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데헌’ 까치와 호랑이…언제부터 ‘짝패’ 였을까

[미션]

🎎‘케데헌’ 까치와 호랑이…언제부터 ‘짝패’
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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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나오는 ‘더피’와 ‘서씨’. 넷플릭스 제공


그들의 원조는 어디서 왔을까.

세계적인 흥행 열풍을 낳은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스터’에서 큰 사랑을 받는 마스코트는 송곳니가 튀어나온 호랑이 캐릭터 ‘더피’와 눈 셋 달린 요괴풍 까치 캐릭터 ‘서씨’다. 주인공 루미와 진우의 전령 구실을 하는 두 동물 캐릭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그들의 독특한 이미지가 어떻게 형성됐는지에 대한 궁금증도 생긴다.

사실 바보 호랑이와 영리한 까치는 옛 민화에 친숙하게 등장하는 앙숙이자 짝패다. 소나무 위 까치가 재치를 부려 그 아래 맹한 호랑이를 골탕먹이는 민화 ‘작호도’는 탐관오리나 양반의 행실을 꼬집는 조선 후기 서민의 풍자·해학 정신과 잇닿아 있다. 그런데 왜 하필 호랑이 짝이 까치일까? 이런 그림의 역사적 뿌리는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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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리움미술관 소장 까치호랑이. 19세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리움 소장 미기증 이건희 컬렉션


더피와 서씨의 기원을 둘러싼 물음은 한·중 미술사 연구자들 사이에서 여전히 말끔하게 풀리지 않는 과제다. 까치와 호랑이를 함께 담은 그림은 동아시아 예술사에서 ‘호작도’ 또는 ‘작호도’라고 불러왔다. 이런 주제는 한·중·일 동아시아 각지의 수백년 전 그림과 민화 등에서 공통으로 등장하지만, 숨은 의미는 지역마다 다기한 갈래를 친다.

특히 한·중 미술사 연구자들은 호작도의 뿌리가 중국이냐 한국이냐를 놓고 미묘한 견해차를 보여왔다. 민족 자생설이 있는가 하면, 한편으로 명·청대 표범과 까치를 함께 그려 복을 빌었던 ‘보희도’란 중국 민화의 표범을 호랑이로 착각하고 옮긴 데서 비롯됐다는 전래설도 만만치 않다. 중국의 호작도 연구자 쑹허우메이(宋后楣)와 홍선표 전 이화여대 교수 등의 논고를 보면, 중국 호작도는 기원이 1600년 전 남북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맹금 등 새와 어우러진 맹수의 도상이 처음 고개지 등의 그림에 등장했고, 이런 도상은 송나라 때 그림으로 스며들었다. 이후 원 왕조의 한족 압제기를 거쳐 15~16세기 명나라 초기 궁정에서 크게 유행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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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국립고궁박물원에 소장된 명나라 때의 작가 미상 ‘호작도’. 대만 국립고궁박물원 제공


명나라 초기의 호작도는 정치적 의
미가 명나라 개국공신 유기(劉基)와 연관된다. 까치 여러 마리가 시끄럽게 울면서 호랑이를 괴롭힌다는 우화를 바탕으로 정치적 함의를 끌어낸 것이다.
몽골 이민족 원 왕조의 압제에 저항하는 상징으로 까치를 끌어들인 것인데, 바로 이 도상이 임진왜란 이후 조선에 전래되면서 의미가 다른 갈래로 해석되고 도상도 변모하게 된다. 산신으로 여겨지는 맹수 호랑이가 재앙을 물리치는 벽사의 상징이라는 점과 까치가 기쁜 소식을 전하는 길조의 상징이라는 의미가 강조되면서 복과 위안을 주는 길상과 해학의 그림으로 바뀐 것이다. 이런 변환의 결과가 바로 19~20세기 민화의 유명한 까치호랑이다.

사실 중국에서 호작도는 명대 궁중에서 유행한 것 말고는 청대 이후 존재감이 희미해졌고, 지금은 중국인들에게 친숙한 존재가 아니다. 반면 한국에선 누구에게나 친숙한 정감의 존재가 됐다. 강원도 원주 치악산 명주사 고판화박물관에는 청나라 말기에 만든 용호도 목판 한짝이 소장돼 있다. 용과 호랑이를 각각 목판 한장씩에 새겨 짝으로 만들었는데, 목판 그림은 얼핏 호작도와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호랑이 위엔 소나무가 아닌 오동나무가 있고, 나무에는 까치 말고도 원숭이까지 있다. 애초 중국 사람들이 액을 쫓고 복을 빌려고 호랑이·까치 등 동물로 상징화해 만든 것인데, 조선에 전래되면서 정치·사회적 풍자가 녹아들어 다른 맥락의 조선 민화로 탈바꿈했다는 게 한선학 관장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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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때의 용호도 판화. 까치호랑이 민화와 달리 호랑이 옆 나무가 오동나무이며, 까치뿐 아니라 원숭이 등도 등장한다. 명주사 고판화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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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현 작 까치호랑이. 리움 소장 미기증 이건희 컬렉션


굳이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중세 중국까지 닿을 수 있지만, 캐릭터 고유의 성격이 형성된 건 조선 후기가 명백하다는 이야기다.
조선 민중과 민화 장인들의 시대 의식과 생활 감정이 결합돼 특유의 풍자·해학적 성격이 생겼다는 말이니, 우리 시각 문화와 미술 정체성이 반영된 셈이다.

까치호랑이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파악하게 되는 건 사실 중국 것이냐, 우리 것이냐 하는 자존심 대결을 넘어선다.
까치호랑이 도상은 적어도 동아시아에서 800년 이상의 역사적 전통 아래 공유돼온 미술사 유산이다.
그렇게 해서 생긴 보편성이 결국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통해 전세계에서 보편적 공감을 얻는 데까지 이어진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이제 학계에서 그동안 써온 ‘작호도’ ‘호작도’ 대신 ‘까치호랑이’를 세계인에게 고유명사로 아로새길 필요성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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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등장하는 호랑이 캐릭터 ‘더피’.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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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매진 행렬을 이루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의 까치호랑이 굿즈 장식물.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민화 연구자인 고연희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교수는 “이른바 호작도에 대해 심도 깊게 근원을 찾아가며 계통을 추린 본격적인 연구는 별로 없었다”며 “기존 호랑이 그림인 맹호도와의 관계, 까치와 다른 조류들이 맹호도 그림에 등장한 배경, 조선에서 까치호랑이 그림이 크게 환영받게 된 미술사·사회사적 맥락 등은 앞으로 심층적으로 접근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노형석 기자/ 한계레

[진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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