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수목원으로
시월 둘째 주말은 내가 속한 문학회에서 기행을 가는 날이다. 지난날 문학 기행이나 정기 모임에 얼굴을 내밀지 못한 적이 더러 있었다. 그때는 회원들에게 덜 미안했으나 퇴직 후 백수 신분에는 불참 명분이 사라져 행사에 빠질 수 없는 처지라 달력에 미리 표시해두었다. 지나간 봄 연초록 잎이 돋을 무렵 회원들과 장유 대청계곡을 걸었는데 가을엔 경북 봉화 일대로 가는 일정이다.
이른 아침 전세버스가 출발하는 종합운동장 만남의 광장에서 반가운 얼굴을 뵈어 마산과 내서 나들목에서 나머지 회원이 합류하니 스무 명이었다. 칠서에서 낙동강을 건너는 강변은 아침 안개가 걷히지 않고 있었다. 출발을 즈음한 집행부의 인사와 함께 우리가 가는 백두대간수목원의 봉화 춘양이 고향인 회장으로부터 송이 추억담과 함께 지역 사정을 소개받아 유익한 정보였다.
살림을 맡은 여성 회원 정성이 담긴 간식과 함께 조식을 대신할 따뜻한 떡까지 협찬한 회원이 있었다. 현풍 휴게소에 잠시 들렀다가 중부 내륙 고속도로를 달린 차창 밖은 추수가 덜 끝난 들녘 벼들이 황금빛이었다. 안동을 지나 영주에서 36번 국도를 달리니 주변은 온통 산지로 제철을 맞은 송이가 나는 소나무 숲 일색이었다. 우리나라 면 단위로는 가장 넓다는 춘양에 닿았다.
수년 전 나는 백두대간수목원이 개장했던 초기에 초등 동기들과 한 차례 다녀간 적 있어 주변 풍광이 낯설지 않았다. 입장권을 끊어 수목원 경내로 들어 해설사로부터 간단한 현황을 청취했다. 많고 많은 우리나라 수목원에서 백두산 호랑이 방사 여건이 서식 환경에 맞게 제공된 숲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지구의 미래를 지키는 세계 유일 야생 식물 종자 영구 저장 시설도 갖추었단다.
지난번 찾았을 때는 코로나 이전이었고 몇 해 사이 수목원에도 변화가 있어 관람객 편의를 위해 무궤도 열차를 운행했다. 우리 일행은 트램을 타고 호랑이 방사 현장을 찾아갔다. 트램에서 내려 이동 중 구절초와 산국이 피운 화사한 꽃들을 완상했다. 백두산 호랑이 방사장으로 가니 투명 판유리와 견고한 철망 안에 두 마리 호랑이가 관람객을 의식하지 않고 한가히 어슬렁거렸다.
백두대간수목원에는 호랑이 숲 말고도 단풍정원과 자작나무원과 만병초원을 비롯한 다양한 수목과 초본을 재배 전시했다. 주말을 맞아 우리처럼 먼 곳에서 찾아왔을 젊은 부모들은 자녀들과 함께한 흐뭇한 나들이였다. 호랑이 숲에서 산책로를 따라 나오면서 약용삭물원을 둘러보고 어수리나 원추리처럼 산나물로 삼을 식물도 살펴봤다. 꽃잎이 짙은 보라색인 용담이 피운 꽃도 만났다.
수목원에서 나와 춘양 장터 식당으로 가서 점심상을 받았다. 문학회를 이끄는 회장은 고향에 미리 연락해 며칠째 모은 상당량 송이를 찢어 쇠고기 전골에 얹어 익혀 향긋한 맛을 봤다. 일행은 송이전골에 이어 송이전으로 어디서나 쉽게 누릴 수 없는 식도락을 즐겼다. 마침 춘양에는 오일장 장날이라 장터를 구경하고 다음 일정인 사과 농장을 찾아 사과를 따는 체험을 하러 갔다.
화장과 연이 닿는 사과밭은 귀촌 젊은 부부가 농장을 경영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듯했다. 주인장 내외의 안내를 받아 볼이 붉게 착색되어 가는 사과를 직접 따서 광주리에 채웠다. 회원들은 각자 한 봉지씩 담은 사과값을 1만 원씩 치르면서 흐뭇해했다. 이후 회장의 서동리 본가를 방문해 모친을 뵙고 인사를 드리고 마을 어귀 카페에서 취향 따라 차를 마시며 환담을 나누었다.
날 저물기 전 차를 돌려 내려오다 창녕 영산에서 추어탕으로 저녁을 들고나오니 사위가 캄캄했다. 귀로의 차내에서 나는 폰으로 ‘춘양 용담꽃’을 남겼다. “일교차 커지면서 밤사이 내릴 서리 / 엽록소 생기 잃어 단풍이 불붙으면 / 어디다 숨겨둔 색깔 저렇게도 예쁠까 // 나무만 그런가요 풀꽃도 덩달아서 / 씨앗을 맺으려는 가을꽃 마음 바빠 / 수목원 약초 단지 내 용담꽃도 곱더라” 23.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