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슥해지는 가을에
시월 중순 셋째 수요일은 문우들과 낙동강 물금 강변 자전거 길을 걸으려고 길을 나섰다. 이른 아침 집 근처에서 이웃의 한 지기와 창원중앙역으로 가는 215번 시내버스를 탔다. 퇴촌삼거리에서 도청과 의회를 지나자 역세권 상가가 나왔고 금세 창원중앙역이었다. 함께 길을 나선 일행이 넷인데, 둘은 창원역에서 순천발 부전행 무궁화호를 타고 오고 둘은 중앙역에서 타기로 했다.
일전 한 지기가 일행이 물금까지 가는 열차표를 예매해 놓았더랬다. 우리는 물금으로 가서 강가로 나가 자전거 길을 따라 원동까지 걸어갈 참이다. 정한 시각 도착한 열차를 탔더니 창원역에서 먼저 탄 두 지기가 지정된 좌석에 앉아와 한 칸은 역방향으로 돌려 얼굴을 마주 대했다. 비음산터널을 통과한 열차는 진영역과 한림정역을 지나 낙동강 강심에 놓인 삼랑진 철교를 지났다.
삼랑진에서는 철로가 경부선에 합류해 원동을 지난 물금에 내렸다. 물금은 강변 구릉지로 농사를 짓던 곳이었으나 양산에 신도시가 형성되면서 부산 의대 부속병원이 들어서고 부산 지하철 2호선이 운행되어 도시 규모가 예전과 사뭇 달라졌다. 양산 팔경 가운데 낙동강 강변에 천태산과 오봉산 임경대가 있다. 남부에서 심심산골 내륙 영남 알프스의 신불산이 가까운 배내골도 있다.
우리는 물금역 역사를 빠져나가 서부마을에서 황산공원 북단 쉼터에서 다과를 들면서 하루 동선과 일과를 의논했다. ‘황산’은 1천 200년 전 최치원이 임경대에 올라 낙동강의 풍경을 읊으면서 ‘황산강’이란 이름을 붙인 데 유래한다. 물금역에서 경부선 철길 바깥 남쪽 둔치가 황산공원이다. 우리는 쉼터에서 나와 부산 시민의 식수로 삼는 상수원을 퍼 올리는 취수장을 지나쳤다.
취수장이 끝난 곳은 상수원 취수 역사를 소개한 물 문화관이 나왔다. 철길 굴다리 밑으로 임경대 벼랑과 연결되는 가파른 등산로 들머리는 용화사였고 석조여래좌상은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인데 지난번에 둘러봐 자전거 길 따라 걸었다. 평일임에도 자전거 라이딩을 나선 이들이 많아 트레킹족은 보행 안전에 주의해야 했다. 토교 나루터에 이르니 물억새가 피어 가을 운치를 더했다.
물 문화원에서 철길과 나란한 벼랑은 조선시대 영남대로 황산잔도 구간이었다. 토교는 흙다리를 뜻하였는데 예전 마을 앞 샛강에 그런 다리가 놓여 있어 김정한 소설 ‘수라도’에도 나오는 지명이다. 토교 나루터에는 김정한의 ‘수라도’와 황산잔도를 소개한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날씬한 물억새꽃은 은빛 물결로 일렁였고 덥수룩한 갈대꽃은 무게감을 지탱하느라 안쓰러워 보였다.
화제 들판 앞 둔치에는 부산권에서 자전거를 타고 나온 이들이 상당한 숫자였다. 쉼터에서 우리보다 연장인 한 노인을 만나 건강하게 사는 모습을 확인했다. 강폭이 넓어져 너울너울 흘러온 강물은 을숙도 하굿둑에 갇혔다가 다대포로 빠져나갈 테다. 강물에 비친 햇살에 수면은 윤슬로 반짝였다. 우리는 물길의 방향을 거슬러서 보행에 속도를 보태서 원동역이 위치한 원리로 갔다.
도토리묵을 빚어 파는 원리 삼거리 농가를 찾아갔다. 작년에도 거기서 묵을 사 먹었고 나는 열흘 전에도 다녀갔다. 넷은 양손이 무게를 감당할 만치 두세 통씩 챙겨 들었다. 배내골에서 주워 모은 도토리로 빚은 갈색 윤이 나는 묵이었다. 역이 가까운 원리 추어탕집에서 토속 분위기가 물씬한 점심상을 받았다. 점심 식후 원동역에서 창원으로 가는 열차를 타서 중앙역에서 내렸다.
일행은 창원중앙역에서 창원대 캠퍼스로 내려가 소나무 폭포 쉼터에 자리를 차지했다. 묵을 팔던 집에서 받아온 묵장에 지인이 준비한 양념을 보태 야외에서 묵무침을 마련했다. 노송이 드리운 그늘과 쏟아지는 폭포가 배경이 되어준 명당이었다. 연락이 닿은 문사 한 분이 더 합류해 다섯은 젓가락으로 묵을 집어 먹은 식도락을 즐겼다. 설핏 기우는 햇살에 가을은 이슥해져 갔다. 23.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