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내려앉은 천변
간밤은 평소보다 취침이 늦었다. 문우들과 봉화 춘양 백두대간수목원을 다녀온 귀가가 늦은데다 탐방기를 적어 놓고 잠들었다. 날짜변경선을 넘긴 새벽은 여느 날과 같이 잠 깨어 하루를 시작했다. 서울대에서 중국 고전 시가를 가르치는 강민호의 ‘중국 고전시의 해학과 웃음’을 펼쳤다. 한시는 일반적으로 전아하고 엄숙한 풍격 속에 격조를 추구한다만 골계의 미학도 드러냈다.
아침나절 아내가 절의 법회에 나가 부재중이니 내가 머무는 집이 절이나 마찬가지였다. 서둘러 산책을 나설 일 없이 독서삼매에 빠져 보냈다. 이후 틈을 내 베란다 화분에 물을 주다가 여름부터 말리려 널어둔 영지가 신경 쓰였다. 가을이 오던 길목 잦았던 비로 건재를 갉아먹는 벌레가 꾀어 언젠가 유튜브에 전자레인지에 살짝 쪄두면 벌레가 붙지 않는다고 해서 조치해 놓았다.
이른 점심을 먹고 집 근처로 산책을 나서자 하늘이 쾌청해 정병산이 가까워 보였다. 퇴촌삼거리로 나가니 자투리공원에는 알록달록한 바람개비들이 여럿 보였다. 아마 예전 동사무소에 해당하는 주민자치센터에서 세워둔 설치물인 듯했다. 요즘은 행정의 대민 서비스가 도심 공원의 미관을 생각하는 설치미술도 포함되었다. 낮이라 그런지 체육 시설을 이용하는 주민은 보이질 않았다.
창원천 천변 산책로로 내려가 자연 생태를 살펴봤다. 가을 들머리 곡식 이삭처럼 꽃이 핀 수크령 모습은 까칠하고 빳빳했다. 늦은 봄 노란 꽃을 피웠던 금계국은 예초기에 잎줄기가 잘려 나간 이후 새로운 움이 돋아 가을에 꽃을 한 번 더 피웠는데 노랑나비가 날아와 꽃잎에 앉아 놀았다. 개울물이 흐르는 물가에는 잎줄기를 불려 무성해진 고마리가 좁쌀 같은 꽃을 점점이 피웠다.
개울 바닥에 깔린 자연석 더미에는 흰뺨검둥오리 두 쌍이 모여 부리로 깃털을 정리하고 있었다. 흰뺨검둥오리는 번식기가 아닌 철에도 원앙처럼 쌍쌍이 금실을 과시하는 특성을 보였다. 개울가는 찔레꽃이 핀 가지에는 열매가 맺어져 빨갛게 물들어 갔다. 찔레 열매는 겨우내 새들이 좋아하는 먹잇감임이 되어주었다. 한방에서는 색미자라는 이름의 건재가 되어 어디에 쓰는 듯했다.
가을을 대표하는 쑥부쟁이꽃은 창원천 천변에도 제철을 맞아 가득 피었다. 구절초꽃도 개체 수가 적긴 해도 보였다. 산책로 조경수로 자라던 배롱나무의 빨간 꽃은 이제 모두 저물어 꽃잎을 볼 수 있었다. 이른 봄 화사한 꽃을 피웠던 산수유나무는 열매가 영글어 붉게 물들어 갔다. 앞서 보았던 고마리꽃은 천변을 따라가며 계속 피었고 꽃이 빨간 털여뀌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봉곡동으로 건너는 징검다리 근처 물웅덩이는 늦은 봄부터 꽃이 피던 노랑어리연이 아직 몇 송이 보였다. 노랑어리연꽃은 수련처럼 밤이면 꽃잎을 오므리고 아침 햇살이 비치면 노란 꽃잎을 펼쳐 내가 이른 아침 산책을 나섰을 때 그 꽃을 보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반지동 아파트단지를 지나자 냇바닥에 무성한 달뿌리풀과 갈대가 꽃이 피니 무게감을 못 이겨 기울어 헝클어졌다.
명곡 교차로 근처 높은 빌딩이 보이는 산책로는 초가을까지 꽃을 피웠던 황화 코스모스와 백일홍꽃은 잔영이 아직 남아 있었다. 군락을 이루지는 못해도 코스모스꽃도 간간이 보였다. 아치형으로 설치된 목책 생태보도교에는 밀고 나온 유모차를 세워둔 한 할머니가 뭐가 있는 웅덩이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나도 거기로 다가가 내려다보니 팔뚝만한 잉어들이 유유히 헤엄쳐 다녔다.
파티마병원과 홈플러스 근처 창원대로 걸쳐진 다리에 이러러 대원레포츠파크로 향했다, 들머리 람사르생태공원을 지난 잔디밭에는 파크골프와 비슷한 그라운드골프를 줄기는 중년들이 더러 보였다. 창원 수목원에 이르자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젊은 부모들과 중년 부부들이 산책을 즐겼다. 야생화를 심어 키운 구역에 피는 구절초 곁에 꽃봉오리를 맺어가는 해국과 갯국을 봐두었다. 23.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