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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48 패튼
미국에서 만든 주력 전차로 1세대 전차에 해당되며 차세대 M4 셔먼이나 서방제 T-55으로 불릴 만큼 많이 생산되어 우방국들에게 뿌렸다. 한국군 역시 M48 패튼을 운용 중이다(2017년 현재 M48A3K, M48A5K 계열을 운용 중).
M47 패튼의 실패로 다급해진 미군은 1950년 12월에 개발을 시작해 1951년 3월에 프로토타입 1호차가 롤 아웃될 정도로 급하게 M48을 개발했다.
개발 담당자는 크라이슬러 사의 부사장 Philip Wood Lett이며, 기술적으로는 그 자신이 이전부터 개발되는 중이었던 중(重)전차 M103의 프로토타입 T43 을 많이 참고했으며 전후 기술도 많이 도입됐다.
주포에는 부앙각을 자동 조절해주는 T30 탄도계산기가 탑재되고 M47에서 말썽을 부렸던 스테레오식 조준기 위치도 개선되었다. 다만 T46E1 측원기도 타고난 신뢰성의 한계만은 어쩔수 없어 결국 A2C 이후부터 단안합치식의 M17측원기로 교체된다. 이런 개량의 결과 본격적으로 현대적인 사격통제장치가 완성되었다. 정지 상태에서 표준교전거리 초탄명중률 50%, 차탄명중률 90%라는 평가였다. 당시 기준에서는 상당히 뛰어난 사통장치였다. 이런 수치가 6호 전차 티거 항목 등에 나와 있는 2차 대전 중 독일 전차들의 명중율에 비해 형편없는 게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2차 대전 때보다 크게 개선된 것이다. 그 시절에는 그냥 조준경에 그려진 눈금 보고 거리를 계산해서 조준하는 게 고작이었다.
미군 전차 최초로 조향장치에 핸들을 적용해서 조종성능도 크게 개선되었다. 그 이전의 전차는 각각 한쪽 무한궤도를 담당하는 레버를 조작하는 방식인 데 반해 독일군은 6호 전차 티거부터 핸들식 조향장치를 써서 그야말로 자동차운전을 할 수 있으면 조종가능하다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로 조종에 유리했다. 다만 이렇게 만들면 가격이 상승하고 기술력도 필요해서 미국도 M48에서나 적용한 것이다. 그래도 이 M48과 티거를 동일선상에 놓는 건 곤란한데, 48은 트랜스미션과 구동륜이 후방에 있고 엔진과 변속기를 합친 파워팩인 데다가 자동변속기로, 2종 보통 자동차의 깜박이 위치에 있는 레버 하나로 속도 조정한다. 티거보다 변속기 면에선 내구도와 위치 및 성능에선 레벨 자체가 다르다.
주포의 경우 90mm 48구경장의 M41 계열 주포의 관통력은 영국이 센추리온 Mk.III에게 달기 시작한 20파운드(83.4mm) 주포에도 못미쳐 중동전쟁에선 IS-3M의 전면을 관통하지 못할 정도라 뛰어난 수준은 못되었으나, 그래도 장전속도가 빠르고 장거리 명중률이 상대적으로 높은데다 고폭탄 위력만큼은 발군이었다. 그리고 나중에는 영국의 명품 주포인 로얄 오드넌스 L7 계열의 105mm 강선포를 소폭 개량하면서 M68 105mm 강선포라는 이름으로 면허생산하여 M60 패튼에 달았던 포를 M48A5 패튼에 본격적으로 장착해서 공격능력을 더 증가시켰다.
CD-850형 자동변속기는 당시 자동차 왕국으로서 세계 최고의 기술을 자랑하던 미국 제품답게 매우 우수하고 신뢰성도 높아 M48 패튼의 모든 모델에서 개량되면서 계속 탑재되었다.
그러나 M48A3 이전의 패튼에 사용하던 가솔린 엔진의 항속거리는 재앙 그 자체였다. 내부연료 800리터로 고작 130km 내외의 항속거리를 보였는데, 이는 기름먹는 괴물로 악명높았던 티거 2 와 별로 차이가 없는 수준이었다. 물론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기 때문에 평면 비교는 어렵지만... 그리고 후대의 이야기지만 가스터빈 엔진이라서 기름을 들이마신다는 소리를 듣는 M1 에이브람스도 이것보다는 연비가 좋다(1리터로 M1 에이브람스는 250~220미터정도, M48 가솔린버전은 160미터~180미터...).
디젤 엔진에 대한 기술이 부족하던 미군은 부족한 항속거리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처음에는 차체 후부에 랙을 달아 드럼통 4개를 그대로 올려(...) 증가연료탱크로 사용하는, 위험하면서도 궁상맞은 방법을 사용했다. 이 방법은 소련군이 T-34 이래로 쓰던 방법을 모방한 것이다. 하지만 소련 전차가 경유를 써서 피탄될 때도 큰 문제가 없는 데 반해, M48은 가솔린 드럼통을 엔진 위에 올려놓은 셈이니 피탄되면 움직이는 화염병이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하면 기본형 드럼통을 써도 1회 주유시 유류소모량이 무려 1600리터를 초과한다. 결국 연비를 올리기 위해 M48A2에서 기존 카뷰레터식 가솔린에서 직분사식으로 교환해보았으나 언발에 오줌누기 정도의 효과밖엔 없었다. 결국 M60 패튼이 배치된 후에야 등장한 M48A3부터 디젤 엔진으로 교환, 항속거리를 일거에 500km 가까이로 늘렸다.
다만 그래도 이 가솔린 엔진은 허접한 연비를 제외하자면 1940~1950년대에 등장한 전차용 가솔린 엔진들 중에서는 최고의 성능과 신뢰성을 가진 것으로 정평이 나 있었으나... 엔진화재나 과열 등으로 전차가 전소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이는 애초에 엔진개발에 필요한 시간이라는 것이 일정상으로 경직되어 있어서 충분한 개발기간을 투입해야 개발과정상의 문제점들을 잡고 야전에서 쓸 수 있을 정도의 신뢰성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 그런 조건을 생각하면 독일이 개발 중이던 가솔린 엔진을 참고한 의혹은 있으되 별 경험 없이 만들기 시작해서 단기간에 매우 튼튼하고 신뢰성 높은 전차 엔진을 만들어낸 것 자체는 높이 평가해 줘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저연비 즉 심각한 항속거리 부족은 좀 심했다. 그러나 이 저연비는 가솔린 엔진이 아닌 가스터빈 엔진을 장착한 추후에 개발되는 3세대~3.5세대 전차인 M1 에이브람스로 계승된다.
거기에다 T-54 / T-55 전차와 같은 최신의 소련 전차가 연이어서 등장하자 공격력, 기동성 모두 불안요소로 떠올랐고 이들이 100mm 강선포를 무장하고 있다는 게 밝혀지자 방어력조차 안심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이유로 결국 미 육군은 105mm M68 강선포를 탑재한 신형 전차의 도입을 서두르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M60 패튼이다. M60 패튼의 등장으로 냉전의 최전선이던 NATO 배치 차량은 곧 철수했고 잉여분은 해외 수출로 돌려지거나 주 방위군에게 넘겨지게 되지만 생산량이 많은 관계로 퍽 오랫동안 현역에 머무르다가 미국 본토의 경우에는 M1 에이브람스 전차와 M60 패튼을 다수 운용하고 전시 예비용 물자로 M48 패튼의 경우 1990년대 초까지 비축과 소수 운용하고 있었다.
실제로 1990년대 초반까지 주한미군이 예비용으로 비축/운용하다가 WRSA로 한국군에게 판매(M48A5KW 혹은 M48A5W)하면서 공식적으로 전시 예비용 물자에서 해제했다. 그리고 미군의 경우 M60 패튼 계열이 전시 예비용 물자가 되었다가 2000년대 중반에 M60 패튼 계열도 역시 전시예비물자에서 해제가 되었으며 현재는 M1 에이브람스 계열 중의 일부 전차(초~중기형으로 추정)들이 이어받게 되었다.
실전에 있어서는 가장 잘 알려진 중동전쟁에서의 실적으로 라이벌격인 T-55 계열은 물론이고 카달로그 데이터로는 115mm 활강포를 탑재해서 더 우수해보이는 T-62에게서도 판정승을 거두었다. 물론 미국이 아직 현대적인 전차 개발 노하우를 쌓기 전에 나온 물건인지라 치명적인 결함도 몇몇 발견되었는데, 특히 포탑의 구동에 유압을 사용한 덕에 포탑 회전은 엄청나게 빨랐지만 피탄 시 유압계통이 터지면서 바로 화재를 일으켜 승무원들을 산채로 태우는 게 가장 큰 약점이었다. 이스라엘군 전차병들은 불타는 장의차라는 끔찍한 별명을 붙여줄 정도였다. 일각에서는 좀 순화된 별명인 지포라이터라고도 불렀지만 그 안에 타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끔찍하긴 매한가지. 다만 지포라는 별명은 M67에도 쓰였으므로 잘 구별할 필요가 있다.
미군이 1955년부터 M48 전차를 운용하기 시작하여 이어서 독일은 1957년 M48A1을 도입하였다. 이 전차는 AV-1790-7C 가솔린 엔진을 장착 출력 810 hp에 최대속도 45km/h, 항속거리는 115km에 불과했다. 1959년부터 M48A2와 A2C형이 도입된다. 개량된 AVI-1790-8 엔진을 장착, 출력 825 hp이고 연료탱크 증설을 위해 조금 개량되어 항속거리가 250km로 증가하였고 최대속도는 51.5 km/h 였다.
이후 독일 회사인 Wegmann (Kassel)사는 미국으로부터 도입한 650대의 M48 전차를 M48A2GA2형으로 개량하였다. 모든 개수된 전차들은 1978년 6월부터 1980년 11월사이에 인도되었다. M48A2GA2는 Leopard 1 전차와 같이 주포를 105mm L7A3 강선포로 바꾸고 대공기관총도 MG3로 변경하는 개량을 실시한 전차이다. 독일 육군 전차대대와 지역 예비육군의 Jäger 대대 내 제 5 중기갑중대에 배치되었다.
M48A2GA2 덕분에 회사가 커지는 모습을 지켜본 독일 전통 기갑장비 제작사인 Krauss Maffei and Wegmann사는 M48용으로 더 개량된 패키지를 내놓지만 독일군은 채택하지 않았으며 5대의 시제형 Super M48만 남겨진다.
파키스탄
M47 패튼과 더불어 M48 패튼 전차의 주요 운용국 가운데 하나이다.
잘 안알려져 있지만 카길 전쟁과 같이 인도와의 국경분쟁에서 잘 써먹었고 그 와중에 인도군의 T-55나 센추리온 전차들과 맞장 뜬 경력도 상당하다고 한다. 오죽 많이 운용했으면 아보타바드에 위치한 파키스탄 육군사관학교의 정문 앞에 파키스탄 육군의 상징으로 때 빼고 광 낸 전시용 M48 패튼을 갖다 전시해 놓을 정도다.
이 외에도 블랙 호크 다운으로 알려진 모가디슈 전투 당시에도 모가디슈 시내에 남아 있던 제75레인저연대와 제1특전단 델타분견대, 미합중국 해군특수전개발단 병력들의 모가디슈 탈출을 엄호하는데에 대활약을 했다고. 영화에서는 돈 문제로 안타깝게 말레이시아군 소속의 BTR 장갑차가 활약한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파키스탄군의 M48 패튼이 대활약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4. 기타 사항
미국에서 많이 생산되고 타국에게 공여되거나 판매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대한민국의 경우도 상황은 다르지 않아서 도입이 된 전차가 많다. 그 결과 군부대의 본부 앞을 비롯하여 고속도로 휴게소, 놀이공원 등에도 퇴역한 M48 패튼이 전시되어 있는데 군부대의 경우에는 제20기계화보병사단 앞에도 전시가 되어있으며 강원도의 모 최전방 사단 본부 영내에는 3개의 전시용 패튼이 전시되어 있으며, 전방만이 아니라 2작사 예하 경남에 소재한 모 사단의 사단사령부 연병장에도 전시되어 있다. 고속도로의 경우에는 서울방향의 신탄진과 안성 등에 전시가 되어있다. 게다가 전쟁기념관에도 M46, M47, M48 패튼이 전시되어 있다. 여러모로 M113과 비슷한 처지인 셈.
또한 일부 군 특성화 대학교/고등학교에도 있는데, 일례로 광주대학교 학생회관 앞에는 F-5A 전투기, KM900 장갑차와 함께 M48A2C가 전시되어 있고, 서산시 운산면의 운산공업고등학교의 운동장에도 M48A3K가 있다. 그리고 광주광역시의 놀이공원 광주패밀리랜드에는 90mm를 단 유물급 M48A2C 패튼이 처음 전시되었을 때에는 열차 이동시처럼 주포탑을 후방으로 돌려놓은 상태로 전시되었으나 언제부턴가 주포탑이 전방으로 돌아왔다. 울산 대공원에도 위의 패튼과 같은 사양으로 전시되어 있다. 대전 국립과학관에도 같은 전차가 전시되어있으며 그와 동시에 구경 203mm M110 자주포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경북 구미시 산동면에 위치한 경운대학교 군사학과동 운동장에도 해병대 상륙장갑차와 함께 M48 패튼이 전시되어 있다. 물론 무장이나 구동계통은 제거된 상태이다.
미국에서 M48 패튼을 대체할 중형전차를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의 산물인 T95 전차는 전용 포탑이 달릴 예정이었지만 만드는 것을 실패해서 M48A2의 포탑을 달아 T95E2라는 이름을 가진 실험 전차가 있다. 그리고 한 때 미국에서 탈부착식 복합장갑을 차체 전면에 장착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취소됐다. 게다가 한국군도 역시 반응장갑의 개발은 완료하고 장착을 시도했으나 예산 투자 대비 효율성이 낮다고 판단해서 취소되었다.
오래된 전차가 그런지 시동 시 딜레이가 있는데. 이때 발생되는 소리가 "쑤컹쑤컹쑤컹쑤컹 츄릅 부르르르르릉"이다. 사실 "쑤컹쑤컹쑤컹쑤컹" 소리는 시동줄(스타칭)을 당겼다가 놓으면서 발생하는 소리로 예초기를 가동시키거나 발전기를 수동으로 발전해야 될 경우에도 사용하고 있다.
한국군의 M48 패튼 전차가 M47 패튼과 함께 주력으로 운용하던 1960년∼1980년대 당시의 대한민국 군용 장비가 다 그러했듯, 흑역사가 있다.
군사정권 당시 계엄령이나 긴급조치 선포 시마다 대학교, 국회의사당 같은 주요 반(反)군부세력의 중요 지점을 봉쇄하는 M48 패튼의 사진은 민주주의의 고난 및 성장 부분에서 한 번쯤은 인용되는 모습이었다. 특히 5.18에서 M47 & M48 패튼이 갖고 있는 이미지는 부정적이다 못해 암울할 지경이었다.
그나마 당시 국군 기갑장비들 중 KM900 장갑차만은 그나마 예외인 편이다. KM900의 경우 운용법에 있어서는 당시의 일반 민간용 대형 차량들과 다를 바가 없었기에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시민군들이 군용트럭과 함께 애용했기 때문. 게다가 대다수의 남성이 군대 또는 공익 등의 복무를 마친 예비군인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일부 인원 중에서는 6.25 전쟁과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남성들도 꽤 있었다는 점도 작용했으리라고 추측 가능하다. 그런데 군용차량을 마냥 다 같은 군용차량인 줄 아는 사람들은 장갑차를 시민들이 운용할 수 없었을 테니 시민군은 북한의 사주를 받고 북한군이 도와준 것이라고 주장한다. 어쨌든 군장비를 탈취해 사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북한군 개입설은 지만원의 경우처럼 신군부가 퍼뜨린 루머에 속아넘어간 것이다.
한편으로 KM900 장갑차도 M47이나 M48 패튼 전차를 비롯해서 12.12 군사정변, 5.17 내란 등 신군부가 일으킨 쿠데타에 동원되었다.
5.18 광주 민주운동화운동 당시 계엄군
위 블로그의 사진들은 전부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찍힌 기타 진압군들과 M47 패튼과 M48 패튼 전차를 찍은 사진들이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 진압부대를 싣고 광주에 온 M113 보병 수송 장갑차(APC)와 특전사가 올라타 총격을 가한 UH-1 휴이 다목적 수송헬기도 마찬가지이다. 이 사진들은 극히 일부이며, 더 많은 사진들을 구글 검색으로 찾을 수 있다.
그밖에도 12.12 군사반란 당시 수도경비사령부의 사령관이었던 장태완 소장이 전두환 소장이 이끄는 보안사령부를 주축으로한 하나회의 반란을 막기 위해 휘하의 M48 전차들을 동원했지만 실패했다. 한가지 눈여겨 볼만한건 전두환측이 쿠데타에 동원한 제1군단 휘하의 부대인 제2기갑여단 역시 M48 전차를 장비했다는 점이다.
2017년 계엄령 모의 사건이 터짐으로써 K-1 전차 및 K-2 흑표가 M47 패튼이나 M48 패튼과 비슷한 상황이 될 뻔한 일이 드러났다.
첫댓글 오래전 고양에서 파주(적성)으로 무전기 점검을 나간일이 있는데 편도 1차선 도로에서 M48 전차 3~4를 만났습니다. 몇 Km를 탱크만 졸졸 따라가다가 겨우 풀려났습니다. 이 탱크는 노후화 되서 최고시속 20km가 나온다고 합니다. 벌써 퇴역했어야 하는데 국산전차 파워팩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하면서 생산에 차질이 생겨 10년이 그냥 지나가 버렸습니다.
국가안위노심초사(國家安危勞心焦思), 위국헌신군인본분(安重根義士遺墨-爲國獻身軍人本分)이란 자세로 주어진 책임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