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R (Creedence Clearwater Revival )
1960년 말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컨트리 락밴드로서 가장 큰인기를 누린 밴드다. 1971년에는 'Have You Ever Seen The Rain?'(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불러서 월남전쟁의 부당함을 노래해 젊은이들에게는 반전데모의 정서를 심어주기도 했다. 이 노래는, 오늘날까지 월남전에 참전했던 군인들과 그가족들에게 육체적 아픔과 정신적 고통을 함께 안겨준 고엽제 (defoliant)를 맑은날에 내리는 비로 표현한다.
대부분의 음악을 담당했던 존 포거티(John Fogerty /보컬, 기타)'와 그의 형 인 '존(John)'의 학창시절 친구들인'더그 클리포드(Doug Clifford/ 드럼)' '더 불루 벨베츠(The Blue Velvets)'라는 밴드로 음악활동의 첫발을 딛게 된다.
1964년 샌프란시스코의 '판타시(Fantasy)' 레코드사와 계약을 하면ㅅ 밴드의 명칭도 '골리워그스(The Golliwogs)'로 바꾸면서 몇 장의 '싱글(Single)'을 발표했지만 큰반응을 얻지는 못했다.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ccR(Creedence Clearwater Revival)"이였고 1968년 '셀프타이틀(Self-Title)'로 첫 앨범을 발표하면서 세계적인 밴드로 부상한다. 하지만 1972년 존 포거티의 독주를 문제삼은 멤버들간의 불화로 7집을 끝으로 해체하고만다. 우리나라 팬들과는 정서적으로 비틀즈보다는 훨씬 가깝고 사랑을 많이 받았던 이들의 음악은 아직까지도 올드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코메디언 이주일씨가 묘한 엉덩이 춤과 함께 등장할때마다 자주 나오던 수지큐(Susie Q)로 CCR은 다시금 우리나라에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1993년 명예의 전당 공연자 부문에 올랐다.이 밴드는 충분한 자격이 있다.
Cotton Fields / C.C.R.
When I was a little bitty baby My mama would rock me in my cradle In those old cotton fields back home When I was a little bitty baby My mama would rock me in my cradle In those old cotton fields back home Oh, when those cotton ball get rotten You can't pick very much cotton In them old cotton fields back home It was back in Louisiana Just about a mile from Texarkana In them old cotton fields back home When I was a little bitty baby My mama would rock me in my cradle In them old cotton fields back home When I was a little bitty baby My mama would rock me in my cradle In those old cotton fields back home Oh, when those cotton ball get rotten You can't pick very much cotton In them old cotton fields back home It was back in Louisiana Just about a mile from Texarkana In those old cotton fields back home In those old cotton fields back home... 우리가 갓난 아이였을 때는 엄마가 요람에 눕히고 달래주었지요 그것은 그리운 목화밭 집에서의 일이었지요 루이지애나를 내려가 택살카나에서 꼭 1마일거리에 있는 그리운 우리집의 목화밭에서의 일이었지요 목화 열매가 못쓰게 되었을 때는 목화를 조금밖에 딸 수 없었는데 그것은 그리운 목화 집에서의 일이었어요 루이지애나를 내려가 택살카나에서 꼭 1마일거리에 있는 그리운 우리집의 목화밭에서의 일이었지요 우리가 갓난 아이였을 때는 엄마가 요람에 눕히고 달래주었지요 그것은 그리운 목화밭 집에서의 일이었지요 루이지애나를 내려가 택살카나에서 꼭 1마일거리에 있는 그리운 우리집의 목화밭에서의 일이었지요 목화 열매가 못쓰게 되었을 때는 목화를 조금밖에 딸 수 없었는데 그것은 그리운 목화 집에서의 일이었어요 루이지애나를 내려가 택살카나에서 꼭 1마일거리에 있는 그리운 우리집의 목화밭에서의 일이었지요 |
출처: 인곡비웅 원문보기 글쓴이: 인곡비웅
첫댓글 즐감합니다.
감사합니다
옛적에 많이 좋아 했었는대
학창시절 생각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