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24
예상이 깨어진다고 두려워 말라. / 김학중 목사
현대과학의 발전을 통해 인간이 얻은 가장 큰 능력들 중에 하나는 바로
‘정밀한 예측력’입니다.
태고부터 인간은 하나님께서 주신 놀라운 이성능력을 통해 미래를 예측해왔지만,
현대과학기술은 과거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정확하고 세밀한 예측을 가능하게 해주었습니다.
특히 상상을 초월하는 계산능력을 지닌 슈퍼컴퓨터들은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예측까지 현실로 만들었습니다.
슈퍼컴퓨터의 정밀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재난담당 기관들은 홍수, 태풍, 지진, 가뭄 등의 자연재해를 더욱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게 되었고,
제조업체들은 신제품의 성능과 문제를 미리 파악할 수 있게 되었고,
건설업체들은 추진 중인 토목공사의 구조적 문제와 환경적 영향을
미리 예측할 수 있게 되었고,
의료전문가들은 획기적이고 창의적인 치료기술을 고안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인들은 여전히 미래에 대하여 불안해합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확실하게 믿었던 예측들이 보기 좋게 빗나가는 경험들을 너무나 자주했기 때문입니다.
최근 수개월 동안의 남한과 북한의 관계만 하더라도,
전문가들의 예상이 빗나간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남한과 북한의 관계에 대해서는
군사 및 외교 전문가들조차 항상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전문가들이 고안해낸 해법들이 더 큰 문제들을 일으키는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현대인들의 ‘불확실성의 공포’는 오히려 더욱 커져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처럼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시대를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까요?
1. 분명한 목적은 길을 만든다. (9:1-15)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에 이어 아이 성까지 파죽지세로 정복하자,
당시 가나안 족속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엇갈렸습니다.
우선 대부분의 족속들은 이스라엘에 대적하여 결사항전하기로 공동결의 하였습니다.
“모든 왕들이 … 모여서 일심으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에 맞서서 싸우려 하더라” (9:1-2).
반면에 일부 족속들은 이스라엘과 평화조약을 맺으려고 일찌감치 마음먹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기브온’ 성의 주민들이었습니다.
당시의 기브온 성은 가나안 땅에서는 손꼽힐 정도로 큰 도시였기에,
아이 성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기브온 주민들은 강하고 용맹하기로 이름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앞에 여리고 성과 아이 성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것을 보며,
이스라엘을 대수롭지 않게 보았던 기브온 주민들의 예상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기브온 주민들은 싸워보겠다는 의지 자체를 완전히 잃었습니다.
오죽했으면 싸워보지도 않고 목숨을 구걸하기에 급급했겠습니까?
결국, 반(反)이스라엘 전선을 형성하는 데 앞장 서야 했던 도시가
오히려 이스라엘에게 항복할 방법을 찾는 데 앞장서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기브온 주민들의 태도는 이미 전쟁의 대세가 이스라엘 쪽으로 확실히 기울었음을 의미했습니다.
하지만 기브온과 이스라엘이 평화조약을 맺는 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이 되었던 것은 바로 이스라엘의 외교원칙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가나안의 원주민들과는 평화조약을 절대 맺지 말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 명령을 기브온 주민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브온 주민들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여리고 성의 라합이 구원 얻은 사건에서 증명되듯,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한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킨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와 평화조약을 세우도록 만들자’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므로 기브온 주민들이 이스라엘에게 외교사절단을 보내며 음모를 꾸몄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들의 외교사절단을 먼 여행길에 지친 사람들로 위장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외교사절단의 식량은 곰팡이가 생겨 변질되도록 만들었고,
그들의 신발과 옷, 그리고 기타 여행용품들은 모두 해어져 남루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외교사절단에게,
애처로운 모습으로 이스라엘의 동정심을 최대한 자극해서 단숨에 평화조약을 체결하도록 지시하였습니다.
마침내 여호수아를 비롯한 모든 이스라엘 백성 앞에 선 기브온의 외교사절단은
평화조약 체결을 재촉하며 비굴하리만큼 자신들을 낮추었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9:8).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정체를 의심하는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 앞에
자신들의 변질된 식량과 낡고 남루해진 여행용품들을 증거로 내밀었습니다.
‘우리들의 여행물품들을 보십시오.
우리는 아주 정말 먼 나라에서 왔습니다.’
기브온의 외교사절단이 내민 여행물품들은
의심 많았던 사람들에게조차 너무나 명백한 신분증명 자료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를 비롯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더 이상 의심하지 않고
기브온의 외교사절단과 평화조약을 덜컥 체결하고 말았습니다.
“여호수아가 곧 그들과 화친하여 그들을 살리리라는 조약을 맺고
회중 족장들이 그들에게 맹세하였더라”(9:15).
이 사건을 통해, 목적이 분명할 때 문제해결의 길이 열린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즉 ‘하늘이 무너지는’ 불가능의 상황에서도,
우리의 목표와 의지가 분명하다면 반드시 ‘솟아날 구멍’이 나타납니다.
날이 갈수록 전세계가 더욱 심각한 경제불황을 겪으며
창업자들의 시름도 이전보다 더욱 깊어지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특히 공장이나 점포를 마련하는 비용이 큰 부담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변을 조금만 둘러보면, 이런 부담조차도 털어낼 방법이 있습니다.
서울의 ‘이너프 살롱’이란 곳은
누구나 한 달에 최대 5일 동안 대관료 없이 빌릴 수 있는 공간입니다.
대신 사용자는 판매수익의 30%를 이 살롱의 운영자에게 지불해야 합니다.
이러한 장점 때문에, 지금까지 이곳은 네일숍, 카페, 티셔츠매장, 서점, 음식점 등으로 무한하게 변신해왔습니다.
이곳을 사용한 사람들도 대기업 임원이나 대학교수부터 시작하여,
일반주부나 학생에 이르기까지 다양했습니다.
‘제작 실험실’이라는 의미의 ‘팹랩(Fablab)’은
자본이 부족한 창업자들끼리 사무실과 공방을 나누면서
3D 프린터나 레이저 같은 고가의 장비들까지 빌려 쓸 수 있는 곳입니다.
1998년 미국 MIT의 거센필드 교수가 창안한 이 기업은
우리나라의 경우, 현재 서울에만 5곳이나 운영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가져야 할 의지는 바로 ‘생존의지’,
즉 ‘삶에 대한 의지’입니다.
수백 년 동안 인류는 바퀴벌레를 박멸하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다 기울였습니다.
특히 20세기 들어 강력한 살충제들이 개발되면서,
인간들은 바퀴벌레들을 주거공간에서 확실히 몰아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의 연구결과, 1980년대 이후 바퀴벌레들의 수는 오히려 지속적으로 증가했습니다.
그래서 최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의 곤충 연구팀은 이 미스터리를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바퀴벌레들이 살충제의 위협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하여
놀랍게도 자신들의 입맛까지 바꾸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즉, 과거에는 바퀴벌레들이 단 것을 좋아했지만,
사람들이 달콤한 미끼에 살충제를 타서 자신들을 위협하자,
불과 5년만에 단 것은 쳐다보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바퀴벌레들의 살아남겠다는 분명한 목적과 의지가
자신들의 입맛까지 완전히 바꾸어 버린 것입니다.
이 연구결과는 지난 달(5.23) 세계적인 과학학술지 ‘사이언스’지에 게재되었습니다.
이처럼 바퀴벌레조차 살겠다고 발버둥치는 마당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까지 투자된 우리의 생명을
우리가 무가치하게 버릴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 ‘살려달라’고 부르짖는 자들을 결코 외면하시지 않으시고,
그들을 위하여 살 길을 반드시 열어주시는 분입니다.
이 곳에 숨쉬기도 힘들 정도로 심한, 마음과 몸의 고통을 겪는 분이 있습니까?
이 시간 하나님께 간절하게 도움을 구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여러분에게 놀라운 구원의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모두에게 목숨만 겨우 부지하는 삶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넘치도록 풍성한 생명을 허락해주실 것입니다.
이곳에 모인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복과 은혜를 풍성하게 받아 누리게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2. 모든 원칙에는 예외가 있다. (9:16-27)
기브온 주민들이 이스라엘 백성과 평화조약을 맺은 지 3일이 지난 후에야,
여호수아를 비롯한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이 철저하게 속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즉 여호수아를 비롯한 이스라엘 백성의 안일한 예상이 여지없이 산산이 깨지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엄중한 명령에 따라,
원칙적으로 기브온 주민들을 한 사람도 살려두면 안 되었지만,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했기에,
이스라엘은 기브온 주민들을 살려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로 그들에게 맹세하였은즉
이제 그들을 건드리지 못하리라”(9:19).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명령을 또 다시 어기게 되었다며,
여호수아를 비롯한 백성의 지도자들을 강하게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에게는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과연 기브온 주민들을 살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을까요?
아니면 이스라엘 백성이 또 다시 어처구니없는 큰 실수를 저질렀던 것일까요?
일단 14절의 말씀은,
여호수아를 비롯한 이스라엘 백성이 또 다시 하나님을 무시하고
섣부르게 행동하다가 큰 잘못을 저지른 듯한 인상을 줍니다.
“어떻게 할지를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고”(9:14).
하지만, 저는 기브온 주민들의 구원이 여리고 성의 라합의 구원처럼,
하나님의 본래 뜻에 맞는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여리고 성에 잠입한 스파이들은 하나님의 엄중한 명령을 어기고
라합의 가정을 살려주겠다며 제멋대로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라합의 일로 이스라엘 백성을 책망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기브온 주민을 살렸다고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수백 년 후에, 이스라엘의 처음 왕이었던 사울 왕이 기브온 주민들을 멸절시키려고 하자,
이스라엘 백성은 3년 동안 가뭄의 재앙을 받았고,
사울 왕의 일부 자손들은 죽음으로 죄값을 치러야만 했었습니다.
가나안의 모든 원주민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은 것은
그들의 극심한 죄악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 중에 한 사람이라도 하나님께로 돌아와 진정으로 회개한다면,
그 사람을 살리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가나안의 원주민들 모두를 예외 없이 사형시키라는 원칙을 세우셨지만,
구원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생길 때면 스스로 예외를 만들어 내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원칙뿐만 아니라 예외도 만드는 권세를 지니신 분입니다.
속담 중에도 “예외 없는 원칙은 없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하지만 ‘예외’라는 말이 우리 국민들의 귀에는 썩 좋은 단어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외’는 온갖 비리와 부도덕을 일삼는 우리사회의 일부 특권층이 자신들을 방어하는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우리 청년들이 꽃다운 청춘을 나라를 위하여 희생하는 동안
일부 사회특권층 자녀들은 멀쩡한 신체를 가지고도 병역을 회피합니다.
일반 국민들은 단돈 천 원만 세금을 체납해도 미납수수료를 요구당하는데,
일부 사회특권층은 나랏돈 수천억 원을 떼먹고도 떵떵거리며 삽니다.
일반 서민들은 빵 하나만 훔쳐도 당장 입건이 되는데,
일부 사회특권층은 온갖 사악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곧 풀려나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일반 국민들은 일부 사회특권층의 부당한 ‘예외’에 치를 떨며 분노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예외’는 그런 목적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즉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예외의 구원, 예외의 은혜’는
단순히 특정인물들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외의 구원, 예외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에게
특별한 사명을 주십니다.
기브온 주민들에게 사기를 당한 것에 대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수아를 비롯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맹렬히 성토하자,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궁여지책으로 한 가지 대안을 내놓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모든 기브온 주민들을 육체노동 종사자들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여호수아는 기브온 주민들을 단순한 육체노동자들이 아닌,
특별히 하나님의 성소를 위하여 봉사하는 일꾼들로 만들었습니다.
즉, 여호수아는 기브온 주민들을 사람들이 부리는 종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들로 만들었습니다.
“너희가 대를 이어 종이 되어,
다 내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자가 되리라”(9:23).
그래서 기브온 주민들은 마침내
하나님의 성소에서 쓰일 제사용 땔감과 용수를 공급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한낱 사형수들이 거룩한 하나님의 성소에 대하여 막중한 책임을 맡은 사람들로 변화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기브온 주민들에게 ‘예외의 구원, 예외의 은혜’를 베푸신 목적이었습니다.
이처럼 특별한 사명을 위해 주어지는 하나님의 ‘예외의 구원, 예외의 은혜’는 성경을 관통하는 중요한 주제들 중에 하나입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의 하나님도, 신약성경의 예수님도 계속하여 예외의 사건들을 만들어내셨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마태복음 1장의 예수님의 족보에는,
마리아를 포함하여 모두 5명의 여인들이 등장하는데,
원칙적으로는 도저히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받아들여질 수 없는 인물들이었습니다.
아니, 그 중 일부는 명백히 사형감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예외의 인물들을 통하여
온 세상의 구세주 예수님을 탄생하게 만드셨습니다.
이 시간 이곳에 모인 우리 모두도
하나님의 ‘예외의 구원, 예외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죄악으로 말미암아 꼼짝없이 죽을 목숨들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을 보장 받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 각자에게도,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더 이상 각자의 탐욕과 허영이 아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이루기 위해 살라는 사명이 주어졌습니다.
우리 각자에게 독특하게 주어진 사명도 있지만,
우리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진 사명도 있습니다.
공통적으로 주어진 사명들 중의 첫째는
하나님의 ‘예외의 구원, 예외의 은혜’를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주는 것입니다.
다음 주일(6/23)부터 시작되는 ‘플러스원데이’가 바로 이것을 위한 행사입니다.
특별히 이번 ‘플러스원데이’의 주제는 ‘호락호락’,
즉 하나님께서 복과 은혜를 물 붓듯 부어주시는 ‘복 되고 즐거운 하늘가족’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번 기회에 여러분들 모두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사명을 즐겁게 감당해보십시오.
둘째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외의 구원, 예외의 은혜’를 베푸시듯,
우리도 다른 사람들에게 ‘예외의 사랑’을 베푸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사람들 중에 하나가
자신이 받은 은혜를 모르는 배은망덕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큰 은혜와 사랑을 받은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도 서로를 용서하고 품어주기를 원하십니다.
최근 우리사회는 ‘숨막히는 원칙주의’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일만 생기면 ‘법대로 하라!’며 원칙과 법률을 따집니다.
모두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외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을 움직이는 진정한 힘은 ‘예외의 사랑’입니다.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고, 성공할 수 없는 사람들이
특별한 사랑을 입고 우뚝 서게 될 때,
이 사회는 더욱 아름답고 따뜻해집니다.
최근 미국 아이오와 주에서는
선천적 기형으로 한쪽 팔의 절반이 없는 ‘니콜 켈리’ 양(23)이
‘미스 아이오와’의 왕관을 쓰는 이변이 벌어졌습니다.
바로 이런 사회가 따뜻한 감동이 넘치는 아름다운 사회가 아니겠습니까?
이제부터 우리 모두가 ‘예외의 사랑’이 가득한 세상을 만들어봅시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최근 여러분의 예상이 여지 없이 깨지는 경험을 하셨습니까?
하지만 그 실패의 경험 때문에 결코 좌절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그 실패의 경험을 가지고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십시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베푸시는 예외의 은혜를
마음껏 누려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