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산을 다시 만나다
시월 셋째 월요일이다. 평소 이른 아침부터 산행이나 산책을 나서는데 그러하지 않고 집에 머물면서 책을 펼쳐 읽었다. 중국 당대 이백과 두보에 이어 백거이와 한유가 남긴 한시 구절에서 음주와 해학의 의미를 좇아 시간을 보냈다. 나이가 들면 노화로 인한 기억력의 감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기억을 재생함에는 정교한 음성률로 결합 된 한시를 음미 이해함도 도움 되지 싶다.
아침 일찍부터 집 밖으로 나서지 않음은 오후에 마산문화원에서 열리는 이은상을 회고하는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주제 발표자가 나와 동향 동문 선배이기도 해 행사 소식을 듣고 기꺼이 시간을 내려고 마음을 두었다. 나보다 먼저 교직에서 은퇴한 선배는 우리나라 시조 문단에서 꽤 알려진 시인이고, 노산을 연구해 박사학위를 취득하기도 한 아직 왕성하게 활동하는 현역이다.
아침나절 산행 나섰다면 땀내가 나는 옷차림 그대로 행사장에 갈 수 없어 나들이 시간을 지연시켰다. 집에서 이른 점심을 들고 행사 시작보다 두세 시간 일찍 집을 나섰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마산으로 가는 102번 버스를 타고 도계동과 창원역을 거쳐 합성동 시외버스터미널을 지났다. 오후가 돼서였는지 내가 내린 어시장에는 아주머니급으로 늙수그레한 할머니들이 다수 내렸다.
내가 행사장인 합포구청 맞은편 마산문화원과 한참 떨어진 어시장에 내림은 회센터를 둘러보기 위해서다. 채소 노점과 건어물 가게를 지나자 문어와 낙지를 비롯해 어패류가 진열된 골목이 나왔다.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류 문제로 수산업이 타격을 받는다는데 어업이나 양식업 종사자와 관련 상인의 앞날이 염려였다. 나는 시국 상황이나 해양 환경 오염에 관심이 적은 국외자였다.
수족관의 돔과 전어를 비롯한 활어들은 비좁은 공간에서 손님들의 간택을 기다렸지만 나는 도움이 되지 않는 나그네였다. 어시장에서 해안도로 횡단보도를 건너니 마산 가고파 수산시장이 나왔다. 새벽 활어 경매장과 장어구이 골목은 합포 수변공원으로 이어져 합포만과 바로 접했다. 탁하긴 하나 검푸른 바다 지척에 돝섬이고 마창대교 높다란 교각에 쇠줄로 상판이 걸쳐져 있었다.
유람선 선착장과 해양경찰서에서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를 지난 곳은 김주열 시신 인양 지점에 열사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오늘 노산 행사와 대척점 진보 진영에서 기리는 3·15정신 성지다. 거기서부터 ‘3·15’로 명명된 해양 누리 공원이었다. 그냥 종전처럼 마산을 상징하고 부르기 익숙한 ‘가고파’를 살렸으면 좋으련만 굳이 그렇게 바꿔야 하는지 못내 아쉬움이 남았다.
어시장에서 합포 수변공원을 거쳐 해양 누리 공원으로 가는 동선을 정함은 국화 축제 준비 상황을 둘러보기 위해서다. 전에는 공식 명칭이 ‘마산 가고파 국화 축제’였는데 근년 와서 ‘가고파’를 삭제함은 진보 진영의 노산 지우기 일환이기도 했다. 넓은 공원에는 다음 주 축제를 앞두고 인부들이 현동 묘촌 창원시농업기술센터 양묘장에서 키운 국화들을 한창 진열 중이었다.
어시장과 해양 누리 공원을 거쳐 마산문화원으로 갔다. 3층 대강당에 올라가니 행사 관계자들이 참석 내빈을 맞이하느라 분주했다. 노산 이은상 선생 탄신 120주년 기념 학술발표회였다. 노산과 선생의 부친 성함을 함께 딴 기념사업회가 주관한 행사였는데 지역 정치권에서 내로라하는 얼굴이 다수였고 여든 아흔이 넘은 어른들도 뵐 수 있었다. 나는 객석 맨 뒤에 한 자리 차지했다.
진행 순서에 따라 내빈 축사에서 이어 노산의 생애와 문학 작품 연구에 천착한 선배가 연단에 올라 ‘대한민국의 대문호 노산 이은상 선생을 다시 만나다’의 주제를 발표했다. 산악인은 노산을 추앙한다고 들었지만 부친도 독립유공자인 줄은 이번에 알게 되었다. 진보 진영에서 노산 선생에 덧씌운 친일과 독재 권부 미화 프레임을 걷어내는 일은 기성세대가 풀어야 할 숙제였다. 23.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