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에 이어 11장에서는 욥의 친구인 나아마 사람 소발이 욥과의 변론에 나섭니다. 소발 역시 엘리바스와 빌닷의 견해와 같이 욥의 자세를 비판합니다. 소발은 앞서 두 친구보다 더욱 강경한 어조로 욥의 논리를 반박하고 있습니다. 그는 친구 욥의 고난과 고통을 이해하고 위로하기보다는 도리어 회개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회개하면 하나님의 은총이 임한다고 하였습니다.
1. 욥을 질책하는 소발
1) 소발의 등장
욥에게 찾아온 친구들은 세 명이었습니다. 그중에 소발은 최연소자로 추정되며 엘리바스와 빌닷에 비해 말이 적은 편입니다. 그의 이름은 빌닷과 마찬가지로 성경의 다른 곳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욥의 많은 변론을 듣고 침묵할 수 없어 혈기방장한 청년 소발이 그 변론을 반박하고 나섰습니다.
a.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해야 함(약1:19)
b.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움(잠10:19)
2) 욥의 교만을 비판함
소발은 욥의 원망을 반박하며 욥이 의로움을 내세운 것을 지적하며 비판합니다. 소발의 충고는 종교적 경험을 앞세운 엘리바스와, 전통을 앞세운 빌닷과는 달리 직감이나 상식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자기에게 옳게 보이는 것은 참으로 옳은 것이라고 간주했습니다. 소발은 욥의 고난 이면에는 숨겨진 죄악이 있다고 판단하고 그것을 밝혀 내는 것이 곧 자신의 의무인양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그의 눈에는 욥이 자만과 위선에 빠져 죄악을 숨길 뿐만 아니라 합리화하는 가증스러운 존재로 비쳤던 것입니다.
a.끝이 없는 허망한 말(욥16:3)
b.겸손해야 할 인간(약4:6)
3) 죄보다 가벼운 주의 헝벌
소발은 욥의 잘못을 지적하기 위해 하나님은 말씀을 내시며 너를 향하여 입을 여시고 지혜의 오묘로 네게 보이시기를 원하노니 이는 그의 지식이 광대하심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하나님의 벌하심이 인간의 죄보다 가볍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욥의 죄와 하나님의 처치를 비교할 때에 오히려 욥이 하나님의 관대함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결국 소발은 애초에 의도했던 바와는 달리 욥의 위로자이기보다는 고소자요, 비방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a.죄악보다 가벼운 형벌(스9:13)
b.죄악을 따라 갈지 아니하심(시103:10)
2. 인간의 죄를 다 아시는 하나님
1) 인간이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
소발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간이 알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오묘하심과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의 무한하심 때문에 인간의 한계로 인하여 전능자이신 하나님을 온전히 알 수 없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방법은 무한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신을 나타내 주시는 것, 즉 계시하심에 의해 가능할 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인류 역사에 자신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a.권능이 지극히 크심(욥37:23)
b.측량할 수 없는 일을 행하심 (욥5:9)
2) 광대하신 하나님
소발은 하나님은 하늘보다 높으시나 네가 어찌하겠으며 음부보다 길으시니 네가 어찌 알겠느냐, 그 크심은 땅보다 길고 바다보다 넓다고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종종 하나님의 광대하심을 하늘, 음부, 땅, 바다 등의 자연을 통하여 비유하였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피조물로 비유하여 표현되실 수 없는 분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한계로 인해 피조물 중에서 가장 높고 깊고 넓다고 생각되어지는 자연을 통해 하나님의 광대하심을 비유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a.높은 하늘에 계심(욥22:12)
b.하나님 앞에는 음부도 드러남(욥26:6)
3) 전지하신 하나님
소발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하나님이 두루 다니시며 사람을 잡아 가두시고 개정하시면 누가 막을 수가 있느냐고 하였습니다.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두루 다니신다는 말은 시공간에 제약을 받지 않는 하나님께서 세상 모든 곳에 다니시면서 심판할 자를 찾으신다는 뜻입니다. 즉 이 세상 누구나 하나님의 감시하에 있다는 말입니다. 소발이 욥에게 하나님께서 심판하심에 대하여 능히 막을 자가 없다고 말한 것은, 욥이 당하고 있는 고난이 하나님의 징계라는 것을 분명히 전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사의 허망을 감찰하십니다. 소발은 허망한 사람은 지각이 있을 수 없다고 단정합니다.
a.주께서 음부에도 계심(시139:8)
b.영광이 천지에 뛰어나심(시148:3)
3. 욥의 회개를 촉구함
1) 회개하라
소발은 욥을 신랄히 비판한 후 그 결론으로서 겸손하게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께 회개하라고 하였습니다. 주를 향하여 손을 드는 행위는 주께 항복하는 뜻입니다. 즉 이제까지의 잘못된 행실을 회개하고 주께 용서를 비는 행위입니다. 이러한 행위는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 기도하는 모습으로 자주 묘사되고 있습니다(참조, 시28:2).
a.뜻과 마음을 살피심(계2:23)
b.행위가 주의 목전에 있음(호7:2)
2) 죄악을 버리라
소찰은 욥에게 여호와를 향하여 손을 들고 기도할 때에 손에 죄악이 있으면 멀리 버리라고 하였습니다. 손에 죄악이 있으면서 그 손을 들어 여호와께 간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우롱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서 손에 죄악이 있거든 멀리 버리라는 말은 다시는 같은 죄를 반복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사람은 연약하여 동일한 죄 악에 미혹될 수도 있습니다. 사실 참된 의미에서 회개란 마음속에서 죄를 발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죄를 입술로써 고백하고 최종적으로 그 삶에서 다시는 죄를 짓 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참조, 삼상7:3). 소발은 욥에게 자신이 말한 대로 하나님 앞에서 손에 있는 죄악을 멀리 던지고 주를 향하여 손을 들면 정녕 흠 없는 얼굴을 들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비록 욥에 대한 소발의 평가는 틀린 것이라 할지라도 그의 진술은 사실입니다.
a.우매 무지함(시73:22)
b.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함(잠28:1)
3) 소발의 위로
소발은 욥에게 하나님 앞에 완전히 회개하고 새로운 인격을 소유하면 네 생명의 날이 대낮보다 밝아진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생명의 날이 대낮보다 밝아진다는 것은 밝은 미래가 보장된다는 의미입니다(참조, 잠23:18;잠24:11). 즉 장수와 함께 삶의 풍요로움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소발은 욥에게 회개하여 사죄의 은총을 받으면 영적인 소망으로 인해 든든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소망 안에 거하는 자는 영혼의 안식을 얻게 됩니다.
a.하나님이 기쁨을 주심(전5:20)
b.주께서 안위하심(사12:1)
결론
우리는 11장에서 욥을 향한 소발의 충고가 자신의 직감이나 상식에 근거를 두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당연히 틀릴 수 없는 논리입니다. 우리도 자신의 경험이나 지식을 토대로 한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일은 없는지 점검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성도는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