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소설을 읽는 노인과 문제가 많은 수요일, 11월 15일 (4)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가 연애소설을 탐독한다는 사실은 이미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어떤 내용의 연애소설인가? 치과의사가 책 두 권을 건네줄 때면 노인은 단단히 다짐을 받고서야 책을 인수하였다. 첫째, 주인공 두 사람은 진심으로 서로를 사랑하고 있는가? 둘째, 운명의 장난으로 인하여 두 사람의 사랑은 크나큰 시련을 겪게 되는가? 셋째, 두 사람은 시련을 이겨내고 끝내 사랑을 이루게 되는가? 치과의사는 읍내 창녀의 컬렉션에서 이런 내용의 소설을 한 무더기 발견하고 적이 안심하였다. 항상 어린 나를 동반하여 경동시장 안에 있는 경동극장을 찾곤 하였던 식모 누나는 이들 아마존인들과 취향이 약간 달랐다. 이 누나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남자의 배신이다. 남자들은 성공하고 나서는, 특히 사법고시에 합격하거나 그룹의 기획실장으로 승진하고 나서는, 여자들을 버리게 되는데, 이 누나에게는 여기가 클라이막스다. 취향이 약간 다르기는 하지만 수준으로 치면 아마존인들과 한국 처자 사이에 차이가 없다. 식모 누나가 극장의 어둠 속에 숨어, 평소에 울고 싶었던 울음을 실컷 울면서 손수건 두 장을 흠뻑 적실 때, 일흔이 다된 남자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는 무슨 연유에서인지 자기 오두막에 들어앉아 촉촉한 소녀적 감성을 짜내 책갈피를 적셨다.
나의 하루가 그러하듯이,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의 하루는 생활과 독서로 채워진다. 평상시라면 쌀과 바나나를 볶아서 식사를 한 후 부리나케 소설책을 집어 든다. 삵괭이 수색에 참가했을 때에도 노인은 짬이 나면 책을 집어 들었다. 나는 생활에 관한 한 이 친구에게 한참 못 미치지만, 독서에 관한 한 이 친구를 능가한다고 생각한다. 봐라. 이 친구가 삼류 연애소설이나 읽고 있을 때 나는 세계적인 소설가의 소설을 읽고(듣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내가 이 친구의 독서로부터 배울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독서의 방법에 관한 한, 그의 독서에는 크나큰 깨우침을 주는 것이 들어있다.
나는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의 독서법에 크게 감명을 받았다. 이미 말한 대로 그의 문해력은 가까스로 글자를 깨친 수준이다. 그러니 단어 하나하나를 여러 번 반복하고 문장 하나하나를 여러 번 반복하여, 느리게 느리게 아주 느리게 나아가되, 짜증을 내기는커녕 맛있는 음식을 아껴가면서 먹듯이, 맛있는 음식을 꼭꼭 씹고 또 씹으면서 그 맛을 음미하듯이 그렇게 한다. 경이롭지 아니한가? 책 내용을 두고 주변 사람들과 토론을 벌이기도 한다. 삵괭이 수색에 나갔을 때의 일인데, 노인을 포함한 수색대원들은 ‘베니스’라거나 ‘수상 도시’, ‘곤돌라’ 같은 것들에서 막혀서, 그것들이 과연 무엇인지, 과연 어떻게 생긴 물건인지 등등에 관해 각자 의견을 개진하면서 진지하게 토론을 벌였다.
나도 이 친구의 방법을 도입하여 책을 읽는 것이 좋을지 모른다. 그러려면, 불량하게 드러누운 채 남이 읽어주는 것을 비몽사몽간에 들을 것이 아니라 우선 일어나 앉아 맑은 정신으로 집중을 해야 할 것이다. 이 점 이외에도 이 친구가 취하는 독서 방법 -- 혹은 독서 태도 -- 이 나에게 지시하는 바가 더 있을 것이다. 최소한 한 가지는 분명하게 더 있다. 그러나 나는 그 한 가지, 이 친구의 독서법이나 독서 태도가 나에게 가르치는 바를 나의 독서에 적용할 것이 아니라 나의 생활에 적용하고자 한다.
이 친구는 어떻게 책을 읽는가? 그 태도를 중심으로 답하자면, 정성을 다해 읽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 정확한 표현은 아껴가면서 읽는다거나 그 맛을 음미하면서 읽는다는 것이다. 혹은 이 세상에 책이라고는 그 한 권밖에 남아있지 않는 듯 그렇게 책을 읽는다고도 표현할 수도 있겠다. 이 책을 빨리 끝내고 다른 책을 읽거나 다른 일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중간에 어려운 대목이 나오면 어떻게 하는가? 당연히 환영을 하면서 더 천천히 더 정성을 다해서 읽는다. 자, 나는 이제부터는 이런 태도로 인생을 살아보자. 그러려면, 나는 생활이 나에게 가져온 하나의 상황에 대처하되, 그 상황이 나에게 주어진 상황의 전부인 듯 아껴야 하며, 그 상황이 맛있고 즐거운 것인 듯 찬찬히 음미하여야 한다. 그 하나의 상황이 대처하기 어려운 상황, 가령 베란다 누수와 같은 것일지라도, 그것을 환영하고 아껴가면서 음미하여야 한다.
“그 상황이 내 인생의 전부인 듯 아끼고 음미한다”는 이러한 생활 태도가 어떠한 것인지를 보다 분명하게 밝히기 위해서는, 그 속에 들어있는 요점을 두 가지로 나누어 뽑아내야 할 듯하다. 첫째, 나는 그 상황에 나의 전부를 쏟아붓는다. 나의 전부에는 특히 나의 인품이나 인격이라고 할 만한 것이 포함된다. 베란다 누수 문제만 해도, 그것을, 단순히 내 돈 들이지 않고 보수를 완료하는 문제로 간주할 수도 있지만, 나의 인품이 발휘되고 습득되는 문제로 규정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보수를 완료해야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예의나 도덕에 맞게 그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이런 식으로 그 일을 하는 것을 나는 즐긴다. 인품을 투입하여, 다시 말해서 예의나 도덕에 맞게 그 일을 하는 것을 즐긴다는 말이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식으로 일을 하려고 하다 보면 보수가 깔끔하게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고 내 돈이 들어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마지못해 그런 식으로 일하는 게 아니라 기꺼이 그렇게 한다.
이런 생활 태도를 카르페 디엠 -- 오늘을 즐겨라 — 이라고 부른다. 아니, 카르페 디엠이라는 것은 (다른 의미로 오해되는 경우가 많지만) 바로 이런 생활 태도를 가리킨다. 카르페 디엠을 설명하려면, 위의 요점들을 해체한 후 순서를 바꾸어 부언(附言)해야 한다. 일을 함에 있어서 목적만 달성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 과정에서 인품이나 예의, 도덕을 돌보아야 한다는 것은 지당한 교훈이되, 새로울 것이 없는 진부한 교훈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런데, 카르페 디엠은 여기에 ‘오늘’과 ‘즐겨라’를 덧붙인다. 카르페 디엠은, 첫째, 바로 오늘, 즉 우연히 마주치는 모든 일에서 그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가령 다시 볼 일이 없는, 스쳐 지나가는 행인과의 관계에서도 그렇게 해야 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와의 관계에서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그렇게 하되, 마지못해서가 아니라 즐겁게 그렇게 해야 한다. ‘즐겁게’가 중요하다. 물론 즐기는 대상은 다름 아니라 자신의 인품을 발휘하고 습득하는 것, 즉 예의와 도덕에 헌신하는 것이다. 카르페 디엠을 대표하는 인물은, 내가 알기로는, 예(禮)의 화신으로 알려져 있는 공자님이다.
그런 만큼 아마존강 유역의 개척민 마을에서 아무렇게나 입고 허름하게 생활하는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는, 설사 여러 가지 훌륭한 생활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카르페 디엠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될지 모른다. 다시 말해 그가 독서에서 보이는 태도는 그의 독서에 국한될 뿐 그의 생활에까지 흘러넘치지는 않는다고 생각될지 모른다. 그러나 여기에는 더 생각해 볼 것이 없지 않다. 그의 생활 태도, 예컨대 원주민들에게 편견이 없다거나 심지어 삵괭이하고도 대화를 하려고 한다거나 하는 것 등등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하는 것은 아직 충분히 분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여간 나는 내 친구의 기발한 독서법에서 하나의 생활 태도를 뽑아내어 보고 내심 많은 위로를 얻었다. 그동안 찜찜하게도 불분명한 채로 남아있던 것들 -- 가령 카르페 디엠의 정확한 의미 -- 이 내 머릿속에서 명쾌하게 모습을 드러냈을 뿐 아니라, 그와 동시에, 나를 이쪽으로 흔들기도 하고 저쪽으로 흔들기도 하던 베란다 누수 문제를, 내가 어느 쪽으로 방향을 잡고 대처해야 할지도 분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설사 내가 그대로 실천하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다시 허영심을 한껏 발휘하여 말하자면, 나는 이 글을 통하여 베란다 누수 문제를 거의 말끔하게 해결하였다. 지금은 밤 11시 43분, 대척점에 가까운 아마존강 유역은 지금 몇 시나 되었을지...... 쓸쓸하지만 충만한 삶을 살고 있는 늙은 내 친구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 -- 나는 그의 꿈을 꾸고자 또 유튜브를 켜놓고 잠자리에 든다. (끝)
첫댓글 유튜브를 안 보는 나로선 처음에는, 무슨 독서를 듣는 것으로 하나 생각했는데...아 이런 독서법?이 있었구먼
내가 밀림에 살고 있지는 않지만 볼리바르와 유투브 안보는 건 닮았네 ~ ㅎㅎ
하루를 생활과 독서로 보내시는 필자께서는 볼리바르를 통해 생활 속 관계의 대처법등, 관련하여 카르페 디엠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신 듯.. 이 글 읽으며 나이 들었다고 남 도움 받을게 아니라 무엇을 하든 정성과 예를 갖고
직접하며 그 일의 진정성을 음미하는..그런 태도로 살아야 한다는 울림이?? 글 감사합니다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에게 안부 전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