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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遷位 기행 .57 끝] 연재를 마치며대구·경북 불천위종가 140곳…빛나는 선비정신 이어야 600여년 온갖 위기 겪으면서도 가치 지켜온 후손 노력 경외감 시대 바뀌며 전통문화 위기 상황 불천위 문화에 관심 가져야
그동안 다룬 불천위 인물 51명은 그 시대적·신분적 환경에 따라 각기 삶은 다르지만, 보다 나은 사회와 정의를 위해 사심 없이 몸을 던져 불멸의 삶을 산 주인공들이었다. 그 삶이 주는 가르침은 현대를 사는 사람도 당연히 본받을 가치가 있음은 물론이다. 대구·경북에는 불천위 조상을 모시고 있는 불천위종가가 140곳 정도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 가운데 출신지역이나 성씨, 그 삶의 성격 등 나름대로의 기준을 가지고 취재 대상 불천위 인물을 선정했다. 연재 순서에 어떤 의미나 기준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취재를 통해 불천위 인물의 후손들이 전쟁이나 도난 등 온갖 환란 속에서도 불천위 인물이 남긴 기록과 저서, 애장품 등 유물을 그야말로 신주 모시듯 보존, 지금까지도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전해내려올 수 있게 한 점에 대해서는 경외감이 들 정도였다. 불천위 제도가 그 무형의 가치를 지켜옴은 물론, 이처럼 유형적인 측면에서도 수많은 유산을 이어오고 있음은 크게 값진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도시화와 산업화 등에 따른 급격한 생활환경 변화 속에 불천위 문화도 위기상황을 맞고 있음을 확인하면서 안타까움을 떨칠 수가 없었다. 종교나 후손 문제 등으로 불천위 제사를 모시지 못하게 된 불천위 종가도 있고, 생활 여건 때문에 사당이 있는 종택이 있음에도 도시의 주택에서 제사를 지내는 종가도 생기고 있다. 또한 제사 참석자 급감으로 제사 시간을 저녁이나 낮 시간으로 변경하는 경우가 늘고 있고, 종택을 지켜온 종손과 종부의 노령화와 별세 등으로 제주(祭酒)를 비롯한 전통적 제수를 장만할 수 있는 기능이 단절되면서 소중한 전통 음식문화 유산이 사라지고 있는 점이 무엇보다 안타깝게 다가왔다. 이런 환경 속에서도 지금도 조상을 불천위로 모시려 애쓰는 문중도 있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불천위 종가의 대부분은 대구·경북에 있고 그 문화를 제대로 이어오고 있는 지역도 대구·경북이다. 짧게는 100년, 길게는 600년을 이어온 불천위 문화를 언제까지 어떻게 이어갈지 모른다. 경북도가 불천위 종가문화에 큰 관심을 가지고 여러 가지 활성화 사업을 펼치고 있고, 최근 영남 불천위종가 종손 모임인 영종회(嶺宗會)가 창립돼 이 시대에 맞는 다양한 종가문화 활성화 사업을 모색하고 있어 기대를 갖게 한다. 연재 기사에 대해 관심과 격려를 아끼지 않은 독자들, 불천위 종가 종손 여러분의 취재 협조와 각별한 환대에 감사드린다. 참고로 기사화되지 않은 불천위 관련 기록과 불천위종가 종손 모임인 영종회를 소개한다. 글·사진=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충성심과 절개 우주로 뻗쳐” 조정 대신들이 임금에 청해 ▲국가불천위 단계 하위지-1804년 5월 예조 입안(禮曹 立案· 立案은 어떤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관청에서 발급한 조선시대 문서) “이 문서는 부조사(不事)에 관한 것이다. 지난 4월28일 예조에서 보고한 사안에 대해 하교해 줄 것을 아뢰었다. 보고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지난 3월28일 소대입시(召對入侍· 임금이 여러 신하를 불러들여 일을 의논하는 것) 때 좌승지 홍의호(洪義浩)가 아뢰기를 충렬공 하위지는 장릉(莊陵) 육신(六臣) 중 한 사람으로, 정성스러운 충성심과 탁월한 절개가 우주 사이로 뻗쳐 있으니 다시 말할 것이 없습지만, 그가 절개를 위해 몸을 바치던 날에 손수 글을 써서 후사를 그의 조카인 원(源)에게 부탁해 영남에 숨어 있게 한 까닭으로 대대로 향화(香火·제사)를 받들어 8~9대까지 끊어지지 않았으나 감히 드러내놓고 자손이라고 하지 못하다가, 숙묘(肅廟) 때에 와서 예조판서 민진후가 경연에서 그 일을 아뢰어 특별히 하원(河源)으로 그 뒤를 잇게 해서 끊어진 후손을 잇는 의리를 보여주었고, 영묘(英廟) 경인년에는 시호를 그 집에 내려주었으며, 선대 조정은 그 집에 정려를 내리고 장릉에 배향하도록 했습니다. 여러 조정에서 높이고 장려한 일이 극진했습니다. 그의 자손으로 하여금 의리를 기초로 하여 예를 새로 만들어 축판(祀版·신주)을 별묘에 모시게 하였으나 아직까지 부조(不)의 은혜를 입지 못하였다 하오니 밝은 세대에 험이 될까 합니다. 이전에 충문공 성삼문의 사판이 인왕산에서 나와 조정에서 노은서원에 봉안하게 하고, 충정공 박팽년의 예에 의해 또한 부조의 은혜로 영화롭게 해주었으니, 이번에 충렬공의 사판도 다르게 할 수는 없습니다. 대신들에게 물어보시어 일체의 예식을 베풀어주신다면 충절을 표창하고 풍성을 세우는 도리에 합당할 것입니다. 임금이 말씀하시기를 낭청(郎廳· 내시)을 보내 대신에게 문의하라 했다. 좌상 김관주가 말하기를 ‘부조는 특별한 은혜이며 성대한 예식이라 아래서 감히 문득 청할 수도 없는 것이고, 위에서도 마땅히 가볍게 배풀 것이 아니오니 충렬공 하위지는 그 큰 충성과 탁월한 절개는 일월과 광채를 다툴 만하여 여러 조정에서 애달프게 여기고 표창한 바가 극진하지 않은 것이 없고, 또 성삼문과 박팽년에게 이미 배풀어준 예가 있으니 일체 다 허락해주는 것이 실로 좋은 기운을 일으키고 세상을 맑게 하는 정치에 합당하옵니다’ 하니 임금이 전교하기를 대신과 의논해 시행하라 하셨다.” “수신제가 하며 벼슬 마다해” 후손 사양 불구 사림이 모셔 ▲유림불천위 간재 변중일-금고지(琴皐誌· 간재 종가에 전해내려오는 고서) 내용 1779년(정조 3년) 10월15일에 조례(禮·신주를 땅에 묻는 제례) 날짜에 모인 280여명의 사림이 그 자리에서 간재를 불천위로 모시기로 결정한 후 후손의 사양에도 불구하고 참석자 중 김응탁(金應鐸)을 선정, 본손을 대신해 고유문(家廟不告由文)을 짓게 했다. 그 내용이다. “공경하게 생각하옵건대 부군께서는 총영(聰穎)한 기국(器局)을 타고나셔서 집에 있을 때는 효도를 다하고 나라를 섬길 때는 충성을 다하셨습니다. 젊었을 때 하급벼슬에 천거되었으나 어찌 벼슬이 본뜻이라 하겠습니까. 높은 벼슬 보기를 초개같이 하고, 자취를 거두어 몸을 숨기셨습니다. 아침에 가묘(家廟)에 배알하고 의관을 정제하여 방에 들어가면 서안(書案)과 마주해 부지런히 책을 읽으시고, 종일토록 경건한 몸가짐으로 선현의 언행을 따르고 후진을 장려(奬勵)하셨습니다. 혼자 있을 때도 몸가짐을 삼가고 언행을 조심하는 등 수신제가하면서, 간재(簡齋)라는 편액을 걸고 경(敬)과 의(義)로 자적(自適)하셨습니다. 사람들은 그 선적(善蹟)을 아름답게 여겨 관(官)에 알려 표창을 받도록 청하려 했으나 스스로 충효로 자처하기를 싫어하셔서 굳이 겸양하며 못하게 말렸습니다. 세상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라에서 특별히 정전(旌典)을 내려 엄연한 유각(遺閣)이 저기 휘황(輝煌)하게 서 있습니다. 세상이 바뀌고 세월이 흘러 조례의 날이 다가오니 뜻 있는 선비들이 모두 모여 옛 현인을 앙모함이 더욱 새로워 이에 불천위의 예로 모실 것을 결정하니 자손들은 송구하고 두려워하면서 삼가 맑은 술과 여러 가지 안주로 제주를 바쳐 올립니다 종손 109명 모여 시대에 맞는 종가문화 활성화 사업 모색
영종회에는 현재 대구·경북지역 불천위종가 종손 109명이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 초대 회장은 김종길 학봉(김성일)종가 종손이, 고문으로 김병의 한훤당(김굉필)종가 종손과 류영하 서애(류성룡)종가 종손이 맡고 있다. 그리고 지역별(중부·동부·서부·남부·북부) 부회장과 업무별 간사를 두고 있다. 회원들의 친목 도모와 선현들의 학덕을 실천하며 유교문화를 진작하고 도덕사회 구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김종길 회장은 “원로 종손 어른들의 별세가 잇따르면서 아랫대와 단절도 생기는데다 종손 모임도 없었다. 지자체 입장에서 종가와 관련된 문제를 이야기해야 할 경우 대표할 단체가 있으면 여러가지로 편리하고 효율적인데 그런 모임이 없었던 점 등에서 그 필요성을 느끼고 있던 차에 영종회 발족 이야기가 나오면서 모두 적극 공감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생활환경의 변화 속에 급속하게 바뀌는 전통 의례에 대한 문제를 함께 논의해 개선하는 것도 중요한 사안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회장은 영종회 차원에서 종택, 정자, 서원 등을 과감하게 일반에게 개방하고, 단순한 숙박시설에 머무는 차원을 넘어 종손과 종부가 직접 참여해 종가문화를 체험하고 배우게 함으로써 산교육장이 되도록 하는 사업도 적극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 일환으로 오는 12월 1박2일 일정으로 영종회 전 종손이 참여하는 종가문화체험 프로그램도 진행할 예정이다. 현재 회원은 불천위 제사를 모시고 있는 종가 종손으로 구성되어 있다. 불천위 조상이 있어도 불천위 제사를 모시지 않는 종가와 불천위 제사를 지내도 역사가 오래되지 않은 종가 등이 30여 군데 더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며 이 종가의 회원 영입 문제도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봉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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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바람이 머무는 곳 원문보기 글쓴이: 풍경소리
첫댓글 좋은글 과 정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