파(黃龍派) 진정 극문 선사(眞淨克文禪師)도 찾아가서 불법을 배웠다고 합니다. 특히 찬원 선사는 왕안석에게 경세(經世)를 하겠다는 강한 권력욕과 고집스러운 성격을 고치라고 타일렀고 왕안석이 이때부터 『능엄경』을 깊이 읽었다고 합니다.
송대 평론가 보문 스님(釋普聞)은 왕안석(王安石,1021-1086), 소식(蘇軾,1037-1101), 황정견(黃庭堅,1045-1105) 3명의 시문 경지를 비교하여 평가하였습니다. 그 가운데 왕안석이 강녕부 용안진(江寧府 龍安津) 나루터에서 아우 왕안례(王安禮)를 배웅하면서 아우에게 딸려서 개봉에 있는 딸에게 보낸 「送和甫寄女子」 시를 보고 왕안석 성격과 태도가 잘났다는 생각(豪逸之氣)과 고집스러운 성격(老健之節)을 깨끗하게 씻어내서 마음이 더욱 깊고 맑고 줄었다(幽遠淸癯)고 평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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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臨川文集』,卷三十,「送和甫至龍安微雨因寄吳氏女子」︰
荒煙涼雨助人悲,淚染衣巾不自知。
除卻春風沙際綠,一如看汝過江時。
「용안 나루터에서 아우에게 따려 보낸 딸에게 준 시」︰
바람에 흩어지는 굴뚝 연기와 차가운 빗방울을 보니 내 마음이 더욱 쓸쓸하고 슬픈데,
(너를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눈물에 옷깃이 젖었구나.
지금 따듯한 봄바람이 불어 나루터 모래톱에 파랗게 돋은 풀 말고는,
나루터 풍경 모두 네가 시집가지 전에 보았던 그대로란다.
* 왕안석이 “따듯한 봄바람이 불어 나루터 모래톱에는 풀이 파랗게 돋아났다.(春風沙際綠)”고 읊은 풍경에서 “풀이 파랗게 돋아났다”는 글자 “녹(綠)”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왕안석이 일찍이 남북 운하에서 양자강을 만나는 곳(瓜洲)에 배를 대놓고 현재 남경에 있는 집을 그리워하며 관직을 사퇴하고 싶은 생각을 나타낼 때 양자강 남쪽에 있는 남경지역에는 파랗게 풀이 돋아났을 것이라고 읊었습니다. 과주(瓜洲) 지역은 남북 운하에 있는 강소성 양주시 한강구(揚州市 邗江區)이며 양자강에 있는 강소성 진강시(江蘇省 鎭江市) 지역을 마주 보고 있습니다. 풀이 파랗게 돋았다는 녹(綠) 글자를 고르기 이전에 여러 글자(到、過、入、滿)를 넣고 소리 내서 불러보았다가 결국에는 녹(綠) 글자를 골랐다고 합니다. 왕안석이 이렇게 고른 녹(綠) 글자를 쓰고 깊은 정을 담아 딸에게 절구(絶句)를 지어 보냈습니다.
王安石,「泊船瓜洲」︰
京口瓜洲一水間,鍾山只隔數重山。
春風又綠江南岸,明月何時照我還?
洪邁(1123-1202),『容齋隨筆』,卷八,「詩詞改字」︰
王荊公王安石)絕句云︰“京口瓜洲一水閒,鍾山秖隔數重山。春風又綠江南岸,明月何時照我還?”吳中士人家藏其草,初云︰“又到江南岸”,圈去,“到”字,注曰︰不好,改爲“過”,復圈去而“改”爲“入”,旋改爲“滿”,凡如是十許字,始定爲“綠”。
宋、王安石,『臨川文集』,卷三十一,「次吳氏女子韻」:
靑燈一點映窗紗,好讀楞嚴莫憶家。
能了諸緣如幻夢,世間唯有妙蓮花。
외로운 등불 불빛이 창호지에 어른거릴 때마다,
『능엄경』을 잘 읽고 친정집 생각하지 말아라.
『능엄경』에서 말하듯이 모든 인연이 잠시 헛된 꿈 같다는 잘 알게 되면,
세상(시집)에서도 마음이 차분하고 맑아져 부처의 연화 세상이 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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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安石,「別鄞女」:
行年三十已衰翁,滿眼憂傷只自攻。
今夜扁舟來訣汝,死生從此各西東。
나이 서른 살(1050년)에 벌써 늙은이가 되어,
눈에 보이는 것마다 네 생각에 걱정스럽고 마음 아픈데 나 혼자 이러고 있구나.
오늘 밤에 배를 타고 떠나면 너를 영영 이별하는구나,
우리 부녀는 죽은 너와 살아있는 내가 지금부터 동쪽과 서쪽처럼 갈라지는구나.
宋、王安石,『臨川文集』,卷一百,「鄞女墓志銘」:
鄞女者,知鄞縣事臨川王某之女子也。慶曆七年(1047)四月壬戌前日出而生,明年六月辛巳後日入而死,壬午日出葬崇法院之西北。吾女生,惠異甚,吾固疑其成之難也,噫。
근(斳縣)에서 낳은 딸은 근현에서 지현(知縣)을 지내는 임천 왕씨의 딸입니다. 경력 7년(1047) 4월 일술일에 세상에 나왔고 이듬해 6월 신사일에 세상으로 들어가 죽고 이튿날(임오일) 숭법원(崇法院) 서북쪽에 묻었습니다. 우리 딸이 유별나게 아주 똑똑하기에, 나는 네가 자라서 어른이 되기 어렵겠다고 걱정하였는데 아! 어찌 그렇게 되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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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
1、『臨川文集』,卷一,「寄吳氏女子」(五言古詩)
2、『臨川文集』,卷二十八,「寄吳氏女子」
3、『臨川文集』,卷三十,「送和甫至龍安微雨因寄吳氏女子」
4、『臨川文集』,卷三十一,「次吳氏女子韻」
1、王安石(1021-1086),『臨川文集』,卷一,「寄吳氏女子」(五言古詩)︰
伯姬不見我,乃今始七齡。家書無虛月,豈異常歸寧?
汝夫綴卿官,汝兒亦搢綎。兒已受師學,出藍而更靑。
女復知女功,婉嫕有典刑。自吾舍汝東,中父繼在廷。
小父數往來,吉音汝每聆。既嫁可願懷,孰知汝所丁?
而吾與汝母,湯熨幸小停。丘園祿一品,吏卒給使令。
膏粱以晚食,安步而輜軿。山泉皋壤間,適志多所經。
汝何思而憂,書每說涕零?吾廬所封殖,歲久愈華菁。
豈特茂松竹,梧楸亦冥冥?芰荷美花實,瀰漫爭溝涇。
諸孫肯來遊,誰謂川無舲?姑示汝我詩,知嘉此林垌。
末有擬寒山,覺汝耳目熒。因之授汝季,季也亦淑靈。
宋、李壁,『王荊公詩注』,卷一,「寄吳氏女子」︰
(介父二女,長適吳安持,寶文閣待制。)
伯姬不見我,乃今始七齡。家書無虛月,豈異常歸寧。
汝夫綴卿官,汝兒亦搢綎。兒已受師學,出藍而更靑。
(諸本皆作搢珽非也。「玉藻」︰天子搢珽,非人臣所當用。據「蔡邕傳」云︰多士搢綎。公蓋本此。「說文」︰綎,系綬也,綎他丁反。『荀子』︰學不可以已,靑出於藍,而靑於藍,冰水爲之而寒於水。)
女復知女功,婉嫕有典刑。
(「平帝王后傳」︰爲人婉瘱。師古曰︰婉順也,瘱靜也,烏計反。)
自吾舍汝東,中父繼在廷。小父數往來,吉音汝每聆。
(中父謂和父也。小父當是純父。)
既嫁可願懷,孰知汝所丁。而吾與汝母,湯熨幸小停。丘園祿一品,
(「扁鵲傳」︰毒熨注︰以毒藥熨搭病處。此公自言舊疾稍平瘳。公以左僕射大觀文,食會靈觀使祿,故云一品。)
吏卒給使令。膏粱以晚食,安步而輜軿。
(願得晚食以當肉,安步以當車,無罪以當貴,淸淨以自娛。『戰國策』︰顏斶。「楚王英傳」︰使伎人奴婢鼓吹,悉從得乘輜軿。注︰軿猶屏也,自隱蔽之車。)
山泉皋壤間,適志多所經。
汝何思而憂,書每說涕零。吾廬所封殖,歲久愈華菁。
豈特茂松竹,梧楸亦冥冥。芰荷美花實,瀰漫爭溝涇。
諸孫肯來遊,誰謂川無舲。姑示汝我詩,知嘉此林垌。
末有擬寒山,覺汝耳目熒。因之授汝季,季也亦淑靈。
(『莊子、外篇』︰山林與皋壤與,使我欣欣然,而樂與樂未畢也,哀又繼之。公有「擬寒山詩」,晚歲作,深造佛理。「齊物論」是黃帝之所聽熒也,注聽熒疑惑也,又「人間世篇」而目將熒之,注其言辨捷使人眼眩。公次女適蔡卞,今所稱季是也。班婕妤賦,承祖考之遺德兮,何性命之淑靈。)
2、『臨川文集』,卷二十八,「寄吳氏女子」︰
夢想平生在一丘,暮年方此得優遊。
江湖相忘眞魚樂,怪汝長謠特地愁。
3、『臨川文集』,卷三十,「送和甫至龍安微雨因寄吳氏女子」︰
荒煙涼雨助人悲,淚染衣巾不自知。
除卻春風沙際綠,一如看汝過江時。
宋、李壁,『王荊公詩注』,卷四十二,律詩,「送和甫至龍安微雨因寄吳氏女子」︰
荒煙涼雨助人悲,淚染衣襟不自知。
除卻東風沙際綠,一如看汝過江時。
(劉孝標書︰泫然不知涕之無從也。杜詩︰春從沙際歸。)
4、『臨川文集』,卷三十一,「次吳氏女子韻」︰
(吳氏詩云︰“西風不入小窗紗,秋氣應憐我憶家。極目江南千里恨,依然和淚看黃花。”南朝九日台,在孫陵曲街旁,去吾園只數百步。)
孫陵西曲岸烏紗,知汝淒涼正憶家。
人世豈能無聚散?亦逢佳節且看花。
「再次前韻」︰
秋燈一點映籠紗,好讀楞嚴莫念家。
能了諸緣如夢事,世間唯有妙蓮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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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釋普聞詩論」(二則)︰
老杜之詩:備於眾體,是爲詩史。近世所論東坡(蘇軾,1037-1101)長於古韻,豪逸大度。魯直(黃庭堅,1045-1105)長於律詩,老健超邁。荊公(王安石,1021-1086)長於絕句,閒暇淸癯。其各一家也。然則荊公之詩,覃深精思,是亦今時之所尙也。
魯直曰:“荊公末年,小詩雅麗精絕,脫去流俗,不可以常理待之也。荊公「送和甫寄女子」詩云:‘荒煙涼雨助人悲,淚染衣襟不自知。除卻春風沙際綠,一如送汝過江時。’拂去豪逸之氣,屏蕩老健之節,其意韻幽遠淸癯,雅麗爲得也。”
(釋普聞)論曰:詩家云:鍊字莫如鍊句,鍊句莫若得格。格高本乎琢句,句高則格勝矣。天下之詩,莫出乎二句,一曰意句,二曰境句。境句易琢,意句難制。境句人皆得之,獨意句不得其妙者,蓋不知其旨也。所以魯直、荊公之詩,出乎流輩者,以其得意句之妙也。何則?蓋意從境中宣出,所以此詩作荊公集中之眼者,妙在斯耳。
魯直「寄黃從善」詩云:“我居北海君南海,寄雁傳書謝不能。桃李春風一杯酒,江湖夜雨十年燈”云云。初二句爲小破題,第三第四爲頷聯,凡頷聯皆宜意句,春風桃李但一杯而已,想像無聊窶空爲甚,飄蓬寒雨,十年燈之下,未見靑雲得路之便,其羈孤未遇之嘆具見矣。其意句亦就境中宣出。桃李春風、江湖夜雨皆境也。昧者不知,直謂境句,謬矣。
陳去非(陳與義,1090-1139)詩云:
“一官不辦作生涯,幾見秋風捲岸沙”,境也。著幾見二字便成意句。
予(釋普聞)亦嘗法之,「送求僧行者」云:
“山林夜雨厭孤寂,春風幾番沙草碧。衣盂無計若爲傳,負舂空墜腰間石”云云。已上皆古人未曾言之。雖然其來亦有所自也。
陳無已(陳師道,1053-1102)詩云:
“枯松倒影半溪寒,數個沙鷗似水安。”(境中帶意)
“曾買江南千本畫,歸來一筆不中看。”(意)
(宋)石屋詩云:“八峰春到了,雙澗雨晴初。”(境)
“小室鉤簾坐。”(境中帶意)
“人間無畫圖。”(意)
禁臠謂奪胎法者,石屋之詩見之。然其境句不勝耳。
又詩亡名:“千金卻買吳州畫,今向吳州畫裡行。”(意)
“小雨半收蒲葉冷,漁人歸去釣船橫。”(境)
此亦前橫之自出也。
予亦效顰(釋普聞,「效意境格」,其一)曰:“水闊天長雁影孤,眠沙鷗鷺倚黃蘆。半收小雨西風冷,(境)藜杖相將入畫圖。”(意)
又(其二)曰:“十里沙堤水滿湖,著霜蘆冷未全枯。曉來細雨藏鷗鷺,何處人間有畫圖?”
大凡但識境意明白,覷見古人千載之妙,其猶視諸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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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嘉泰普燈錄』,卷第二十三,「賢臣」(下),「荊公王安石居士」︰
字介甫,丁母難,讀書定林,往來蔣山,從贊元禪師遊。一日,問元祖師意旨,元不答,公益扣之,元曰︰公於般若有障者三,其近道之質一,更須一兩生來恐純熟。公曰︰願聞其說。元曰︰公受氣剛大,世緣深,以剛大氣,遭深世緣,必以身任天下之重,懷經濟之志,用捨不能,則心未平。以未平之心,持經世之志,何時能一念萬年哉?人多怒而學問,尚理於道,爲所知愚,此其三也。特視名利如脫髮,甘澹泊如頭陀,此爲近道。且當以教乘滋茂之,可也。公再拜,後於『首楞嚴』深得其旨。
又嘗問眞淨克文禪師曰︰諸經皆首標時處,獨『圓覺』不然,何也?文曰︰頓乘所演,直示眾生,日用見前,不屬古今,老僧即今與相公同入大光明藏,遊戲三昧,互爲主賓,非關時處。又曰︰一切眾生皆證圓覺,而圭峰易證爲具,謂譯人之訛,其義是否?文曰︰圓覺可易,則維摩亦可易也,維摩曰︰亦不滅受而取證,證與證義有何異哉?蓋眾生現行無明三昧,即是如來根本大智,圭峰之說,但知其具耳。公即領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