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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함께 하는 산행이야기
영남 알프스 가지산- 운문산 정상을 걷다.
--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 산행개요 ***
일시 : 2011년 6월 12일 오전 4시 ~ 오후 3시 50분 (11시간 50분)
산행지 : 영남알프스 가지산(1240M) - 운문산(1188M)
산행코스 : 운문령 - 귀바위 - 쌀바위 - 가지산 - 아랫재 - 운문산 - 석골사 약 20kM
일기 : 흐린 후 맑음. 기온 약 25도
산동무 : 수리산을 사랑하는 사람들 28명
조율(調律) / 한영애
알고 있지 꽃들은
따뜻한 오월이면 꽃을 피워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 철새들은
가을하늘 때가 되면 날아가야 한다는 것을
문제 무엇이 문제인가
가는 곳 모르면서 그저 달리고만 있었던 거야
지고지순했던 우리네 마음이
언제부터 진실을 외면해 왔었는지
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그 옛날 하늘빛처럼 조율 한번 해 주세요
정다웠던 시냇물이 검게 검게 바다로 가고
드높았던 파란하늘
뿌옇게 뿌옇게 보이질 않으니
마지막 가꾸었던 우리의 사랑도
그렇게 끝이 나는 건 아닌지
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그 옛날 하늘빛처럼 조율 한번 해 주세요
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그 옛날 하늘빛처럼 조율 한번 해 주세요
미움이 사랑으로 분노는 용서로
고립은 위로로 충동이 인내로
모두 함께 손잡는다면
서성대는 외로운 그림자들
편안한 마음 서로 나눌 수 있을텐데
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그 옛날 하늘빛처럼 조율 한번 해 주세요
내가 믿고 있는 건
이 땅과 하늘과 어린 아이들
내일 그들이 열린 가슴으로
사랑의 의미를 실천할 수 있도록
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그 옛날 하늘빛처럼 조율 한번 해 주세요
내가 즐겨보는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에서 일주일 전에 한영애의 <조율>을 김동욱이 부르는 것으로 예고되어 있었다. 중간점검을 통해 김동욱이 부르는 <조율>을 미리 맛볼 수 있었다. 이 노래는 <혁명>을 노래한다. 대중매체인 <나가수>를 통해 혁명의 메시지가 대중들에게 전달될 수 있을까? 하늘님이 잠을 잘 수는 없는 일이고, 잠을 자고 있는 건 우리이다. 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라고 노래하는 것은 우리 안에서 잠든 하늘님의 마음을 깨워 일으키려는 것이다. 옛날 하늘빛은 하늘님의 마음을 닮은 인간의 지고지순한 심성으로의 진화로 과거로의 회기가 아니라 미래의 지향점을 가리키는 것이다. 조율은 새로운 질서 즉 <혁명>이다. <나가수>의 파급력으로 볼 때 만약 이 노래가 히트를 친다면 시스템과 돈과 시간에 포박되어 있는 우리의 구속을 깨달을 수 있는 작은 울림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다. 우리는, 우리의 자유는 체제에 구속되어 있고 사실 우리는 그 구속을 인지하지도 못하고 있다. 우리가 구속되어 있는 것을 인지하여야 그 구속을 벗어나기 위하여 노력할 것이 아닌가? 나는 일주일 내내 한영애의 이 노래를 듣고 또 듣고 불러보았다. 그러면 어느새 두 눈에 눈물이 맺히고 가슴에 서러움이 밀려든다. <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내 안에 잠들어 있는 그 하늘님을 깨우러 나는 산으로 간다.
영남알프스! 이 거대한 산무리들 중에 오늘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은 영남알프스의 북쪽 가지산과 운문산이다. 가지산은 영남알프스 산무리 중에 가장 높다고 한다. 20Km. 수리산 완주를 꼬박 두 번 하는 거리이다. 밤 10시에 안양을 출발하여 밤 새 경부고속도로를 내 달렸다. 수리산을 사랑하는 사람들 28명. 오늘 함께 산행할 산동무들이다. 새벽 2시 30분. 언양휴게소에서 아침식사를 하였다. 총무님이 밥과 시래기 된장국을 준비하였다. 새벽에 텅 빈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먹는 따뜻한 밥과 국이 참 맛있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니, 언양 쯤 왔으면 하늘에 별이 보여야 하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일기예보에는 장마전선이 제주도 남쪽으로 물러간다고 했는데 그러면 하늘이 맑아야 되는 것이 아닌가? ‘스모그 때문일지도 모른다.’며 마음의 위안을 삼아보려 한다. 식사를 하고 약간의 휴식을 취한 후, 언양 IC를 빠져나와 언양 시내를 가로지른 후, 우리를 태운 버스는 산행시작점인 <운문령>으로 향한다. 운문령의 정확한 해발고도는 알 수 없으나, 지도상으로는 600~700m는 족히 되는 것 같다. 버스는 구불구불 산길을 하염없이 오르고 또 오른다. 마치 예전의 대관령 아흔 아홉 구비를 돌아 오르는 것 같다. 아슬아슬 얼마나 올랐을까? 드디어 운문령에 닿았다.
새벽 3시 50분. 버스에서 내리자 새벽 찬 기운이 운문령에 몰려온다. 거의 천리길을 밤 새 내달려 새벽바람으로 운문령을 맞는다. 산의 기운에게 나와 우리가 왔음을 고한다. <영남 알프스! 가지산, 운문산의 기운이시여. 오늘 우리가 산과 하나가 되려 하오니, 우리들의 걸음걸음을 보호하시어 아무 사고 없이 산행을 마칠 수 있게 살펴주시고, 산이 주는 기운을 듬뿍 받아 내 생명의 기운이 대자연과 동화되어 지고지순(至高至純)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캄캄한 산길을 헤드랜턴에 의지해 오르기 시작하였다)
운문령에는 조그만 주막이 하나 있는데 문은 닫혀있다. 사실 우리 중에는 오늘 코스를 돌아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산행 지도와 인터넷으로 얻은 정보에 의지해 올라야 한다. 운문령 입구에 세워진 등산안내문을 꼼꼼하게 살펴본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 깜깜한 새벽. 자칫 잘못 길을 들어서면 큰 낭패이다. 몸을 약간 푼 후 드디어 출발. 처음 올라선 길, 제법 가파르다. 잠깐 올랐을 까. 어라! 차 한 대는 너끈히 다닐 수 있는 임도와 만난다. 임도를 따라 오르다 입구에 산악회 리본이 걸려 있으면 다시 산으로 들어간다. 그러다 다시 임도와 만나기를 서너 차례. 찻길인 임도는 완전 구불구불 되어 있고 우리는 임도와 산길을 번갈아 치며 오르고 있다. 한 30분을 오르니 임도가 아예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다. 선두는 산길로 접어들었지만 나는 지레 짐작 어차피 임도와 또 만나니까 계속 임도로 걷는다. 어두운 가운데에서도 지형을 살펴보니 산길은 능선을 따라 오르고 있고, 임도는 능선 아래를 평행으로 함께 흐르고 있었다. 뭐 한 구비 돌아서면 만나겠구나 생각하고 진행을 하는데 길은 능선과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아내는 아까 산길과 임도가 만나는 마지막지점에서 선두를 따라가겠다고 산길로 들어갔다. 그것이 제법 긴 헤어짐이 되었다.
(귀바위로 오르면서 내려다본 언양시내)
(우리는 임도길과 귀바위길 두 팀으로 나뉘어 산을 올랐다)
임도를 따라 계속 걷다보니 능선 정상으로 커다란 바위가 보인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마치 커다란 귀의 형상을 하고 있다. ‘저것이 귀바위구나.’ 생각을 하며 지나친다. 능선위로 치고 올라가고 싶지만 오를 수 있는 길이 없다. 산행지도에 임도와 산길이 흐릿하게 구분이 되어 있었는데 설마 길이 이렇게 어긋나리라고는 생각을 못했었다. 어느새 날이 훤하게 밝아오고 있다. 무박산행을 하면 가장 처음 접하는 장관이 밤하늘의 별무리이다. 지난해 가을 지리산에 오를 때 그 반짝반짝 하늘을 수놓았던 별들의 모습. 오랜만에 만났던 나의 어릴 적 꿈. 오리온자리 삼태성 가운데 나의 별. 그러나 오늘의 밤하늘에 아무것도 없다. 아무래도 하늘에 구름이 꽉 차 있는 것 같다. 5시 10분경이 일출 시간인데 5시를 지나가면서도 하늘은 그 모습을 열어주지 않아 참 답답하다. 아무래도 오늘 일출은 보지 못할 것 같다. 하늘님은 아직 깊은 잠에 빠져 있나 보다.
(귀바위 정상 - 나는 아내와 길이 어긋나 아 바위 아래 임도로 통과하였다)
(상운산 정상에선 아내와 선녀님)
귀바위 아래를 통과해 계속 걷다보니 귀바위 능선에서 내려오는 지점과 만난다. 합류점에는 나무로 만든 전망대가 근사하게 만들어져 있고, 석남사에서 시작되는 등산로와 멀리 언양 시내를 조망할 수 있다. 원래 산적 대장의 계획으로는 저기 석남사에서 귀바위까지 올라오는 길을 계획했는데 내가 인터넷서핑을 하다가 운문령고개 시작점을 찾은 것이다. 저기 산 아래부터 올라오기 시작했으면 여기까지 오는데 힘을 다 쏟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전망대에 도착 시간이 5시 10분. 무전기로 선두와 교신을 하니 귀바위를 지나 상운산 정상이라고 한다. 지도를 보니 거기에서 우리가 있는 합류점까지 내려오려면 한 20분 정도 소요될 것 같다. 선두조를 안 따라가고 나를 따라온 산동무들이 20명. 배낭에서 커피와 막걸리를 꺼내 한 잔씩 나누어 마신다. 나도 준비한 대통주를 꺼내 함께 나누어 마시며 오르막 끝의 휴식을 즐겼다.
(임도길과 귀바위에서 내려오는 합류지점의 전망대- 여기에서 귀바위 팀을 기다렸다)
(전망대에서 바라 본 언양시내 - 귀바위 팀을 기다리는 동안 날이 훤히 밝았다)
5시 30분 선두조가 내려와 합류하였다. 가뜩이나 허리가 안좋아서 복대까지 하고 나온 아내에게 내 말 안 듣고 선두조를 따라가 고생이냐고 했더니 귀바위 정상이 너무 멋있었다고 오히려 큰 소리이다. 합류점에서 쌀바위까지는 그야말로 평지 오솔길이다. 포장은 걷혀있지만 조그만 트럭한대는 간신히 다닐 수 있는 길이다. 우리 일행은 귀바위를 아래에서 제대로 보았느니, 귀바위 위에서 멋지게 사진을 찍었느니 수다를 떨고, 오늘 산행을 걱정하면서 걸음을 재촉하였다. 중간 길에 커다란 두꺼비를 만났다. 수리산 같은 도심 속 산에서는 볼 수 없는 두꺼비가 이 산에서는 산길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신기한 마음에 숲으로 들어가려는 두꺼비를 스틱으로 들어 올려 길 가로 옮겨 기념사진을 찍었다.
(쌀바위로 가는 길에 만난 두꺼비)
쌀바위에 근접을 하자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아내가 눈썹그린 강아지라고 텔레비전에서 보았다고 빨리 가자고 한다. 쌀바위 아래에는 산장이 있다. 강아지는 산장 안에 있었는데 아쉽게도 눈썹을 그린 강아지는 아니다. 쌀바위 아래에서의 조망도 제법 근사해서 우리 일행은 모두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다. <쌀바위(미암(米巖))>은 옛날에 한 스님을 수도정진을 하는데 이 바위에서 매번 한 끼니의 쌀이 나왔다는데서 유래한다고 한다. 쌀바위는 표고 1109미터로 족히 30미터는 되어 보이는 큰 바위이다. 선두대장을 맡은 제갈영 고문님이 배낭을 두고 쌀바위에 올라갔다 오자 해서 몇 명을 제외하고는 쌀바위에 올랐다. 입구에 <산악인 이규진 추모비>가 놓여있었다. 아마도 여기 쌀바위를 암벽등반하다 낙상하여 돌아가신 것으로 추정된다. 쌀바위 정상은 그야말로 대 장관이다. 바위 자체로도 너무 멋있고, 내려다보는 조망도 끝내준다. 정상바위에서 아래를 보니 천 길 낭떠러지이다. 정상 끝에는 암벽등반용 쇠고리가 박혀있다. 녹 슨 상태를 보니 한동안 사용하지 않은 것 같다. 아래의 추모비와 연관이 있는 듯 하지만 자세히 알 수는 없었다. 우리 일행은 10여분 동안 멋진 쌀바위의 장관을 감상하며 번갈아 사진을 찍어주고 대자연이 주는 포만감에 흠뻑 취해있었다. 하늘님이 이제 살포시 눈을 뜨는 것 같은 느낌이다. 쌀바위에서 내려 온 우리는 쌀바위 옆 약수터로 향했다. 이 약수는 약간의 씁쓰름한 맛이 철분을 함유한 약수로 느껴졌다. 비어있던 물병도 마저 채우고, 갈증을 한방에 해소하려는 듯 시원하게 한 잔 들이켰다.
(쌀바위 산장과 쌀바위의 늠름한 모습)
(쌀바위로 오르는 수사사와 나)
(쌀바위에서 내려다 본 산장옆 전망대의 모습)
(쌀바위 낭떠러지 바위에서 아내와 나)
(쌀바위 표지석을 배경으로)
쌀바위의 멋진 풍광과 맛있는 약수를 마시고 가지산으로 향해가려는데 가지산에 대한 안내 푯말이 보인다. 가지산은 울산 12경중 하나로 울산에서 가장 높고, 태화강의 발원지라는 것과 산림청 선정 우리나라 100대 명산으로 우리나라 산 중에서는 일출을 가장 빠르게 볼 수 있는 산이라 한다. 또 이곳은 천연기념물 462호로 지정된 약 30만평의 규모의 철쭉 군락지로 219,000여 그루의 철쭉이 있고 우리나라 최대 규모라 한다. 또 보통 철쭉은 사람 키만 한 것이 보통이나 이곳에는 높이 5.5미터, 뿌리목 둘레가 3.2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철쭉나무를 비롯해 40여 그루의 철쭉고목이 자라고 있다한다. 5월 중순에서 말까지가 그 절정이라 한다. 척촉(躑躅)은 철쭉의 한자말인데 머뭇거릴 척(躑)에 머뭇거릴 촉(躅)을 쓰는 것은 꽃이 너무 아름다워 나그네의 발길을 잡는다는 데에서 유래한말이라 하는 것도 알게 되었다. 과연 철쭉 군락지답게 가지산으로 오르는 길 내내 길 옆으로 철쭉이 있었으나 아쉽게도 이미 거의 다 지고 길에 흩어진 꽃잎들과 간신히 매달려 있는 몇 송이 철쭉이 나그네의 마음을 아쉽게 하였다.
(가지산으로 오르는 길 - 길이 완만해서 마치 산책을 하는 느낌이다)
쌀바위에서 가지산 정상까지는 약 50분 거리로서 완만한 오름길이다. 설렁설렁 정상으로 향하는 길, 1000미터가 넘는 고지인데도 활엽수들이 온통 산길을 뒤덮어 그리 조망이 좋지는 않다. 철쭉은 이미 거의 다지고 그 흔적만 남아 있지만, 작약을 닮은 하얀 꽃이 대신 반겨주었다. 7시. 가지산 정상. 정상에는 울산 최고봉답지 않게 정상석이 너무 작아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우리가 지나온 능선들과 지나 갈 능선 그리고 영남알프스의 산너울이 파노라마를 그리고 있었다. 아까 쌀바위 산장에서 보지 못했던 눈썹그린 강아지가 이곳 정상에서 자기가 터줏대감이라고 우리를 반겨주었다. 그런데 정상에서는 파리와 벌들이 뒤엉켜 우리 일행을 아주 괴롭혔다. 이 파리 떼는 운문산을 넘어갈 때 까지 우리를 괴롭혀 산의 이미지를 아주 좋지 않게 하였다. 아무튼 파리 떼에 우리는 쫓기듯이 가지산 정상을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가지산으로 오르는 길 피어 있는 예쁜꽃)
(가지산 정상에서)
(가지산 정상에서 만난 눈썹그린 강아지 - TV에 출연해 유명해진 강아지라 한다)
가지산 정상 바로 아래에는 헬기장이 있고 군데군데 응가 지뢰가 묻혀있다. 그래서 파리가 유독 많다는 느낌이 들었다. 헬기장을 지나 다음 공터에서 아침 겸 점심 식사를 하였다. 4~5팀으로 옹기종기 나누어 각자 가져온 음식을 나누어 먹으니 그 맛 또한 꿀맛이다. 때가 때인지라 쌈이 가장 많다. 백두산님은 곰취나물과 상추, 고추, 호박잎을 가져오셨고, 우리도 옥상에서 딴 상추도 한자리를 차지하였다. 산행 중간에 먹는 식사는 언제나 즐겁고 맛있다. 맛있는 식사에 커피 한 잔을 얻어 마시고, 식사 장소 옆에서 가지산의 장관을 조망하였다. 산 능선과 너울은 원만하고 중간 중간 초록의 향연에 하얀 꽃들이 수놓아져 있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아랫재를 향해 길고 긴 행진을 계속한다.
(가지산을 내려서서 가는길에 만난 작고 예쁜 하얀꽃)
(산길은 한사람 겨우 빠져나갈 수 있을 정도로 울창하다. 지고 있는 철쭉이 안타깝다)
(식사시간은 언제나 즐겁다)
(식사를 한 후 - 뒤에 보이는 봉우리가 쌀바위이다)
지도 상 1092m 고지는 능선의 한지점으로 산은 아니다. 이 코스는 그렇게 완만하게 내림과 오름을 지속한다. 길은 사람 하나가 간신히 통과할 정도로 숲이 우거져 있고 덕분에 대부분의 능선 길에서 조망은 막혀있다. 그래도 간간히 조망을 할 수 있는 장소가 나와 그리 심심하지는 않다. 지도상으로 1092m 고지를 지나 삼양리로 내려가는 삼거리 바로 전 커다란 수직 바위를 만난다. 길에서 보니 거의 수직 낭떠러지를 품고 있는 바위로 먼저 도착한 일행들이 바위 끝에 서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손을 흔든다. 아내는 셔터를 누르기에 바쁘고 나는 얼른 가서 사진을 찍을 욕심에 발길이 바쁘다. 대자연이 만들어내는 멋진 장관에 우리는 그저 감탄과 경외심을 자아낸다.
(아랫재로 가는길에 만난 멋진 바위 위에서)
(이 바위의 뒤는 천길 낭떠러지이다. 뒤에 가지산이 보인다)
<인간은 우리가 <우주>라고 부르는 전체의 일부이며, 시간과 공간의 한계 속에 갇혀 있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와 생각과 감각이 우주의 나머지 부분과 분리된 것이라고 느끼는데, 사실 이것은 우리 의식이 일으킨 일종의 착시 현상에 불과하다. 이러한 환상은 우리에게는 하나의 감옥이며, 이 때문에 우리는 개인적 욕망만을 추구하며 우리와 가까운 사람들만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물론 이 감옥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우리 공감의 범위를 확장함으로써 모든 생명체와 찬연한 자연 전체를 끌어안아야 한다.> - 아인슈타인. 베르베르의 신에서 인용.
잠자는 하늘님을 일으켜 깨우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대자연과 우리가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일에서 시작된다. 나와 대자연의 일체감을 인지할 때, 우리는 비로소 나와 다른 생명과의 관계를 정립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마치 개별적이며 독립된 생명처럼 보이지만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그것은 우리의 의식이 일으킨 착각이다. 마치 섬들이 바다 위에 독립적으로 둥둥 떠 있는 듯 보이지만 바다 아래로는 다 땅으로 연결되어 있듯이, 우리네 생명도 하나하나 독립적으로 보이지만 생명의 심연에서는 다 하나의 생명 고리로 연결되어 있다. 내 앞에 펼쳐진 이 대자연은 나와 다른 것이 아니다. 내가 단지 숨을 쉬는 호흡의 과정을 통해서도 우리는 이미 대자연과 생명의 교류를 시작하고 있는 것이고 그와 나는 연결되어 있다. 생명은 생존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큰 눈으로 본다면 경쟁은 보다 큰 생명의 조화를 위한 작은 수단에 불과하다.
우리 인간들이 겪고 있는 갖가지 부조리와 부조와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그것은 <자아(自我)>와 <피자아(彼自我)>를 서로 다른 개체로 보는 것에서 시작된다. 우리 인류가 자연 생태계 안의 한 일원이었을 때에는 우리는 다른 생명들과 치열한 생존경쟁을 하였다. 그러나 인류의 문명은 우리 인류를 자연생태계의 순환 고리를 벗어나게 하였다. 지구 위에서 단 한 종류의 생명, 우리 인류만이 생태계를 벗어나 있다. 우리는 이제 그것을 조율할 위치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대자연은 우리에게 때론 명령을, 때론 당부를, 때론 경고를 하고 있다. 우리는 그의 명령과 당부와 경고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일까? 이 말은 “우리 안에 <하늘님>은 깨어나고 있는 것일까?”와 같은 의미일 것이다. 그것이 또한 나에게 맡겨진 숙제이다.
삼양리로 내겨가는 삼거리부터 아랫재 까지는 제법 가파른 내리막이다. 이 길에서 오늘 처음으로 우리 수사사 산행에 참여하셨던 여성 한 분이 넘어져 무릎을 다쳤다. 내리막의 앞에는 운문산이 거인처럼 우뚝 솟아있다. 내려가는 만큼 저 운문산으로 올라가야하는 길이 높아만 지는 것이다. 한참을 내려서 아랫재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잠시 멈추었다. 아랫재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산행 경로를 논의하였다. 아까 넘어진 여성 일행은 아랫재에서 남영삼거리 방향으로 하산하고 싶다고 하였고, 총무님은 여기까지 왔으니 운문산으로 그냥 오르자고 하였다. 결국 중간에 빠지는 팀 없이 모두가 완주하기로 하고 다치신 여성을 아내가 정성스럽게 치료하였다.
아랫재까지는 우리가 원래 계획하였던 시간과 기가막히게 똑 같이 움직였다. 시간 계획은 지도를 보고 내가 세웠는데 어쩜 그리 정확할까 나도 나에게 경탄스럽다. 그러나 아랫재에서 부터는 시간보다 쳐지기 시작하였다. 다치신 여성을 치료하고 휴식을 취하는데 20분 정도 소요되었고, 운문산을 오르는 초입 아내가 머리가 깨질듯 아프다고 꼼짝을 못한다. 허리가 아파서 복대를 하고 산행을 하였는데 그 조임으로 혈액 순환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모양이다. 거기에 다치신 분 치료한다고 10여분 쪼그리고 앉아 기를 나누어준 탓도 있었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여기까지 오는데 너무 지친 탓도 있었을 것이다. 아내는 너무 괴로워하고 나는 머리와 목을 주물러 주었지만 좀 채로 가라앉지 않는다. 산행을 포기하고 아랫재로 내려가 하산을 고민하고 있는데 옆에 계신 심산님이 호흡과 가벼운 목운동을 권한다. 10여분 숨을 몰아쉬고 목운동을 하더니 조금 나아졌다고 한다. 무릎을 다치신 여성과 아내 때문에 계획보다 30여분 지체되었다.
아랫재에서 운문산은 6번 속으며 올라가야 한다고 산적님이 말씀하신다. 아래에서 보면 정상이라고 생각해서 올라가보면 거기가 정상이 아니고 또 다른 정상이 나타나고, 또 그곳에 가보면 또 다시 정상이 아니고 그러기를 6번해야 진짜 운문산 정상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과연 운문산 정상으로 가는 길. 이 말이 실감난다. 특히 중간쯤 올라가다 보면 바위 고지가 보이는데 딱 그곳이 정상처럼 보인다. 그러나 막상 올라가보면 진짜 운문산 정상은 그 뒤에 버티고 서 있다. 한 시간이면 올라갈 길은 이미 지친 우리는 1시간 40분 만에 겨우 정상에 올라섰다. 정상에서 돌아보니 쌀바위와 가지산 정상 등 지나온 길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운문산은 가지산과는 달리 큰 정상석이 세워져 있다. 정상석을 배경으로 단체사진과 각각의 기념사진을 찍었다. 나도 아내와 폼 나게 사진을 한방 찍었다. 운문산 정상에는 가지가 둘로 펼쳐진 키 작은 소나무가 앙증맞게 서 있는데 거기서도 한 장 찍고 한 10여분 정상주로 막걸리를 나누면서 우리는 힘겹게 올라 온 정상의 즐거움을 만끽하였다. 나는 막걸리 한 병으로 운문산 산신령께 고수레하고 나머지는 하산 길에 마실 요량으로 배낭에 챙겨 넣었다.
(운문산으로 오르는길 - 저기가 꼭 운문산 정상 같지만 정상은 저 뒤에 버티고 있다)
(바로 위 사진 바위 고지까지 올라 찍은 사진)
(운문산 정상으로 향하는 계단에서)
(드디어 운문산 정상에서 함께 산행한 수사사 산동무들과)
(아내와 따로 한 컷 - 가운데 막걸리가 운문산 산신령에게 고수레한 막걸리)
(운문산 정상 옆 소나무에서)
이제 내려가는 길만 남았다. 하산 지점인 석골사 까지는 4,5Km. 지도상으로는 선녀폭포, 비로암폭포, 석골폭포 등 폭포도 3개있고, 얼음굴도 있고 치마바위며 상운암 계곡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지만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우리는 이 내리막이 그저 끝없이 이어지는 돌길로만 여기진다. 운문산 정상에서 20분 정도 내려오면 상운암과 만난다. 이 높은 산 위에서 암자에서 부처의 자비가 듬뿍 담긴 절 약수로 목을 축이는 것도 산행중의 큰 즐거움 중에 하나이다. 부처의 자비가 끝나자 나머지 길들은 돌과 무릎과의 지루한 싸움이다. 평소에 무릎이 안 좋은 산적대장, 한라산 회장님이 특히 힘겨워하신다. 산 중턱에는 돌탑무더기들이 보인다. 이 산에 돌이 얼마나 많은지 실감나게 해주는 돌탑에 앉아 잠깐 쉬고 또 지루한 하산을 계속한다. 어느 정도 내려오자 드디어 계곡에 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군데군데 물 있는 곳에 등산객들이 모여 산행에 지친 발과 피로를 풀고 있다. 우리 일행도 각자 적당한 곳에서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있을 것이다. 아내와 나는 한참을 내려와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등산화 끈을 풀었다. 발을 계곡물에 담그자 그 시원함이 온몸으로 전해진다. 얼마나 물이 차가운지 10초 이상을 온전히 발을 담고 있을 수 없다. 우리가 자리를 잡자 뒤에서 오시던 산적님과 한라산 백두산님 심산님이 합석하시고 아까 정상에서 남긴 막걸리와 점심때 산적님이 챙겨주신 떡과 산적님의 더덕주와 심산님의 소주를 비우며 한 동안 쉬었다. 우리 일행 중에 우리 뒤에 오는 팀은 없다. 우리는 어느덧 매번 산행에서 그렇듯이 꼴찌가 되어 있었다.
(하산길 중간에 만난 돌탑 무더기)
(돌탑을 이렇게 쌓아 놓았지만 길에는 온통 너덜 돌들로 깔려있다)
다리의 피로를 풀자 비로소 상운암 계곡의 멋진 풍광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하지만 선두와 차이가 많이 벌어진 것 같아 계곡을 즐기며 내려 올 처지는 아니었다. 쉬는 시간 포함하여 하산 길 3시간 30분. 드디어 석골사가 눈앞에 들어온다. 석골사는 그리 큰 절도 아니고 시간 관계상 절 안에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석골사 앞에는 삶은 계란을 내놓고 막걸리와 안주를 파는 작은 상점이 있다. 심산님이 이곳에서 막걸리를 한잔 하고 가자하는데 한참을 기다리고 있을 선두가 걸린다. 산적님이 총무님에게 전화를 해보니 아직 다 내려오지는 않았고 먼저 온 사람들이 버스 옆에서 뒷풀이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면 우리는 여기서 막걸리 한잔 하고 가도 되겠다며 자리를 잡았다. 운문산 막걸리로 시원하게 목을 축인 후 우리는 버스가 기다리는 원서리로 내려왔다. 3시 50분. 장장 11시간 50분에 걸친 길고 긴 산행이 끝났다. 맨 꼴찌로 도착한 우리는 남은 음식으로 간단히 뒷풀이를 한 후 버스에 몸을 실었다.
(계곡에 족욕을 하고 피로를 푸니 이 멋진 풍광이 보인다)
(석골사를 거의 다 내려온 지점에서)
(아 아름다운 계곡이 산행의 마지막에 보였다)
버스는 이내 고속도로로 올라가 집으로 향해 내달렸다. 모두 너무 피곤하였는지 금방 골아 떨어졌다. 나도 피곤에 세상모르고 잠이 들었다가 금강휴게소라고 잠시 쉬고, 안성휴게소에 들러 우동 한 그릇씩을 비웠다. 고속도로에서는 오늘 아침에 일출을 보지 못해 아쉬웠던 태양이 서쪽하늘로 붉게 지고 있었다. 올라오는 내내 버스는 신기하게도 한번도 막히지 않고 안양까지 올라왔다. 안양에 도착한 시간은 9시 30분. 안양일번가에 내려 아내의 친구인 영권이가 확장 개업한 카페에서 총무님 내외와 맛있는 케이크와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집에 들어왔다.
(고속도로로 올려오는 길 서쪽 하늘도 태양이 지고 있다)
산은 나에게 무엇일까? 무슨 매력이 있기에 밤을 새워 그 멀리 있는 산에 갔을까? 산에 오르는 길은 인생을 걷는 모습과 같을지도 모른다. 혼자서 가야하는 길. 그러면서 함께 가야 하는 길. 우리의 삶은 ‘홀로와 함께’가 뒤섞여 있다. 산은 멋있고 아름답지만 힘이 든다. 인생도 그런 것이 아닐까? 우주의 한 조각으로 ‘자아’를 인식할 수 있으며 사랑하고 즐거워하며 행복해하는 것이 인생이다. 또한 그 생명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 고뇌하고, 슬퍼하고, 절망하고, 갈등하며, 아프고, 힘들게 걸어가는 것이 인생일 것이다. 하늘님의 잠을 깨우러 나는 영남알프스로 나는 향했고 그 산의 아름다움과 힘듬에 기쁨과 고통을 함께 맛보았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묻는다. 내 안에서 잠자는 하늘님은 잠에서 깨어나고 있습니까?
2011년 6월 12일 영남알프스 가지산-운문산을 산행하고
글 : 하늘바다 여운종 사진 : 가을햇살 김은경 외