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마다 도로의 풍경은 몹시 다르다. 어떤 나라는 작고 귀여운 해치백이, 어떤 나라는 크고 웅장한 픽업트럭이 아이코닉 카로 통한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우리나라의 아이코닉카는 큰 차, 그중에서도 중형급 이상 SUV나 세단이 아닐까 한다. 우리나라 시민들은 왜 비교적 큰 차를 선호할까? 그리고 유럽과 미국의 아이코닉카는 왜 해치백과 픽업트럭이 되었을까? 오늘은 나라별로 다른 국민들의 자동차에 한 걸음 더 들어가 본다.
유럽의 작은 차
1. 영국의 '재미있는' 작은 차 오스틴 미니
'탈 것'이라고는 기차밖에 없던 산업혁명 시절, '자동차'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유행을 안겨준 중요한 수단이다. 자동차가 한창 유행하기 시작한 시기는 좋게 말하면 실험적인, 나쁘게 말하면 터무니없는 자동차들이 수없이 많던 시절이기도 했다.
유럽 국가들은 작은 국토 면적, 그리고 울퉁불퉁하고 좁은 도로의 특성 때문에 작은 차를 즐겨탔다. 그중에서도 영국은 '오스틴 미니'와 같은 '재미있는 작은 차'를 탔다.
오스틴 미니는 지금까지도 자동차 마니아라면 꼭 한 번 타봐야 하는 차로 꼽히고 있다. 작고 재밌는 차의 기준으로 자리 잡은지 오래다.
오스틴 미니는 또한 랠리 스테이지 왕좌를 차지한 차중 가장 작은 엔진을 가진 차이기도 하다. 동시에 독일과 미국 히피들의 상징이 된 '폭스바겐 비틀'처럼 영국을 상징하는 자동차로 자리 잡은 차다.
유럽의 작은 차
2. 이탈리아의 작고 실용적인 '피아트 500'
요즘엔 '작은 차' 하면 2인승 스포츠카를 떠올리기 마련인데, 과거엔 그렇지 않았다.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국민 차는 '피아트 500'으로 알려져 있다. 500은 현재까지도 피아트의 대표 모델로 꼽힌다. 이름이 500인 이유는 배기량이 500cc였기 때문이다. 초창기 모델의 배기량은 479cc였으며, 크기는 지금의 피아트보다 훨씬 작은 크기를 가졌었다.
전장 2,750mm, 중량은 475kg를 가진 이 차는 4인승이다. 다소 우습게 들릴지 모르나 4명이 타기에 충분한 차였다. 공간 활용을 아주 잘했기 때문에 4명이 타도 충분한 실내공간을 가질 수 있었다. 당시 피아트 500의 광고가 실용성을 강조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 있어서다.
(Video via. Youtube "The Wheel Network")
초기 모델은 13마력, 후기 모델은 17마력의 출력을 냈다. 당시 이탈리아 시골 구멍가게에서 차량의 거의 모든 부품을 구할 수 있었을 정도로 유지 또한 굉장히 쉬웠다.
피아트 500은 당시 이탈리아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피아트 500에 직물 선루프가 달린 이유는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철이 비쌌기 때문이다. 직물이 철보다 저렴하기도 했고, 가볍다는 장점도 갖고 있었다.
피아트가 500을 출시할 때 강조한 키워드는 "국민차"였다. 피아트 500은 이탈리아의 도로 사정에 가장 알맞은 차였다. 오래된 건물 사이 좁은 골목길을 거침없이 다닐 수 있었고, 웬만한 좁은 공간도 모두 주차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가장 성공한 이탈리아의 국민차는 아니다. 과거 이탈리아에서 가장 성공한 국민차는 위 사진에 있는 '피아트 124'였다.
유럽의 작은 차
3. 프랑스의 부드러운 승차람 '시트로엥 2CV'
이탈리아에 피아트가 있었다면 프랑스에는 시트로엥이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봐도 "프랑스 차"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프랑스 특유의 캐릭터가 그대로 녹아있다.
시트로엥 2CV는 전쟁 전에 디자인이 된 차다. 당시 코드명은 TPV로, 굉장히 부드러운 서스펜션이 특징이었다.
(2CV 프로토타입)
1940년, 2CV가 생산될 즘에 히틀러가 프랑스를 침략했었다. 당시 프랑스 사람들은 2CV의 기술을 보존하기 위해 차를 숨겨놓기도 했다. 전쟁 후엔 숨겨놨던 차를 다시 꺼낸 뒤 개발을 이어나갔다고 한다. 이렇게 개발된 2CV는 1948년 파리 모터쇼에서 처음 공개된다. 현재까지도 프랑스의 오래된 헛간 곳곳에서 2CV가 간간이 발견된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파워트레인은 2기통 엔진과 전륜구동 기반이다. 보기와 다르게 내구성이 아주 뛰어나며, 서스펜션은 계란을 싣고 비포장도로를 달려도 깨지지 않을 만큼 부드럽게 설계됐다. 프랑스의 시대 배경을 잘 녹아낸 사례 중 하나이기도 하다.
유럽의 작은 차
4. 장거리 운행에도 편안했던 '폭스바겐 비틀'
독일 나치의 착취 수단
자동차 강국 독일로 넘어가 보자. 독일의 대표적인 작은 국민차로는 '폭스바겐 비틀'이 있다. 보기엔 귀여워도 히틀러의 착취 수단으로 사용됐던 차다.
비틀의 역사는 오토포스트 역사플러스 코너에서 자세히 다룬 바 있다. 더욱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 가능하다.
히틀러의 대국민 사기극, '폭스바겐 비틀' 탄생 비하인드스토리 : http://naver.me/Gk6lTYgH
미국의 큰 차
'빨리'보단 '오래'달리는 것이 중요했다.
1950년대 미국은 행복 그 자체였다. 전쟁은 끝났고, 나라는 부유하고, 기름은 저렴했으며, 자원은 풍부하고, 공간은 넘쳐났다. 이러한 배경에서 그들에게 '자동차'하는 것이 주는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당시 미국의 자동차는 고급스러움 자체였다. 그 정점엔 캐딜락이 있었다. 사진에 있는 엘도라도 비아리츠는 5.4미터의 전장과 2.2톤의 무게를 가졌다. 유럽인들이 보면 그저 쓸데없이 큰 차에 불과하지만, 미국인들에겐 자동차의 상징이었다. 과거와 다른 점이 있다면 단순히 큰 차가 아닌 공간 활용하기에도 좋은 차가 오늘날엔 잘 팔리고 있다는 점이다.
"포드 F-150의 누적 판매량은 어마어마하다. 미국에서만 현재도 35초에 한 대 꼴로 팔리고, 1948년부터 지금까지 생산된 F-150을 나열하면 적도 두 바퀴를 돌 수 있다.
잘 팔리는 이유는 자동변속기, 크루즈 컨트롤, 에어컨, 편안한 승차감, 어마어마한 활용 공간, 그리고 350마력 V8 엔진이 올라갔음에도 3천300만 원밖에 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물론 미국에서의 가격이다."
-제레미 클락슨
그렇다. '포드 F-150'은 오늘날 미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자동차다. 우리나라로 치면 쏘나타나 쏘렌토 수준으로 잘 팔리는 미국인들의 국민차다.
미국에서 큰 차가 잘 팔리는 이유는 국토 면적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과거엔 미국의 광활한 사막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은 멀기만 했다. 때문에 미국인들은 '빨리 달리기'가 아닌 '오래달리기'를 중요시했다. 미국인들의 픽업트럭 사랑은 카우보이 기질에서 나오기도 한다. 요즘엔 짐을 실을 일이 없어도 큰 차를 사는 추세다.
미국은 큰 배기량을 천천히 돌리면서 달린다면, 유럽은 작은 배기량을 민첩하게 굴리는 것이 특징이다.
유럽과 미국의 사례만 놓고 본다면 "차의 크기는 국토 면적과 비례한다"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떤 모습일까.
한국의 큰 차
경제 발전 이론에서도, 자동차 크기에서도 '예외'
세계의 경제발전 이론이나 통계자료를 보면 작은 글씨로 "*한국은 예외"라는 문구를 꽤 자주 본다. 세계 경제발전 이론에 부합하지 않은 유일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자동차 크기도 마찬가지다. 만약 '자동차의 크기는 국토 면적에 비례한다'라는 이론이 성립되려면 "*한국은 예외"라는 문구를 사용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 작은 차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큰 차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주차난이 심각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영국과 국토 면적이 비슷한 우리나라에 큰 차들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우리나라의 자동차가 처음부터 큰 것은 아니었다. 과거에는 '국민차'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던 대우 티코, 현대 포니, 196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신진 코로나가 있었다.
1960년대 신진 코로나의 크기는 요즘 나오는 아반떼보다 작았다. 그럼에도 대부분 직업 운전기사를 썼다. 덩치가 큰 기사를 둘 수도 없었다.
이유는 앞자리가 벤치 시트라 운전석을 뒤로 밀면 조수석도 같이 밀려 뒷자리가 좁아진다는 것이었다. 유럽의 작고 넓은 차와는 달리 굉장히 좁았다고 한다.
과거 미국 역시 크기는 크지만 실내는 굉장히 비좁았다. 차량의 크기가 커지는 것은 우리나라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미국은 원래부터 큰 차들이 도로를 점령했고, 유럽도 미니를 보면 알 수 있듯 차체가 점점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차 크기가 본격적으로 커지기 시작한 것은 NF 쏘나타가 출시될 즘이다. NF 쏘나타 때부터 그랜저를 따라잡기 시작해 지금은 크기와 가격 모두 그랜저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차체가 커졌음에도 소비자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경차도 예외는 아니다. 스파크와 모닝도 점점 차체가 커졌다. 유럽도 마찬가지다. 폭스바겐의 오리지널 골프의 크기가 현행 폴로의 크기인 것처럼 차량의 크기뿐 아니라 엔진도, 가격도 커졌다.
그나마 경차 규격이 유지되고 있는 나라는 일본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큰 차가 인기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에서 큰 차가 있기 있는 이유
첫째, 사회적 인식
우리나라에 큰 차가 많은 이유로 사회적 인식을 빼놓을 수 없다. 우리나라는 '체면'을 중시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자동차는 곧 신분이다. 주변 신경도 많이 쓴다. "작은 차는 젊을 때나 타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우리나라에서 해치백이 인기가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40대나 50대, 그리고 폭스바겐 골프를 타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여러분의 직장 동료들은 그랜저 혹은 제네시스 G80 이상 크기의 차량에 골프채를 싣고 다닐 것이다. 재미를 위해 작은 차를 타는 것이라는 여러분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는 직장 동료는 몇이나 될지 생각해보자.
더불어 우리는 일명 '깡통 차'를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즉, 기본 가격의 차는 잘 타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조그마한 스크래치도 용납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선 당연하다. 검은색 플라스틱 범퍼를 쓰지 않는 차량이 우리나라 도로에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럽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검은색 플라스틱 범퍼를 달고 있는 차량들을 쉽게 볼 수 있고, 도로에 다니는 차들 중 어딘가 찌그러지거나, 범퍼가 없는 차들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사진에서 알 수 있듯 이탈리아가 특히 그렇다.
한국에서 큰 차가 있기 있는 이유
둘째, 상위 트림 선호 ▶ 이로 인한 가격 상승
앞서 언급했듯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하위 트림을 비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작은 차도 옵션 항목이 늘어날수록 가격이 늘어나고, 자연스레 "이 가격이면 조금만 더 보태서 차라리 저 차를"이라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우리나라 작은 차들의 기본적인 가격도 무시할 수 없다. 이미 스파크나 모닝도 과거 생각하던 정상적인 경차의 가격을 뛰어넘은지 오래다.
수입차로 눈을 돌려보자니 여긴 더 하다. 피아트 500도 2천만 원이 넘고, 벤츠라는 이유로 스마트는 기본 2500만 원 이상, 오픈 톱 모델은 3천만 원 가까이한다. 어느덧 '작은 차'라는 것이 '서민들을 위한 실용적인 차'가 아닌 '부자들의 장난감'이 된지도 오래다.
정답은 없다.
문화의 차이, 인식의 차이일 뿐이다.
유럽이 정답이라는 것도, 우리나라가 오답이라는 것도 아니다. 단지 문화적 차이에서 만들어진 인식과 도로 풍경일뿐이다. 존중되어야 마땅하다. 차를 산다는 것, 특히 젊은 세대들에겐 굉장히 힘들다. 경제 사정도, 취업 사정도, 도로 사정도 그리 좋지 않다. 나이가 들면 가족들도 생각해야 한다. 생산 인구들은 돈을 벌기도 힘들지만, 저축하기도 점점 힘들어진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도로 풍경도 많이 바뀐 것은 사실이다. 과거에 비해 수입차를 비롯한 다양한 제품군의 자동차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고, 다이하츠 코펜, 피아트 500, 폭스바겐 골프 등 작고 재밌는 차들이 늘어난 것도 사실이다.
우리나라에 작은 차가 없는 이유는 어쩌면 우리들에게 여유가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닌가. 경제적 여유든, 마음의 여유든...
수학 공식처럼 딱 들어맞는 정답은 없다. 다만, 우리나라 도로 풍경의 색채도 좀 더 다양해졌으면 하는 바람을 전하며 오늘의 글을 마친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최고의 자동차는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