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도호부사 전천상(田天祥) 기적비 부사(府使) 전공(田公)은 고려 좌복야 참지정사 전득시(田得時)의 19세 손으로 본관은 담양이며 임진왜란 때 영남순검사(嶺南巡檢使)로 충무공 이순신장군과 함께 크게 전공을 세운 좌승지 겸 경연 참찬관 송애 전득우(田得雨)의 현손이며 자는 경문 호를 죽암이라 하였다. 숙종31년 (1705) 충남 홍성에서 출생하여 , 경 종3년 (1723) 19세때 음직(蔭職)으로 선전관이 되었다. 영 조2년 (1726)에 무과등제 비변랑첨정으로 벼슬을 시작, 1728년에 약관 24세 로 희천군수가 된 이 후 함안군수 여주목사 춘천대도호부사 등을 역임하고 1744년 이곳 하동 도호부사로 도임 하였다. 公은 1744년 섬진강 하구에 출몰하는 외 적 을 격퇴하는 군사기지인 선진(船津)설치, 1745년 망미정 건립 , 읍기(邑基)를 이전 하였고, 섬진강 모래바람에 시달리는 부민(府民)의 고초를 해소하는 방안으로 섬진강변에 삼천 그루의 소나무를 심어 모래바람을 막도록 하였으니 오늘날의 귀중한 문화유산인 이곳 " 하동섬진강백사청송" 이다(천연기념물 제445호). 1746년 정삼품(正三品)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승진하여 나주진영장(羅州 鎭營將)을 제수(除授)받아 하동을 떠났다. 공께서는 선 정 을 베 풀어 목민관의 표상이 되었으며 하동에 큰 공적을 남긴 역사의 인물이시다. 문헌에 의하면 "공께서는 성품이 인자하여 백성들의 칭송을 받았고 여 러 차례 왕의 새서 ( 璽書)를 하사 받았다" 고 기록 하고 있다. 공의 애민정신과 우리 고장에 남긴 위훈을 후세의 귀중한 사표(師表)로 삼고자 군민의 뜻을 담아 삼가 기록하고 비에 새겨 세우는 바 이다 2016년 7월 29일 하 동 군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