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화의 맛있는 트렌드(2) 제주시 구좌읍 '해녀의 부엌'
고령 해녀 권영희 할머니 인생 이야기 연극으로 보여줘
공연 후 제주 토속 해산물 맛보며 가슴 뭉클
엔터테인먼트 즐기도록 식당 쓰임새도 넓어져
제주도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에 위치한 ‘해녀의 부엌’ 전경. 사진=이윤화
우리는 배고플 때만 식당을 찾는 걸까?
학교 또는 직장에 나가 일상을 사는 사이, 그날의 끼니를 해결하기 위한 메뉴와 식당을 고르는 일은 누가 뭐래도 하루의 중대사다. 사는 터전을 벗어난 출장길·여행길에서도 지역의 맛집을 찾게 된다. 이는 그 여정의 메인 이벤트가 되기도 한다.
모임을 갖기 위해 참석자들이 고루 만족할만한 음식과 방(룸)이 있는지, 음식과 음료는 적합한지 꼼꼼히 조사해 선정한 식당은 다양한 소속과 관계를 보다 친밀하게 이어주는 중요한 장이 된다.
사랑하는 연인에게 프로포즈를 하기 위해 찾은 근사한 공간과 이벤트가 있는 식당은 인생의 아주 중요한 순간을 특별하게 수놓기도 한다.
이렇듯 식당의 용도가 다양해지고 있다. 오늘은 모임도, 사랑 고백 용도도 아닌 식당이다. 단순한 식사 그 이상의 ‘엔터테인먼트’를 즐길 수 있는 식당을 향해 제주도 떠나보자.
제주 구좌읍 앞바다에 작은 어선들이 정박해 있다. 사진=이윤화
‘해녀의 부엌’이란 식당을 예약하고 제주 조천읍으로 향했다. 바닷가 근처 쓸쓸한 창고 하나가 덩그러니 나온다. 기둥 작은 푯말에 해녀의 부엌이라고 쓰여 있다.
이곳이 식당이라고? 갸우뚱하며 들어가서 자리에 앉으니 공연이 시작된다. 열 살 즈음부터 우영밭(텃밭)의 박을 따서 속을 파내고 퐁당퐁당 물속에 들어가는 연습을 하기 시작하는 제주 소녀들. 엄마나 주위 언니들처럼 물질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익힌 권영희 할머니(92세)의 실제 이야기이다.
해녀로서 잠수를 배우고 바다 산물을 캐는 즐거움과 보람도 있었겠지만 20대에 바다에서 남편을 잃고 같이 물질하던 친한 언니도 돌 틈에 끼어 사고를 당한 사건도 나온다.
그러면서도 꿋꿋이 5남매를 키운 인생 이야기가 펼쳐진다. 엔딩씬에 권 할머니가 관객 테이블 사이를 느릿느릿 걸어 무대 앞으로 나온다. 그리고 무대 위의 본인 역을 한 젊은 권영희에게 말을 건네며 막이 내린다.
식사 전 제공되는 단막극에서 배우들이 공연하고 있다. 사진=이윤화
단막극이 끝나고 식사가 시작됐다. 권 할머니를 비롯한 해녀들이 그날 잡은 뿔소라 군소 적해삼를 비롯한 해산물과 우뭇가사리와 같은 해초, 감귤 등 제주 산물 밥상이 펼쳐진다.
특히 뿔소라가 인상적이다. 육지의 소라와 다르게 제주 현무암에 박혀있다 보니 뿔이 많이 생긴 뿔소라. 뿔소라를 일반 수조에 담가두면 뿔이 점점 없어져 육지의 소라처럼 된다고 하니, 강인하게 거센 자연에 맞서 견뎌온 세월의 증거를 제 몸에 두른 소라는 제주 바다에서 생존하는 해녀의 강건함과 비유되곤 한다.
‘해녀의 부엌’에서 제공되는 제주 토속 음식. 사진=이윤화
해녀의 현지 밥상이라 해서 소박한 어촌계 시골밥상 정도를 상상했는데, 나오는 차림새가 꽤 세련됐다. 음식은 계절마다 변하겠지만 즉석으로 짠 감귤주스, 뿔소라회 뿔소라와 사비장, 뿔소라꼬치구이 뿔소라미역국 등 뿔소라의 설명부터 맛까지 모두 이해하게 된다.
바다생물 군소는 해초를 뜯는 모습이 뭍의 검은 소가 풀을 뜯는 모습과 유사하다 하여 군소라 불렸다 하는데, 군소무침은 고급 능이버섯 식감을 연상케 한다.
이런저런 음식을 음미하는 식사 시간이 끝나니 무대에 올랐던 할머니가 다시 등장하신다. 아흔이 넘은 나이까지 해녀로 활동하고 있으니 70년이 넘는 세월을 거친 최고령 현역 해녀다.
실제 해녀 할머니가 공연 후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이윤화
해녀 할머니에게 식사 손님이자 관객이 궁금한 것을 질문하며 소통하는 시간이 시작된다. ‘할머니 오늘도 바다에 들어갔다 오셨어요?’ ‘할머니, 어떤 옷을 입고 물질을 하시나요?’ 해녀란 직업이 생소한 젊은 관객들은 궁금한 게 많다.
할머니는 하얀 소창 같은 옷을 보여준다. 흔히 알고 있는 검정색 고무 잠수복은 할머니의 나이 40대에 접어들어서야 입기 시작했단다. 그 전에는 얇디얇은 하얀 천옷을 입고 물질을 했는데 추운 날 바닷물에 들어갔다오면 불턱에서 1~2시간 몸을 녹여야 다시 물질하러 들어갈 수 있었다는 고단한 옛 이야기가 듣는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해녀의 부엌에서 제공하는 제주 토속 음식. 사진=이윤화
공연도 보고 음식을 먹고 해녀할머니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감동과 공감으로 종달어촌계 창고가 달아올랐다. 해녀의 부엌을 만든 김하연 대표는 제주 해녀 집안 출신으로 예술종합대학에서 연기 공부를 거쳤단다.
어느 날 주위의 해녀들이 채취한 뿔소라가 제대로 판로를 찾지 못하는 것을 보고 아이디어를 내어 2019년 지금과 같은 ‘극장식 식당’을 만들게 되었다.
공연에 실제 해녀들을 참여시키고 식당 음식엔 해녀의 산물을 활용했다. 공연에 참여하며 대중을 만나게 된 해녀들은 그동안 못 배운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고 부끄러워하던 해녀라는 직업에 당당한 자긍심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끼니 해결은 물론, 모임, 휴식, 경험, 배움, 그리고 공연의 감동을 담은 엔터테인먼트까지, 우리의 삶 속에서 식당의 역할이 무척 다양해지고 있다. 해녀의 부엌은 지역의 산물을 업으로 사는 토박이가 공연에 직접 참여하여 방문객들에게 대접한 음식에 깃든 스토리를 진정성 있게 들려주고, 이들이 직접 채취한 산물로 요리한 음식을 맛보도록 하니 그 여운이 무척 길다.
해녀의 부엌 입간판. 예약제로 운영된다.
◆해녀의부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해맞이해안로 2265 (☎ 0507-1385-1828)
인스타그램 : @haenyeokitchen_official (예약필수)
2021년 해녀의부엌 북촌점 (제주 제주시 조천읍 북촌9길 31)도 오픈했다.
이윤화는⋯음식을 좋아하고 맛집 여행을 즐기다 직업이 되었다. 식문화전문기업 다이어리알 대표로 활동하면서 2017년부터 ‘대한민국을 이끄는 외식트렌드’를 매년 발간하고 있다. 사람과 교감하는 것을 좋아해 작은 이탈리안 식당을 열어 술과 음식의 다양한 조합을 시도하고 있다. 다수 컨설팅 경험으로 향토음식과 지역 식문화에도 밝다. |
첫댓글 음식 가격이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궁금하네요. 제쥬에 가면 꼭 가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