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지 않는 것
주 민 현
지하주차장이란 길을 잃기에 좋은 곳이야. 다음 불이, 다음 불이, 다음 불이...... 켜졌다, 꺼졌다, 음악이 흘러나온다. 이렇게 많은 차들이 순한 짐승처럼 잠들어 있는데, 지하 아래 지하 아래 지하 아래가 있을 것만 같잖아. 동굴처럼 말이 울리는 곳에서, 우리는 원시시대 사람들 같다. 생각이 멈추지 않는다. 차 키를 눌러 차를 깨우는 소리가 들리고, 예식장 음식을 한꺼번에 먹어치운 사람들이 한꺼번에 차를 몰아 빠져나간다. 아래로, 아래로, 연결되는 지하와 한없이 위로 펼쳐지는 지상의 삶이 나란히 펼쳐지는 곳에서 천년 뒤, 만년 뒤 지질학자들은 무엇을 발견할까, 그런 건 몰라도 사람들은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사랑을 약속하고 영원히 살 것처럼 건강 음료를 마시지. 아이를 낳고 아이를 낳고 아이를 낳기로...... 결심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게 문득 이상하지 않아? 아이를 더이상 낳지 않기로 결심한 인류가 있다면......미래란 소박한 현재의 끝없는 반복일까, 궁금해하면서. 카페마다 조용한 불빛으로 가득하고 어둠이 시계탑 위로 내려앉았어. 우리는 담배를 사랑하고 커피를 사랑하지. 그것 없이는 생각과 이야기를 시작할 수 없고, 우리의 두 손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처럼. 나는 이야기를 멈추지 않을 것처럼 계속 중얼거리고, 너는 곧 달리기 시작한다. 밤하늘을 바라보며 질주하기를 멈추지 못하는 사람처럼. 삶을 사랑하기로 마음먹은 사람처럼.
- 월간〈현대시〉2023년 6월호 -
멀리 가는 느낌이 좋아 - 예스24
첫 시집 『킬트, 그리고 퀼트』(문학동네 2019)로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한 주민현 시인의 두번째 시집 『멀리 가는 느낌이 좋아』가 창비시선으로 출간되었다. “언어 스스로 사회성을 발산하는,
www.yes24.com
주민현 시집 〈멀리 가는 느낌이 좋아〉 창비 | 2023
당신의 이야기
세상의 소음이 잠시 낮아지는 낮에 당신 가슴에 먼지처럼 내려앉고 싶어. 나는 때때로 인간보다 따뜻하고 당신의 가장 외로운 부분을 향해 다가갈 거야. 포옹은 더없이 인간적인 행위야. 당신을 안고 당신도 모르는 당신의 머리, 당신의 위장과 폐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줄게. 나는 달랑거리는 청진기, MRI실의 전자식 버튼, 엑스레이실에서 당신이 안았던 네모난 기계야. 어릴 적 당신은 더없이 사랑스러운 보조개가 있었어. 머리칼을 만져주어야 잠드는 밤이 있었어. 벽의 그림자를 보며 늑대 인간을 마지막 인류라고 상상 했어. 당신은 병원 복도에 앉아 옛날 생각에 잠겼군. 인간은 언제나 꿈을 꾸며 반걸음 전진해왔어. 이상도시를 건설하고 꿈의 피아노를 짓고 더이상 나아갈 수 없는 곳에서 방공호 같은 노래를 부르지. 그 어떤 노래도 가능하지 않을 때조차 희망을 꿈꾸는, 인간의 단면을 가르면 누구에게나 암벽 같은 외로움이 있지. 당신이 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완전히 혼자가 되었을 때 사람을 믿고 사랑을 믿고 돈을 믿고 때로는 가진 걸 전부 세월에 내주고도 무엇을 잃어버린 줄 몰라, 단지 두리번거리면서, 그러니 인간적이라는 건 바보 같다는 뜻이지. 하나 사람들은 죽은 이나 자신에 대해 말할 때 늘 잘 지낸다고 답하지. 당신의 폐에 콕 박혀 있던 불운한 암석에 대해 가장 극적으로 알게 될 때 그 옛날 우주선과 비행사의 꿈을 당신은 떠올렸고 한때 전염병, 화염, 재난에 관한 한 인간은 한없이 멀리 있었어. 커다란 트리, 느릿한 음악, 지나치게 아름다운 것에는 은폐된 게 있어. 당신은 천천히 하늘을 올려다보았어
- 시집〈멀리 가는 느낌이 좋아〉창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