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암 완치 판정받던 날
지난 5년, 내 건강에 대해 별 걱정 않고 보냈다. 그 기간 자신을 비롯한 주위의 어느 누구도 내가 암 수술을 받은 사람이라고 여길 겨를조차 없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13년 4월 하순, 나는 전립선암 수술을 받았다. 강남에 있는 대형 병원, 정병하 교수의 집도로…. 처음, 암 선고를 받았을 때도 난 별로 두렵지 않았었다.
그 사건을 되돌아보자. 그해 부활절을 며칠 앞둔 날, 난 삼가동 본당 성가대에서 ‘내 발을 씻기신 예수’를 연습하는 중이었다. 뭔가 낌새가 이상하다는 사전 언질을 받고, 부리나케 나는 이웃 중소규모 종합 병원에 달려갔다. 거기서 엄청난 고통이 따르는 전립선 조직 검사를 했다. 암! 그로부터 두어 달 걸려 성당에 다시 발걸음을 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말했다. 전립선암은 효자 암이라고. 쉬 낫고 예후 또한 좋다는 뜻이다. 정병하 교수도 나를 안심시켰다. 초기(初期니 절대 염려하지 말라고….난 되레 신이 났다. 특유의 허풍이 또 튀어나았다. 그래 오랜만에, 참으로 오랜만에 병원에 누워 푹 쉬자꾸나!
수술은 참 잘 끝났다. 도무지 환자 같지 않으니, 간호사가 나를 보고 병원 홍보 모델이 되어 달라고 부탁을 하는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저속한 표현이지만, 관계자들은 나를 간이 배 밖에 나온 사람쯤으로 여겨졌으리라. 아무려면 어때! 나는 금일봉과 대형 가족사진을 사례조로 받고 그들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나 같이 못난 사람이 모델이라니, 만화 같은 이야기 아니고 뭔가.(계약 기간 3년 약간 엉뚱한 결과지만, 비뇨기과가 아닌 **** 병원 附屬 ‘안 이비인후과’ 모델로서 내 사진이 해당 공간에 떴었다.)
어쨌든 그곳에서 귀한 분을 만났으니 남성혁 한의원 원장이다. 무려 103세…. 50대 초반까지 북한에서 수의사로 있다가 탈북(?)하여, 독학으로 한의사 면허를 얻은 문자 그대로 ‘어르신’이다. 가톨릭 신자가 아니되 그분은 예수님과 같은 말씀을 건넸다. ‘남의 허물을 이야기하지 않는’ 게 장수의 비결 중 으뜸이라고 한 것이다. 며칠 동안 그분과 복도에서 여러 번 만나다가 헤어졌다. 내가 ‘신고산타령’을 부르고 그분은 추임새를 넣었으니 남들은 기막혀 했으리라.
아무튼 난 두서너 달만 고생했지, 너무나 빨리 회복세를 탔다. 처음엔 두어 달 만에 한 번씩 정병하 교수를 만나서 진료를 받았다. 이윽고 그 기간이 늘어나서 군부대 안보 강연도 다니고 몇 달 뒤엔 야구장에서 시구도 했다. 그 다음해엔 애국가 독창을 위해 마이트를 구장에서 잡았다.(둘 다 사직구장). 혈액 검사를 하는 게 고작인데, 항상 그러다가 작년 이맘 때, 정병하 교수가 그러는 것이었다. 전립선특이항원이 계속 0으로 나오니 1년 뒤에 오라고. 그러면서 나더러 자기 지시를 워낙 잘 따르니 모범 환자라고 치켜세워 주더라.
그 약속 시일이 지난 2월 19일이었다. 열두 시쯤 접수를 하고 채혈실로 들어가 직원이 시키는 대로 팔을 내밀었다. 순간 만감이 교차하는 것이었다. 나는 중얼거리듯 자문자답(自問自答)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지난 다섯 해, 웃고 떠들었지만 그건 분명 투병의 세월이었지? 그렇고말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왔으니 두 시간 뒤 나는 과연 완치 판정을 받을 수 있겠지!
그 병원 구내식당은 별로 맘에 들지 않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을 수밖에. 곰탕 한 그릇을 시켜 먹었다. 나머지 한 시간 반, 바로 앞, 내 눈에 들어오는 공간이 하나 있어 거기 들 자릴 잡았다. 차 한 잔을 마시면서 <성경>과 원고지, 필기구를 끄집어냈다. 그러고선 ‘지혜서’를 펼쳐 놓고 필사를 하기 시작한다. 19장 8절부터….4백 자 원고지 한 장을 메우고 보니 12절이 거의 끝나간다. 맨 밑 공란에 나는 주님께 올리는 기도문을 썼다. 主님, 차가운 날씨에 父母 품을 떠나, 國土防衛에 餘念이 없는 제 母部隊 26師團 將兵들의 安全과 健康을 돌보아 주소서 18.2.19 13:00 이원우 아우구스티노 올림(강남 **** 병원에서)
*당일 내가 필사한 <성경> '지혜서' 19장 8절--.원고지 하단마다 나는 화살기도문을 쓴다. 나의 잘못으로 인해 상처를 입은 교우나 동료에게 용서를 빌 기회를 달라고 간청하는 기도도 주님깨 드린다. 목표(?)는 2천 명이다. 못난 나도 사람이라고 알은체를 해 준 분이야 두말 할 나위도 없고-.참 글씨는 한글 궁체를 흉내낸다. 하지만 잘 안 된다. 가로획 세로획은 바로 긋고, 흘려 쓰지 않는 게 원칙이다. 획이 원고지 칸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 한자(略字 가능)를 섞는다. 가능한 한 흘려 쓰는 것을 피한다. 점 하나라도 바로 찍는다.
순간 마음은 안정을 되찾았고말고. 나아가 완치의 판정을 예견하게 되는 것이었다. 약속 시간 두 시 10분, 나는 만면에 웃음을 띠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거기 의자에 앉았다가 파안대소하며 일어서 맞는 정병하 교수! 그의 인술은 그 순간에 섬광처럼 증명되는 것이었다. 그는 내게 축하한다며 0이라는 숫자를 다시 들먹였다. 안 그래도 된다는 그에게 내년에 한 번 오겠다는 말을 불쑥 내밀었다. 진심으로 그가 고마우니 다시 보고 싶다는 내 심정을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나는 돌아 나오면서 허리를 굽히고 그에게 당신의 인술을 소재로 수필 한 편을 써 <실버넷뉴스>에 발표해 보낼 테니, 그걸 확대 인쇄해 바깥에 게시해 달라는 말을 남겼고. 진짜 그가 전립선암의 최고 권위임을 나는 다시 한 번 확인하면서….
백 살까지 살지는 못해도 그 언저리에 가서 내가 생명의 줄을 놓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어느 정도 자신이 있다. 두 거인(남성혁 한의원장. 정병하 名醫)의 체취를 항상 느끼면서 지낼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또 있다. 내 신앙심은 교우들에 비해 까맣게 뒤지지만 어디서든지 시도하는 <성경> 필사, 거기에서 내 삶의 여러 조건이며 덕목들이 파생(派生)되어서이기도 하다.
아니 내친김에 이렇게 외람되게 표현하자. <성경> 필사를 마치려면 아직 20여 년이 걸릴지 모른다. 76+20=96 아흔 살이면 남성혁 원장의 언저리까지 갔다고 주장할 만하다. 조바심을 내지 않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2백 자 원고지 14장
후기/ 병원은 강남 세브란스 병원이다. 세브란스라는 외래어를 쓰지 않으려고 ****라 표기했다. 전립선특이항원은 PSA라 표기한다. 같은 의도로 본문에 이 PSA를 동원하지 않았다. 외래어가 우리말을 좀먹는다. 일본말 찌꺼기와 어금지금하다고나 할까?
첫댓글 완치 판정을 받기 직전, 카페에서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성경> 필사를 하다. 엄마와 다름없는 母部隊 26사단 장병들을 위한 기도--! 곧 다시 26사단에 간다.
와우. 축하드려요.
항상빛나는별 마틸다 자매님,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성경>을 필사하면 마음이 안정 됩니다. 거짓말같이--.4천원 짜리 커피 한 잔 시켜 놓고 두어 시간 보내기 정말 수월하지요. 기쁜 주말 보내십시오. '1테살로니카 전서' 5장 16/ 17/ 18절을 봅니다. <한영대역성경>을 펼쳤습니다. Rejoice always./ Pray without ceasing./In all circumstance give thanks!----항상 기뻐하십시오. 끈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즐거움보다 기쁨을 추구해야 한다는 공자님의 말씀과 일치한다고 들었습니다. 學而時習之면 不亦說(悅이 아니고)乎아--. 배우고 때로 익히면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
아는 체해서 미안합니다.
늘 성심을 다한 기도 덕택입니다. 존경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항상 기뻐하고 끊임없이 기도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선생님의 여생에 Bravo! U are 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