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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대학교 다니고 다닐 시절에 저는 철학 개론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철학과에서 개설하는 여러 강좌 들을 첨 강하기도 했습니다. 그때 근세 철학사를 청강했고 그때 대륙의 함리 론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에 대해서. 조금 들었고 영국의 경험론 로크 버클리 흉에 대해서도 조금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를 몰랐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불교 교학을 배워왔기 때문에. 연기 오온 육체에 대한 교학적 지식이 조금 쌓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이런 생각이 일어났습니다. 서양철학도 결국은 정신과 물질의 법들에 관한 그쪽 어느 서술 일 것이다. 그래서 법에 대해서 말한다면 언어가 다를 뿐이지 연기 오온 육체를 이해한다면 그들이 은 어로 말하는 그 법들을. 나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챗 GPT에게 대륙의 합리 론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에 대해서 간단하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때마다 챗지 피티는 대답을 해주었고 저는. 제 나름대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물론 저의 이해는 그들 철학자의 이해와는 다른 제 나름의 불교를 배운 저의 이해일 뿐입니다. 그리고 다시 영국의 경험론로 커버클리 휴면 대해서도 챗 GPT에게 물어보았고. 그리고 그 설명을 듣고 제 나름대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물론 이것도 그들 철학자의 이해와는 다른 제가 배운 불교 지식을 토대로 한 저의 경험에 국한된 이 해 입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제기되는 여러 가지 문제들 예를 들자면 저기 보이는 것이 진짜 보이는 그대로인가 또는 저기 보이는 물질이 있는데 그 물질을 있게 하는 진짜 무엇이 있는가라든가 또는. 내가 저 달을 보고 있지 않을 때에는 저 달이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에 대한 글은 문제라든지라든가 또는. 영국 경험의 마지막을 차지하는 휴 미 어쩌면 허무주의로 빠졌을지도 모른다. 즉 은으로 개념으로 사유하는 극한까지 몰고 왔다. 라는 일은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불교에서. 무상 고무 알을 처음 읽었을 때 저 또한 허무주의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극복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대한 성찰도 이 서양철학자들의 중요 사상을 챗지 피티의 실명을 통해서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에 새로 가입한 그 카페는 바로 조건을 참으로 은밀하게 세밀하게 공부하는 카페였습니다. 즉 사람이 어떤 장소에 가면 무엇인가 모르게.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무엇인가 탁하고 머리에 떠오를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어떤 장소에 가면 그래서 이른 여러 가지 배경을 가지고서 이제 다음 창에서. 첫 번째로(아마도 생애 첫번째로) 조건을 살피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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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챗지피티의 교정본
예전에 대학교 다니던 시절에 저는 철학 개론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철학과에서 개설하는 여러 강좌를 청강하기도 했습니다. 그때 근세 철학사를 청강했고, 대륙의 합리론인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에 대해서 조금 들었으며 영국의 경험론인 로크, 버클리, 흄에 대해서도 조금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를 몰랐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불교 교학을 배워왔기 때문에 연기, 오온, 12처(육처)에 대한 교학적 지식이 조금 쌓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이런 생각이 일어났습니다. '서양 철학도 결국은 정신과 물질의 법들에 관한 그쪽 언어의 서술일 것이다. 그러니 법에 대해서 말한다면 언어가 다를 뿐이지, 연기·오온·육처를 이해한다면 그들이 자기들의 언어로 말하는 그 법들을 나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챗GPT에게 대륙의 합리론자들인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에 대해서 간단하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때마다 챗GPT는 대답을 해주었고, 저는 제 나름대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물론 저의 이해는 그들 철학자의 이해와는 다른, 제 나름의 불교를 배운 저의 이해일 뿐입니다. 다시 영국의 경험론자인 로크, 버클리, 흄에 대해서도 챗GPT에게 물어보았고, 그 설명을 듣고 제 나름대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물론 이것도 그들 철학자의 이해와는 다른, 제가 배운 불교 지식을 토대로 한 저의 경험에 국한된 이해입니다.
그곳에서 제기되는 여러 가지 문제들, 예를 들자면 '저기 보이는 것이 진짜 보이는 그대로인가', 또는 '저기 보이는 물질이 있는데 그 물질을 있게 하는 진짜 무엇이 있는가', 또는 '내가 저 달을 보고 있지 않을 때에는 저 달이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에 대한 문제라든지, 영국 경험론의 마지막을 차지하는 흄이 어쩌면 허무주의로 빠졌을지도 모른다는 점, 즉 언어와 개념으로 사유하는 극한까지 몰고 왔다는 등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제가 불교에서 무상·고·무아를 처음 접했을 때 저 또한 허무주의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극복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대한 성찰도 서양 철학자들의 주요 사상을 챗GPT가 설명해 주는 것을 통해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에 새로 가입한 그 카페는 바로 조건을 참으로 면밀하고 세밀하게 공부하는 카페였습니다. 사람이 어떤 장소에 가면 무엇인가 모르게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고, 무엇인가 탁 하고 머리에 떠오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배경을 가지고서, 이제 다음 창에서 어쩌면 제 생애 처음으로 조건을 살피는 일이 일어난 과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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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 561 전인 것 같습니다.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저에게 이런 생각이 이른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아이 세상에는 아무 기쁨이 없구나 아무 즐거움이 없구나. 저기 저것들은 즐거움이 아니구나라는 그런 생각이 일어났습니다. 또 여기 이 몸과 마음도 즐거움이 아닐 것이다. 기쁨이 아닐 것이다라는 그런 생각도 일어났습니다.
의지할 때가 없었습니다. 아마 이른 상태라면 저는 허무주의로 빠졌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8 정도가 생각났습니다. 아 그렇다. 나에게는 팔 쟁도에 대한 배움이 있구나 그래서 8 정도를 의지하면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참으로 감사한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부처님으로부터 이 8 정도를 듣게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다시 한 번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조금 있다가 다시 1은 생각이 일어났습니다. 아 나는 주권을 살피지 못했구나 지금까지. 조건을 살펴라라는 말은 들어왔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몰랐던 것이구나라는 그런 생각이 일어났습니다. 즉 나에게 허무주의가 또는 허무주의로 빠지려고 할 때 왜 나는 허무주의로 빠지게 되는가 무슨 원인 때문에 무슨 조건 때문에 흐 무주의로 빠지는가 그리고 흐 무주주의로 빠지게 하는 조건이 없어지면 당연히 그 흐 무주의라는 결과도 없어질 것이다라는 이런 쪽의 생각은 아예 해보*도 못한 것 같았습니다. 바로 이 흐 무주의로부터 벗어나는 길 부터 찾았던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슬픔이나 근심이나 걱정이나 절망이 일어날 때 왜 그것들이 일어났는지 그 원인과 조건을 살피지 않고 그 원인과 조건만 제거하면 그 결과인 이런 슬픔 근심 걱정 절망도 사라질 텐데 그런 것을 생각하지 않고 바로 슬픔 걱정 근심 절망에서 벗어나는 길만 찾았던 것이었습니다. 비유하자면. 고통이 있을 때 TV를 본다든지?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든지? 하여 그 괴로운 느낌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것처럼 그래서 다시 이런 생각이 일어났습니다. 그렇다. 사승자의 사승 제에 비유하면 나는 도 성제를 아주 조금 느꼈다. 그런데 나는 그 도 성제 다음에 나오는 집 성제 멸 승제는. 돌아보*도 못했다. 바로?
도성 제로 향하고 말았던 것이다. 비유하자면 물론 나의수 주는 그런 것에 그 진리에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비유하자면 바로 그런 것이었다. 아 지금까지 나는 그 현상을 보았고 그 현상으로부터 벗어나는 길만 생각했지. 그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 조건과 그 현상을 일어나게 하는 조건이 사라지면 그 결과 인현상도 사라진다는 것을 전혀. 염두에 두지 못했고 알지 못했던 것이었다. 바로 이른 자각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비로소 처음으로 아나는 그동안 조건을 살펴라라는 말은 들었어도 나는 한 번도 제대로 조건을 살펴보지 못했구나라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일을 조건을 살피게 된 저의 첫 번째 경우라고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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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챗지피티의 교정본
아마 5~6일 전인 것 같습니다.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저에게 이런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아, 이 세상에는 아무 기쁨이 없구나, 아무 즐거움이 없구나. 저기 저것들은 즐거움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일어났습니다. 또 '여기 이 몸과 마음도 즐거움이 아닐 것이다, 기쁨이 아닐 것이다'라는 생각도 일어났습니다.
의지할 데가 없었습니다. 아마 이런 상태라면 저는 허무주의로 빠졌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팔정도가 생각났습니다. '아, 그렇다. 나에게는 팔정도에 대한 배움이 있구나. 그러니 팔정도에 의지하면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참으로 감사한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부처님으로부터 이 팔정도를 듣게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다시 한번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조금 있다가 다시 이런 생각이 일어났습니다. '아, 나는 지금까지 조건을 살피지 못했구나. 조건을 살펴라라는 말은 계속 들어왔지만,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몰랐던 것이구나'라는 자각이었습니다. 즉, 나에게 허무주의가 찾아오거나 그 속으로 빠지려고 할 때, '왜 나는 허무주의로 빠지게 되는가? 무슨 원인 때문에, 무슨 조건 때문에 허무주의로 빠지는가? 그리고 허무주의로 빠지게 하는 조건이 없어지면 당연히 그 결과인 허무주의도 없어질 것이다'라는 식의 생각은 아예 해보지도 못한 것 같았습니다.
저는 바로 이 허무주의로부터 '벗어나는 길'부터 찾았던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슬픔이나 근심, 걱정, 절망이 일어날 때 왜 그것들이 일어났는지 그 원인과 조건을 살피지 않고, 그 원인과 조건만 제거하면 결과인 슬픔, 근심, 걱정, 절망도 사라질 텐데, 그런 것은 생각하지 않고 바로 그 감정들에서 벗어나는 길만 찾았던 것이었습니다. 비유하자면 고통이 있을 때 TV를 본다든지,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든지 하여 그 괴로운 느낌에서만 도망치려 했던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다시 이런 생각이 일어났습니다. '그렇다. 사성제에 비유하면 나는 도성제를 아주 조금 느꼈다. 그런데 나는 그 도성제 이전에 보아야 할 집성제와 멸성제는 돌아보지도 못했다. 바로 도성제로만 향하고 말았던 것이다.' 비유하자면 저의 수준은 그 진리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과정은 그러했습니다. 아, 지금까지 나는 현상을 보았고 그 현상으로부터 벗어나는 길만 생각했지,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 조건과 그 조건이 사라지면 현상도 사라진다는 것을 전혀 염두에 두지 못했고 알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런 자각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비로소 처음으로 '아, 나는 그동안 조건을 살펴라라는 말은 들었어도 한 번도 제대로 조건을 살펴보지 못했구나'라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일을 조건을 살피게 된 저의 첫 번째 경우라고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첫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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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아위자님. 감사합니다.
안다는 것에는 이런 것이 있을 것 같습니다.
길을 걸어가다가 또는 경전을 잃다가 아하 바로 이것이 구나 하는 그런 아는 것도 있고 두 번째로는. 탐욕이 일어났을 때 승림 이 일어났을 때 아하 이것이 탐욕이구나 아하 이것이 승림 이구나 이렇게 아는 것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삼매에서 법이 드러날 때 그 법이 드러난 그것을 알고 보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아는 것에는 3가지가 있을 것 같고 첫 번째 아는 그 아 하라고 하는 것은 한 번 일어나고 똑같은 아하라는 것은 안 일어나는 것 같았습니다. 두 번째 세 번째는 법이라서. 그 조건이 맞으면 조건에 맞는 앎이라는 것이 또 일어나고 또 일어날 것 같습니다.
이것은 음성으로 쓴 것이라서 띄워서 기나 오타가 있겠습니다. 널리 양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