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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국가교육과정은 불필요하다
국가교육과정은 학생들에게 고통을 주면서, 반공투사가 아닌 자기계발의 주체가 되라고 하고, 불평등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도록 하는 부드러운 학살을 자행하고 있다. 그러면서 마치 열심히 교육과정을 따르면 누구나 높은 성취를 이룰 수 있고 전면적인 발달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모든 공부가 그렇듯이 상위 단계로 갈수록 그것이 심리적 요인에서건, 지능의 문제에서건 능력에 따른 차이를 만들어 내게 되어 있다. 그리고 교육은 이것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 결국 학생이 살아가는 제도적 삶, 즉 노동자 민중에 의해 통제되는 사회적 삶을 통해서만 해결이 가능하다. 따라서 이 글에서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국가수준의 교육과정이 교사의 교육과정 운영, 학생의 발달과 건강한 삶을 위해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국가수준 교육과정이 불필요하다고 이야기하면 마치 국가가 곧 해체되고 모든 국민이 공통점이 없어서 서로 대화조차 불가능한 상황이 될 것이라는 공포 마케팅이 횡행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국가교육과정은 잘 만들어지지도 않았고 그리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도 못하다. 그러니 국가수준 교육과정의 무엇이 잘못되었고 어떤 것들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보다는 없애자는 주장을 하는 것이 교육적으로 좋다고 생각한다.
교육의 문제를 개인적 차원에서 전면적 발달과 자유의 실현, 사회적 차원에서 평등의 구현이라고 할 때 교육과정은 개인의 전면적 발달과 그리 큰 상관이 없다. 다시 강조하지만 개인의 전면적 발달과 성장에 관여하는 것은 ‘어디까지 배웠나’, ‘어떤 교과서로 배웠나’가 아니라 ‘누구와 관계 맺느냐’, ‘노동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조직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다. 결국 전면적 발달은 학교와 학교에서 배우는 교육과정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정치가 결정한다. 나쁜 사회 정책과 프로그램, 불공정한 경제 질서, 저열한 정치, 불안한 노동이라는 조합의 결과물에서 개인의 전면적 발달과 성장은 불가능해진다
국가의 성격과 역할에 따라 국가수준 교육과정의 성격과 역할도 달라진다. 국가가 교육과정을 통해 무엇을 하려고 하느냐에 따라 국가수준 교육과정은 국민교육헌장이 될 수도 있고 민중교육헌장이 될 수도 있다. 한국은 사실상 초·중·고등학교에서 배우는 모든 내용이 국가에 의해 독점된다는 면에서 국민교육헌장이나 다름없다. 물론 교육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국가가 개입, 중재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국가의 개입과 중재는 아무리 선의가 있다고 하더라도 전체주의로 흐를 위험이 있다. 따라서 국가의 개입과 중재를 사회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의사 결정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교육이 필요하고 우선시되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사회적 취약 계층이나 노동자, 소수자들에게 더욱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이들의 필요와 요구를 개진하고 합의를 이뤄 가는 참여적 의사 결정 구조로서 ‘민중교육평의회’를 구성해야 한다. - 편집위원장 정용주
<차례>
4 바라보다 / 최승훈 기자
여는 글
6 그러므로 국가교육과정은 불필요하다 / 정용주
23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처하는 우리의 뻔한 자세 / 이충근
기획 1 여성 혐오
36 ‘혐오’의 정치학, 여성 상위라는 ‘환상’ / 강아지똥
55 한국 남자 멸종론: 청년 세대 남성들의 여성 혐오에 관하여 / 최태섭
기획 2 학교 민주주의 설계도 2
63 민주적인 학교, 답은 정해져 있다? / 권혁이
75 좌담 / 학교 민주주의? 이제 첫걸음을 떼지 않았나? / 오동석, 정경수, 김수현, 공현
교직, 마지막 1년
94 너를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지 않을 거야! / 안준철
삶을 위한 수학교육
109 학생들의 일상을 담아내는 수학 수업 / 이경은
청년 이슈
124 인터뷰 / “청년을 지우지 마라!” 청년좌파 대표 김성일 / 김환희
모두를 위한 학교 행정 ①
143 학교는 어떤 공장이어야 하는가 / 진냥
에세이
153 목 움츠리고 그저 그렇게 살아갈 수가 없다 / 김우
- 세월호 참사 1년 6개월, 우리가 아는 것과 알지 못하는 것
161 마을축제 하지 마라 / 박현숙
172 지리 교과, 너 어디니? / 조해수
179 나를 찾아 떠난 여행 / 임병찬
학생들 글
198 대한민국에서 ‘학생’으로 사는 것 / 경희중학교 2학년 학생들
리뷰
206 스펙이나 시류 편승이 아닌, 공부를 위하여 / 김석규
- <사람은 왜> 시리즈
211 과거사로 부를 수 없는 고통의 현재 / 한낱
-《숫자가 된 사람들》
230 사람이 돈으로 살아가는 세계로부터 빠져나와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가는 세계로 돌아가려는 이들의 즐거운 분투 / 장은수
《시골 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숲에서 자본주의를 껴안다》
241 새 책 나들이
243 잠깐 독서
245 조합원을 위한 특별부록 《선생님, 토끼가 되어 주세요!》 / 임종길
책 속에서
여기저기서 ‘도대체 왜 우리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누군가는 당연히 안 된다고 생각할까?’, ‘왜 당연한 것에 대해 이렇게 싸워야 할까?’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번 국정화 문제는 반대 여론이 압도적으로 우세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조사 결과 찬반이 팽팽하다고 한다. 이건 순전히 세대 갈등의 문제일까. 도대체 우리가 뭘 잘못 알고 있는 걸까. 아니면 역사를 가르치는 학교가 어디서부턴가 잘못되어 있는 걸까. 그런데 이것은 과연 역사 교과만의 문제일까? - 25쪽,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우리의 뻔한 자세〉, 이충근
남성들은 ‘된장녀’, ‘개념녀’ 등으로 자기 입맛에 맞도록 재구성한 여성을 이야 기하기 전에 여성들이 놓인 삶의 처지와 여성 혐오를 발언하는 주체가 누구인가 를 보았으면 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처지가 여성들의 잘못으로 인한 것이 아님에 도 혐오감을 부추기고 퍼뜨리는 사이버 공간에서 나와 좀 더 평등한 세상을 위해 현실에서 함께 일하고 맞서 싸우기를 바란다. - 54쪽, 〈‘혐오’의 정치학, 여성 상위라는 ‘환상’〉, 강아지똥
억울함이야말로 오늘날의 여성 혐오가 가지고 있는 특징일 것이다. 기본적으로 억울함이라는 감정은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생겨난다. 하지만 여성 혐오자들이 대체 무엇이 억울한지를 알기는 어렵다. 무엇이 부당하단 말인가? 비싼 밥을 사 주면 반드시 섹스를 해야 한다거나, 고백을 하면 반드시 받아 줘야 한다고 법으로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애초에 돈을 쓰고 그것의 대가로 섹스를 얻는다는 공식은 일방적으로 남자들의 뇌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이것이 무슨 공리라도 되는 양 신봉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세계 안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한다는 것을 억울해하며, 심지어 그 탓을 여자들에게 돌린다. 따지고 보면 이런 식으로 발현되는 형태의 여성 혐오의 목적은 일종의 가격 협상 같은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너의 가격이 너무 비싸니 된장녀나 보슬아치나 김치녀 같은 명칭을 붙여 가며 너의 가치를 떨어뜨리겠다는 것이다. - 59쪽, 〈한국 남자 멸종론: 청년 세대 남성들의 여성 혐오에 관하여〉, 최태섭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고 합니다. 구성원들이 자신의 권리 를 제대로 행사할 수 없다면 민주주의는 온전히 실현될 수 없습니다. 기본적인 권 리조차 박탈당하는 구성원이 그 공동체에 주인의식을 느낄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임금 인상과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을 하고 정당에 가입하여 정치 활동을 하 는 선진국 교사들은 차치하고라도 1일 근무시간이나 휴가권 같은 기본적인 권리조 차 행사하지 못하는 교사가 임금과 처우에서 차별받는 비정규직이 될 운명에 놓여 있는 대다수의 학생들에게 어떤 권리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 73쪽, 〈민주적인 학교, 답은 정해져 있다?〉, 권혁이
한국 사람들이 유난히 다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과 다른 것을 마주했을 때 공포나 두려움과 같은 감정을 느낀다는 연구 결과를 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늘상 다름의 홍수를 마주하게 됩니다. 학교에서 습득된 동일성의 신화가 한국 사람들에게 다름에 대한 공포를 심어 줬는지 혹은 자신과 다른 무언가를 마주했을 때 느끼는 두려움은 인간의 본능인 건지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살면서 일상적으로 다름을 마주할 수밖에 없고 한국 사회가 다름을 유난히 잘 마주하지 못한다면 학교가 저 그림의 변형 과정에서 해야 할 중요한 기능은 ‘다름’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익히도록 하는 게 아닐까요? 더 정확히는 나와 다른 사람과 부대끼며 살아갈 수 있는 능력 말입니다. - 149쪽, 〈학교는 어떤 공장이어야 하는가〉, 진냥
감추려는 자가 권력을 휘두르며 감추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아직 많은 것을 모르고 있다. 이는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려는 사람들과 구속하고 탄압하려는 저들의 한판 승부다. 그에 맞서는 우리의 대응은 하나일 수밖에 없다. 기억하는 것, 실천하는 것 그리하여 진실을 밝혀내는 것이다. - 160쪽, 〈목 움츠리고 그저 그렇게 살아 갈 수가 없다〉, 김우
공무원은 민원이 발생하지 않게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래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말이 있다. “축제위원회도 주민이지만, 민원을 제기하는 사람도 주민이다.” 맞는 말이다. 백 번 천 번 맞는 말이다. 그래서 슬픈 만남이었다. 마을 공동체를 복원하는 일, 그것은 인류가 살아남는 길이다. 환경을 보존하고, 생태계를 보존하려면 거대 도시로는 안 된다. 마을들이 자기의 색깔을 가지고, 문화를 만들면서 여기저기서 다양한 삶을 살아야 결국 살아남을 수 있다. 우리 후손들에게 적정기술을 가지고서 자기가 태어난 땅에서 살면서, 거기서 나는 것을 먹고, 거기 사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사는 법을 알려 줘야 모두가 쓸데없는 일에 힘을 쏟지 않고, 오늘을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이런 인류 생존의 큰 틀로 본다면 교통이 불편하다고 민원 전화 오는 것이 두려워, 혹은 민원 때문에 마을축제의 행사 내용을 바꾸고, 교통 불편을 초래하지 않는 외진 곳으로 축제 장소를 정하는 것이 정말 공무적인 발상인지 아니면 그 반대가 공무원이 가야 할 길인지 판단하고 일해야 한다. - 168쪽, <마을축제 하지 마라> 중에서, 박현숙
전화가 온다. 어머니다. 어머니는 다짜고짜 “너 어디니?”라고 물으신다. 학생은 그곳이 피시방이든, 매점이든, 친구네 집이든 대답은 한결같다. “학교” 또는 “도서관”. 어머니는 짧게 “알았다” 하고 끊으신다. 너무나도 일상적인 대화. 그저 위치를 묻고, 위치를 답하는 것으로 끝나는. 어색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다.
‘어디?’라는 질문은 그렇게 생각 외로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지리는 ‘어디?’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이곳과 저곳을 비교하기도 하고, 이곳을 자세히 보았다가, 멀리서 보기도 하고(이를 면으로 본다, 점으로 본다고 한다), 이것은 왜 여기에 있을까를 고민하기도 하며, 나는 여기서 이것을 먹고, 이것으로 먹고사는데, 저기 있는 저 친구는 왜 저것을 먹고, 저것으로 먹고살까를 궁금해 한다. - 173쪽, 〈지리 교과, 너 어디니?〉, 조해수
핀드혼의 명물 중에 하나는 리빙 머신Living Machine이라 불리는 정수 장치이다. 리빙 머신은 물을 깨끗하게 만드는 데 효과적인 수생식물과 미생물을 이용해 화장실과 주방에서 나오는 오수를 정화하는 장치이다. 핀드혼의 하수종말처리장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직접 가 보니 하수종말처리장이라기보다는 식물원에 가까웠다. 오수가 담긴 탱크마다 다양한 종류의 식물들이 자라고 꽃도 피워서 곤충들도 날아온다. 나는 그렇게 아름다운 하수종말처리장을 처음 보았다. 살아 있는 생물들로 정화를 하고 있다 보니 다른 화학물질들에 민감하다. 때문에 이를 알고 있는 핀드혼 주민들은 화장품이나 화학물질들을 변기에 버리지 않도록 주의한다고 한다. 환경과 자연을 생각하는 핀드혼 주민들의 이런 세세한 노력이 있기에 생태 마을 핀드혼은 이어지고 있었다. - 191쪽, 〈나를 위해 떠난 여행〉, 임병찬
중2 때는 무엇 하나 집중을 못한다. 특히 누가 있을 때 더욱 힘들다. 예를 들어 책을 읽을 때 집중하면 힘들다. 왜냐? 주변에서 속닥댄다. 심지어 등굣길에 노래 듣기도 힘들다. 이어폰만 꽂으면 중2병이라고 한다. 나는 발라드를 좋아한다.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좋아했다. 이것도 중2병인가?
나도 집에서 놀림 받는다. 여자 친구랑 전화하면 중2병, 노래 들으면 중2병, 책 읽으면 중2병. …… 다들 중2 때의 기억을 잊었나? – 204쪽, 〈대한민국에서 ‘학생’으로 사는 것〉, 박용희
시설 폭력의 시작은 ‘개인’을 없애는 것이다. 개인의 판단대로 선택하고 행 동하는 것이 아닌, 시키는 대로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존법을 각인시키는 것. 형제복지원에서 일어난 폭력의 양상은 19세기 미국 농장주들 사이에서 불 문율로 통했던 노예 훈련법과 닮아 있다. 처음 매를 맞을 때는 ‘내가 왜 여기 오 게 됐을까’, ‘내가 왜 맞아야 하는가’ 질문을 던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유 없는 구타가 반복되면 사람의 마음은 공포로 가득 차고, 내 눈 앞에 있는 사람이 나 와 같은 사람이 아님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혼이 나갈 정도로 “불안, 초조 이런 거밖에 없는 나날들”(48)을 보내면 체념의 시간이 도래한다. ‘어떻게 하면 덜 맞을까’, ‘어떻게 하면 배고픔을 달랠 수 있을까’로 질문이 전환되고, 규율을 쥐고 있는 자의 눈치를 끊임없이 보는 몸이 만들어진다. - 221쪽, 〈과거사로 부를 수 없는 고통의 현재〉, 한낱 _교육공동체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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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기대되는데 언제 나의 손으로 올까 기다려진다
오~~ 오늘은 11월19일. 11+12월호. 노력과 고생이 마구마구 느껴져요.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잘 읽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알라딘에 숙제도 했고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