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2장 9-16절. 아나니아가 바울에게 안수하고 세례를 줌. 요약설교
9절.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에게 말씀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1. 바울과 함께 기독교인들을 잡으러 가던 군사들은 예수님의 임재로 인한 큰 빛은 보면서도, 바울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소리는 듣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동행자들이 주님의 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했는데, 9장 7절에서는 <동행하는 사람들이 소리만 들었다>고 한 말씀과 모순이 되지 않습니다.
즉 동행자들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우레 소리 같이 들었으나 무슨 말씀인지는 알아듣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바울과 동행하는 군사들은 정오의 햇빛보다도 훨씬 더 강렬한 초자연적인 빛과 우레 같은 소리는 들었지만, 예수님께서 바울에게 하시는 말씀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못 알아들었던 것입니다.
만일 군사들이 예수님이 바울에게 하시는 말씀을 알아들었다면, 바울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소리를 듣고 바울을 배신자로 체포했을 것이고, 아나니아도 체포해서 바울이 기독교인 아나니아와 내통하여 유대교와 산헤드린 공회와 유대 나라를 배반했다고 고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10절. 내가 이르되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네가 해야 할 모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
1. 내가 이르되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
바울은 자기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을 즉시 <주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말은 바울이 예수님을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으로 믿었다는 신앙 고백입니다.
즉 바울이 <주님>(Κύριε)이라고 부른 것은 히브리어로 <아도나이>(אדני: my Lord: 나의 주님)라는 뜻으로서, 구약의 여호와(יהוה) 하나님을 감히 직접 부르지 못하고 ‘아도나이’라고 부르는 유대인들의 호칭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고 말씀하시자, 바울은 즉시로 나사렛 예수님을 <주님>(Κύριος: 아도나이:אדני) 즉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이 얼마나 극적인 대반전입니까?
이처럼 바울은 나사렛 예수를 박멸하려다가 ‘여호와 하나님’으로, ’주 하나님‘으로 믿었습니다.
그러고선 바울은 주님께 <내가 무엇을 하오리까?>라고 물어보았습니다.
이 말씀은 사도행전 2장 37절에서 오순절 때 베드로의 설교를 들었던 유대인들이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면서 회개하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2. 이르시되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네가 해야 할 모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
바울은 다메섹에 기독교인들을 체포하기 위해서 들어가려고 했는데, 예수님은 이제 바울에게 성령 받고 새사람 되기 위해서 다메섹에 들어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1절. 나는 그 빛의 광채로 말미암아 볼 수 없게 되었으므로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손에 끌려 다메섹에 들어갔노라.
1. 햇빛보다도 더 밝은 빛 속에서 주님을 만나본 바울은 육신의 시력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가 햇빛만 보아도 시력을 잃게 되는데, 햇빛보다도 훨씬 더 밝은 빛을 보았으니, 바울의 눈이 온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눈에는 비늘 같은 것이 망막을 덮어버렸습니다.
이처럼 망막을 두꺼운 막이 감싼 것은 그래도 하나님이 안구를 보호하시기 위한 보호조치였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세상 빛을 잃음으로써, 신령한 세계를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날마다 기도하고 성경 말씀에 은혜 받아서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 복된 생활 하시기 바랍니다!
12절. 율법에 따라 경건한 사람으로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아나니아라 하는 이가
1. 아나니아란 사람은 원래 율법에 따라 모든 경건 생활에 흠이 없어서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들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처럼 유대교에 철저했던 아나니아도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이렇게 아나니아가 철저한 유대교인이면서도 예수님을 믿은 사실은 바울 이외에 또 다른 한 사례가 됩니다.
그래서 바울이나 아나니아의 경우는 지금 바울의 설교를 듣고 있는 유대교 골수분자들에게 좋은 모범이 되고 있습니다.
사실 오순절 때 베드로의 설교를 들었던 군중들은 ’어찌할꼬‘ 하면서 예수 죽인 일을 회개하고, 예루살렘 교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지금 자기를 죽이려고 핍박하는 군중들을 향해서 자기처럼 예수님을 여호와 하나님으로 믿으라고 간증 전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때 아나니아는 무척 고민했습니다.
인간적으로 틀림없는 사실을 믿고 바울에게 가지 않을 것인가, 아니면 성령님의 말씀을 믿고 바울에게 가서 안수할 것인가?
아마 아나니아는 내가 환상을 잘못 보았고, 성령님의 음성을 잘못 들었을 것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나니아는 인간적인 틀림없는 사실보다는 성령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로 했습니다.
이처럼 내 생각보다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님의 감동을 순종할 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13절. 내게 와 곁에 서서 말하되 형제 사울아 다시 보라 하거늘 즉시 그를 쳐다보았노라.
1. 아나니아는 바울이 기독교인들을 체포하려고 다메섹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꼭꼭 숨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나니아가 기도하고 있을 때, 주님이 환상 중에 아나니아에게 나타나셔서, 직가(strait street)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 찾아가 바울에게 안수해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행 9:10-11).
그러자 아나니아는 주님께 바울이 자기 같은 기독교인들을 체포하려고 온다는데, 어떻게 바울 앞에 스스로 찾아가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바울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할 전도자임을 말씀해주셨습니다.
14절. 그가 또 이르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그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1. 그가 또 이르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조상들의 하나님이란 이스라엘 백성들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세와 다윗은 조상들이 섬겼던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 조상들을 특별히 자랑하고, 조상들이 섬긴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열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청중들에게 조상들의 하나님이란 말을 하면, 유대인들은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유대인의 조상들이 섬긴 여호와 하나님이 바울을 택하였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여호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야곱과 모세와 다윗을 택하여 지도자로 삼으신 것처럼, 여호와 하나님이 바울을 당신의 종으로 택하셨다는 말입니다.
2.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신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는 바울같이 원수로 대적하는 죄인 괴수도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용서하시고, 구원하신다는 진리를 알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유대교인들은 하나님의 뜻이란 오직 모세의 율법을 열심히 노력해서 잘 지켜야만 의인이 되고,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바로 율법주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가르쳐주신 사상은 ‘은혜주의’요 ‘주권사상’입니다.
3. 그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의인>이란 나사렛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의인>이란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자기 백성을 죄악에서 건져낼 메시아를 가리킵니다.
이사야 53:11.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이처럼 아나니아와 바울이 예수님을 <그 의인>이라고 지적한 것은 예수님이 백성들의 죄를 친히 담당하시고, 백성들을 죄에서 건져내신 메시아라는 뜻입니다.
4.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선택하시고, 알게 하시고, 보게 하신 데 이어서 음성을 듣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여러 가지 체험을 통해서 확실히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베드로나 요한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직접 체험한 것처럼, 바울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고, 음성을 들었고, 복음 신앙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보고 들은 것을 바울은 전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우리들도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고 중생한 체험을 전해야 할 것입니다.
15절.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네가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
1. <그를 위하여>란 바울이 이제 자기를 위한 삶이 아니고, 예수님을 위한 삶을 살게 되리라는 말씀입니다.
<네가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은 바울이 예수님이 부활하여 여호와 하나님 되신 것을 본 것과 여호와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바울에게 하신 말씀, ‘네가 이방인의 사도가 되리라’는 것을 모든 사람 앞에서 증언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증인>은 자기가 본 것과 들은 것에 대해서 재판 법정에서 증언을 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예수님은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님의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16절. 이제는 왜 주저하느냐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
1. 왜 주저하느냐?
바울처럼 큰 죄를 지은 죄인도 하나님의 크신 사랑 앞에서 주저할 필요가 없습니다.
바울처럼 사람을 폭행하고, 잡아 가두고, 심지어 죽이고, 기독교인들에게 예수 이름을 모독하라고 강요했던 죄인 괴수라도 죄 용서를 받은 것은 어떤 죄인도 용서받을 수 있다는 <모델 케이스>가 됩니다.
그래서 디모데전서 1장 15-16절에서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2. 일어나
지금까지 잘못된 길을 걸어와서 낙심하고 크게 후회하고 있지만, 주저앉아 있지만 말고, 다시 일어나서 예수 이름을 불러 구원을 받고, 용서와 사랑 가운데 새로운 삶의 희망을 가지고 새 출발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어나 너 걸어라. 내가 새 히을 주리니>라는 복음성가도 있습니다.
3. 주의 이름을 불러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고 했습니다(롬 10:13, 행 2:21).
즉 예수님을 여호와 하나님으로, 나의 구세주로 믿고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습니다.
4.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
물세례는 예수님을 주님(여호와 하나님)으로 믿고 고백한 사람에게 줍니다.
바울은 이미 10절에서 나사렛 예수님을 주님(여호와 하나님)으로 고백했습니다.
이처럼 물세례는 성령세례와 죄 용서에 대한 확증으로 베풀어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핍박자요 폭행자인 바울이 회개하고 예수님 믿고 세례를 받고 주의 종으로 일한 것을 보고, 우리들도 희망을 가지고 늘 회개하고 용서를 받고, 주의 일을 계속 충실히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날마다 성령님의 충만한 인도를 받고, 성공적으로 살아가시며 주의 일도 충성스럽게 감당해가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