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장님이 명시감상에 올라온 시 하나 골라서 감상문을 써 보라고 하셨는데요
제가 박목월시인 명시감상 즈음에 병원 입원하고 수술하고 하느라 그때 올려볼까 하고 써두었던 글
어디 갔는지 못찾겠어서 급하게 다시 써서 올려 봅니다.
이건 시가 아닌 그냥 인터넷에 떠도는 가십 정도 되는 글 모은 것입니다.
노래 하나 시한편에도 여러가지 사연이 있다는 정도로 그냥 재미로 보시면 좋겠습니다.
정확한 진실하고는 아무 관계도 없습니다. 사~실~
※ 글이 매우 깁니다. 천천히 읽으셔도 됩니다.
박목월의 "이별의 노래"와 양중해의 "떠나가는 배"
https://www.youtube.com/watch?v=Q9psm9rFMN4
메조소프라노 김청자가 부르는 이별의 노래입니다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 리
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아 너도 가도 나도 가야지
한낮이 끝나면 밤이 오듯이
우리의 사랑도 저물었네
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산촌에 눈이 쌓인 어느 날 밤에
촛불을 밝혀두고 홀로 울리라
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1950년대 초, 박목월 시인은 제자인 젊은 여대생과 함께 제주로 내려가 신혼처럼 살림을 차리고 지내고 있었다고 여러 기록에서 전한다.
시간이 흐른 뒤, 그 사실을 알게 된 박목월의 아내는 직접 제주로 남편을 찾아간다.
아내는 제주에서 남편과 젊은 여대생이 함께 살고 있는 집을 찾아갔다. 그런데 그녀는 분노하거나 소란을 피우지 않았다.
아내는 남편과 젊은 여인이 가난하고 힘들게 지내는 모습을 보고 마음 아파했다고 한다.
그녀는 두 사람에게
“힘들지 않느냐”, “생활이 어렵지 않느냐” 라고 묻고는 생활에 보태라며 돈 봉투를 건넸다고 한다.
추운 겨울을 버티라며 겨울옷까지 챙겨준 그녀는 남편을 비난하지도, 젊은 여성을 몰아내지도 않았다.
그저 조용히 돌아섰다.
아내의 이 행동은 두 사람에게 큰 충격과 감동을 주었고 아내의 깊은 사랑과 품위 있는 행동을 본 두 사람은 더 이상 이 관계를 이어갈 수 없다고 느꼈다고 한다.
박목월은 제주를 떠나기 전날 밤, 젊은 여인에게 마지막 선물로 이별의 시를 지어 건넸다고 전해진다.
슬프디 슬픈〈이별의 노래>는 그렇게 태어났다. 품위와 진정한 사랑, 깊은 울림을 품고!】 <출처 불명>
위의 글은 박목월시인이 작성하거나 시인에게서 직접 들은 사연을 적은 것이 아니랍니다.
다만 그렇지 않을까 그럴꺼야 정도의 짐작으로 최대한 시인과 그 여성 그리고 주변사람을 배려해 조심스럽게 꾸며진 이야기 같습니다.
세상일이라는 게 한치 건너 두치라고 사람들 사이로 떠도는 말은 보태지기도 하고 빠지기도 하고 이리저리 구르다보면 사실과는 많이 동떨어진 이야기가 되기도 합니다.
【6.25의 세찬 회오리바람이 채가시지도 않은 1952년 여름 대구에 들렀던 작곡가 김성태는 시인 박목월을 만나 이별의노래 시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시를 읽어 내려가는 사이 정말 주옥같이 아름다운 서정시라고 감동했습니다
"마음에 든 시는 낭송하는 사이 스스로 곡이 이루어진다" 고 말하는 그는 이곡도 그렇게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합니다.
고이는 악상을 다듬어 곡을 완성한 것이 그날밤 여관 모기장 속에서였다고 합니다.
간혹 이 가곡이 작곡자의 어떤사연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냐고 묻는 사람이 있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작곡자는 전혀 그런 사연은 없다고 합니다.
다만 "산촌에 눈이 쌓인 어느날 밤에 촛불을 밝혀두고 홀로 울리라" 라는 대목에서는 이따끔 그 자신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때가 있다고 합니다.】
<한국가곡전집 해설서, 해설 최영섭, 성음사, 1976.>
사실은 그게 아니고 하는 반론은 출처도 분명하고 지은이도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까마득하게 오래 전 제가 직접 이 시와 관련된 항목을 읽은 기억도 있습니다.
삼중당문고라는 문고본 책에 박목월시인이 지은 "구름에 달 가듯이"와 "밤에 쓴 인생론"이라는 수필집이 두 권 있었습니다.
거기에 이별의 노래에대해 시인께서 짧게 언급한 글이 있었습니다. 워낙 오래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시인께서도 이 시에 대한 사연을 알고싶어하는 독자들의 질문을 꽤나 많이 받으셨던 모양입니다.
그 사연에 대한 답을 한 것은 아니고 그렇더라는 사연을 소개하시고 다만 시인께서도 "산촌에 눈이 쌓인 어떤 밤에 홀로 울리라"는 소녀적인 감성은 겸연쩍어 하시는듯한 말씀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곁들여 병문안을 갔던 어떤 여인이 병이 위중했는데 시인에게 "선생님은 내세를 믿으세요?" 하고 질문했는데 시인의 대답은 없고 그날 오후 두시에 병실의 시계가 딱 멈추어 섰다는 사연을 소개하는데 아마도 그 여인은 오후 두시에 세상과 작별했던 것이 아닌가 짐작만 할 뿐이었습니다.
이건 딴 얘기
【박 시인은 총각시절인 1935년경 잠시 대구금융조합에 근무했었고 이 때 한 여인을 만나 3년여를 알고 지냈다.
그러나 결국 이별을 했는데, 1952년 대구 피난시절 우연히 그 여인을 다시 만났다.
그러나 그 여인은 병이 깊었고 머지않아 숨을 거두었다.
이 때 부산에 있던 국군군악대 지휘자 김성태(1910~2000)를 대구로 불러 시 한 편을 주며 곡을 붙여 달라고 부탁한다.
그 시가 유명한 가곡 '이별의 노래'였고 1952년 가을 대학생합창단이 군악대의 반주에 맞추어 노래됐다.】
이 사연이 오히려 박목월선생이 수필에서 언급한 병문안 했던 그 여인의 사연과 맞아 떨어진다는 느낌입니다.
많은 인터넷 글들이 '이별의 노래'와 여대생을 관련 짓는데 이 노래가 작곡된 건 제주살이 2년전이라, 사실이 아닌 듯 합니다.
양중해 시 "떠나가는 배"
저 푸른 물결 외치는 거센 바다로 떠나는 배
내 영원히 잊지 못할 임 실은 저 배는 야속하리
날 바닷가에 홀 남겨두고 기어이 가고야 마느냐.
터져나오라 애슬픔 물결위로 한된 바다
아담한 꿈이 푸른 물에 애끓이 사라져 나홀로
외로운 등대와 더불어 수심뜬 바다를 지키련다
저 수평선을 향하여 떠나가는 배 오! 설운 이별.
임 보내는 바닷가를 넋 없이 거닐면 미친듯이
울부짖는 고동 소리 임이여 가고야 마느냐.
양중해詩 변훈작곡 "떠나가는 배"는 가곡이지만 가왕이라고 불리는 조용필씨의 노래로 들어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cROhokL7Lk
【1955년 초봄, 겨울의 끝자락. 찬 바람이 볼을 스칠 때마다 옷을 여며야 했었다.
제주항 선착장에는 박목월을 비롯해 시인 양중해, 소설가 계용묵, 작곡가 변훈 등이 떠나가는 배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박목월 시인을 제외한 이들은 모두 6.25동란을 피해 제주로 피난 와 있던 문인, 예술인들이었다.
배에 탄 여인은 허씨 성을 가진 갓 스물을 넘긴 처자. 앳된 모습의 갸날픈 여인은 끝끝내 손을 흔드는 그들을 볼 수가 없었다.
뱃전에 등을 돌려 굵은 눈물 방울만 떨구며 찢어질 듯한 슬픔과 아픔을 참는 이 여인의 눈물로 제주 앞바다는 한 된 바다가 되었으리라.
그림이 그려질 듯한 이 장면에서 시가 연상되었고, 이어진 술자리에서 술집의 시멘트벽지를 뜯어 쓰여진 시가 '떠나가는 배'다.
시의 저자는 박목월(1915~1978)이 아닌 당시 제주중학교 국어교사인 양중해(1926~2007)선생이다.
그는 제주대 사범대학장으로 제주문화원장을 역임한 제주토박이 문인이었다. 제주의 마지막 선비란 별칭도 가졌다.
1955년 봄에 쓰여진 이 시는 1984년이 되어서야 양시인의 작품으로 밝혀졌다.】 (이정식의 가곡에세이)
《이 시는 그 당시 제주중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던 변훈(1926~2000)이 곡을 입혀 우리나라 대표적인 가곡이자 이별곡이 됐는데,
그는 가곡 '명태'와 '금잔디'의 작곡가로도 유명하다.
가곡 <떠나가는 배>의 무대가 제주도이며 작사 작곡된 때가 한국전쟁 중(1952년)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이제는 인터넷에서 ‘떠나가는 배’를 치면 수많은 자료들이 나온다.
그 중에 가곡 <떠나가는 배>가 쓰여지고 작곡된 스토리도 여러 종류 나와 있다.
어떤 것은 비교적 그럴듯하게 정리되어있고, 어떤 것은 그저 들은 이야기를 옮긴 정도다.
어느 것도 이 노래를 이해하는 데는 제법 도움이 된다.
진실의 문제가 그다지 중요한 것 같지는 않다.》
수양산 그늘이 강동80리를 간다고 워낙 유명한 시인이고 시다 보니 거기에 파생된 시가 있고 사연도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별의 노래가 제주에서 이별을 노래한 것이 아니듯이 떠나가는 배도 제주항에서의 박목월시인의 이별을 보고 지은 시는 아니라고 합니다.
작곡가 변훈 선생의 회고는 당시 전쟁중 제주에서 신병훈련을 받은 병사들이 전선에 배치 되기 위해 제주항을 떠나는 경우가 많은데 전장으로 떠나는 장병들과 가족들의 애끓는 이별장면을 보고 작곡한 것이라고 합니다.
세상에는 사실이 제대로 정확하게 전해지는 것은 생각보다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은이가 나서 애써 해명하지 않는 영향도 있다고 봅니다.
이건 진짜 완전 전혀 다른 이야기이지만
지금도 현역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는 대중가수 싸이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싸이가 강남스타일로 세상을 들썩이게 만들었을 때 그의 학력도 화제가 되었습니다.
미국 버클리 음대를 졸업했다는 것.
그런데 버클리대는 미국 서부에서 스탠포드대와 함께 최고의 명문대학으로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싸이가 나온 학교는 서부의 명문 UC버클리가 아니고 동부의 조금한 이름없는 아니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그저 그런 버클리음대라고 합니다.
어느 예능프로에서인가 신문 연예기사에서인가 싸이씨가 직접 얘기 하는 걸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가 서부명문 UC버클리대를 졸업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굳이 사실을 정확하게 밝히지 않고 그냥 얼버무리고 만다고 했습니다.
참말을 한 것은 아니지만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니까.....
청록파 동인 조지훈선생과 박목월선생의 시에는 또 다른 사연도 하나있습니다.
완화삼(玩花衫)
- 목월(木月)에게 -
조지훈
차운 산 바위 우에 하늘은 멀어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칠백 리
나그네 긴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은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여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조지훈 선생의 절창 "완화삼"에 대한 답시로 박목월선생의 "나그네" 인 것으로 세상에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분위기도 비슷하고 특히나 "술익는 강마을 저녁놀이여" 와 "술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이라는 구절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는 느낌입니다.
나그네
박목월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南道 삼백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ㅡ 지훈에게 ㅡ
하지만 박목월선생은 본인의 수필집에서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지훈이 보내온 완화삼에 대한 본인의 답시는 나그네가 아니고
"밭을 갈아" 라는 제목의 매우 수수한 시였다고~~~
나그네에 붙였던 ㅡ지훈에게ㅡ 는 "낙화"라는 시에 대한 화답이었다고 합니다.
밭을 갈아
박목월(朴木月)
밭을 갈아 콩을 심고
밭을 갈아 콩을 심고
꾸륵구륵 비둘기야
백양 잘라 집을 지어
초가 삼간 집을 지어
꾸륵꾸륵 비둘기야
대를 심어 바람 막고
대를 심어 퉁소 뚫고
꾸륵꾸륵 비둘기야
장독 뒤에 더덕 심고
장독 앞에 모란 심고
꾸륵꾸륵 비둘기야
웃말 색씨 모셔 두고
반달 색씨 모셔 두고
꾸륵꾸륵 비둘기야
햇볕 나면 밭을 갈고
달빛 나면 퉁소 불고
꾸륵꾸륵 비둘기야
첫댓글 감동입니다
그 여대생 스토리는
진짜라고 생갃했는데
아닐수도 있겠군요
길지만 유익한 정보
감사합니다 때로는
아는것보다 모르는것이 평안을 줄수도 있겠다 싶기도 합니다만
네 좋은 말씀입니다
때로는 모르고 넘어가는 것이 더 유익한 경우가 많은듯 합니다
모르는 게 藥이라구요
목월선생과 여학생 스토리는 진짜 있었던 일이고요 이별의노래는 그일 이전에 세상에 나왔다는군요
감동적이었어요 박목월시인님은 대단하시다는 걸로만 알았지만 정말 인격적으로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유선생님 앞으로도 유익한 정보 많이 보내주세요 항상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박목월의 < 이별의 노래 > 는 많이 들어서 익숙한데 양중해의 < 떠나가는 배 > 는 처음 들어 봤는데 너무 구슬프네요. 잘 들었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비화를 많이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