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아버지는 그의 방식으로 날 사랑했다.
나의 자랑스런 아버지가 되어 주기 위해 --
약국 일을 열심히 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무약촌에서 약국 운영하던 시절..
거의 20시간의 의료봉사였다.
내과 외과 소아과 병원 치료까지 모든 것을
아빠에게 의자하던 그 곳 사람들이었다.
아빠는 그 곳을 떠났다.병원이 생기고 약국이 생겨서,, 기쁘게,,
이 곳 서초동에서도 열심히 일했다.
무엇을 위해..
그리고 서초동에서 인정받는, 크기는 젤 작지만 약은 최고라는 명성을
얻은 약국이 되었다.
나의 고등학교 시절 아빠는 또 한번
아버지의 게속적인 삶의 열정을 보여주신다.
구의원과 시의원 후보로 출마하는데..
가족들의 도움도, 운동원들을 따로 동원하지도 않고..
아빠 약국 동네의 야채장사 아저씨, 빵가게 아저씨 등이 운동원이었다..
TV인터뷰도, 신문취재도 다 아빠 혼자 노력으로 했다..
몰론 돈이 곧 표로 연결되는 한국에서 돈도 안 뿌리고
뽑힐 리는 당초 없었지만.. 다음에는 공천을 해 주겠다는 말이 나올만큼
많은 지지를 받았다.
그때 아빠는 꽤 자만했다.교만했다.
하지만 아빠는- 많은 사람이 그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결국 하나님이 치셧고 (주식 투자로 집 한채를 날렸다..)
아빠는 계속되는 어려움으로
어느날 낮아지고 낮아진 모습으로 가족예배를 처음 시작하게 되고,
그후 4개월이 지나 불가능하던 (<-우리집은 야행성.)새벽기도를 일주작정하고 .. 하신다.
아빠는 감사함으로 안수집사직을 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이렇게 나의 아버지를 당신의 사랑안에 확정하셨다..
우리 가정에 형식적 행복과 경제적 안정만 있던 과거보다..
지금 조금 어렵지만 서로에 대한 진정한 이해와 사랑이 있는
나의 가정을.. 내가 글구 나의 아버지가 감사할 수 있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