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욥기(4장~7장) 묵상
1. 욥이 두려워했던 것
욥기 3:25에 욥이 평소에
두려워하던 것이 자기에게 임했다고 했다.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가 무서워 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욥기3:25)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
경건한 삶을 살았던 욥이
평소에 무엇을 그렇게 두려워했을까?
물론 육체에 퍼진 질병의 아픔이
평온과 휴식을 빼앗아 가서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면
그가 평소에 육체의 질병을 두려워했었다고
짐작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만 생각하고 넘어가면
욥의 귀한 신앙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욥기 23:17을 읽어 보면 욥이 이런 말을 한다.
“내가 두려워 하는 것이 어둠 때문이나
흑암이 내 얼굴을 가렸기 때문이 아니로다.”(욥기23:17)
자기의 두려움이 단순히 질병으로 인한 고통이나
흑암의 권세 때문만은 아니라고 분명히 말한다.
그가 진정으로 두려워했던 것은
고난 때문에 자신의 마음이 약해져
하나님을 배신하는 것이 정말 두려웠던 것이다.
달리 말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두절될까 봐
그걸 두려워했던 것이다.
욥기 23:14에 욥이 고백한 것처럼
하나님은 그 작정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데
자기에게 임한 고난이 하나님의 진노와 작정에서 온 것이라면
행여 이 일로 하나님과 멀어질까 봐 두려워한 것이었다.
고통 속에서 욥이 왼쪽을 봐도 하나님을 뵐 수 없었고
오른쪽을 봐도 하나님을 만날 수 없었다.
앞으로 가도 뒤로 가도 하나님은 침묵하셨다.
이것이 진짜 욥이 두려워했던 일이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눈물로 이 잔을 지나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던 주님도
단순히 육체의 고통이 두려워 그렇게 간구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영원 전부터 단 한번도 아버지와 불화해 본 적이 없고
항상 사랑의 관계 속에서 지내 오셨던 주님이
이제 우리의 죄 때문에 아버지에게
외면당해야 하는 그 순간이 괴로우셨던 것이다.
아버지에게 버림받는 아들의 아픔이
주님의 진정한 두려움이었던 것이다.
주님은 오늘의 우리에게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항상 기뻐하고 모든 일에 감사하라고 하신다.
만일 그럼에도 내가 두려워해야 할 것이 있다면
다른 것이 아니고 바로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는 일이
내게 일어날까 봐 그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2. 옳은 말이 어찌 그리 고통스러운고!
욥기 6:25에서 네 명의 친구들에게
집중 공격을 당하고 있던 욥은 이렇게 소리 쳤다.
“옳은 말이 어찌 그리 고통스러운고,
너희의 책망은 무엇을 책망함이냐?”(욥기 6:25)
친구들의 말이 그 자체로는 틀린 말이 아니었다.
죄가 있기 때문에 고난을 당하는 것이니
지금이라도 회개하면 하나님이 긍휼히 여길 것이라는
그들의 논조는 욥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친구들의 문제는 천상에서 벌어진 일을 까마득히 모르고
그 사실을 배제한 채 다른 곳에서 고난의 이유를 찾으니
그저 상식적인 뻔한 소리만 할 뿐
욥의 사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도움은커녕 오히려 욥을 더 고통스럽게 했다.
우리는 종종 욥의 친구들 같은 말 실수를 범한다.
성경에 있는 말이라고 하여
때로는 성경을 인용하여 말하지만 상대방을 괴롭히고
가시로 찌르는 고통을 줄 때가 있다는 것이다.
목사님 가정에서 부부 싸움을 하는데
성경을 인용하여 부인이 남편에게 충고한다.
“성경에 뭐라고 했어요?
예수님이 교회를 위해 생명을 버린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라 했잖아요?
목사님이 돼가지고 그것도 몰라요?”.
이런 경우가 완전 욥의 친구들의 경우와 똑같다.
우리는 다투면서 나의 주장을 강조하기 위해
하나님이나 성경을 내 편으로 끌어들여서는 안 된다.
성경을 인용하려면
상대방을 공격하는 말씀을 인용하지 말고
나를 돌아보는 말씀을 인용해야 한다.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라 했는데…
이렇게 덤벼서 죄송해요”.
이렇게 나와야 다툼이 그치고 평화가 임하는 것이다.
타락한 인간들은 남의 눈에 있는 티는 잘 보면서
자기 눈의 들보는 못 본다.
우리는 욥기를 읽으면서 항상 욥의 친구들 같은
우를 범하지 않도록 경고를 받아야 한다. 아멘.
- 꿀송이 보약큐티 1년 1독 성경통독학교
남아공 노록수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