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쇼핑센터에 어둠이 밀려오고
한 사람이 무언가를 밀고 있었다
있는 힘을 다하여
한 줄에 스무 개, 열다섯 줄을
어둠을 등에 지고 밀고 있었다
가득한 물건 가득한 사람
가득한 지구를 위하여
빈 수레를 밀고 있었다
아침을 향하여
경건하고 진지하게 밀고 있었다
발등을 세우고 두 손을 움켜쥐고
몸통으로 비스듬히 일직선으로
밑을 바라보며 밀고 있었다
대지란 이런 것이다
발걸음이란 이런 것이다
민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어떤 주장도 외침도 없이
그냥 그래야 하는 것으로
기어이 그래야 하는 것으로
어둠 속에서
모두가 돌아간 곳에서
있는 힘을 다하여
빈 수레를 밀고 있었다
-『경향신문/詩想과 세상』2023.10.27. -
모두 집으로 돌아간 “대형 쇼핑센터”에서 “빈 수레를 밀고 있”는 사람이 있다. 쇼핑센터는 거대한 물류창고처럼 온갖 물건들로 가득하다. 사람들은 수레에 가득 물건을 담는다. 더 많이 담기 위해 수레는 작은 물류창고가 된다. 어둠만이 남았을 때, 묵묵히 빈 수레를 밀며 자신의 “있는 힘”을 다 쓰는 한 사람의 등을 본다. 어둠의 등을 본다.
최선을 다하는 안간힘으로 수레를 미는 일은 대지도 함께하는 일. 그러나 시인은 “민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대지란 이런 것이다”라는 “어떤 주장”이나 판단이 아닌 “기어이 그래야 하는 것”이라고 쓴다. 언제나 넘치는 물건들로 지구는 기우뚱거리고, 그 물건들은 때로 주인이 되어 우리를 끌고 다닌다. 세계의 비참 속에서도 완강하게 지켜가야 할 우리들의 마지막인 오늘, 자신만의 속도로 생의 밑을 바라보는 한 사람이 오늘도 어둠이 담긴 빈 수레를 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