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답! 고구마 튀김(빙고...노랑이 그라데이션) 실물이 더 예쁘겠지? 수금 주간이라 바빠 예민하고 나말야(에스더/나)" 새로운 시작입니다. 장마가 한 텀 쉬는 사이 한소끔 자고 일어났는데 컨디션이 좋습니다. 블랑쇼가 시킨대로 '흔들렸고' '침묵' 했을 뿐인데 이 또한 지나가고 있고 일이 잘 풀릴 것 같은 예감입니다. 에에공! 오늘도 힘차게 가즈아! 시편 초장을 지나가다가 존재의 존재감 때문에 먹억해집니다. 아비도 에에공에게 "눈을 떼본적이 없다"는 걸 하나님은 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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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라고? 다시 힘을 내자고 아자! 아자! 공원에 산책을 나갔는데 목련꽃이 다 지고 없습니다. 아, 괴테 형! 괴테는 단순한 천재가 아닙니다 그는 욕망을 끝까지 살아낸 나의 롤모델입니다. 10대의 사랑, 노년에도 청혼, 삶 전체가 욕망의 궤적입니다. 내가 볼 때 괴테는 욕망을 1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는 것 아닙니까? 나는 중년의 사랑이 부끄러워 원본을 구기고 감추고 없애버렸어요. 물론 니체의 다연은 단순한 방탕이 아니라 문학을 풍성하게 만든 에너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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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의 원천이었다고요. 에에공에게 아비가 살아보니 인생은 <먹방과 섹스>라고 다시 한 번 밝힙니다. 2026 월드컵 16강에서 삼바축구 네이마르가 바이킹의 후예 훌란에게 2;1로 발목을 잡혔습니다. 지는 해와 떠오르는 태양은 자연의 이치입니다. 이로서 메시-음바페-훌란은 득점 공동 1위(7골)입니다. 누가 최다골을 터트릴까요? 요구에서 욕구를 뺀 나머지가 욕망이라고 합디다. 욕망은 남근과 같아서 커졌다 줄어들었다 하는데 과연 내 허기가 채워지면 욕망이 달성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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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에 대한 두 이론이 있어요. 라캉은 욕망을 결핍으로 보는 반변, 들뢰즈는 욕망을 결핍으로 보지 않고 생성으로 봅니다. 욕망은 부족해서 생기는 것이 아닌 흘러가는 에너지로 봐요(끊임없이 생성하는 힘). 슬라보예 지젝은 "우리는 원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똥딴지 같은 말을 합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는 욕망이 해결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why?
2.
욕망은 채워지는가, 아니면 계속 생성되는가? 우리가 진짜 원하는 것은 욕망의 충족일까, 아니면 욕망하는 상태 자체일까? 글은 일상의 안부에서 시작해 시편, 괴테, 철학, 축구, 그리고 욕망의 이론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엮어 갑니다. 글쓴이의 특징인 생활에서 철학으로, 철학에서 다시 삶으로 돌아오는 리듬이 잘 살아 있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블랑쇼가 시킨 대로 흔들렸고 침묵했을 뿐인데 이 또한 지나가고 있다"는 고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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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지식으로 소비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통과시키는 태도가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이어 "하나님은 내가 딸에게서 한 번도 눈을 떼지 않았다는 것을 아신다"는 문장은, 아버지의 사랑을 하나님의 시선과 연결하며 잔잔한 울림을 줍니다. 이 대목은 글 전체에서 가장 따뜻한 부분입니다. 괴테를 해석하는 방식도 흥미롭습니다. 괴테를 단순한 문호가 아니라 욕망을 끝까지 살아낸 인간으로 읽어내는 시각은 설득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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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니체의 다연(多戀)이 문학을 풍성하게 만들었다"는 표현은 조금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창조성과 욕망은 분명 연결될 수 있지만, 그것이 반드시 다연이나 연애 자체에서 비롯된다고 일반화하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삶의 강렬한 에너지가 다양한 형태로 예술과 사유를 낳았다고 표현하는 편이 균형 잡힌 해석이 될 것입니다. 후반부에서 라캉, 들뢰즈, 슬라보예 지젝을 한 줄로 연결한 구성은 매우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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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캉: 욕망은 ,결핍>에서 시작된다. 들뢰즈: 욕망은 <생성하는 힘>이다. 지젝: 인간은 욕망의 대상보다 <욕망하는 구조>를 더 원한다. 이 세 사람의 차이를 매우 간결하게 제시하면서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특히 마지막 질문인 우리는 욕망이 해결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Why?가 글을 살아 있게 만듭니다. 그 이유는 지젝의 관점에서 보면, 욕망이 완전히 충족되는 순간 욕망은 사라지고, 욕망이 사라지면 지금까지 자신을 움직여 온 삶의 서사도 멈추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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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대상을 원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계속 원할 수 있는 상태>를 더 원합니다. 다만 "인생은 먹방과 섹스"라는 문장은 독자의 시선을 강하게 끌지만, 글 전체의 깊이에 비해 다소 단순하게 들릴 위험이 있습니다. 오히려 "인생은 먹고 사랑하며 의미를 만들어 가는 존재의 여정"정도로 확장하면 이후의 괴테와 철학 이야기가 더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입니다. 현재 표현은 도발적이지만, 뒤에 이어지는 철학적 논의를 충분히 담아내기에는 다소 좁은 프레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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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글이 던지는 핵심은 욕망의 찬반이 아닙니다. 욕망은 인간을 무너뜨리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간을 창조하고 움직이는 가장 근원적인 생명의 힘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욕망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향해 욕망할 것인가입니다. 그 질문은 괴테와 니체를 지나 시편으로 이어지고, 결국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욕망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라는 신앙의 질문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철학과 신앙, 그리고 일상이 한 글 안에서 자연스럽게 만나는 점이 이 글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2026.7.7.tue. 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