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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금갑(射琴匣)
거문고 상자를 쏴라는 뜻으로, 신라 21대 소지왕(炤知王)이 거문고를 넣어두는 상자를 활로 쏴, 그 속에 숨어 있던 부정한 죄인을 죽이는 내용의 설화이다.
射 : 쏠 사(寸/7)
琴 : 거문고 금(王/8)
匣 : 작은 상자 갑(匚/5)
출전 : 삼국유사(三國遺事) 기이편(紀異篇), 동국통감(東國通鑑)
비유 : 왕은 하늘에서 보호하는 초월적 존재, 그리고 정월 보름날 찰밥 먹는 유래
정월 초하루(설)를 맞아 즐거운 한 때를 보낸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보름이 지나는 정월 대보름이다. 세월이 참 빠르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한다.
정월의 보름달은 지구와 달의 거리가 평소보다 가장 가까워지는 시기에 뜨는 보름달이라 하여 대보름(일명 슈퍼문)이라고 한다. 대보름달은 다른 보름달보다. 16% 이상 크고, 30% 이상 밝다고 한다.
따라서 사람들은 밝은 달에 정성을 들여 한 해의 개인 소원과 모두의 소망인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 등 신령한 행위와 축제를 통해 새로이 시작되는 한 해에 대하여 마음의 준비를 한다. 정월 대보름에 얽힌 고사를 살펴보자.
신라 제21대 비처왕(毗處王) 일명 소지왕(炤知王) 10년(488년) 1월 15일, 왕이 금오산에 있는 천천정(天泉亭)에 거동했다. 이때 까마귀와 쥐가 와서 우는데, 쥐가 사람 말로 이르기를 "이 까마귀가 가는 곳을 따라가 보시오" 했다.
왕이 자기가 직접 갈 수 없어 기사(騎士)에게 명하여 까마귀를 따르게 한 바, 남쪽의 피촌(避村)이라는 마을에 이르렀는데, 그 곳에서 돼지 두 마리가 서로 싸우고 있는 것을 보고 이를 한참 구경하다가 구경에 정신이 팔려, 까마귀가 간 곳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기사는 크게 당황하며 까마귀를 찾기 위해 길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다. 이때 한 노인이 연못 가운데로부터 걸어 나와 기사에게 한 통의 글을 바치며 왕께 갖다드리라 하고 사라졌다.
기사는 그 글을 왕께 바쳤고 왕이 봉투를 받아보니 겉봉에 다음과 같이 적혀있었다. '열어보면 두 사람이 죽고 안 열어보면 한 사람이 죽을 것(開見則二人死 不開則一人死)'이라고 쓰여 있었다.
왕은 두 사람보다 한 사람이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서 열어보지 않으려 하였으나, 일관(日官)이 아뢰기를 "두 사람은 보통사람이고 한 사람은 임금을 가리키는 것이니 열어보셔야 합니다"고 하므로 봉투를 열어보니, 그 속에는 하얀 종이에 정성스레 쓴 글씨로 '궁중의 거문고 상자를 쏴라(射宮中琴匣/사궁중금갑)'라고 쓰여 있었다.
왕이 편지를 보고 급히 궁으로 돌아와 왕의 거실에 들어가니 침대 옆에 놓아둔 거문고갑이 눈에 들어왔다. 왕이 지체없이 활로 거문고갑을 쏘자, 그 안에 평소 왕비와 정(情)을 통하여오던 중(僧)이 왕비와 함께 숨어있었다. 그들은 장차 왕을 해치고 왕이 되려고 숨어있던 것이었다.
이러한 일이 있은 후 왕은 정월보름을 '오기일(烏忌日)'이라 정하고 찰밥(오곡밥)으로 까마귀에게 공양하게 하였다. 그리고 이 사금갑 사건 이후로 매년 정월 첫 돼지, 쥐, 말의 날에는 모든 일을 삼가고 동작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고 삼국유사에 실려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이날엔 까마귀에게 찰밥으로 공양하며 제사를 지내는 풍속으로 계속 이어졌고, 다른 말로는 연못에서 글이 나왔다고 해서 '서출지(書出池)'라고도 한다.
관련원문 및 해석
삼국유사 권1 기이(紀異)1 사금갑(射琴匣)
射琴匣
第二十一毗處王[一作炤智王]卽位十年戊辰 幸於天泉亭 時有烏與鼠來鳴 鼠作人語云 此烏去處尋之 [或云 神德王欲行香興輪寺 路見衆鼠含尾 怪之而還占之 明日先鳴烏尋之云云 此說非也]王命騎士追之 南至避村[今壤避寺村 在南山東麓] 兩猪相鬪 留連見之 忽失烏所在 徘徊路旁 時有老翁 自池中出奉書 外面題云 開見二人死 不開一人死 使來獻之 王曰 與其二人死 莫若不開但一人死耳 日官奏云 二人者庶民也 一人者王也 王然之開見 書中云 射琴匣 王入宮 見琴匣射之 乃內殿焚修僧與宮主 潛通而所奸也 二人伏誅 自爾國俗每正月上亥上子上午等日 忌愼百事 不敢動作 以十六日爲烏忌之日 以糯飯祭之 至今行之 俚言怛忉 言悲愁而禁忌百事也 命其池曰書出池
거문고갑을 쏘다
제 21대 비처왕(毗處王)[또는 소지왕(炤智王)이다.] 즉위 10년 무진(戊辰)(488)에 천천정(天泉亭)에 행차하였을 때 까마귀와 쥐가 와서 울었다. 쥐가 사람의 말로 이르기를, “이 까마귀가 가는 곳을 찾아가 보시오.”라고 하였다. [혹은 신덕왕(神德王)이 흥륜사(興輪寺)에 가서 행향하려 할 때, 길에서 여러 마리의 쥐가 꼬리를 물고 있는 것을 보고, 이를 괴이 여겨 돌아와 점을 쳐보니 이튿날 먼저 우는 까마귀를 찾으라고 했다고 하는데, 이 설은 잘못이다.] 왕은 기사(騎士)에게 명하여 이를 쫓게 하였다. 남쪽 피촌(避村)[지금의 양피사촌(壤避寺村)이니 남산(南山) 동쪽 기슭에 있다.]에 이르러, 돼지 두 마리가 싸우고 있는 것을 한참동안 구경하고 있다가, 문득 까마귀가 날아간 곳을 잊어버리고 길가에서 헤매고 있었다. 이때 노옹(老翁)이 못 속에서 나와 글을 올리니, 겉봉에 쓰기를 “떼어보면 두 사람이 죽을 것이고, 떼어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기사(騎士)가 돌아와 이것을 바치니 왕이 말하기를 “두 사람이 죽는 것 보다는 떼어보지 않고 한 사람만 죽는 것이 낫겠다.”라고 하였다. 일관(日官)이 아뢰기를, “두 사람은 서민이요, 한 사람은 왕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이렇게 여겨 떼어보니, 그 글에 “거문고갑을 활로 쏘라.”하였다. 왕이 궁중으로 들어가 거문고갑을 보고 쏘니, 내전분수승(內殿焚修僧)과 궁주(宮主)가 은밀히 간통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처형되었다. 이로부터 나라 풍속에 해마다 정월(正月)의 상해(上亥)·상자(上子)·상오(上午)일에는 모든 일을 조심하고 꺼려 함부로 움직이지 않으며, 16일을 오기일(烏忌之日)이라고 하여 찰밥을 지어 제사 지내니, 지금도 이를 행하고 있다. 세속의 말에 이를 달도(怛忉)라고 하니, 슬퍼하고 근심하며 모든 일을 꺼려 금한다는 말이다. 그 못을 서출지(書出池)라고 이름 하였다.
까마귀는 조선시대의 '흉조(凶鳥) 까마귀'라는 인식과 달리,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삼국유사 표현을 빌어 '영험하고 빛을 상징하는 짐승'으로 여기고 신령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 정월보름날 오곡밥을 지어 먹는데, 오곡밥은 세 집 이상의 밥을 먹으면 그 해의 운이 좋다고 하여 여러 집의 오곡밥을 서로 나누어 먹었다고 한다.
이제까지 전해지는 대보름날의 풍속은 다양하고 의미가 깊은 놀이와 행사로 이어져 왔는데, '개 보름 쇠듯 한다'는 속담처럼 개에게 음식을 주지 않았는데, 만약 음식을 주면 여름에 파리가 많이 꼬인다고 하여 굶기기도 했다.
또한 아침에 소에게 나물과 밥을 줘서 밥을 먼저 먹으면 풍년이, 나물을 먼저 먹으면 흉년이 든다고 농사일을 점치기도 했다.(일명 農占/농점).
이어지는 풍속놀이는 각 지방마다 다르지만 맥기풍(麥祈風), 찰밥(오곡밥)과 묵나물 먹기, 부럼, 농점(農占/소밥주기), 달맞이, 쥐불놀이 등에, 아이들은 연 날리기, 바람개비, 실 싸움, 돈치기를 했고, 어른들은 놋다리밟기, 횃불싸움, 줄다리기, 동채싸음 등 다양한 놀이와 행사를 즐겼다.
예로부터 정월 대보름을 '상원(上元), 또는 오기일(烏忌日)'이라고도 한다. 상원은 중원(中元: 7월 15일), 하원(下元: 10월 15일)과 함께 삼원(三元) 중 하나로 설날만큼이나 비중을 크게 여겼다. 설날부터 대보름까지는 빚 독촉도 하지 않았으며, 세배를 드릴 수 있는 마지막 날이기도 하다.
오늘날에는 다양한 서양문화와 놀이가 유입되어 성행하므로 우리의 의미 깊은 풍속이 점점 사라져 가는 것이 매우 아쉽고 안타깝다. 세상은 변해도 민족의 혼(魂)과 미풍양속은 면면히 이어지길 바랄 뿐이다.
▶️ 射(쏠 사, 벼슬 이름 야, 맞힐 석, 싫어할 역)는 ❶회의문자로 온 몸(身)을 집중하여 화살(矢, 寸)을 쏜다는 데서 쏘다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射자는 '쏘다'나 '비추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射자는 身(몸 신)자와 寸(마디 촌)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런데 갑골문에 나온 射자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갑골문에서는 활과 화살이 함께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금문에서는 여기에 又(또 우)자가 더해졌다가 한나라 때의 예서에서는 활과 화살이 身자로 표현되면서 지금의 射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沙(사, 야, 석, 역)는 육예(六藝)의 하나. 활을 쏘는 일. 궁술. 사예(射藝)의 뜻으로 ①쏘다 ②비추다 ③추구(追求)하다 ④헤아리다 ⑤사궁(射弓) ⑥사수(射手) ⑦향사례(鄕射禮: 한량들이 편을 갈라 활쏘기를 겨루던 일) 그리고 ⓐ벼슬의 이름(야) ⓑ산(山)의 이름(야) 그리고 ㉠맞히다(석) ㉡쏘아 잡다(석) 그리고 ㊀싫어하다(역) ㊁음률(音律)의 이름(역)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총이나 대포 따위를 쏨을 사격(射擊), 대포나 총이나 활 따위를 쏘는 사람을 사수(射手), 우연한 이익을 얻고자 요행을 바람을 사행(射倖), 물체가 그림자를 비추는 일 또는 그 비친 그림자를 사영(射影), 총이나 활 등으로 쏘아 죽임을 사살(射殺), 총포나 활 따위를 쏨을 발사(發射), 몸에 약을 바늘로 찔러 넣음을 주사(注射), 한 방향으로 나아가던 파동이나 입자선 따위가 다른 물체에 부딪쳐서 되돌아오는 현상을 반사(反射), 총이나 활 따위를 함부로 쏘는 것을 난사(亂射), 열이나 빛 따위를 한 점으로 부터 사방으로 내쏨 또는 그러한 현상을 복사(輻射), 우연한 이익을 얻고자 요행을 바라는 마음을 사행심(射倖心), 고기를 잡으려고 하늘을 향해 쏜다는 뜻으로 고기는 물에서 구해야 하는데 하늘에서 구함 곧 불가능한 일을 하려 함을 이르는 말을 사어지천(射魚指天), 돌을 범인 줄 알고 쏘았더니 돌에 화살이 꽂혔다는 뜻으로 성심을 다하면 아니 될 일도 이룰 수 있음을 사석위호(射石爲虎), 무턱대고 쏘아 과녁을 맞혔다는 뜻으로 멋모르고 한 일이 우연히 들어맞아 성공했음의 비유한 말을 사공중곡(射空中鵠), 요행을 노리는 화살은 자주 차질을 일으킨다는 뜻으로 사행심의 발동으로 하는 일은 성취하기 어려움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사행삭질(射幸數跌), 모래를 머금어 그림자를 쏜다는 뜻으로 몰래 남을 공격하거나 비방하여 해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을 함사사영(含沙射影) 등에 쓰인다.
▶️ 琴(거문고 금)은 ❶상형문자로 琹(금)은 통자(通字), 珡(금)은 고자(古字)이다. 거문고의 몸통을 자른 면을 본 떠서 거문고의 모양을 나타낸다. ❷상형문자로 琴자는 '거문고'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琴자는 두 개의 玉(옥 옥)자와 今(이제 금)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今(이제 금)자는 '이제'라는 뜻을 가지고는 있지만, 여기에서는 발음역할만을 하고 있다. 琴자는 우리의 거문고와 같은 중국의 현악기를 뜻하는 글자이다. 소전에 나온 琴자를 보면 두 개의 玉자 사이로 줄이 둘려 있는데, 이것은 거문고에 있는 '괘'와 '줄'을 함께 표현한 것이다. 지금은 거문고에 있던 줄이 今자로 바뀐 것이다. 그러니 琴자에 있는 玉자도 '옥'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그래서 琴(금)은 (1)당악(唐樂) 현악기(絃樂器)의 한 가지. 거문고와 비슷하고, 줄이 일곱으로 되어 있으며 손가락으로 뜯어서 소리를 냄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거문고(우리나라 현악기의 하나) ②거문고 타는 소리 ③거문고를 타다 ④심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기러기발을 금휘(琴徽), 거문고 소리를 금음(琴音), 거문고나 가야금을 가르치던 선생이나 벼슬아치를 금사(琴師), 거문고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를 금조(琴操), 거문고의 줄을 금현(琴絃), 거문고의 곡조를 금곡(琴曲), 거문고의 이치와 타는 법을 금도(琴道), 거문고를 타며 책을 읽음을 금서(琴書), 깊이 간직하고 있는 마음을 금선(琴線), 거문고의 곡조를 적은 악보를 금보(琴譜), 거문고를 받치는 도구를 금상(琴狀), 거문고의 소리를 금운(琴韻), 거문고를 타서 신령을 맞아 길흉을 판단하는 점을 금점(琴占), 거문고와 비파로 부부 사이의 정을 금슬(琴瑟), 마음을 거문고 소리에 부침이라는 뜻으로 부인에 대한 애모의 마음을 금심(琴心), 어떠한 자극을 받아 울리는 마음을 거문고에 비유하는 말을 심금(心琴), 혹이 빈 둥근 나무에 짐승의 가죽을 메우고 긴 나무를 꽂아 줄을 활 모양으로 건 민속 악기를 해금(奚琴), 우리나라 현악기의 한 가지를 현금(玄琴), 사다리꼴 오동 겹 널빤지에 받침을 세우고 철사 열 넉 줄을 매어 채로 쳐서 소리를 내는 동양 현악기를 양금(洋琴), 거문고나 가야금 등을 탐을 탄금(彈琴), 거문고를 타는 일을 명금(鳴琴), 실로폰으로 나무토막을 벌여 놓고 두드려서 소리를 내게 만든 악기를 목금(木琴), 아무런 장식도 없는 소박한 거문고를 소금(素琴), 거문고와 비파의 조화로운 소리라는 뜻으로 부부 사이의 다정하고 화목한 즐거움을 이르는 말을 금슬지락(琴瑟之樂), 거문고와 비파 소리가 조화를 이룬다는 뜻으로 부부 사이가 다정하고 화목함을 이르는 말을 금슬상화(琴瑟相和), 거문고와 비파를 타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부부간에 화락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여고금슬(如鼓琴瑟), 사람의 죽음을 몹시 슬퍼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인금구망(人琴俱亡), 소를 마주 대하고 거문고를 탄다는 뜻으로 어리석은 사람은 아무리 도리를 가르쳐도 알아듣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대우탄금(對牛彈琴) 등에 쓰인다.
▶️ 匣(갑 갑)은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튼입구몸(匚; 그릇, 모진 상자)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甲(갑)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匣(갑)은 (1)물건을 담는 작은 상자(箱子) (2)물건을 담는 작은 상자를 세는 단위(單位) (3)성배(成坏)된 도자기(陶瓷器)를 구울 때 담아 넣는 큰 그릇 등의 의미로 ①갑(작은 상자) ②우리(짐승을 가두어 기르는 곳)(=柙) ③궤(櫃)에 담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독 굽는 데 쓰는 갑을 만드는 공장을 갑작(匣作), 갑을 보호하기 위하여 겉에 덧씌우는 무명이나 가죽으로 만든 주머니를 갑의(匣衣), 갑에 넣어 포장한 담배를 갑초(匣草), 가죽이나 헝겊 따위로 쌈지처럼 조그맣게 만든 물건을 지갑(紙匣), 손을 보호하거나 추위를 막거나 장식으로 손에 낄 수 있도록 천이나 털실이나 가죽 따위로 손의 모양과 비슷하게 만든 물건을 장갑(掌匣), 죄인이나 피의자의 동작이 자유롭지 못하게 두 손목에 걸쳐 채우는 형구를 수갑(手匣), 칼을 넣어 두는 상자를 검갑(劍匣), 책을 넣어 두는 갑이나 집을 책갑(册匣), 명함을 넣어 두는 갑을 배갑(拜匣), 약을 넣는 갑을 약갑(藥匣), 도장(圖章)을 넣어 두는 갑을 인갑(印匣), 어떤 제품을 갑 속에 넣음을 입갑(入匣), 책을 넣어 두거나 겉으로 싸는 갑을 책갑(冊匣)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