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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의 인격 그리고 프란치스칸 영성] (7) “누구도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에 관면을 줄 수 없다”
클라라, 프란치스코를 만나다
클라라는 포르치운쿨라에서 프란치스코를 만났다. 이 성당의 동정 성모상 밑에서 클라라는 프란치스코에게 자신의 부드러운 금발 머리를 자르게 하였다. 그녀는 자신의 귀족 옷을 벗고 회개자의 옷으로 바꾸어 입었다. 프란치스코는 몇몇 형제들과 함께 그녀를 안전한 장소인 바스티아 움브라(Bastia Umbra)에 있는 산 파올로(San Paolo) 베네딕도 수녀원으로 피신시켰다. 클라라의 가족은 그곳에 가서 클라라에게 집으로 되돌아올 것을 요구하곤 하였지만, 그곳에서 클라라는 보호를 받고 있었다. 그곳은 출입이 허락되지 않은 외부인에 대해 교황령의 통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클라라는 그곳에서 잠시 머문 후, 수바시오 산기슭에 있는 판조의 산 안젤로(Sant‘Angelo de Panzo) 베네딕도 수도원으로 옮겼다. 거기서 클라라의 동생 가타리나(Caterina-후에 아녜스라는 이름으로 바꿈)가 언니를 따라 이 운동에 함께하게 되었다. 삼촌인 모날도(Monaldo)가 와서는 강제로 가타리나를 집으로 데리고 가려 했으나 그의 이런 계획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프란치스코는 클라라와 그의 동생 아녜스를 성 다미아노 성당으로 보냈다. 그가 예언한 대로, 성 다미아노의 가난한 자매들의 회(Order of Poor Ladies of San Damiano)가 창설된 곳이 바로 이곳인 것이다. 이 작은 성당과 그곳 가까이에 있었던 수도원에서 재산이나 소유도 없이 관상의 삶을 시작하였다. 자신이 죽던 해인 1253년 8월 11일까지 클라라는 한 번도 성 다미아노 성당을 떠난 적이 없었다. 거기에서 클라라는 두 명의 교황(인노첸시오 3세와 그레고리오 9세)에게 자신의 자매들을 위하여 가톨릭교회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가난의 특전’을 허락받기도 하였다. 이는 철저하게 가난하신 그리스도께만 의탁하고자 했던 클라라의 의지를 표현하는 하나의 예이다.
클라라의 이런 의지는 교황마저도 꺾을 수 없을 만큼 강렬했었다고 한다. 그레고리오 9세 교황이 클라라에게 서약한 가난을 관면해 주겠다고 했을 때에 클라라가 교황에게 한 유명한 말이 있다. “누구도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에서 관면을 줄 수 없습니다!” 클라라의 이 말은 그레고리오 9세 교황으로 하여금 그 유명한 ‘가난의 특전’을 재확인하게 해준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클라라의 어머니 오르톨로나(Ortolana)와 또다른 동생 베아트리체(Beatrice)마저도 클라라와 그 자매들의 삶에 합류하였다. 이곳에서 클라라는 천신만고 끝에 작은 형제들의 회칙을 모범 삼아 자신이 쓴 회칙을 인준 받았다. 이것은 그녀가 자신을 창조해 주신 것을 찬양하면서 세상을 떠나기 바로 이틀 전의 일이었다.
복음적 삶 안에서 봉쇄 - 관상의 삶 실현
클라라의 관상의 삶은 외적으로 설교를 하러 다녔던 프란치스코와 그의 형제들의 삶을 보충해 주는 특전적 삶이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여기서 분명하게 언급해야 할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클라라가 프란치스코에게서 영감을 받아 선택한 삶의 방식이 ‘복음적 삶’이었지, 수도승적 삶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클라라의 첫 의도가 봉쇄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클라라가 봉쇄-관상의 삶을 거부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클라라가 선택한 첫 번째 삶의 방식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따라 살아가는 프란치스코의 삶과 같은 것이었고, 교회가 요구한 봉쇄-관상의 삶을 복음적 삶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여 살아갔고, 이 삶에 합류한 다른 자매들도 봉쇄-관상의 삶을 복음적 삶의 빛 안에서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수도 규칙서」(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에 의해 쓰였고, 교회가 인준한 수도회 규칙서)를 프란치스코의 복음적 삶의 「수도 규칙서」를 모델 삼아 봉쇄-관상의 삶에 적용하여 작성하였던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 클라라의 「수도 규칙서」는 가난과 작음을 살고자 열망하였던 프란치스코의 복음적 삶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부단히도 노력한 클라라의 이상이 담긴 것이기도 하고, 또한 프란치스코의 조언을 따라 그리스도를 따르는 ‘가난의 이상’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려는 클라라의 열정이 담긴 또 하나의 ‘가난의 특전’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실제로 클라라는 1219년 우리 작은형제회 역사 안에서 처음으로 모로코에서 다섯 명의 형제가 순교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자신도 모로코에 가서 복음을 살고 전파하다 순교하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을 표현하기도 했다고 한다.
프란치스칸 운동의 양대 기둥
사실 클라라는 프란치스코의 이상을 여성적인 섬세함으로써 가장 잘 이해한 프란치스코의 동료요 추종자였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클라라는 프란치스코에게 복음적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큰 영향을 준 여인이기도 하다. 이런 관점에서 보더라도 클라라는 프란치스코와 더불어 프란치스칸 운동의 양대 기둥이라 불릴만한 자격이 있는 성녀가 아닐 수 없다.
그렇기에 클라라에게 있어 ‘봉쇄’의 개념은 육신의 공간적 제약이라기보다는 고요와 침잠 안에서 그리스도를 사랑과 ‘동정’(compassion)의 시선을 의식하고 다시 그분께 시선을 돌려드리는 행위가 포함된 관계적 역동성인 것이고, 또한 이런 ‘역동적 바라봄’을 통해 우리에 대한 넘치는 사랑 때문에 우리 중 한 사람으로 오신 가난하신 그리스도를 자신들의 마음에 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의 인격 그리고 프란치스칸 영성] (8) 프란치스코, 사라센군 진영에 들어가 술탄을 만나다
성녀 클라라가 마음에 품은 봉쇄의 개념
클라라가 프라하의 아녜스에게 보낸 세 번째 편지에서 말하는 바가 바로 성녀 클라라가 마음에 품었던 봉쇄에 대한 개념을 잘 설명해 줍니다.
“이제 하느님의 은총으로, 모든 피조물 가운데 가장 고귀한, 믿는 이의 영혼이 하늘보다 더 위대하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늘들과 모든 피조물을 다 합쳐도 그 창조주를 담을 수 없지만(2역대 2,5; 1열왕 8,27 참조), 오직 믿는 영혼만이 그분의 거처이고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없는, 사랑만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진리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며, 나 또한 그를 사랑하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요한 14,21.23) 그러므로 동정녀 중에 영화로우신 동정녀께서 육신으로 그분을 품으셨듯이, 그대도 그분의 발자취, 특히 그분의 겸손과 가난의 발자취를 따른다면 의심할 여지 없이 그대의 순결한 동정의 몸 안에서 영적으로 그분을 항상 품을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대와 모든 사물을 담으시는 분을 그대가 담을 것이며 이 세상의 덧없는 다른 어떤 소유물보다 더욱 확실하게 가질 수 있는 것을 갖게 될 것입니다.” (21-26절)
술탄과 만남 우주적, 보편적 대화
프란치스코와 이 운동에 대한 주목할 만한 특징 중 하나는 프란치스코와 그의 추종자들이 우주적인 대화에 열려 있고자 노력했다는 점이다. 프란치스코는 이단자나 사라센인 그리고 강도도 만나기를 원했다. 그래서 그는 1211년 사라센인들의 땅을 향해 떠났다. 이전에 그가 갖고 있었던 기사의 꿈과 십자군으로서의 영광은 이제 사라센인들에게 평화를 설교하는 평화로운 십자군으로서 출정하고자 하는 진심 어린 열망으로 변하였다. 그러나 이런 그의 계획은 처음엔 실패하였다. 그가 타고 갔던 배가 폭풍을 만나 달마시아 해안에서 난파되어 프란치스코는 안코나(Ancona)로 되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219년 프란치스코는 십자군 전쟁 역사 안에서 가장 잔혹했던 제5차 원정의 중심지였던 이집트의 다미에타로 가는 데 성공하였다. 프란치스코가 이 전쟁터에 들어가고자 했던 첫 번째 이유에 대해 그의 전기 작가들은 그가 술탄과 이슬람인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다 순교하려는 열망에서였다고 전한다. 하지만 프란치스코가 이슬람 진영으로 들어가 술탄과 만나고자 했던 또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다는 점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는 그리스도교 십자군과 이슬람군 진영에 모두 이 전쟁이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며, 하느님의 뜻은 오로지 서로가 평화롭게 공존하면서 형제적인 삶을 사는 것임을 선포하기 위해 무장한 군인으로서가 아니라 무장하지 않은 ‘평화의 사자’로 이 전쟁에 참여하였다. 결과적으로 볼 때, 이 화해와 평화의 선포를 어느 정도라도 이해하고 받아들인 쪽은 십자군 진영이 아니라 이슬람 진영이었음은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다.
그해 가을 다미에타에 도착한 프란치스코는 당시 교황대사(펠라지오 갈바니 추기경)에게 사라센군 진영으로 들어갈 허락을 청했다. 여러 번의 거절 끝에 허락을 얻은 프란치스코는 일루미나토 형제와 함께 사라센군 진영으로 들어가 말렉 알 카밀 술탄과 대화까지 하였다. 그 술탄은 프란치스코의 이야기를 기꺼이 듣고자 하였고 프란치스코에게 성지를 방문할 허락까지 해줬다.
서로 안에서 공통의 하느님 인식
실질적으로 당시의 술탄은 프란치스코를 사랑으로 맞아주었을 뿐 아니라 프란치스코의 말에 크게 공감하여 프란치스코와 그리스도인들에게 크게 호의를 보여준 반면, 십자군 진영에서는 프란치스코의 이 평화의 설교에 냉대한 반응을 보였다고 전해지기 때문이다. 심지어 프란치스코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난 후 술탄은 그리스도교의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감탄해 마지않았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프란치스코는 이 술탄과의 대화를 통해 이슬람인들이 믿고 있는 하느님이 생명과 사랑과 자비의 원천이신 우주 전체의 하느님임을 깨달았다. 술탄 역시도 하느님을 경외하고 믿는 이로서 어려서부터 이슬람교의 하느님에 대한 신심을 키우며 성장했던 믿음과 자비의 사람이었다. 이 두 사람은 서로 안에서 공통의 하느님을 인식했을 것이다.
프란치스코가 이곳을 방문한 후 쓴 일련의 세 개의 성체성사와 관련된 편지들(백성의 지도자들에게 보낸 편지, 보호자 형제들에게 보낸 편지1, 2, 성직자들에게 보낸 편지)과 인준 받지 않은 수도규칙(1221년, 특히 23장)에서는 하느님의 우주적 보편성이 더더욱 강하게 드러나고 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프란치스코가 술탄과의 대화를 통해 그들이 믿는 하느님이 자신이 믿음으로 고백하는 하느님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을 뿐 아니라, 그 지역 이슬람인들의 믿음과 그들의 신앙 행위를 바라보면서 그들이 믿는 하느님을 통해 참으로 보편적이고 우주적인 하느님을 경험하였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의 인격 그리고 프란치스칸 영성] (9) “모든 사람은 하느님의 선하신 뜻을 기다리는 거지들”
술탄과 만남 - 공통의 하느님 인식
이전에도 어렴풋이 느끼고는 있었겠지만, 이제 프란치스코에게 있어 하느님은 좁은 의미의 하느님, 즉 가톨릭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이들만의 하느님이 아닌, 온 우주의 하느님, 모든 이들의 하느님이라는 사실이 더욱 분명해진 것이다.
실제로 프란치스코는 이 방문 이후에 이슬람인들의 살랏(Salat, 하루에 다섯 번 하느님을 경배하는 기도)에 탄복하여 그리스도인들도 하루에 적어도 한 번 같은 시간에 하느님을 경배하는 기도를 드릴 것을 제안하였다. 물론 이 제안이 그리스도교 세계에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지만, 이 제안의 배경이 바로 이슬람 지역에서의 체험과 관련이 있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사실 프란치스코와 술탄은 이 만남을 통해 서로를 적으로서가 아니라 형제로서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1220년에 십자군이 다미에타를 정복한 이후에, 프란치스코는 아마 성지의 그리스도교 유적들을 둘러볼 기회를 가졌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고 나서 프란치스코는 아크레(Acre, 현재 이스라엘 북부에 있는 항구도시로서 아코-akko-라고도 함)로 갔는데, 프란치스코와 그의 형제들은 술탄의 허락을 얻어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성지에 현존하게 되었다. 물론 그 후 오랫동안 수천 명의 작은형제들이 사라센인들에 의해 순교하는 고통의 시기를 겪기도 하였다. 프란치스코의 동방으로 여정에 대한 역사적 사실은 1220년에 다미에타에서 비트리의 야고보가 쓴 편지로 입증된다.
술탄과 만남 예언자적 행위
아마도 프란치스코가 당시 교회와 국가가 다 열광적이었던 십자군 전쟁에 대해 반기를 든 이 사건을 살펴보게 되면 프란치스칸 운동의 매우 중요한 한 부분인 ‘예언자적 행위’를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프란시스 드 비어(Francis De Beer)라는 사람이 「We Saw Brother Francis」라는 책에서 잘 설명해주고 있다.
사실 당시 십자군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었다. 즉, 전쟁과 정복을 통해 어떻게든 성지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복파’와 이를 외교적으로 해결해 가면서 성지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외교파’로 나뉘어 있었다고 한다. 당시 펠라지오 추기경이 정복파를 대표하는 사람이었다면, 당시 예루살렘의 왕이었던 장 드 브리엔(Jean de Brienne)이 외교파를 대표하는 사람이었다.
프란치스코는 십자군으로 행동하기를 거부하였으므로, 그가 한 예언자적 행위는 정치적이거나 외교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는 술탄 앞에서 자신이 단순히 “그리스도인”임을 선언하였다. 드 비어는 프란치스코의 이 행위가 논쟁을 위한 것이 아니라 증명을 위한 것이라고 기술한다. 프란치스코는 전적으로 주님 영의 이끄심에 깨어있고자 노력하였던 사람이었고, 또 세상이 선물이라는 점을 마음 깊이 인식하며 살았던 사람이었기에, 아무것도 아닌 것에는 “아니오”라고 말했지만, 복음적인 것, 즉 하느님의 선이 드러나고 그 선이 실현되는 것이라면 그 모든 것에는 “예”라고 말한 예언자 중 예언자였다.
그의 이런 예언자적 행위는 형제들이 사라센인들과 믿지 않는 이들 사이에 갈 것인지를 권고하고 있는 그의 1221년 ‘수도 규칙’(인준 받지 않은 수도 규칙) 16장에서 잘 드러난다.
“한 가지의 방법은 말다툼이나 싸움을 하지 않고 하느님 때문에 모든 인간에게 복종하고 자기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일입니다.”(6절)
이 첫 번째 방법은 진정한 순종과 관련된다.(참조: II첼라노 152, 봉사자 형제에게 보내신 편지 4절) 이것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선하신 의지를 기다리는 행위이다(1221년 회칙 23,5; 11). 주님에 의해 위로부터 권한을 받지 않으면 아무도 프란치스코에 대해 권한을 갖지 못했으므로(덕행들에게 바치신 인사 18절), 프란치스코는 가난한 자로, 모든 이에게 복종하며 간다는 것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 구걸하는 그리스도와 연결하고자 했던 프란치스코의 모습은 이에 대해 충분한 증거가 된다.
프란치스코는 모든 것을 선물로 받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이것이 바로 그로 하여금 모든 이를 형제와 자매로 받아들이도록 이끈 그의 인간성이다. 프란치스코에게 모든 사람은 하느님의 선하신 뜻을 기다리는 거지들이다. 그래서 프란치스코는 위의 권고를 한 다음에 바로 다음과 같이 권고한다.
“다른 방법은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일이라고 생각할 때, 그들이 전능하시고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느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믿고, 구세주요 구원자이신 아드님을 믿도록, 또한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입니다. 사실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7절)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의 인격 그리고 프란치스칸 영성] (10) 하느님을 섬기며 의탁하라는 주님의 목소리를 듣다
술탄과 만남 - 예언자적 행위
프란치스코의 예언자적 행위는 말씀,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증거하는 행위다. 프란치스코는 무엇이든지 하느님의 선하신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라면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러므로 프란치스코는 하느님의 선이 드러나는 상황에 대해서는 절대 “아니오”라는 말을 하기를 거부한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 1장 19절에서 말하는 바오로의 태도와 같은 것이다: “실바누스와 티모테오와 내가 여러분에게 선포한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이랬다저랬다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에게는 언제나 진실(예!)이 있을 따름입니다.”그의 예언자자적 행위는 하느님을 선하신 분으로서, 예수님을 당신을 통해 세상이 창조된 그런 분으로서 체험한 것과 일치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분의 가난으로 죄에 물든 세상을 구원하시는 분이시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알리는 프란치스코의 방법인 것이다.
이런 점을 숙고해본다면 프란치스코가 말하는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일이라고 생각할 때’라는 말을 우리는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른다. 프란치스코는 이 권고를 통해 우리가 어떤 점에서든 우위를 점한 상황에서가 아니라 자신이 자신을 낮추시어 우리와 같은 모습을 취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그리스도의 모습이 된 상황에서만,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선언하는 우리의 행위가 참되게 이루어지며, 그때 비로소 우리의 공로가 아닌 하느님의 선이 드러나게 되고, 하느님의 은총에 의해 상대방과 참된 인격적 관계, 형제적 관계로 들어서게 된다는 점을 말하고자 한 것이 아닐까.
여기에 바로 프란치스코의 예언자적 행위의 본질이 들어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것이 예언자셨던 예수님이 행하셨던 바이다. 물론 프란치스코가 이런 권고를 한 이후 그간의 역사 안에서 우리 프란치스칸들이 이런 프란치스코의 권고에 충실하기도 했지만, 배반의 삶을 살았던 때도 있었다는 점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5. 육화의 영성과 하느님의 겸손 - 프란치스코의 ‘작음’의 영성 1
앞서 살펴본 비트리의 야고보의 편지에 ‘미천한 형제들’(lesser brothers)과 ‘미천한 자매’(lesser sisters)들이라는 표현이 있었는데, 이는 현재의 우리 수도회 명칭(Ordo Fratrum Minorum-작은 형제들의 수도회-작은형제회)의 기원이 되는 말이다.
성 프란치스코는 자신의 위치를 힘이 있는 귀족이나 양반 계급에 두고자 하지 않았고, 오히려 하층민의 신분을 취하기를 바랐다. 사실 우리 수도회 이름을 더 정확하게 번역하자면 ‘더 작은 형제들의 수도회’라고 해야 한다. 왜냐하면, 여기서 등장하는 ‘미노르’(minor)라는 단어는 ‘더 작은, 더 미천한, 더 낮은’으로 번역되는 비교급이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의 전기에 의하면 앞서 간략하게 언급했듯이 하느님께서 프란치스코에게 세 번 구체적인 계시를 해주신다. 첫 번째는 스폴레토 계곡에서의 목소리를 통한 계시, 두 번째는 자신의 유언 첫머리에서 직접 언급하는 어느 나환우와 만남을 통한 계시, 세 번째는 산 다미아노 십자가 앞에서의 계시가 그것이다.
프란치스코가 처음으로 계시를 받은 것은 회개 이전인데, 그것은 그가 두 번째로 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스폴레토 계곡에서 야영하던 중 꿈속에서 목소리가 해준 계시였다. 이런 내용은 「세 동료의 전기」, 「익명의 페루지아 전기」, 「보나벤투라에 의한 대전기」가 모두 비슷하게 전하고 있는데, 다음 이야기는 「세 동료의 전기」에 나오는 이야기다.
그 꿈에서 한 목소리가 그를 화려한 궁의 무기 창고로 데려가 그 창고의 화려하고 웅장한 무기들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묻는다. “누가 너를 더 훌륭하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겠느냐? 주인이겠느냐? 아니면 종이겠느냐?” 그가 답했다. “주인(Dominus)입니다.” 그쪽에서 다시 물어왔다. “그러하다면 어찌하여 너는 종을 위하여 주인을 버리고, 머슴을 위하여 제후를 버리느냐?” 이에 프란치스코가 물었다. “주님(Domine), 제가 무엇을 하기를 바라십니까” “너의 고향으로 돌아가거라. 거기에서 네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듣게 될 것이다. 네가 본 환시를 다르게 알아들어야 할 것이다.”
프란치스코가 들은 이 계시는 모든 것이 주님께 달려 있고, 프란치스코 본인은 주님의 종으로서 모든 것의 주도권을 쥐고 계신 주님께 의탁하는 삶으로의 전환을 촉구하는 주님의 목소리였다.
이 계시와 더불어 프란치스코가 이렇게 낮은 위치를 택하고자 했던 더욱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하느님의 육화와 성체성사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인한 ‘자기-내어줌’의 신비를 계속해서 보았기 때문이다. 사랑은 자기 쪽을 향하지 않고 상대방을 향하고 자기-내어줌의 경향을 지닌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겸손, 하느님의 가난, 하느님의 작음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이것을 ‘자기-비움’(kenosis)이라고도 한다.
이 관점에서 프란치스코가 스폴레토 계곡에서 받은 계시를 설명해본다면, 주인을 섬기라는 하느님의 촉구는 자부적이고 자모적인 사랑에 의탁하라는 촉구하시며, 약하고 평범한 모든 곳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의 얼굴을 찾으라는 간청이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느님은 섬김을 받는 군주로서의 모습보다는 자녀를 보살피는 어머니로서의 모습을 지닌 분이시다. 이 계시에서 프란치스코에게 당신을 드러내시는 하느님은 군주로서의 주님이 아닌 사랑 가득한 부모로서 자녀를 위험에서 보호하고자 하시는 주님이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의 인격 그리고 프란치스칸 영성] (11) 프란치스코, 가난과 겸손으로 사랑이신 하느님과 일치
5. 육화의 영성과 하느님의 겸손 - 프란치스코의 ‘작음’의 영성 1
가난하신 하느님은 바로 이런 분으로서, 그리스도라는 원천적 성사 안에 숨어계시는 분이시고, 또한 심지어는 우리가 먹는 가장 기본적인 음식인 빵(밥)의 형상 안에까지 숨어계시는 분이시다. 이분은 이렇게 세상의 웅장한 논리나 큰 소리로서가 아니라 침묵과 겸손 가운데 잔잔하게 현존하시면서 그 사랑으로 강력한 일을 하시는 분이시다. 그렇기에 세상의 논리나 큰 목소리로서가 아니라 침묵과 논리를 넘어서는 사랑의 신비를 관상하는 가난하고 겸손한 이만이 이런 하느님을 알아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프란치스코가 선택한 가난과 작음은 바로 이런 차원에서 알아들어야 할 것이다. 프란치스코가 관상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보나벤투라는 주님의 가난과 겸손에 대한 프란치스코의 신심에 대해 이렇게 전한다. “그는 전심으로 우리 주님의 몸인 성체에 대한 사랑으로 불탔으며 자신을 그와 같이 낮추시는 사랑, 그와 같은 사랑에 찬 낮춤을 생각할 때면 경이에 차서 넋을 잃었다. 그는 자주 그리고 너무도 경건히 성체를 영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열중하도록 일깨워 주었다.” (「대전기」 9장 2항)
하느님의 이런 가난하고 겸손한 사랑을 잘 드러내 준 프란치스칸 신비주의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자코포네 다 토디(Jacopone Da Todi, OFM 1230~1306)이다. 그가 지은 시 중에는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계속해서 구애를 하시는 내용으로 점철되어 있는 시가 있다. 그 시의 시작 부분에서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구애를 하는데, 인간은 이 구애에 반응을 하긴 하지만 결국은 계속 다른 사랑을 찾아 하느님을 피하는 내용으로 이어진다. 이것이 시의 전반적인 내용이다. 하느님께서는 사랑으로 인해 계속 쫓아오시고 인간은 자기의 기만적 사랑을 찾아 진정한 사랑에서 계속 멀어지는 내용이 전부이다. 그런데 이 시의 맨 마지막에 아주 충격적이고 파격적인 하느님의 구애 말씀이 나온다. “정 그렇다면, 네가 나의 하느님이 되어다오!”
이 얼마나 놀랍고도 엄청난 겸손이요 자기 낮춤인가!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구걸을 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이 말이다. 그것도 다른 것을 구걸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당신 사랑으로 만드신 우리에게서 ‘사랑’을 구걸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이 한편으로는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하느님은 우리 인간에게 강요하시는 분이 아니라 당신의 그 사랑을 받아들여 사랑을 나누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자유로우신 본성으로 인해 우리에게 자유롭게 그 사랑에 함께하기를 간절히 바라시며 우리에게 구걸하시는 분이시다.
5. 육화의 영성과 하느님의 겸손 - 프란치스코의 ‘작음’의 영성 2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가난해야 하는 이유, 겸손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하느님의 사랑에 참여하고, 온전히 사랑이신 분과 일치하기 위한 것이다.하느님의 가난은 하느님께서 사랑이시기에 필연적인 하느님의 속성인 것이다. 중세의 우리 프란치스칸 학자들, 특히 요한 둔스 스코투스와 같은 학자들은 육화, 즉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신 이유를 이런 관점에서 이해하고자 했다. 즉 하느님께서는 단순히 인간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인간이 되시어 우리를 구속하신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사랑이 너무도 크시어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취하시어 우리 인간과 일치하심으로써 우리 인간을 완성으로 이끌어가시기로 영원성으로부터 계획하신 것이라고 주장한다. 달리 말하면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신 것은 인간의 죄라는 우연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느님 사랑이라는 필연에 의한 것이고, 이 하느님의 인간 되심의 주도권이 인간이나 악에 있지 않고 사랑의 원천이신 하느님의 의지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아마도 우리가 이렇게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시어 우리 삶 한가운데로 오시는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만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분이 당신을 너무나 낮추시어 내려오시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전능하신 하느님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도 하찮게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중세의 프란치스칸 학자들 이전에도 리옹의 이레네오(140~202)나 고백자 막시무스(580~662)와 같은 초기 교회 학자들도 육화를 그저 인간이 앓고 있는 병에서 치유해주거나 인간의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기 위한 하느님의 행위로보다는 인간과 우주를 완성점으로 끌고 가고자 하는 삼위일체 하느님 내부의 근본적인 계획의 관점에서 보고자 하였다.
자신의 스승이 둔스 스코투스 전문가였던 떼이야르 드 샤르댕 신부가 말하는 ‘오메가 포인트’는 바로 이런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이 물리적인 진화를 해 가는데, 우리 인간은 영적으로도 진화하여 그리스도로 완성된다는 것이 바로 떼이야르 드 샤르댕의 핵심적인 주장이다. 이런 사상은 둔스 스코투스나 보나벤투라 같은 신학자들과 사상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실제로 보나벤투라는 모든 피조물이 인간을 중심으로 서로 어우러져서 하느님께 수렴된다고 말한다. 물론 이 진화와 수렴 역시도 우리가 주도하는 것이 아닌 하느님께서 영원성으로부터 창조된 우주의 역사 안에서 주도해 가시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의 인격 그리고 프란치스칸 영성] (11) 프란치스코, 가난과 겸손으로 사랑이신 하느님과 일치
5. 육화의 영성과 하느님의 겸손 - 프란치스코의 ‘작음’의 영성 1
가난하신 하느님은 바로 이런 분으로서, 그리스도라는 원천적 성사 안에 숨어계시는 분이시고, 또한 심지어는 우리가 먹는 가장 기본적인 음식인 빵(밥)의 형상 안에까지 숨어계시는 분이시다. 이분은 이렇게 세상의 웅장한 논리나 큰 소리로서가 아니라 침묵과 겸손 가운데 잔잔하게 현존하시면서 그 사랑으로 강력한 일을 하시는 분이시다. 그렇기에 세상의 논리나 큰 목소리로서가 아니라 침묵과 논리를 넘어서는 사랑의 신비를 관상하는 가난하고 겸손한 이만이 이런 하느님을 알아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프란치스코가 선택한 가난과 작음은 바로 이런 차원에서 알아들어야 할 것이다. 프란치스코가 관상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보나벤투라는 주님의 가난과 겸손에 대한 프란치스코의 신심에 대해 이렇게 전한다. “그는 전심으로 우리 주님의 몸인 성체에 대한 사랑으로 불탔으며 자신을 그와 같이 낮추시는 사랑, 그와 같은 사랑에 찬 낮춤을 생각할 때면 경이에 차서 넋을 잃었다. 그는 자주 그리고 너무도 경건히 성체를 영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열중하도록 일깨워 주었다.” (「대전기」 9장 2항)
하느님의 이런 가난하고 겸손한 사랑을 잘 드러내 준 프란치스칸 신비주의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자코포네 다 토디(Jacopone Da Todi, OFM 1230~1306)이다. 그가 지은 시 중에는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계속해서 구애를 하시는 내용으로 점철되어 있는 시가 있다. 그 시의 시작 부분에서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구애를 하는데, 인간은 이 구애에 반응을 하긴 하지만 결국은 계속 다른 사랑을 찾아 하느님을 피하는 내용으로 이어진다. 이것이 시의 전반적인 내용이다. 하느님께서는 사랑으로 인해 계속 쫓아오시고 인간은 자기의 기만적 사랑을 찾아 진정한 사랑에서 계속 멀어지는 내용이 전부이다. 그런데 이 시의 맨 마지막에 아주 충격적이고 파격적인 하느님의 구애 말씀이 나온다. “정 그렇다면, 네가 나의 하느님이 되어다오!”
이 얼마나 놀랍고도 엄청난 겸손이요 자기 낮춤인가!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구걸을 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이 말이다. 그것도 다른 것을 구걸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당신 사랑으로 만드신 우리에게서 ‘사랑’을 구걸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이 한편으로는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하느님은 우리 인간에게 강요하시는 분이 아니라 당신의 그 사랑을 받아들여 사랑을 나누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자유로우신 본성으로 인해 우리에게 자유롭게 그 사랑에 함께하기를 간절히 바라시며 우리에게 구걸하시는 분이시다.
5. 육화의 영성과 하느님의 겸손 - 프란치스코의 ‘작음’의 영성 2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가난해야 하는 이유, 겸손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하느님의 사랑에 참여하고, 온전히 사랑이신 분과 일치하기 위한 것이다.
하느님의 가난은 하느님께서 사랑이시기에 필연적인 하느님의 속성인 것이다. 중세의 우리 프란치스칸 학자들, 특히 요한 둔스 스코투스와 같은 학자들은 육화, 즉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신 이유를 이런 관점에서 이해하고자 했다. 즉 하느님께서는 단순히 인간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인간이 되시어 우리를 구속하신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사랑이 너무도 크시어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취하시어 우리 인간과 일치하심으로써 우리 인간을 완성으로 이끌어가시기로 영원성으로부터 계획하신 것이라고 주장한다. 달리 말하면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신 것은 인간의 죄라는 우연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느님 사랑이라는 필연에 의한 것이고, 이 하느님의 인간 되심의 주도권이 인간이나 악에 있지 않고 사랑의 원천이신 하느님의 의지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아마도 우리가 이렇게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시어 우리 삶 한가운데로 오시는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만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분이 당신을 너무나 낮추시어 내려오시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전능하신 하느님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도 하찮게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중세의 프란치스칸 학자들 이전에도 리옹의 이레네오(140~202)나 고백자 막시무스(580~662)와 같은 초기 교회 학자들도 육화를 그저 인간이 앓고 있는 병에서 치유해주거나 인간의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기 위한 하느님의 행위로보다는 인간과 우주를 완성점으로 끌고 가고자 하는 삼위일체 하느님 내부의 근본적인 계획의 관점에서 보고자 하였다.
자신의 스승이 둔스 스코투스 전문가였던 떼이야르 드 샤르댕 신부가 말하는 ‘오메가 포인트’는 바로 이런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이 물리적인 진화를 해 가는데, 우리 인간은 영적으로도 진화하여 그리스도로 완성된다는 것이 바로 떼이야르 드 샤르댕의 핵심적인 주장이다. 이런 사상은 둔스 스코투스나 보나벤투라 같은 신학자들과 사상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실제로 보나벤투라는 모든 피조물이 인간을 중심으로 서로 어우러져서 하느님께 수렴된다고 말한다. 물론 이 진화와 수렴 역시도 우리가 주도하는 것이 아닌 하느님께서 영원성으로부터 창조된 우주의 역사 안에서 주도해 가시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의 인격 그리고 프란치스칸 영성] (12) 육화의 영성과 하느님의 겸손
“그분이 여러분을 높여 주시도록 겸손해지십시오”
5. 육화의 영성과 하느님의 겸손- 프란치스코의 ‘작음’의 영성 Ⅱ
겸손(humilitas)과 인간(homo)이라는 단어는 다 같이 ‘humus’(흙, 먼지)라는 라틴말에서 온다. 흙이 흙 자체로는 비옥한 땅이 될 수 없고, 오직 적절한 온도와 빛, 수분, 양분 등을 받을 때 비옥해질 수 있듯이, 인간 역시도 그렇게 흙과 같은 존재로서 하느님의 사랑과 하느님의 보살핌 속에서만 풍부한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온전히 고백하는 삶이 바로 가난한 삶이고, 겸손한 삶이다. 달리 말하면, 겸손하고 가난한 삶은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겨드리고 의탁하며, 그분으로부터 받는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하며 그 모든 것을 돌려드리는 삶을 사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에게도 자기 내어줌의 삶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 프란치스칸들이 살아가기로 서약한 ‘작음’과 ‘겸손’과 ‘가난’은 결국 하느님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또 다른 방식이며, 그런 가난과 자기 내어줌의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하느님께 돌려드리고 동시에 우리 서로 간에 나누며 살아가겠다는 약속인 것이다.
프란치스코는 성체성사 안에서 하느님의 육화를 더욱 강렬하게 체험하면서 그 사랑에 온 마음으로 감사하며 살고자 하였고, 또 그를 따르는 형제들도 그렇게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랐다. 이에 대한 단적인 예가 그가 자신의 형제들에게 보낸 편지에 들어있다.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께서”(요한 11,27)
사제의 손안에서
제대 위에 계실 때,
모든 사람은 두려움에 싸이고
온 세상은 떨며
하늘은 환호할지어다!
오, 탄복하올 높음이며
경이로운 공손함이여!
오, 극치의 겸손이여
오, 겸손의 극치여!
우주의 주인이시며
하느님이시고 하느님의 아들이신 분이
이토록 겸손하시어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하찮은 빵의 형상 안에
당신을 숨기시다니!
형제들이여, 하느님의 겸손을 보십시오.
그리고 “그분 앞에 여러분의 마음을 쏟으십시오”(시편 61,9).
그분이 여러분을 높여 주시도록
여러분도 겸손해지십시오(참조: 1베드 5,6; 야고 4,10).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당신 자신 전부를 바치시는 분께서
여러분 전부를 받으실 수 있도록
여러분의 것 그 아무것도
여러분에게 남겨 두지 마십시오. (성 프란치스코가 ‘형제회에 보낸 편지’ 26-29절)
5. 육화의 영성과 하느님의 겸손 - 프란치스코의 ‘작음’의 영성 Ⅲ
요즈음 코로나 바이러스 문제로 인해 온 세상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우리 삶에 있어 참으로 중요한 무언의 메시지를 전해주고자 하시는지를 숙고해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 존재가 얼마나 연약하고 보잘것없으며, 존재와 사랑의 원천이신 분의 도움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인지를 더 많이 숙고하게 해준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한순간도 어김없이 삶의 모든 것을 허락해 주시면서도 당신 자신을 계속해서 내어주시는 당신의 온전한 사랑을 성체성사 안에서 여실히 보여주시는데, 우리는 그런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한 채 기고만장하며 살아온 것은 아닌지 숙고해보아야 한다. 이 상황은 어찌 보면 우리더러 조금 더 겸허하게 하느님과 세상과 우리 자신의 관계를 살펴보라고 촉구하는 듯하다.
우리의 믿음의 삶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 중 하나는 주도권을 하느님께 넘겨드리는 일이다.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하느냐에 따라 은총도 주어지고 복도 주어진다는 ‘인과응보’의 정신구조를 어려서부터 배워왔고, 이런 정신구조에 젖어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이런 무의식의 논리를 바탕으로 생각하며 살아가다 보니 우리는 자연스럽게 우리 신앙생활 안에서도 모든 것의 주도권을 우리가 쥐려는 경향이 있다.
사실 주님은 당신 사랑으로 우리에게 거저 은총(gratia-무상의 선물)을 주시는데도 우리는 이것이 우리의 선업이나 공로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우리 공로나 선업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하느님께 주도권을 넘겨드리지 않는 신앙생활은 절대 믿음의 길이라고 말할 수 없다. 쉽게 말하자면 하느님만이 하느님이셔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주도권을 온전히 넘겨드리려는 깨어있음을 살아갈 때 우리는 우리가 지닌 하느님의 모상이 무언지를 알고, 하느님과 일치되어있는 참 자아를 발견하며 살아갈 수 있다. 사실 신앙생활이나 수도생활은 ‘깨어있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핵심이 들어있는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우리가 하느님께서 거저 주시는 은총에 얼마나 깨어있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어떤 중요한 일을 하고 살아가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것을 조금 더 철학적으로 말자면 행함(doing)이 아니라 존재(being)가 우리 삶의 화두가 되어야 한다. ‘참으로 내가 누구인가’는 내가 행하는 바나 나의 업적, 위치, 능력에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앞에 벌거벗겨진 채 서 있는 나’, ‘하느님과 일치되어있는 나’, ‘하느님 은총 안에 존재하는 나’를 얼마만큼 깨어 바라보는 만큼 알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마태오 복음을 통해서 “아버지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햇빛을 주시고 옳은 사람에게나 옳지 못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 주신다”(5,45)는 말씀이 의미하는 바에 우리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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